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지리산서 점찰법회
지장보살이 한가히 노닌다고 말하지 말라.
지옥문전에 서서 눈물 거둘 날이 없나니
악업을 짓는 사람 많고
선업을 닦는 사람 적으니
지옥중생 교화하기에 어느 땐들 쉴 수 있을 것인가.
이 세상 누구나 다 자기업보의 완전한 소멸을 원한다. 깨달음을 원하는 사람도, 윤회에서 벗어나 극락에 왕생하길 바라는 사람 모두가 바라는 일이다. 업보의 완전한 소멸은 어떻게 해야 얻어질까? 지장보살은 일체 모든 중생이 다 해탈하기 전에는 결코 혼자만의 해탈은 이루지 않겠다는 애틋한 서원을 세우셨다. 우리가 이 분을 믿고 의지하는 것만으로 모두가 업보에서 다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거야말로 참 어리석은 일이 아닐까. 참회와 기도를 통한 자기 수행 없이는 불가능하다.
수만 겁 이전 지옥중생의 구원을 맹세한 지장보살은 영겁을 지나 지금까지 그들을 위해 오랫동안 구원의 행을 했지만 아직도 지옥이 북적이는 것은 구해주어도 우리가 다시 깊은 미혹에 빠져 돌아서면 잊어버리기 때문이리라.
여의주 같아 그 광명으로 착한 일을 행하는 이를 해처럼 비추고, 길 잃은 사람에게 밝은 햇빛이 되어주며 번뇌의 뜨거운 불길을 없애주는 청량한 달빛처럼 일체중생들이 고통을 여의고 갖가지 즐거움을 누리게 해주시건만 우리가 수행하지 않고 기다리기만 한다면 극락은 멀고 지옥은 가깝게 될 것이다.
지리산자락 인월 오봉산. 차가 뒤집어 질 것 같은 험난한 길을 오르면 분홍색의 화려한 5층 건물을 만나게 된다. 산 꼭대기에 왠 연수원 건물 일까 내심 황당해 하며 알아보면 바로 그 곳이 영선사다. 원래는 아주 작은 기도처였던 곳을 월공(月空) 스님이 원력을 세워, 업장이 두터워 수행에 장애가 되는 이들을 위해 지장기도를 시키며 점찰법회를 여는 곳으로 거듭난 사찰이다.
점찰법회란 신라 원광법사가 고승대덕을 모시고 사부대중이 하나로 뭉쳐 불교를 대중화한 신행운동으로 진표율사가 정착시켰다. 불자들이 수행함에 있어 많은 어려움과 장애에 부딪쳐 일어난 산란한 마음 때문에 갈피를 잡지 못할 때 전생의 선악업보와 현재의 고락길흉을 살펴 참회하고 반성하며, 스스로 안락을 얻게 하여 중생의 어리석은 마음과 무명을 사라지게 하고 청정행을 실천하게 하는 수행법이다.
월공스님은 역사 속에서 이 점찰법회를 끌어내 매주 토요일이면 50여 대중들과 함께 옛 점찰법회의 면모를 갖추어 간경과 독경, 사경과 염불을 하며 지장보살 전에 참회와 기도로 수행하고 계신다. 공군법사 출신인 스님이 신라 화랑의 스승이신 원광법사의 점찰법회 맥을 잇고 있으니 예사 인연이 아니지 싶다.
내가 월공스님을 처음 본 것은 재작년 함양불교대학 출범을 위한 모임에서였다. 군 법사 출신답게 모든 일을 절도있게 일사천리로 진행시키고 있는 모습은 불타는 열정의 소유자 젊은 부루나처럼 보였다. 함양 사부대중 모두의 원력으로 불교대학이 문을 여는 날, 나는 깜짝 놀랐다. 시골의 작은 동네에서 어디서 그런 신심 있는 선남선녀들이 나타났을까 싶었다. 백 오십 명 정도가 입학하여 날이면 날마다 늦은 밤에도 나이에 상관없이 졸음을 참아가며 공부하는 불자들을 보며 가슴속에서 환희심이 마구 솟았다. 스님은 이미 남원에서 불교대학을 출범시킨 경험이 있었다. 남원불교대학은 불교계에서 오래 전부터 알려진, 지방을 대표하는 불교대학 가운데 하나이며 그 곳에서 배출한 포교사들과 근처의 군 법당 법회를 도맡아 지원하고 계신다. 이처럼 남다른 정열과 신심으로 포교와 수행을 하시는 스님의 배경엔 2대째 스님가문이며 모친이 불교교육원을 운영하는 대보살이라 스님의 포교불사는 누대에 걸친 원력으로 더욱 빛을 발하는 것 같다.
스님은 반드시 지장보살이 발하는 광명처럼 중생의 번뇌를 사르르 녹여줄 시원한 달빛처럼 온 허공에 가득하게 진리를 펴시리라 믿는다. 언젠가 참 대단한 스님이라고 내가 면전에서 칭송을 하자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먼 산 바라보며 하던 말이 생각난다.
“초발심이 변하지 않아야 할텐데 말입니다.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요. 교만함이 물들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불사 때문에 잠시 멈춰선 점찰법회를 다시 열면서 수행해야겠지요”
지리산 검은 산등성이가 마주 보이는 경치 좋은 영선사 수련원이 신심 있는 불자들의 기도처가 되어 많은 이들의 수행공간이 되길 바라면서 언제 나도 점찰법회가 열릴 때 꼭 참석하리라 마음 먹어본다.
■서울 반야사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