오래된 나무엔 이야기 담겨 지팡이가 나무된 전설 대표적
막걸리 마시는 처진 소나무 사제 정 느낄 수 있는 쌍향수 스님과 생사 함께하는 고향수 자장율사 이야기 간직 주목 등 절집나무에 대한 전설 풍성
몇 년 전 충북 괴산 삼송리 소나무(일명 왕소나무)가 태풍에 쓰러졌다. 쓰러지기 전까지만 해도 마치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수령 600년의 위용을 자랑하며 마을 주민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한 소나무였다. 그 오랜 세월 그 자리를 지켜왔건만 그렇게 사라졌다. 우리네 인생도 그렇지만 나무도 천년만년 오래 가기 힘든가 보다. 전쟁이 많았던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말이다.
오래된 나무가 드물기 때문이지 오래된 나무에는 이런 저런 이야기가 담겨있다. 절집 나무의 경우 옛 스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덧붙여 전해진다. 어떤 스님의 지팡이가 자라 나무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한두 군데 전해지는 이야기가 아니다.
신라시대 적멸보궁을 지은 자장율사가 꽂은 지팡이가 자라난 강원도 태백산 정암사 주목, 신라시대 의상 스님의 지팡이가 자라난 경북 영주 부석사의 선비화,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 스님의 지팡이가 자라난 전남 순천 송광사 천자암 쌍향수와 고향수(枯香樹), 고려 공민왕 때 전남 장성 백양사를 중창하고 비자나무 숲을 조성한 각진국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쌍계루 연못가에 꽂아두었던 것이 자라난 ‘각진국사 이팝나무’, 산신령이 나타나 점지해준 터에 꽂은 지팡이가 자라난 충남 태안 백화산 흥주사의 은행나무, 500여 년 전 어떤 스님의 지팡이가 자라나서 해마다 한 번씩 막걸리 열두 말을 먹는 경북 청도 호거산 운문사의 ‘처진 소나무’, 한암 스님이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거꾸로 꽂아둔 것이 자라난 강원도 오대산 중대 사자암의 단풍나무, 신라 마의태자(또는 의상 스님)의 지팡이가 자라난 경기도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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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백산 정암사 주목. |
그 가운데 사제지간의 정을 느낄 수 있는 지팡이 나무가 있다. 그것도 쌍지팡이가 살아서 나무가 된 것이다. 바로 전남 순천 송광사 산내 암자인 천자암에 있는 쌍향수이다. 송광사 승보전 벽에 그려진 심우도에도 쌍향수가 배경으로 등장한다.
곱향나무인 쌍향수는 두 그루가 하나로 뭉쳐서 자라는 것처럼 보인다. 키는 12.5m, 가슴 높이의 둘레가 왼쪽 것이 3.98m, 오른쪽 것은 3.2m의 크기다. 곱향나무는 원래 백두산 지역에서 자라는 나무로 알려졌다. 현재 남한 지역에서 발견된 곱향나무는 천자암의 것이 유일하다고 한다. 천연기념물 제88호로 지정 보호되는 쌍향수는 손으로 나무를 잡고 흔들면 극락에 간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이야기 때문에 사람들의 손길이 잦아지자 나무 주위에 철책을 쳐서 쌍향수를 보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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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천 송광사 고향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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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암은 송광사 산내 암자 가운데 가장 멀리 있다. 14세기 초 송광사 담당국사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추정한다. 보조국사가 금나라에 가 왕비의 병을 고쳐준 인연으로 왕자를 데리고 귀국하였다. 그 왕자가 바로 담당국사이다. 보조국사와 담당국사가 중국에 다녀올 때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나란히 꽂아 놓은 것이 두 그루의 향나무로 자라났다. 그 향나무가 바로 쌍향수로 오늘날까지 신비로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천자암 창건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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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조국사와 담당국사가 꽂은 지팡이가 자라나 천자암 쌍향수가 됐다고 전해진다. |
지팡이가 자라서 된 나무는 아니지만, 사제지간의 정을 느끼게 하는 나무가 또 있다. 바로 여주 신륵사 조사전 앞에 있는 향나무이다. 수령 500~600년 된 이 향나무는 나옹 스님(1320-1376)의 제자인 무학 스님(1327-1405)이 심은 나무라고 한다. 스승의 가르침을 기리며 스승의 영정 앞에 향을 피운다는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심었다고 한다. 신륵사는 나옹 스님의 열반처이다.
지팡이 나무 가운데 부석사 선비화, 정암사 주목, 송광사 고향수에는 다소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지팡이 나무와 스님이 생사를 같이 한다는 이야기이다. 그 나무가 살아 있으면 스님도 살아 있고, 죽은 나무가 살아나면 스님이 다시 이 땅에 오신다는 것이다.
경북 영주 부석사는 신라 의상 스님(625-702)이 세운 절이다. 무량수전 삼층석탑 옆으로 난 산길을 따라 5분 정도 올라가면 조사당이 나온다. 의상스님의 진영을 모신 전각이다. 그 조사당 처마 밑에는 철망 속에 보호(?)되고 있는 특별한 나무가 있다. 바로 의상 스님이 짚고 다니던 지팡이가 자라난 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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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석사 조사당 선비화의 기원은 의상 스님이 짚고 다니던 지팡이다. |
스님은 지팡이를 꽂으면서 말하였다. “이 나무가 싱싱하게 잘 자라면 나는 세상 어느 곳인가 살아 있는 것이고, 이 나무가 시들어 죽으면 나 역시 생을 마친 것이 될 것이다.” 이 나무는 ‘선비화(仙扉花)’(신선의 집)라 전한다. 또는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스님들은 잎이 피거나 지는 일이 없어 ‘비선화수(飛仙花樹)’라고 한다”고 한다.
선비화의 관련된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조선 광해군 때 경상감사를 지낸 ‘정조’라는 사람이 지팡이를 만들겠다면서 이 나무를 잘라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는 광해군이 물러가고 인조 때 역적으로 몰려 참형을 당하였다. 선비화를 훼손하였기 때문에 화를 당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지금 역시 사람 손을 탈까 염려하여 촘촘한 철망 속에 보호하고 있다.
신라 자장율사(590-658)는 중국에서 부처님 진신사리를 이 땅에 모셔왔다. 이 진신사리를 모신 5대 적멸보궁(설악산 봉정암, 오대산 중대, 태백산 정암사, 사자산 법흥사, 양산 통도사) 가운데 하나가 바로 태백산 정암사이다. 갈래사라고 불렸던 정암사는 자장율사가 창건하였다.
‘갈래사사적기’에 의하면, 자장율사는 말년에 강릉 수다사에 머물렀다. 하루는 꿈에 어떤 스님이 나타나 “내일 대송정에서 보리라” 하였다. 아침에 대송정에 가니 문수보살이 나타나 “태백산 갈반지에서 만나자” 하고 사라졌다. 자장율사는 태백산으로 들어가 갈반지를 찾다가, 어느 날 큰 구렁이가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을 보고 제자에게 “이곳이 갈반지”라 이르고 석남원(石南院)이라는 절을 지었다. 이 절이 정암사이다.
정암사 적멸보궁은 자장율사가 석가모니부처님 진신사리를 수마노탑에 모시고 참배하기 위해 건립한 법당이다. 이 적멸보궁 옆에는 선장단(禪杖檀)이라는 고사목인 주목(朱木)이 있다. 주목은 나무속이 붉은 색을 띠고 있어 ‘붉은(朱) 나무(木)’라 불린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말은 이 주목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나무는 자장율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심은 것으로 처음에는 수백 년 동안 자랐으나 이후 고사목으로 남아있다. 다시 이 나무에 잎이 피면 자장율사가 다시 나타난다고 전해져 내려오는데, 몇 년 전부터 그 나무 안쪽에서 새로이 나무가 자라나고 있다. 과연 이 나무가 살아 새 생명을 나타내는 뜻은 무엇일까? “계를 지키고 하루를 살지언정 계를 파하고 백년을 살지 않겠다”던 자장율사가 오늘날 다시 계율 정신을 일깨우고자 함은 아닐까?
전남 순천 송광사 일주문 바로 안쪽에 고사목 한 그루가 있다. 이는 고려 보조국사가 꽂은 향나무 지팡이가 자라난 것이라고 한다. 그런 나무가 언제인가 죽어 고사목이 되었는데, 보조국사가 송광사를 다시 찾을 때 살아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구산 스님(1909~1983)은 ‘석사자(불일출판사, 1980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송광사 정원에 고향수(枯香樹)가 한 그루 서 있다. 그 안내판에 이렇게 씌어 있다. ‘아생여생(我生汝生)하고 아사여사(我死汝死)라. 내가 살면 너도 살고 내가 죽으면 너도 죽는다.’
그런데, 이 글이 잘못 전해져서 보조국사가 다시 살아나면 고향수도 살아나는 거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그런 말이 아니다. 자성을 발견할 때에 자기자신이 생사를 초월하면 우주만유가 동시에 생사를 해탈하기 때문에 ‘내가 살면 너도 산다’고 말한 것이다. 그래서 미혹할 때에는 주객이 분리되고 깨달을 때에는 주객을 초월하여 격외인(格外人)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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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경찬 교수 | 구산스님의 말씀과 달리 사람들은 ‘보조국사가 송광사를 다시 찾을 때 나무가 살아날 것’이라고 전한다. 그것은 아마 가르침을 전해줄 스승이 그리워서가 아닐까 한다.
목경찬 불광교육원 전임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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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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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들이 아 짚고 가다가 꽂은 나무가 자란 나무들이 많습니다. 고승들의 신통력이 아닌가 합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