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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랑스 고성투어
여행일시:2025년 11월 10일(월) ~ 11월 19일(수) 10일.
여행지 :북프랑스 일주
인천~파리~샹티이~오베르쉬르와르~루앙~에트르타~르아브르~옹플러~캉~몽생미셀~생말로~푸제흐~투르~시농~아제르리도~투르~쉬농소~앙부와즈~샹보르~퐁텐블로~바르비종~보르미콩트~파리~인천
모집인원 :16인
여행경비 :630만원 유로화 상승으로 금액조정했습니다.
여행 신청:계약금 150만원
781401-04-133912 국민은행 주식회사 돈암재투어(해외여행계좌)
포함사항 :항공료, 호텔, 전용차량, 식사, 여행자보험 등 여행 전반에 필요한 모든 비용
불 포함사항 :매너팁, 주대(술), 물, 개인적으로 사용하시는 모든 비용.
진행 :머 핀 김경홍 010 2784 3382
* 여행 상세 일정 *
1일차: 인천국제공항출발→파리도착
2일차: 호텔조식후 → 샹티이성(내부 정원 점심) → 오베르쉬르 와르(고흐 마지막 작업실) → 루앙(석식 호텔)
3일차: 조식후 → 루앙 시티투어 → 에트르타(점심) → 르아브르(앙드레말로 미술관) → 옹플러(석식 호텔)
4일차: 조식후 → 옹플러 시티투어 → 캉(성벽 미술관 점심) → 몽생미셀(석식 호텔)
5일차: 조식후(몽생미셀) → 생말로 시티투어(점심) → 푸제흐(성내부) → 투르(석식 호텔)
6일차: 조식후(투르) → 시농 → 아제르리도성(점심) → 투르(석식 호텔)
7일차: 조식후(투르) → 쉬농소성(점심) → 앙부와즈성 → 샹보르성(석식 호텔)
8일차: 조식후 → 샹보르성 내부 → 퐁텐블로성(점심) → 바르비종(석식 호텔)
9일차: 조식후(바르비종) → 보르미콩트성 → 파리 시티투어(쇼핑, 점심) → 공항
10일차: 인천국제공항도착
* 여행지 안내 *
▶샹티이성(Château de Chantilly)
파리 북부 우아즈 주에 위치한 샹티이성. 중세시대 요새였던 건물로 여러번의 보수와 재건축을 거쳐 지금의 화려한 모습을 갖게 되었다.
특히 프랑스 혁명 당시 폐허가 된 성곽을 재건한 프랑스의 마지막 왕 루이 필립의 아들 오말 공작은 생전 막대한 부를 거머쥔 인물로 샹티이성을 신혼집으로 사용했다. 이때 당시 최고의 예술 작품을 대량으로 수집하여 성을 꾸민 덕분에 샹티이성은 그림과 책, 보석 등 다양한 시대의 걸작을 볼 수 있는 박물관이 되었다.
1886년 오말 공작은 생전 프랑스 학사원 (Institut de France)에 건축과 인테리어를 변경하지 않고 일반에 공개하는 것을 조건으로 성을 기증한다. 이 때 이전에 성을 크게 꾸몄던 '그랑 콩데' (Louis II de Bourbon-Condé)의 이름을 따 "콩데 미술관 (Musée Condé)"이라 이름짓는다.
▶오베르쉬르 와르(Auvers-sur-Oise)
화려하지 않고 나즈막한 미를 뽐내는 마을에 참 잘 어울리는 오베르쉬르 와르성. 1635년 마리 드 메디치 궁정의 영향력 있는 이탈리아 금융가인 자노비 리오니를 위해 지어진 이 기념물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빌라의 웅장함을 잘 보여 준다. 이 건축물은 고대에서 영감을 받은 조개 모자이크 님페이움으로 보완되며, 현재 프랑스에 남아 있는 마지막 건축물 중 하나이다. 성 안쪽에 위치한 잘 가꾸어진 정원은 오베르쉬르 와르 마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기도 하다.
빈센트 반 고흐가 화폭에 담은 풍경을 가진 마을, 오베르쉬르 와르. 파리 근교에 위치한 이 마을은 고흐가 정신병원 퇴원 후 눈을 감기까지 머물었던 마을로 유명하다. 고흐는 이 작은 마을에서 약 2달이 조금 넘는 기간을 머물며 70여점의 작품을 남겼는데, 거의 하루에 한 작품을 그린 셈이다. 그의 묘지는 마을 공동묘지에 있으며, 동생 테오의 묘역과 나란히 있다.
▶루앙(Rouen)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123km 거리에 위치해 있으며, 원래는 프랑스 북부 행정 구역인 오트노르망디(Haute-Normandie)의 중심 도시였으나, 2016년의 레지옹 개편으로 오트노르망디가 노르망디에 합병되어 노르망디의 중심 도시가 되었다. 센 강이 시내를 통과하는데 센 강을 기준으로 오른쪽의 구 시가지와 왼쪽의 신 시가지로 나뉜다.
성녀 잔 다르크가 화형당한 곳으로 유명한 프랑스 북부의 살기 좋은 도시, 루앙도시 곳곳에 남아있는 중세 시대의 목조 건축물들이 매력적인 곳이다. 프랑스에서 가장 높은 첨탑을 가진 루앙 대성당과, 14세기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화려한 시계탑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에트르타 (Etretat)와 옹플뢰르 (Honfleur)
인상파 여행은 이 두 도시를 빼 놓고는 이야기가 안 된다. 루앙과 지베르니가 오롯이 모네의 도시라면 에트르타와 옹플뢰르는 인상파 화가 '전부'의 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에트르타의 거친 바다>는 모네가 1864년부터 1886년까지 일곱 차례나 에트르타를 방문한 끝에 만들어낸 수작이다. 들라크루아, 시냐크, 쿠르베와 마티스, 빅토르 위고, 모파상 등 장르와 전공을 가리지 않고 예술가들이 이 지역을 좋아한 데는 이유가 있다. 에트르타의 절벽 위에 직접 서 보거나, 대서양으로 흘러드는 센 강과 옹플뢰르의 귀여운 항구 앞에 서 보아야만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사과로 만든 상큼한 과실주인 시드르(cidre) 한 잔을 곁들여 요기를 한 뒤 에트르타의 절벽 위로 난 계단을 한 발 한 발 올라 본다. 옆구리가 당겨 오면 계단에 걸터앉아 대서양의 바람을 느끼고, 다시 땀이 식으면 멀리 보이는 꼭대기를 향해 걷다 보면 화폭에 자주 등장했던 그 장면이 눈 안에 들어온다. 옹플뢰르에서도 마찬가지다. 보트들이 옹기종기 정박해 있는 크지 않은 항구를 갈매기와 함께 걷다 보면, 어느 순간 갑자기 섬세한 붓터치 같은 빛이 주변을 부드럽게 채색하는 걸 느낄 수 있다. 바라 봐 주는 것만으로 꽃이 되고 빛이 될 인상파 화가들의 팔레트가 이 도시들의 풍경 속 어딘가에 숨어 있다.
▶ 르아브르(Le Havre) : 인상파와 야수파의 요람
‘바다로 나가는 관문’이라는 별명을 가진 르아브르는 예술사를 완전히 뒤바꾼 도시 중 하나다. 인상주의 화가 모네의 ‘인상, 해돋이’로 유명해진 부둣가부터 외젠 부댕이 묘사한 항구 어귀와 생타드레스 해변까지, 작품 속 장면을 발견하는 특별한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클로드 모네의 스승인 외젠 부댕(Eugène Boudin)은 자신이 태어난 옹플뢰르(Honfleur)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뒤 르아브르에서 작품 활동을 펼쳤다. 모네가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Musée Marmottan)에 전시되어 있는 ‘인상, 해돋이’로 인상파 화가로서 이름이 알려진 데 비해, 실제 이 그림을 르아브르의 호텔 아미로테(Hôtel Amirauté)의 ‘화가의 침실’ 창문에서 완성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르아브르에서 태어난 프랑스 화가 라울 뒤피(Raoul Dufy)와 오통 프리에스(Othon Friesz) 그리고 여덟 살에 르아브르로 온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는 야수파의 핵심 인물로, 특히 브라크는 입체파를 창시하기도 했다. 이런 자랑거리를 내세울 수 있는 도시는 많지 않다. 그러나 오늘날 수많은 사람이 언급하는 예술사와 현대미술의 기초가 된 인상파, 야수파 모두 르아브르에 내리쬐는 찬란한 빛과 밀접하게 연결된 셈이다.
‘바다의 맨해튼’으로 불리는 르아브르는 200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공식 등록됐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도시 대부분이 파괴되었지만, 콘크리트 건축의 선구자 오귀스트 페레(Auguste Perret)가 도시를 재건하면서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건축 도시로 재탄생했다. 오스카 니마이어(Oscar Niemeyer), 장 누벨(Jean Nouvel), 알렉상드르 체메토프(Alexandre Chemetoff) 등의 건축물이 다수 남아 있다.
▶ 캉(Caen)
캉은 프랑스 북서부 노르망디 지방 칼바도스 주의 주도 이며 오른 강에 위치하며 영국 해협 에서 9마일(14km) 떨어져 있으며 르아브르 에서 남서쪽으로 위치해 있습니다. 오른 강과 운하를 통해 영국 해협과 연결되는 항구도시이다.
11세기 정복왕 윌리엄(윌리엄 1세) 시대 때 노르망디의 한 중심지가 되었고, 그도 이 곳에 묻혔다. 1346년 에드워드 3세가 정복하여 잉글랜드의 지배하에 있다가 1450년 프랑스로 넘어왔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노르망디 상륙 작전 때 이 도시는 중요한 요충지 중 한 곳이었으며, 크게 파괴되었다가 전쟁 후 근대적인 도시로 재건되었다. 11세기에 건립되어 윌리엄 왕과 왕비 마틸다가 각각 묻힌 생테티엔 성당과 트리니티 성당이 남아 있으며, 그 외의 역사적인 건물들도 복원되었다.
▶몽생미셀(Mont-Saint-Michel)
“서양의 경의로움”이라고도 불리는 몽생미셀(Mont-Saint-Michel)은 중세 시대부터 유럽에서 가장 주요한 순례지로 꼽히는 곳이다.
709년 아브란슈의 주교였던 생 오베르(Saint Aubert)가 꿈속에 연속적으로 세 번 출현 한 미카엘 대천사(생 미셸의 어원)의 명령으로 몽 통브(Mont-Tombe)에 예배당을 세운 것이 오늘날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었다. 966년 노르망디 공작이 이곳에 살게 되면서 베네딕토회 수도원을 건설 했으며, 11세기에는 교회가 건축되었다. 백년 전쟁 중에는 수도원 아래 부분에 위치한 마을에 성벽이 둘러쌓여 지면서 요새의 기능을 하기도 했다.
프랑스 혁명 이후에는 감옥으로 사용되기도 하여 19세기 들어 대규모 보수 공사를 거친 후 찬란했던 과거의 모습을 되찾았고, 1874년 역사 유적지(monument historique)로 지정 되었다.
성당은 오늘날까지 만과 함께 빼어난 조화를 이루며, 시대를 초월해 건축학상으로 역사적인 업적에 꼽히고 있다. 1979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후로 몽생미셀은 프랑스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관광지 중 하나가 되었다. 매년 전 세계에서 최소 2백 5십만 명이 몽생미셀을 찾고 있다.유럽에서 가장 큰 조수간만의 차이를 지닌 몽생미셸 만이 자아내는 풍경보다 아름다운 장면이 있을까? 일년 내내, 특히 날이 맑은 날에는 더더욱, 순례자 또는 관광객들은 몽생미셸 만을 건너며 특별한 시간을 경험한다.
관람객들은 몽생미셸의 오래된 골목길을 지나 바위산 꼭대기에 위치한 수도원에 다다를 수 있다. 수도원 광장의 서쪽 테라스에서는 숨이 멎을 듯한 멋진 바다 풍광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생말로(Saint-Malo)
해적들의 도시로 유명한 생말로는 영불해협에 자리 잡고 있는 항구 도시이다. 생말로 앞에는 영국령 건지(Guernsey) 섬과 저지(Jersey) 섬이 있다. 이 두 섬에서 빅토르 위고(Victor Hugo)가 망명 생활을 했고 특히 저지 섬에서 그 유명한 <레미제라블(Les Misérables)>을 집필했다.
생말로는 행정 구역상으로는 프랑스 브르타뉴 레지옹Région Bretagne), 일-에-빌렌 데파르트망(département d’Îlle-et-Vilaine)에 속하고 있다. 파리에서는 서쪽으로 455㎞ 떨어져 있고, 브르타뉴 레지옹의 중심 도시이니 렌(Rennnes)에서는 75㎞ 떨어져 있다. 인구는 2020년 기준 4.7만 명으로 매우 작은 도시이다.
생말로라는 이름은 웨일스(Wales) 출신으로 영불해협을 건너 선교 활동을 하고 생말로 지역의 첫 번째 주교가 된 마클로비우스(Maclovius)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다.
랑스 강의 하구를 지키는 요새 도시로 건설된 생말로는 오랜 세월 동안 해적들의 근거지였으나 현재는 브리타니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관광 도시로 변모하였다. 재건된 구시가의 활기 넘치는 거리와 탁 트인 비치 일대를 산책해 봐도 좋을 것이다. 생말로는 오래된 성벽, 아름다운 에메랄드 빛 해변, 고풍스러운 거리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푸제흐(Fougères)
2000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재로 등재된 푸제흐성은 프랑스에서 가장 위엄 있는 12~15세기 중세 방어용 성곽으로 전체 약 6천 평에 달하는 면적을 갖는다. 비록 성주가 살았던 건물은 폐허가 되었지만 3중 성벽은 아주 잘 보존되어 있으며, 12개의 망루가 우뚝 솟은 모습에서 당시의 위용을 느껴볼 수 있다.
6세기 경 독일 북부에 살던 앵글로 색슨족이 영국으로 이주하여 오자, 원주민이던 캘트족이 대륙으로 흩어지면서 그 일부가 정착하여 뿌리를 내린 곳 브르타뉴 지방은 중세까지 프랑스 왕에게 군신의 예를 갖추지만 독립적인 브르타뉴 공작의 영지였다. 브르타뉴 지방의 동쪽 끝, 국경지대에 위치한 푸제흐 요새는 복원이라는 이름으로 지나치게 바꾸지 않아, 무너진 곳은 그 상태로 500년 전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 아름다운 고성이다.
중세의 모습을 간직한 풍광이 아름다워, 1828년 발자크(Honoré de Balzac)작가가 몇 주간 머물면서 작품에 몰두하여 1829년 <올빼미 당원들 (Les chouans)>을 집필한 곳이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빅토르 위고(Victor Hugo)의 작품 중에 프랑스 대혁명 상황을 묘사한 작품 '93 Quatre-vingt-Treize' (1879) 속에서 푸제흐성의 맬뤼진(Mélusine) 탑을 상세히 묘사하기도 하였다.
▶투르(Tours)
프랑스 중심부에 있는 투르는 포도원으로 둘러싸여 있는 고풍스러운 도시이다. 루아르 강(Loire River)이 이 지역을 지나 대서양 해안으로 흘러 들어 간다. 이 도시는 서기 732년의 투르 전투(Battle of Tours)로 유명하며 중세 시대의 여러 골목, 거리, 광장을 돌아다니며 박물관, 미술관, 교회 및 공원을 찾아 볼 수 있다.
순수 미술관은 이전에 주교 관저로 사용되던 곳으로, 모네, 루벤스, 렘브란트, 로댕 및 기타 예술가의 그림과 조각품을 포함해 1,000점이 넘는 미술 작품들과 웅장한 구조물의 뜰과 형형색색의 정원을 둘러볼 수 있다.
이 도시의 중앙에 있는 광장인 플뤼므로 광장에는 고급 레스토랑과 카페가 모여 있다. 야외에 자리를 잡고 앉아 커피를 마시고, 광장 양쪽에 줄지어 있는 유서 깊은 건물들의 흑백 파사드의 경이로운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이 지역은 투르에서 가장 유명한 곳 중 하나로, 인기 있는 만남의 장소다.
▶시농(Chinon)
시농(Chinon)은 앙제(Angers)와 투르(Tours) 사이, 비엔(Vienne) 강과 루아르 계곡(Loire Valley) 사이에 있는 마을이다. 성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마을에는 머무는 동안 방문할 만한 흥미로운 역사적 유적도 많이 있다.
강 풍경과 흥미롭고 역사적인 중심가와 인상적인 성이 결합되어 시농은 루아르 계곡 지역에서 관광객이 가장 좋아하는 작은 마을 중 하나이다. 강 건너 다리에서 방문을 시작하면 마을과 성의 멋진 전망을 감상할 수 있고, 가장 좋은 파노라마 전망은 다리 반대편에 있는 Quai Danton에서 볼 수 있다.
성에서 내려가면 시농의 가장 최근 지역의 중심인 Place du General de Gaulle로 바로 연결된다. 시농 구시가의 주요 부분은 광장의 서쪽에 있으며, 집 위로는 종종 시농성의 성벽이 보인다. 광장 측면의 Rue du Commerce와 Rue Rabelais는 시농에서 대부분의 상점과 카페를 찾을 수 있는 거리이다.
▶아제르리도성(Château d'Azay-le-Rideau)
아제르리도성은 프란시스 1세의 통치 기간 앵드르강(Indre River)의 한 섬에 지어졌다. 프랑스 전통 양식과 혁신적인 이탈리아 장식의 미묘한 조화는 16세기 루아르 계곡의 새로운 건축 상징이다. 아제르리도성의 건축가들은 다이아몬드 커팅 방법에서 영감을 받아 건물에 반영했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지 않으면 성 주변의 잔잔한 물가와 함께 완벽한 모습을 갖춘다. 물은 이 성을 비추는 경이로운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한다.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소설가 오노레 드 발자크(Honoré de Balzac)는 "앵드르 강에 박힌 다이아몬드"라고 칭송하기도 했다.
아제르리도성은 프랑스 르네상스 건축물 중 하나로 미국의 중세 건축사인 찰스 허버트 무어(Charles Herbert Moore)는 프랑스 르네상스 건축을 이야기하며 아제르리도성에 대해 언급했다. '프랑스 르네상스 건축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고딕 양식이 약간 섞여 있고, 규칙과 올바른 비율에 중점을 두지 않으며 창의성과 표면의 풍부함을 강조한 건축이다'.
전체적으로 직사각형의 건물이 이어지며 양끝 모서리에는 필라스터(벽기둥)이 세워져있다. 주거용으로 지어졌지만 돌출된 필라스터와 성곽, 엔태블러처(기둥에 의해 지지되는 부분) 등 요새화된 중세 성의 모습이 상징적으로 남아 있어 초기 르네상스 디자인으로 넘어가는 하이브리드한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쉬농소성(Château de Chenonceau)
쉬농소는 < 여인들의 성 >이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기도 한데, 왜 그렇게 불릴까?
프랑수아 1세때 건축된 쉬농소성(château de Chenonceau)은 훗날 소유권이 앙리 2세에게 넘어갔다. 앙리 2세는 성을 그의 부인이 아닌 사랑하는 애인 디안 드 푸아티에(Diane de Poitiers)에게 선물로 준다.
앙리 2세가 사망하자 카트린 드 메디치는 디안 드 프와티에게서 성을 빼앗아 며느리이자 앙리 3세의 미망인 루이즈 드 로렌(Louise de Lorraine)에게 주었으며, 이후 앙리 4세의 연인 가브리엘 데스트레(Gabrielle d'Estrées)에게 전해 내려왔다.
뒤팡(Dupin) 부인은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를 거뒀으며, 펠루즈(Pelouze) 부인은 쉬농소성을 놀랄 만큼 잘 복원 하였다.
이처럼 쉬농소성은 4세기에 걸쳐 여섯 명에 이르는 여성주가 살았으며, 쉬농소성의 박물관에서는 남아 있는 그녀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다.
내부에서는 르네상스 스타일의 가구와 16, 17세기 타피스트리, 코레쥬(Corrège), 뤼벤스(Rubens), 틴토레(Tintoret)의 회화 작품 등을 관람 할 수 있다.
▶앙부와즈성(Château Royal d’Amboise)
루아르(Loire) 강 근처의 앙부아즈(Amboise)의 위치한 앙부아즈성(Château Royal d’Amboise)은 강가에 있다. 고딕 스타일부터 르네상스 초기의 건축 양식까지 볼 수 있는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앙부아즈성은 프랑스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성이다. 발루아와 부르봉 왕가의 거주지였던 이곳은 정치적, 경제적, 예술적 활동이 활발했던 곳이다. 유명한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는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에 대한 애정과 이탈리아 예술의 특별함을 앙부아즈로 가지고 오게 되었다.
앙부아즈성의 정상에서는 앙부아즈의 전경과 루아르강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전경이 펼쳐진다.
강변에 지어진 앙부아즈성의 정원은 훌륭할 정도로 아름답게 가꿔져 있다. 로즈마리, 자스민과 같은 다양한 꽃과 식물들로 가득하다. 또한 정원 안쪽에서는 루아르강의 가장 아름다운 전망을 볼 수 있으며 해 질 녘에 가장 아름다운 뷰를 자랑한다.
▶샹보르성(Château de Chambord)
지금으로부터 약 500년 전에 르네상스 건축의 보물이라 할 수 있는 샹보르성(Château de Chambord)의 건설이 시작되었다. 프랑수아 1세가 자신의 왕권을 상징하기 위해 세운 샹보르성은 중세에서 르네상스 시대로 가는 과도기의 특징을 보여주는 위대한 건축 기술을 자랑한다. 지금도 세부 건축 양식이 완벽히 보존되어 있는 샹보르성은 루아르 계곡의 여러 고성 중에 가장 신비한 성 중 하나이다.
샹보르성 건설을 책임진 건축가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천재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샹보르성의 초기 설계에 참여했으며 다 빈치가 세상을 떠나고 6개월 후에 공사가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샹보르성은 당시에 매우 혁신적이고 다양한 건축법을 시도하였으며, 그리스 십자가 모양의 중앙 탑을 중심 구조로 성을 완성하였다. 이는 당시 프랑스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건축 방식으로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프랑수아 1세의 명령으로 왕권을 상징하는 성으로 시작되었던 샹보르성은 프랑수아 1세의 사후에도 성 건축이 지속되었다. 루이 13세의 남동생인 가스통 도를레앙(Gaston d’Orléans) 공작이 샹보르성의 공원을 완성하였으며, 오랜 시간이 지나고 루이 14세 재임 시기에 성 본체가 완성되고 성 인근이 정비되었다.
이후에 많은 왕족과 귀족들이 샹보르 성을 방문하고 이곳에 머물렀다. 루이 15세 왕의 장인인 폴란드 왕은 유배 당시 샹보르성에 머물렀으며, 프랑스 원수(명예 장군)로 불렸던 삭스(Saxe) 사령관은 이 곳에 머물며 샹보르성의 프랑스식 정원을 완성하였다.
▶퐁텐블로성(Château de Fontainebleau) - 프랑스 군주들의 거처, 퐁텐블로 성
퐁텐블로 성(Château de Fontainebleau)은 12세기부터 19세기까지 재위한 모든 프랑스 군주가 거주했던 유일한 성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800년 동안 이곳을 거쳐 간 군주들은 취향에 따라 성을 꾸미며 자신의 흔적을 새겼다. 오늘날 1,500개 이상의 방을 갖춘 퐁텐블로 성은 그곳에 살았던 많은 군주만큼 다양한 얼굴을 갖고 있다. 프랑수아 1세, 앙리 4세, 루이 13세, 루이 15세에 이어 나폴레옹 역시 프랑스혁명 이후 퐁텐블로를 복원해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 했다. 그가 생활한 공간과 그에게 헌정된 박물관은 프랑스 제국의 역사를 증언하는 귀중한 자료다. 르네상스 시대의 걸작과 마리 앙투아네트의 세련된 감각으로 꾸민 인테리어, 나폴레옹의 집무실, 나폴레옹 3세와 그의 부인 외제니 드 몽티조(Eugénie de Montijo)가 개조한 가구와 실내 공간은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수백 년 동안 퐁텐블로 성은 주민과 예술가, 방문객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어왔다. 프랑스 군주들은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을 퐁텐블로에 불러들였다. 건축, 회화, 조각, 장식 예술의 풍부한 작품들이 퐁텐블로에서 탄생하면서 이곳은 르네상스 시대부터 창작의 중심지가 되었다. 왕좌의 방에서 전해지는 엄숙함, 프랑수아 1세 갤러리의 압도적 존재감, 황실 극장의 위엄, 터키풍 살롱의 관능적 장식은 이곳을 방문한 모든 이에게 감탄사를 자아내게 하며, 퐁텐블로가 수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준 이유를 짐작하게 한다.
▶바르비종(Barbizon)
바르비종은 파리에서 차로 1시간 정도 거리에 위치한 조용한 시골 마을이다. 19세기 중반 파리는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나폴레옹의 몰락 이후에 혁명, 왕정복고 게다가 콜레라까지 겹치면서 파리 사람들은 지쳐만 갔다. 그중 카미유 코로를 시작으로 밀레, 테오도르 루소 같은 화가들은 파리를 떠나 바르비종에 찾아오면서 이곳은 화가의 마을이 된다.
그들은 당시에 유행하던 귀족들이 좋아하는 그리스 신화의 내용을 그림의 소재로 삼기보다, 자신들이 사는 농촌 마을과 퐁텐블로 숲의 풍경들을 야외에서 그려냈다. 이 화가들을 바르비종 학파라고 부르고 이들의 숫자는 150명이 넘었다. 당시 실내에서 그림을 제작하던 일반적인 형태에서 벗어나, 농민들과 생활하면서 자연과 친밀한 교감을 하며 화폭에 옮겨낸다. 이후 그들의 그림은 모네, 르누아르 등으로 대표되는 인상파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준다.
바르비종은 그랑 (Grand rue)라고 불리는 거리를 중심으로 걸어서 여행할 수 있다. 거리의 시작부터 끝까지는 걸어서 30분도 채 걸리지 않지만, 프랑스인들의 생활에 필수인 빵집, 꽃집, 치즈 가게. 유기농 제품 판매점, 식당, 부동산부터 병원까지 있어서, 실제 프랑스인들의 삶을 경험할 수 있다. 마을에 하나뿐인 야외 테라스가 있는 카페는 바르비종을 방문하는 모든 이들의 만남의 장소이다.
바르비종은 작은 마을이지만 짧게 보고 떠날 곳은 아니다. 일단 거리 곳곳 벽에는 바르비종 학파에 속했던 화가들의 그림이 원본과 같은 모양으로 모자이크 형태의 타일로 남아 있다. 만종, 이삭 줍는 여인들 등 밀레의 작품을 비롯해 바르비종 학파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존 컨스터블 작품까지 만날 수 있다. 게다가 마을에서 가장 많은 가게가 바로 갤러리다. 즉, 마을 자체가 야외 미술관이다.
바르비종에서 꼭 방문해야 할 곳은 밀레가 작업실로 썼던 곳을 개조해서 만든 '밀레 박물관'이다. 개인이 운영 중인데, 밀레의 팔레트부터 스케치, 편지 등의 다양한 개인 소장품이 전시되어 있고, 내부엔 지금 바르비종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판매도 한다.
▶보르미콩트성(Château de Vaux-le-Vicomte)
파리에서 남동쪽으로 5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보르비콩트성 (Château de Vaux-le-Vicomte). 프랑스의 다른 유명한 성에 비해 크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실 비콩트성은 17세기 프랑스 건축을 대표하는 성으로 베르사유 궁전의 바탕이 된 건물이기도 하다.
1656년 루이14세 통치시절 재무장관을 맡고 있던 니콜라 푸케(Nicolas Fouquet)가 지었으며, 루이 르 보(Louis Le Vaux)나 르 노트르(Le Nôtre) 등 당시 최고의 건축가와 조경사를 동원해 최고로 화려했던 성이다. 푸켓은 3년에 걸친 공사 끝에 성을 완성한 후 축하연을 열었는데 여기에 루이14세를 초대하여 융숭한 대접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이는 왕의 질투만 사는 역효과를 불어일으켜 훗날 불행의 불씨가 된다. 어쨌든 루이 14세는 이 성을 보고 베르사유 궁전을 짓게 된다. 실제로 베르사유 궁전 곳곳에서 보르비콩트성에 적용된 양식이나 기법을 찾아볼 수 있다. 참고로 샹티이성은 베르사유 궁전을 따라 지은 건물이다.
성 위에서 본 정원 모습이 매우 멋지다. 좌우대칭으로 조성된 아름다운 기하학무늬 장식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 정원은 프랑스식 정원을 최초로 만든 정원사 르 노트르(Le Nôtre)가 조경을 담당했고, 이후 건설되는 다른 프랑스식 정원의 모델이 되었다. 좋아하는 음식을 가져와 피크닉도 할 수 있는데, 멋진 풍경 속에서 사치스러운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좋다.
5월부터 10월 까지 매주 토요일 밤이 되면 로맨틱한 이벤트가 열리는데, 바로 2000 여개의 촛불로 성을 밝히는 '촛불의 밤(Soirée aux Chandelles)'이다. 낮과는 또 다른 멋진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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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신청 합니다
언냐 므지반갑습니다
화인 진여사 외친구1명 신청합니다
멋진공지 감사드리며
신청합니다~^^
두레님 함께하게되서 방가워요 즐건여행합시다
네~~
저도 넘 좋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5.09.23 22:42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5.09.24 07:47
나도 너무 반가워요
우리 또 즐건여행 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