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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부자농원 원문보기 글쓴이: 관리자
공주에는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자 끝까지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절개를 지킨 고려 유신 이명성(李明誠)과 예문춘추관, 좌부대언 등을 지냈고 세종이 즉위하자 이조참판, 병조참판 등 많은 벼슬을 지냈으며 70세에 벼슬에서 물러난 후에 우의정으로 추증된 인물 이명덕((李明德), 1374∼1444) 형제의 학행을 기념하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 있는데 이곳에 두 선생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전통양식의 사당이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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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당의 이름은 충절사(忠節祠)로 공주시 월송동에 위치하고 있다. 공주시 월송동은 23번국도가 금강을 가로지르는 신공주대교 북단에 위치하는 금강변의 마을이며 약 100m의 구릉인 국수봉 서쪽 자락에 위치한다. 이 마을은 국수봉 자락이 마을의 중심에 언덕을 형성하여 흐르고 있어 언덕을 사이에 두고 윗사송정과 아랫사송정 두 마을로 나뉘어 있다. 충절사가 있는 곳은 금강과 신공주대교가 바라다 보이는 아랫사송정 마을의 제일 양지바른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는 성종 때 충남 연기군 명탄에 세웠던 충절사라는 사당인데, 명탄서원(鳴灘書院)이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선조 18년(1585)에 서원 이름을 하사 받았으며 임진왜란 때 불 타 없어진 것을 철종 2년(1851)에 공주의 유생들이 지금 있는 자리에 새로 지었다. 이후 1956년 충절사를 다시 지었으며 1985년에 묘정비와 강당을 지었다. 현재 서원 뒤편에 충절사와 그 뒤로 이명덕의 묘와 묘비 가 있으며 서원의 외삼문은 없고 강당과 사당만 남아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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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퇴칸 다음의 측면 두칸과 후면 3칸은 벽으로 감싸고 정면 3칸은 분합문을 설치한 어둠의 공간으로 조성하여 신위를 모신 내부공간의 신성함을 높이고 있으며, 사당 내부의 벽 중앙부 볕이 사당 내부로 스며드는 곳을 향하여 두 선생의 영정과 위패가 모셔져 있다. 전통적으로 서원이 설립된 장소는 존경받을 만한 선연의 연고지인 동시에 사람들이 은거하여 수양하며 독서하기에 좋은 곳, 즉 산수가 빼어난 곳이기도 하였다. 명탄서원이 그렇다. 서원 앞으로는 금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으며 그 너머 월성산이 이 서원의 안산(案山)을 이루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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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탄서원은 1985년에 묘정비와 강당, 고직사 건물을 지었고 서원 뒤편에는 이명덕의 묘와 묘비가 있으며 봄·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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