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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둘레길 1구간 제2부
회덕마을-노치마을-가장마을-행정마을
20251118
1.운봉고원과 지리산 서북능선에 반하다
지리산둘레길 1구간 주천~운봉 구간 중 두 번째 남원시 주천면 덕치리 회덕마을-운봉읍 행정리 행정마을 탐방을 정리한다. 회덕마을에서 구룡폭포길을 따라 덕치리 노치마을로 올라갔다. 노치마을은 백두대간이 통과하는 전국 유일의 마을이라고 한다. 백두대간 고리봉에서 내려와 주천면과 운봉읍 경계를 이루는 도로로 이어지는 백두대간길을 따라 노치마을로 올라가 노치샘, 당산 소나무숲으로 이어가던 백두대간 산행 추억이 가슴을 물들인다. 그 흔적을 찾아 노치샘으로 올라가 보았다. 모습은 변함이 없지만 그 정취에 잠길 수 없다. 당산 소나무숲에 올라가 보고 싶었지만 주어진 시간 때문에 욕망을 참았다.
노치마을회관으로 내려와 노치정 앞 수령 500년이 넘은 느티나무와 재회한다. 너와 네 번을 만났지만 모두 허겁지겁 스쳐갔다. 이번에는 네 곁에서 점심을 먹으며 너와의 사랑에 빠진다. 네가 하늘 높이 솟은 가지의 까마귀집 두 채를 받들 듯 나는 네 뿌리와 줄기를 사랑한다. 너는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 보리수처럼 내 삶의 상처를 어루만져 달래준다. 나, 어떤 슬픔에 부딪치더라도 언제나 일어나 가리라. 나, 언제나 너 잊지 않으리라.
느티나무 아래에는, 백두대간(白頭大幹)과 14정맥이 그려져 있고, 주요 산과 강 이름이 적힌 석조 백두대간 조형물이 조성되어 있다. 그 뒤에서 주천면과 운봉읍 들녘, 지리산 서북능선과 능선을 잇는 산봉과 고개 - 작은고리봉, 만복대, 정령치, 큰고리봉을 가늠하였다. 마음이 훨훨 노고단으로 날아가서 발걸음이 지리산 주능선을 내닫는 느낌이다. 어느새 지리산 최고봉 천왕봉에 서서 지리산 서북능선을 바라본다.
노치마을을 품고 있는 덕음산에서 고리봉으로 이어지는, 남원시 주천면 덕치리·고기리와 운봉읍 덕산리·주촌리의 경계를 이루는 백두대간길은 낙동강과 섬진강의 분수계(分水界)이다. 서쪽의 주천면 지역을 흐르는 하천은 섬진강으로 흘러, 남해 바다로 유입되고, 동쪽의 운봉읍 지역을 흐르는 하천은 낙동강으로 흘러 동해 바다에 유입된다. 그래서 남원시 주천면 고기리 산지에서 발원하는 원천천元川川은 주천면 동부와 남부 산지의 물을 모아 서쪽으로 흘러 요천, 섬진강을 지나 남해로 유입된다. 반면에 남원시 운봉읍 남단의 고리봉 산지에서 발원한 주촌천(舟村川)은 여러 지류의 물을 모은 다음, 운봉읍 행정리에서 람천(濫川)에 합수한다. 람천은 임천, 남강, 낙동강을 경유하여 남해로 흘러든다. 섬진강 지역의 주천면 덕치리에서 분수계를 이루는 백두대간길을 한 걸음에 가로질러 낙동강 지역의 운봉읍 주촌리로 넘어간다.
질미고개길은 운봉읍 주촌리 지리산둘레길 쉼터 앞 주촌3길에서 갈라져 질매재를 넘어 운봉읍 덕산리로 내려간다. 이 고갯길에서 바라보는 지리산 서북능선과 운봉고원 풍경은 지리산둘레길 1구간의 으뜸이라고 판단한다. 동쪽에는 지리산 서북능선이 세걸산, 바래봉, 덕두산으로 이어지고, 그 서쪽에 운봉읍 덕산리와 공안리, 산덕리, 용산리 들녘이 펼쳐진다. 서쪽에는 백두대간이 수정봉, 여원재, 고남산으로 이어지고 그 동쪽에 운봉읍 덕산리와 행정리, 준향리, 서천리 들녘이 펼쳐진다. 운봉과 인월의 경계를 이루는 황산이 지리산 서북능선 덕두산 서쪽에 보이고, 동쪽으로 방향을 튼 백두대간의 봉화산, 백운산과 영취산이 황산 서북쪽에서 흐릿한 눈길을 준다. 아, 분지형 고원인 운봉의 지형이 한눈에 다 들어온다.
수정봉 동남쪽에 자리한 운봉읍 덕산리 가장마을은 마을 앞 동쪽으로 운봉로가 지나고, 주촌천이 흐른다. 이들을 서쪽으로 마주보고 덕산리 덕산마을이 자리한다. 가장마을과 덕산마을은 같은 덕산리 지역이지만, 그 형세가 다르다. 가장마을은 백두대간 자락에서 지리산 서북능선을 바라보고 있고, 덕산마을은 지리산 서북능선 가까이서 백두대간을 바라보고 있다. 이 두 마을을 주촌천이 가른다. 이 주촌천 둑방길은 십승지길로 명명되어 있다. 십승지가 무엇일까? 십승지(十勝地)는 10군데 명승 지역이거나, 전쟁, 재해, 질병이 발생할 때 백성들이 숨어야 할 안전한 피난처 10곳을 뜻한다. 정감록에 십승지가 지정되어 있으며, 남원 운봉이 십승지의 한 곳이다. 운봉에서는 이를 홍보하기 위해 도로명 십승지(十勝地)길을 지정하였는데, 주촌천(舟村川)과 람천(濫川)의 둑방길에 십승지(十勝地)길을 명명하였다.
운봉읍 덕산리 덕산마을 입구의 주촌천 서쪽 둑방길에서부터 십승지(十勝地)길이 시작된다. 아무리 보아도 싫증나지 않고 오히려 그 능선의 아름다움에 빠져드는 지리산 서북능선과 운봉고원 분지는 마음을 평안하게 한다. 운봉고원 분지를 서쪽에서 감싸는 백두대간 능선은 나즈막하여 열린 느낌을 주다가 고남산이 운봉고원 분지를 내려보며 파수꾼처럼 늠름하다. 주촌천 서쪽 둑방길의 십승지길은 지방도 제60호선 운봉로의 가장교를 건너 운봉읍 행정리로 넘어가 주촌천 동쪽 둑방길로 이어진다. 이 길에서 돌아보는 운봉고원 분지와 지리산 서북능선 풍경은 지금까지의 감격에 새로움을 더해준다. 이 풍경을 보며 알아차리지 못한 것을 새로이 발견했을 때의 감동이 물결친다. 아, 평안하고 아름답도다. 하, 운봉고원 분지는 안전한 피난처와 절승지(絶勝地)를 모두 갖춘 십승지(十勝地)가 분명하구나.
2.탐방 과정
탐방 거리 : 15.5km
탐방 소요 시간 : 4시간 46분
주천면 덕치리 회덕마을 출입구에 회덕마을 표석이 세워져 있고, 받침돌 벽면에 '고향산천' 글이 새겨져 있다.
포근한 부모님 품 있고/ 의지할 곳 정이 있어 좋은/ 우리의 고향 산천// 산·계곡·맑은 물·넓은 들판 수놓여 있는 우리의 고향 땅// 나무내음·풀내음에 도취되어/ 자연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우리의 보금자리// 수많은 추억들 살아 숨쉬고/ 고향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우리의 고향 산천을/ 우리들 가슴 속에 영원히/ 간직하리라! 2003년 11월 13일
구룡폭포길을 따라가다가 회덕마을을 뒤돌아본다.
주천면(朱川面) 덕치리(德峙里) 회덕(會德)마을은 본래 남원군(南原郡) 상원천면(上元川面) 회덕리(會德里) 지역으로 모데기, 무더기 또는 회덕(會德)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회덕리(會德里)와 노치리(蘆峙里) 일부가 병합되어 회덕과 노치의 이름을 따서 덕치리(德峙里)라 하고 주천면(朱川面)에 편입되었다. 임진왜란 때 밀양 박씨(密陽朴氏)가 피난하여 살게된 것이 마을을 이룬 시초라고 한다. 1950년 한국전쟁까지 마을은 전형적인 산골마을로 평안하고 번창하였으나 전쟁이 일어난 후 불행히도 집 한 채 남김없이 불타 버렸다. 그러다 지리산 공비가 완전히 소탕된 뒤 다시 마을을 이루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원래는 마을 이름을 "모데기"라 불렀다. 그 뜻은 풍수지리설에 의해 덕두산(德頭山), 덕산(德山), 덕음산(德陰山)의 덕(德)을 한 곳에 모아 이 마을을 이루었다는 뜻으로 "모데기"(會德)라 하였으니 모데기는 "모덕"이 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산악지대로 평야가 적고 교통이 불편하며 마을 주위에는 큰 연못이 세 군데나 있다. 이 연못의 유래는 당시 풍수지리설로 지리산의 맥줄기가 일본까지 뻗쳐 있어 일본이 흥성하므로 일본으로 가는 지리산의 맥을 끊기 위하여 속칭 가자골 앞, 번데기, 안터의 세 곳에 큰 연못을 팠다는 전설이 있다. 1986년 주천에서 지리산 정령치를 통하는 도로(국가지원지방도 60호선)가 개통되므로 본격적인 문명의 혜택을 보게되었으며 다른 지역에 비해 늦게 개발된 지역이지만 기름진 넓은 농지와 풍부한 산림자원, 근면성실한 주민의 힘이 삼위일체되어 부촌을 이루고 있다. - 주천면행정복지센터
구룡폭포길을 따라 백두대간 여가캠핑장 1.0km 지점을 통과한다. 오른쪽에 보이는 솔숲에서 왼쪽 길로 이어간다.
구룡폭포길 옆에 그윽한 소나무들이 무덤을 에워싸고 있다.
마른 억새풀꽃들이 바람에 날리는 덕치리 농로를 따라 왼쪽으로 돌아 노치마을로 이어간다.
농로를 따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노치마을로 올라간다. 왼쪽 뒤에 솟은 덕음산 동남쪽 자락에 노치마을이 자리한다. 백두대간은 노치마을을 거쳐 오른쪽 능선으로 이어진다. 오른쪽 뒤 수정봉은 백두대간에서 살짝 비켜나 있다.
마을의 본래 이름은 갈재이다. 노치마을은 해발 500m의 고랭지로서 서쪽에는 구룡폭포와 구룡치(九龍峙)가 있으며 뒤에는 덕음산이 있고 지리산의 관문이라고 말하는 고리봉과 만복대를 바라보고 있으며 구룡치를 끼고 있는데 이들 산줄기의 높은 곳이 갈대로 덮여 있어 갈재라하고 노치(蘆峙)라 쓴 것이다. 마을에는 옛날에 민씨(閔氏)라는 거지가 살았는데 그는 짚신을 삼아 팔았다. 어느 추운 겨울날 민씨가 죽어 눈 덮인 산을 헤매어 시체를 매장하려는데 신기하게도 시체의 관이 알맞게 들어갈 만큼 눈이 녹아 있는 곳이 있었다. 그리하여 그곳에 장사를 지냈는데 바로 그 자리가 용은 용인데 주인이 없다는 황룡무주(黃龍無主)의 명당이어서, 이 묘를 쓴 뒤 그 후손이 번창하였다고 한다. 한일합방 때 자결한 민영환(閔泳煥)도 그 후손 중의 한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한다. 그런데 그 묘를 호화롭게 석물을 세우고 보수를 한 뒤로는 자손들이 뜻밖에도 나쁜 일을 당해서 다시 석물들을 없앴더니 화가 없어졌다고 한다. - 주천면행정복지센터
농지 개량 공사가 한창 중인 농지를 돌아 노치마을로 올라간다. 왼쪽 뒤에 회덕마을이 보인다.
주천면 덕치리와 운봉읍 주촌리, 덕산리 들녘이 펼쳐지고 뒤쪽에는 지리산 서북능선의 세걸산, 바래봉, 덕두산이 이어진다.
노치마을 바깥쪽을 돌아 노치마을로 가는 길 옆에 보호물이 없어진 보호각이 방치되어 있다.
농지개량 공사가 한창 중인 오른쪽 농지에서 농로를 돌아 노치마을로 올라왔다. 주천면 덕치리와 운봉읍 주촌리, 주천면 고기리 들녘이 펼쳐지고, 뒤쪽에 지리산 서북능선의 만복대, 정령치, 고리봉이 이어진다.
노치마을 농로를 따라 노치길로 나간다. 앞쪽에 주천면 덕치리와 운봉읍 주촌리, 덕산리 들녘이 드넓게 펼쳐지고, 뒤쪽에 지리산 서북능선이 세걸산으로 이어진다.
주천면 덕치리 노치마을 입구 노치길 동쪽에 백두대간 노치마을 영농조합 법인 건물이 자리한다.
노치마을 삼거리에서 지리산둘레길은 오른쪽 덕산저수지 방향으로 이어지는데, 잠시 노치마을을 살피고 되돌아온다. 바로 왼쪽에 노치마을 버스정류소가 있으며, 오른쪽 뒤에 노치마을회관이 자리한다.
노치마을 버스정류소가 예쁘다. 정류소 의자에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있다.
노치마을회관 앞에서 오른쪽 백두대간길인 노치길을 따라 노치샘에 다녀온다.
주천면(朱川面) 덕치리 노치(蘆峙)마을은 본래 남원군(南原郡) 상원천면(上元川面) 노치리(蘆峙里) 지역으로 갈재 또는 노치(蘆峙)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회덕리(會德里)와 노치리(蘆峙里) 일부가 병합되어 회덕과 노치의 이름을 따서 덕치리(德峙里)라 하고 주천면에 편입되었다. 조선 초에 경주 정씨(慶州鄭氏)가 머물러 살고 이어 경주 이씨(慶州李氏)가 들어와 살게 되어 지금의 마을이 형성되었다. 그후 여러 성씨들이 차례로 들어와 살던 중 한국전쟁 후 마을이 완전히 불타버렸다. 마을사람들은 재 아래(주천면은 서부중산간지, 동부고냉지로 지역을 나누는데 서부는 치하(峙下 : 재 아래), 동부는 치상(峙上)이라 칭하고 있다)로 모두 옮겨지고 이곳은 황무지가 되었다가 지리산 공비가 완전히 소탕된 후 그 자리로 다시 들어와 살게 되었다. - 주천면행정복지센터
백두대간은 노치길을 따라 노치샘을 거쳐 덕음산 자락의 당산 소나무숲으로 이어진다. 중앙에 덕음산이 솟아 있다.
백두대간은 노치샘 오른쪽으로 돌아 중앙 뒤 당산 소나무숲으로 올라간다.
정령치 6.0km, 여원재 6.7km 지점의 백두대간이 지나는 해발 550m 노치마을에 노치샘이 있다.
노치샘 보호각 안쪽 벽에 '노치샘 이야기' 안내판이 붙어 있다.
현재 노치샘은 원래 고려시대 절터로 고승이 도술로 판 샘이라고 한다. 바위에서 나오는 생수는 물맛이 뛰어나 염병(장티푸스) 같은 돌림병이 심하게 돌던 때도 이 물을 마신 사람은 신기하게 병에 걸리지 않고 병을 이겨냈다고 전해오고 있다. 혹시 물을 쓰다 부족할 때에는 우물 속의 달팽이 모양에서 물을 떠야 하는데 반드시 마을처녀가 물을 퍼올려야 할 만큼 정하게 여겼다. 주산제 때는 정월 초하룻날 우물을 품고 새끼줄로 금줄을 쳐서 아무도 들어갈 수 없게 해놓고 당산제 당일 이른 새벽 제사에 올릴 정안수를 뜨러 가면 산신인 호랑이가 샘 주위를 돌며 지키다가 제사가 시작되고 첫물을 올리는 것을 확인하고 사라지는 모습을 보셨다는 어르신들도 많다. 이렇듯 마을 사람들이 신성시하는 식수로, 또 병을 이기게 해주는 약수로, 신비로운 전설의 성수로 오늘도 백두대간을 찾는 탐방객이 한 모금 목을 축이며 쉬어가고 있다.
노치샘을 살피고 내려와 노치마을회관 옆 느티나무와 노치정을 살핀다. 느티나무는 수령 500년이 넘었다고 한다.
노치마을 앞들에서 파낸 목돌 5개를 마을회관 옆 전시창에 모아두었다. 목돌은 ‘목조임돌’ 또는 ‘잠금돌’이라고도 이른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일제는 1910년부터 백두대간은 물론 한반도의 주요 길지 혈맥에 쇠말뚝을 박거나 인위적으로 길을 내어 우리 민족정기의 기(氣)와 맥(脈)을 끊은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남원문화원에 따르면 "이 목돌 역시 일제가 백두대간의 맥을 끊기 위해 노치마을 앞들에 길이 100m, 폭 20m, 깊이 40m의 방죽을 파 지맥을 끊었고 그 안에 목돌 3기(6개)를 설치했다."고 한다. 노치마을 앞들은 덕음산에서 고리봉으로 연결되는 백두대간으로 사람의 신체에 비유하면 목에 해당하는 지점으로 이곳에 목돌을 설치, 숨통을 조이도록 했다. 목돌은 가로 120cm, 세로 95cm, 두께 40cm 크기로 반원을 이루며 두 개를 서로 연결하여 하나의 조임석이 되는데 노치마을 앞들을 경지정리를 하던 중 땅 속에서 5개가 발견되었다. 그동안 가정집 정원에 방치되어 있던 것을 2013년 제68주년 8.15 광복절을 맞아 남원문화원에서 목돌을 이곳으로 옮겨 전시하고 일제의 만행과 악행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주는 표본으로 삼고 있다. - 안내판
노치마을 정자 앞의 백두대간 조형물 뒷면에는 '백두대간 조형물을 세우면서 :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글이 새겨져 있다.
노치마을 정자 앞 백두대간 조형물 앞에 백두대간과 14정맥비와 주천면 덕치리 노치마을비가 세워져 있다.
1.백두대간(白頭大幹)과 14정맥 : 백두대간은 백두산 장군봉에서 지리산 천왕봉에 이르는 길이 약 1,470km(남한지역 680km)의 산줄기로 나라 땅의 모든 물줄기를 서류와 동류로 갈라놓은 근골(筋骨)이다. ◆14정맥(조선광문회본 산경표에 의함) ●장백정맥(정간) 두류산~서수라 ●청북정맥 마대산~낭림산~마곶 ●청남정맥 마대산~낭림산~광량진 ●해서정맥 두류산~화개산~장산곶) ●임진북예성남정맥 두류산~화개산~진봉산 ●한북정맥 추가령~진봉산 ●한남금북정맥 속리산~칠현산 ●한남정맥 칠현산~문수산 ●금북정맥 칠현산~안흥진) ●금남호남정맥 영취산~주화산 ●금남정맥 주화산~조룡대 ●호남정맥 주화산~백운산 ●낙동정맥 매봉산~몰운대 ●낙남정맥 영신봉~분산
2.백두대간이 통과하는 국내 유일 마을 주천면 덕치리 노치(蘆峙)마을 : 조선조 초에 경주 정씨(慶州鄭氏)가 터 잡고, 이어 경주 이씨(慶州李氏)가 들어와 형성되었다는 이 마을은 해발 550m의 고랭지로서 본래 이름은 갈재이다. 마을 앞 지리산의 관문인 고리봉과 만복대에 억새가 많이 있어 갈재라고 불렀는데, 지금은 노치(蘆峙)로 쓴다. 한국전쟁 때는 지리산 공비 토벌 작전으로 완전히 불타버린 아픔이 있는 이 마을은 전국에서 백두대간 능선이 유일하게 통과한다. 대간이 통과하는 동쪽은 운봉읍에, 서쪽은 주천면에 속해 한 마을에 두 개의 행정구역이 존재한다. 마을 뒷산에는 삼국시대 때 축성된 노치산성이 있다. 이 마을은 당시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대로서 중요한 방어지역이었으며, 아영면 아막성에서 정령치 고리봉의 산성까지를 연결하는 중요한 거점이었다. 지금은 백두대간을 찾는 사람들의 지친 발걸음을 거두어 주는 따뜻함이 있다.
노치마을 정자 뒤쪽에 한국산 호랑이 한쌍의 조형물이 조성되어 있다.
점심을 먹고서 '백두대간 조형물' 뒤에서 노치마을 들녘과 지리산 서북능선을 다시 살폈다. 만복대, 정령치, 고리봉이 확인한다.
노치마을은 해발 500m의 고랭지로서 서쪽에는 구룡폭포와 구룡치, 뒤에는 덕음산이 있고 지리산의 관문이라고 말하는 고리봉과 만복대를 바라보고 있다. 산줄기의 높은 곳이 갈대로 덮여 있어 ‘갈재’라 부르기도 했다. 노치마을은 비가 내려 왼쪽 주천면으로 빗물이 흐르면 섬진강이 되고, 오른쪽 운봉읍으로 흐르면 낙동강이 되는 수분령(水分嶺) 마을이다. 그러나 일제가 백두대간의 목을 눌러 기운을 끊는다고 이 마을 앞 들녘에 큰 구덩이를 파고 100kg이 넘는 거대한 목돌 6개를 설치한 참담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현재는 목돌 5개를 파내어 아랫 당산(큰바위) 위에 지어진 마을회관 옆에 모아두었다. ‘목조임돌’ 또는 ‘잠금돌’이라고도 하는 이 목돌은 일제의 간교함을 증언하는 역사적 유물이다. 그 옆에는 백두대간 표지석이 있다. 노치마을 윗 당산 소나무숲의 수령 800년 된 할아버지 나무께서 이 마을을 수호하고 백두대간의 정기를 지켜주시기를 빌어 본다. - 지리산둘레길
보호수비 옆 '백두대간 조형물' 뒷면에 '백두대간 조형물을 세우면서 :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글이 새겨져 있다.
백두대간(白頭大幹)은 우리 국토의 등뼈와 같다.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계곡이나 강을 건너지 않고 산줄기만으로 지리산 천왕봉까지 이어지는 큰 산줄기를 말한다. 이곳 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 노치마을은 남한에서는 유일하게 백두대간이 지나는 중요한 곳이다. 그런데 일제가 우리 민족혼을 말살하려 자행했던 대간·정간·정맥·기맥·지맥을 끊었던 대표적 사례, 그 현장이 바로 이 마을에 있다. 일제는 이 마을에 돌로 만든 석침(石針)을 묻고 숯을 묻어 뜸을 떠 지맥을 차단하여 불구의 몸을 만들었다. 일제가 묻은 석침은 1976년 주민들에 의해 뽑혀졌고, 숯을 묻어 뜸을 떴다는 곳은 지금도 웅덩이로 남아 그 역사를 말하고 있다. 이 마을은 백두대간의 통과지점이면서 중요한 혈맥의 시작과 끝이 되는 곳으로서 덕유산에서 내려오는 줄기의 끝이 되고 다시 지리산으로 올라가는 시작점이 되는 곳이다. 이러한 현장을 세상에 널리 알려 마을의 역사와 문화를 정립하고 백두대간의 중요성을 널리 선양하기 위해 남원문화원과 마을 주민이 뜻을 모아 여기에 백두대간과 산줄기를 형상화한 작은 조형물을 세웠다. 2003년 12월 남원문화원·노치마을 발전협의회
바로 아래에 노치마을 버스정류소가 있다. 주천면 덕치리 노치마을회관 앞에서 운봉읍 주촌리와 덕산리 지역의 드넓은 들녘, 맨 오른쪽 뒤 정령치와 그 왼쪽 고리봉을 거쳐 세걸산으로 이어지는 지리산 서북능선을 살핀다.
노치마을을 살피고 노치마을 삼거리로 되돌아와 지리산둘레길을 이어간다. 왼쪽 노치마을 수호돌탑 뒤 삼거리부터 운봉읍 주촌리로 넘어간다. 맨 뒤에 지리산 서북능선 바래봉과 덕두산이 보인다.
노치마을 삼거리의 노치마을 수호돌탑과 지리산둘레길 이정목, 노치마을 버스정류소, 노치마을회관을 뒤돌아보았다.
주천면 덕치리에서 운봉읍 주촌리로 넘어와 주촌3길을 따라 덕산저수지 방향으로 이어간다. 세걸산과 바래봉, 덕두산이 보인다.
운봉읍 주촌리 주촌3길 출입구에 백두대간 생태관광 종합안내도와 남원 백두대간 생태교육장 전시관 홍보판, 충무공 이순신 백의종군로 안내판 등이 설치되어 있다. 백두대간 생태관광 종합안내도에는 노치마을-수정봉-입망치-여원재로 이어지는 백두대간길과 남원시 주요 생태관광지 6곳을 안내도에 표시하였다. 1.남원 백두대간 생태교육 전시관 2.생태관광숙박시설 캠핑장 3.노치마을 당산소나무 4.행정마을 서어나무숲, 삼산마을 노송군락지 5.백두대간 생태교육장, 트리하우스 6.지리산허브밸리
운봉읍 주촌리 주촌3길에서 운봉읍 주촌리(앞)와 덕산리(뒤), 오른쪽 주천면 덕치리(앞)와 고기리(뒤) 들녘을 살핀다. 뒤에는 지리산 서북능선이 작은고리봉, 만복대, 정령치와 큰고리봉으로 이어진다.
운봉읍 주촌리(앞)와 덕산리(뒤) 들녘을 살핀다. 뒤에는 지리산 서북능선이 맨 오른쪽 큰고리봉에서 맨 왼쪽 세걸산으로 이어진다.
운봉읍 주촌리와 덕산리, 공안리(뒤) 들녘이 펼쳐지고, 뒤에는 지리산 서북능선이 세걸산과 바래봉, 덕두산으로 이어진다.
백두대간 능선 아래 운봉읍 주촌리 원평(元坪)마을이 자리한다. 수정봉은 오른쪽 뒤에 있다.
주촌리(舟村里)는 본래 운봉의 남면(南面) 지역으로 배말 또는 주촌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원평(元坪), 주촌(舟村) 및 남원군 상원천면(上元川面) 노치(盧峙) 일부를 병합하여 주촌리라 하여 남원군 운봉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3월 면이 읍으로 승격되어 운봉읍 주촌리가 되었다. 주촌리에는 배말, 원평 등이 있다. 고려 현종 5년(1014) 연안 이씨(延安李氏)와 김해 김씨(金海金氏)가 난리를 피해 남쪽으로 유랑하다가 처음 정착하여 살았다. 그후 고려말 왜구의 침입과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등으로 몇 차례 전란을 겪었으며 1950년 6.25동란 때 지리산 빨치산잔병과 국·군경 토벌대 사이의 기습과 토벌작전으로 마을은 온통 잿더미가 되었다. 하루아침에 집을 잃은 주민들은 마을을 떠나 각지로 흩어졌다가 1951년 3월경부터 하나둘 모여 황무지를 개간하여 다시 마을을 이루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이 마을의 본래 이름은 배몰 또는 배촌으로 지형이 바다에 떠있는 배의 형국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마을이 배의 한복판에 있어 항상 배의 뒤를 돌아보아 배의 안전을 살펴야 했기 때문에 배의 꼬리부분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마을 이름을 망종리(望終里)라 부르기도 하였다. 일설에 의하면 석기시대 때 운봉이 큰 호수로 있을 때 사람들이 고리봉에 배를 매고 고기잡이 생활을 하였기에 배말 또는 뱃몰이라 하였다는 설도 있다. 지명을 한자로 바꾸면서 배 주(舟) 자를 넣어 주촌(舟村)이 되었다. - 운봉읍행정복지센터
지리산둘레길 쉼터를 지나 갈림길에서 왼쪽 질미고개길로 이어간다. 오른쪽은 백두대간 생태교육 전시관으로 이어지는 주촌3길이다.
갈림길에 지리산둘레길 쉼터 안내판과 백두대간 생태교육 전시관 1.1km를 알리는 이정목이 서 있다.
백두대간 능선의 동남쪽 골짜기를 짠배골이라 이르는 듯. 앞에 경주 이씨 무덤이 있고, 오른쪽 뒤에 수정봉이 있다.
질미고개길로 올라와 중앙 뒤 노치마을과 걸어온 주촌3길, 갈림길 뒤의 지리산둘레길 쉼터를 돌아보았다.
질미고개길 농로를 따라 주촌리 들녘을 가로지른다. 전신주 왼쪽 바로 뒤의 세걸산, 맨 왼쪽 뒤의 바래봉이 가늠된다.
질미고개길은 왼쪽 숲으로 이어지고, 중앙에 덕산저수지가 있다. 지리산 서북능선의 세걸산, 바래봉, 맨 왼쪽의 덕두산을 가늠한다.
질미고개길 숲에 겨울에 더 아름다운 노박덩굴 열매들이 반짝인다.
질미고개길 숲에 달오름마을 19.7km, 백두대간 여가캠핑장 0.7km 거리를 알리는 '전북 삼천리길' 이정목이 있다.
질미고개길 숲을 지나와서 돌아보았다. 오른쪽에 '연소형 묘소 입구/ 21세 오대집' 표지판이 있다. 정확한 뜻이 궁금하다.
지리산둘레길은 질미고개길을 따라 앞에 보이는 질미고개(질매재)를 넘어간다.
운봉읍 주촌리 덕산저수지 뒤쪽은 덕산리 지역이다. 뒤에는 중앙의 세걸산에서 왼쪽 바래봉으로 지리산 서북능선이 이어진다.
운봉읍 주촌리 덕산저수지 뒤쪽은 덕산리 지역이다. 뒤에는 지리산 서북능선의 고리봉이 솟아있다.
질미고개길을 따라 질미고개(질매재)로 가는 길에 우람한 민가 한 채가 자리한다.
지리산둘레길 질매재 이정목이 서 있는 질매재(질미고개)에서 오른쪽 질미고개길로 이어간다.
주천 8.4km, 운봉 6.5km 거리의 질매재(질미고개)에 지리산둘레길 질매재 이정목이 서 있다.
질매재는 운봉읍 주촌리와 덕산리의 경계를 이룬다. 질매재(질미고개)에서 오른쪽 질미고개길83→163으로 이어간다.
질미고개길83→163에서 운봉읍 덕산리 수정봉을 올려보았다.
질미고개길83→163에서 분지 형태의 운봉고원을 살핀다. 운봉읍 북쪽 지역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른쪽 뒤에 백두대간 봉화산, 백운산과 영취산도 가늠된다. 바로 아래에 덕산리 가장저수지가 보인다.
운봉고원(雲峰高原)은 전북특별자치도 남동부의 소백산맥에 위치한 분지盆地 형태의 고원으로, 그 범위는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운봉읍의 행정 구역과 일치된다. 운봉고원은 운봉천이 흐르는 북동쪽과 구룡계곡이 위치한 남서쪽 가장자리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600~1,300m 사이의 높은 산지로 둘러싸여 있는 450~550m 고도의 분지 지형을 이루고 있다. 운봉읍은 1995년 읍으로 승격되었으며, 읍 소재지는 서천리이다. 운봉고원은 지형적인 이점 때문에, 배추, 고추, 마늘 등의 고랭지 채소와 화훼 재배가 활발하다. 그리고 용산리에는 우리나라 최대의 면양목장 국립종축장이 위치해 있으며, 준향리에는 한국 경마축산 고등학교가 자리잡고 있는 등, 축산업도 활발한 지역이다. 과거에는 유기(鍮器)와 목기(木器)가 유명하여 운봉장은 전북 지역에서 손꼽히는 명물이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지리산 서북능선이 세걸산, 바래봉, 덕두산으로 이어지고, 운봉읍 덕산리와 공안리, 산덕리 들녘이 펼쳐진다.
질미고개길에서 동남쪽으로 운봉읍 주촌리 덕산저수지와 주천면 고기리의 고리봉과 그 오른쪽 뒤 만복대를 가늠한다.
질미고개길을 넘어오면 심수정(心修亭)이 세워져 있고, 그 아래에 1코스 마지막 쉼터인 소나무숲 쉼터가 자리한다.
심수정(心修亭) 앞에 '심수정에 올라' 시조비가 조성되어 있다.
지리산 높은 기슭/ 만복대 푸른 정기/ 천만년 번창해 갈/ 풍성한 삼밭골에/ 천하절경 우러르며/ 터를 잡은 문중묘원/ 잣, 오얏, 머루, 다래/ 옛 향기 그윽한 곳/ 태고의 풍성함을/ 초연히 지킨 산중/ 명경지수 자연 품에/ 연꽃처럼 앉은 모정/ 길가던 나그네들/ 피로를 풀어놓고/ 산중명산 벗을 삼아/ 흐른 땀도 식혀가며/ 심수정에 자리하여/ 쉬어가면 어떠하리. 二〇一〇年 四月 十八日 東山 吳然友 짓고 竹山 吳炳春 쓰다
이곳은 삼밭골인 듯. 동복 오씨(同福吳氏)는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라고 한다.
지리산둘레길 1코스 마지막 쉼터인 소나무숲 쉼터 옆 길을 따라 내려간다.
소망탑이 있는 곳에서 심수정과 '심수정에 올라' 시조비를 뒤돌아보았다.
길가에 붉게 물든 단풍이 고와서 뒤돌아보았다.
동복 오씨 문중묘원 출입구에 동복 오씨 묵재공파 우암공 가족묘원 표석이 세워져 있다.
직진하면 지방도 제60호선 운봉로로 나가고, 지리산둘레길 1코스는 왼쪽으로 이어간다.
운봉읍 덕산리 가장길을 따라 가장마을로 이어간다.
지리산 서북능선이 운봉읍 덕산리 너머 중앙에 솟은 세걸산을 거쳐 왼쪽 바래봉과 덕두산으로 이어진다.
운봉읍(雲峰邑) 덕산리(德山里) 가장길을 따라 가장(佳庄)마을을 지나간다. 가장길 왼쪽 전신주 뒤에 황산荒山이 보인다.
운봉읍 덕산리는 본래 운봉의 남면(南面) 덕매 또는 산덕이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봉곡리, 신평리, 가장리와 유평리, 행정리 각 일부를 병합하여 덕산리라 하여 남원군 운봉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3월 면이 읍으로 승격되어 운봉읍 덕산리가 되었다. 덕산리에는 덕매(덕산), 가장 등이 있다. 가장(佳庄)마을은 운봉읍 소재지로부터 전남 구례 방면 4km 지점에 위치하며 남원시 지방도 60호선이 마을 앞을 통과한다. - 운봉읍 행정복지센터
가장길을 따라 앞쪽 삼거리에서 가장길 오른쪽으로 이어간다. 지리산 서북능선은 1,000m를 오르내리는 산봉들이 이어진다.
가장마을 삼거리에서 뒤돌아본다. 왼쪽 길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왔다. 뒤에 '넘치는교회' 십자탑이 보인다.
가장길에서 동복 오씨 문중묘원이 자리하고 있는 삼밭골 솔숲을 돌아본다. 맨 왼쪽 위에 덕산저수지 제방이 보인다.
운봉읍 덕산리 가장마을을 돌아본다. 중앙 뒤에 수정봉이 솟아 있다.
노치마을을 지나 질미고개(구,질매재)를 넘어가면 덕산저수지가 나온다. 저수지 옆 소나무숲에 있는 심수정에서 잠시 땀을 식히고 가면 좋다. 저수지를 지나 숲길을 내려가면 가장마을이 있다.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가 화장을 하고 있는 형국이라 하여 원래는 가장리(佳粧里)라 불렀다 하나, 현재는 들녘에 농사짓는 움막터를 뜻하는 농막 장(庄) 자를 써 가장리(佳庄里)로 쓰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옥녀봉 아래에 옥녀가 베를 짜는 옥녀직금의 천하명당이 있다고 믿고 있다. 백두대간과 천하명당의 기운을 품은 터를 지리산둘레길이 지난다. 가장마을에서 운봉까지 5km 남짓의 주촌천 둑길에서는 바래봉이 바라보이고 벚나무가 심어져 있어 봄이면 벚꽃축제가 열린다. - 지리산둘레길
체력단련장 옆에 가장마을 쉼터정자와 공중화장실이 조성되어 있다.
가장길을 따라 지방도 제60호선 운봉로로 나오면 가장길 입구에 가장마을 표석이 세워져 있다.
대왕참나무 가로수가 조성되어 있는 운봉로를 따라 덕산마을 입구의 덕산 버스정류소 앞으로 이어간다.
운봉로의 덕산길 출입구에 덕산교가 주촌천 위를 가로지르고, 그 옆에 덕산(德山)마을 표석이 세워져 있다.
덕산(德山)마을은 본래 운봉의 남면(南面) 덕매 또는 산덕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봉곡리, 신평리, 가장리와 유평리, 행정리 각 일부가 병합되어 운봉면 덕산리에 편입되었다. 1580년경 김씨와 오씨가 수정봉의 정기가 맺힌 명당 터를 찾던 중 버려진 황무지가 명당인지라 이곳에 터를 잡고 정착하였다. 사방을 둘러보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마을을 가꾸고 보니 기름진 옥토에 인심도 좋아 한 번 정착한 사람들은 정이 든 마을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고 한다. 처음엔 삼면이 고산준령으로 둘러싸여 움막 같은 집 한두 채만 있어 너무 조용하고 한적한 곳이다 보니 외로울 독(獨)자의 독산(獨山)이라 하였다. 그후 마을의 선비 중 덕이 많은 어른이 서당을 세우고 2세 아동들을 가르쳐 마을 계몽의 큰 뜻을 높이 기리기 위해 마을 이름을 덕산(德山)이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마을의 취락구조가 원형을 이루고 있으며 양지뜸과 음지뜸으로 나누어 부른다. - 운봉읍행정복지센터
지리산둘레길은 덕산 버스정류소 옆 주촌천 둑방길 출입구로 나가 주촌천(舟村川) 둑방길을 따라 내려간다.
주촌천 둑방길 출입구에 지리산둘레길 1, 2구간 주요도로명과 주소정보를 안내하는 지리산둘레길 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주촌천 동쪽에 운봉읍 덕산리가, 지리산 서북능선 세걸산 서쪽 아래에 운봉읍 공안리가 자리한다. 오른쪽 뒤에 세걸산이 보인다.
주촌천 서쪽 둑방길은 십승지길로 명명되어 있다. 남원 운봉은 정감록 10승지(十勝地)에 속하기에 이를 홍보하기 위해 도로명 십승지(十勝地)길을 지정한 듯. 맨 왼쪽 맨 뒤에 백두대간 고남산이 보인다.
◆정감록 해석 ●사전적 : 나라 안의 10군데 명승지역, 나라 안에서 피란하기 좋다고 전하는 10군데 지방 ●역사적 : 정감록에 전쟁, 재해, 질병 발생시 백성들이 숨어야 할 안전한 피난처 ◆정감록 10승지(6개도 11개시·군 11개읍·면. 옛 지명 ⇒ 현재 관할지역) 1.풍기 차암 금계촌 : 경북 영주시 풍기읍 2.화산 소령의 옛 땅인 청양현 : 경북 봉화군 춘양면 3.보은 속리산 난증항 :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경북 상주시 화북면 4.남원 운봉 행촌 : 전북 남원시 운봉읍 5.예천 금당동 : 경북 예천군 용문면 6.공주 계룡산 유구 마구 : 충남 공주시 유구읍 7.영월 정동쪽 상류 :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8.무주 무풍 북쪽 덕유산 아래 방음 : 전북 무주군 무풍면 9.부안 호암 아래 변산 동쪽 : 전북 부안군 변산면 10.합천 가야산 남쪽 만수동(가야 전지역) : 경남 합천군 가야면 - 운봉읍행정복지센터
지방도 제60호선 운봉로 건너편에 덕산리 가장마을이 자리하고, 오른쪽 뒤에 백두대간이 주천면 덕치리 노치마을로 내리벋는다.
수정봉 동남쪽에 덕산리 가장마을이 자리하고, 뒤쪽에 수정봉이 솟아 있으며, 그 왼쪽으로 백두대간이 남쪽으로 내리벋는다.
수정봉(水晶峰)[805.1m]은 예로부터 수정이 생산되었던 곳으로, 기암절벽이 장관을 이루며 양지산성을 품고 있다. 수정봉은 섬진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을 이루는 산으로, 백두대간이 지리산을 향해 뻗어 내는 길목에 위치한다. 산의 이름은 산 중턱의 암벽에서 수정이 채취되었던 데에서 유래하였다.『신운성지(新雲城誌)』에는 “수정봉은 성재 또는 옥여봉이라고도 하며, 가장리 뒤쪽에 수정을 캐던 구덩이가 있었다. 운봉읍 행정리와 이백면 과립리의 경계에 있는 수려한 산이다. 산 중턱에 수정이 생산되던 암벽이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기암절벽이 장관을 이룬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수정봉의 물줄기는 서쪽은 요천을 통하여 섬진강으로 흘러가고, 동쪽은 람천을 통하여 낙동강의 제1지류인 남강으로 흘러간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십승지길로 명명되어 있는 주촌천 서쪽 둑방길을 따라간다. 백두대간 고남산古南山이 맨 뒤쪽에서 손짓한다.
주촌천의 가장2교 건너편에 운봉읍 공안리(孔安里) 공안(孔安)마을과 수철(水鐵)마을이 있다. 지리산 서북능선이 오른쪽 세걸산에서 왼쪽 바래봉, 덕두산으로 이어진다. "공안리는 해발 1,200m 이상에 위치한 수철(水鐵)·공안(孔安), 해발 540m 이상에 위치한 유평(柳坪)·용은(龍隱)의 4개 행정리로 이루어져 있고, 동쪽에 바래봉, 남쪽에 세걸산, 서쪽에 수정봉을 두고 있는 와우형국(臥牛形局)이라고 한다."
공안리(孔安里)는 운봉의 남면(南面)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수철리, 용은리와 덕산리, 유평리 각 일부를 병합하여 공안리라 하여 남원군 운봉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3월 면이 읍으로 승격되어 운봉읍 공안리가 되었으며, 수철(水鐵), 공안(孔安), 용은(龍隱), 유평(柳坪) 등이 있다. ●공안(孔安)마을 : 남면의 면 소재지였으며, 삼국시대에 밀양 박씨가 처음 이곳에 터를 잡았다고 한다. 공자(孔子)와 그의 수제자 안자(顔子)와 같은 성현이 배출되도록 기원하는 의미에서 만든 공안재(孔顔齋)란 서재가 마을에 있어서, ‘공안재가 있는 마을’이란 뜻으로 공안(孔顔)라 했는데, 후에 공안(孔安)으로 바뀌었다. 1895년부터 운봉군 남면 지역으로 남면 청사가 있었으며, 이 무렵 마을의 규모는 100여 호에 달하는 대촌(大村)이었으나 면 소재지가 운봉으로 옮겨가고 6.25를 겪으면서 마을이 극도로 위축되었다. ●수철(水鐵)마을 : 삼한시대부터 쇠를 녹여 솥을 만들던 곳이라 하여 이름 지어졌다. - 운봉읍행정복지센터
주촌천은 가장2교에서 아래쪽 가장교까지 서쪽의 덕산리 들녘과 동쪽 공안리 들녘을 가르며 흘러간다. 고남산이 맨 뒤에 보인다.
십승지길인 주촌천 서쪽 둑방길에서 백두대간 고남산古南山을 줌으로 당겨보았다.
고남산의 높이는 846.8m로 남원시 산동면과 운봉읍 경계에 우뚝 솟아 있다. 고남산의 동쪽 산자락에 위치한 운봉읍 권포리는 과거 서면의 면소재지로 청사 터가 남아 있다. 권포마을의 서편 고남산 아래에는 인월에 근거지를 둔 왜구를 물리치기 위해 이성계가 고남산에서 전승 기도를 올릴 때 주둔한 병마의 식수로 쓰던 샘이 있었으나 큰 산사태로 인해 매몰되었고, 1500년경 현 위치에 권씨들이 터를 잡아 마을을 형성하였다. 고남산 정상에 석축으로 쌓은 3층 천제단은 황산대첩 당시 태조 이성계가 이곳에 올라 전승을 기원하는 산신제를 지냈다고 한다. 그 아래 말을 달리던 치마대(馳馬臺)가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운봉로의 가장교를 건너 주촌천(舟村川) 동쪽 둑방길을 따라간다. 운봉로 동쪽은 공안리 유평(柳坪)마을 지역이다.
주촌천은 남원시 운봉읍 남단에 솟은 고리봉[1,304.5m]~수정봉[804.7m] 사이의 산지에서 흘러내린 물을 합친다. 주촌천은 최상류의 오롱골천과 갈매기천 등의 물을 모아 덕산저수지에 담는다. 이후 주촌천은 하류로 이동하면서 덕산천·유평천·가장천 등 여러 지류의 물을 모은 다음, 운봉읍 공안리에서 람천(濫川)으로 이름이 바뀐다. 람천의 물은 임천·남강·낙동강을 경유하여 남해로 흘러든다. 운봉읍의 주요 하천인 주촌천·람천·공안천·운봉천 등은 모두 지방2급 하천으로 지정되어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운봉읍 덕산리에서 행정리로 넘어와 운봉로 왼쪽의 십승지길로 명명된 주촌천 동쪽 둑방길을 따라간다.
운봉읍 행정리(杏亭里) 들녘과 공안리(孔安里) 들녘을 가르며 중앙에 운봉로가 달리고, 그 건너편 공안리에 유평(柳坪)마을과 용은(龍隱)마을이 자리한다. 맨 뒤쪽에는 지리산 서북능선이 오른쪽 세걸산에서 왼쪽 바래봉, 덕두산으로 이어진다.
공안리(孔安里)는 해발 1,200m 이상에 위치한 수철(水鐵)·공안(孔安), 해발 540m 이상에 위치한 유평(柳坪)·용은(龍隱)의 4개의 행정리가 있다. 동쪽으로는 바래봉, 남쪽에 세걸산, 서쪽에 수정봉을 두고 있는 와우형국(臥牛形局)이다. 유평리는 1680년경 함양 박씨(咸陽朴氏)가 처음 정착하여 10여 호의 작은 마을로 이어져 오다가 조선조 말에 30여 호로 늘어났다. 처음 마을 이름은 낙안리(洛雁里)였으나, 마을이 위축되고 빈한해지자 주민의 뜻을 모아 개명하였다. 즉, 주변에 번식력이 강한 버들가지가 많고 수양버들 숲이 있어, 마을의 강한 자생력과 번창을 기원하는 상징적 의미로 '벚들', 한자로 ‘유평(柳坪)’으로 표기하였다고 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십승지(十勝地)길로 명명된 주촌천 동쪽 둑방길을 따라가며 운봉읍 행정리(杏亭里) 행정마을을 바라본다.
주촌천 동쪽 둑방길을 계속 따라가면 주촌천(舟村川)이 람천(濫川)에 합수하는 두물머리와 서어나무숲을 만나게 된다. 지리산둘레길은 계속 직진하지 않고, 바로 앞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농로를 따라간다.
갈림길에서 농로를 따라 행정마을로 나간다. 맨 뒤 중앙에 지리산 서북능선의 바래봉, 그 왼쪽 뒤에 덕두산이 보인다.
농로에서 걸어온 주촌천 동쪽 둑방길을 돌아본다. 뒤쪽 지리산 서북능선의 만복대와 고리봉이 확인된다.
운봉읍 행정리 들녘을 운봉로가 가로지르며, 오른쪽 뒤 공안리(孔安里) 들녘에 유평(柳坪)마을과 용은(龍隱)마을이 자리하고, 그 왼쪽에 산덕리(山德里)가 자리한다. 지리산 서북능선 서쪽 아래에 운봉고원의 운봉읍 공안리, 산덕리, 행정리 들녘이 펼쳐져 있다. 중앙 뒤에 세걸산(世傑山, 1,220m)이 솟아 있다.
십승지(十勝地)길로 명명된 주촌천 동쪽 둑방길에서 농로를 따라 식품가공제조업체 '산아래누룽지' 앞으로 이어왔다.
식품가공제조업체 '산아래누룽지'를 지나 앞쪽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꺾어 운봉행정길로 이어간다.
오른쪽 갈림길에서 나와, 걸어온 오른쪽 뒤 주촌천 둑방길과 행정리 들녘을 뒤돌아보았다.
운봉행정길을 따라 운봉읍(雲峯邑) 행정리(杏亭里) 행정(杏亭)마을을 지나간다.
행정(杏亭)마을은 본래 운봉의 남면(南面) 지역으로 '은행몰'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엄계리 일부가 병합되어 행정리(杏亭里)가 되었다. 마을이 형성된 때는 1769년경으로 추정된다. 처음 풍안(고흥) 류씨가 입주하여 살다가 모두 준향리(準香里)로 옮겨가고, 그 뒤 입주한 창녕 조씨(昌寧曺氏)들이 이곳을 개척하였다고 한다. 이어 김씨, 최씨, 정씨가 차례로 입주했다. 조씨들이 새로 들어와 정착할 무렵 이곳 일대에는 은행나무가 숲을 이루어 풍치가 아름다워 사람들은 이곳을 은행마을, 은행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후 이를 한자로 표기하여 은행리(銀杏里)가 되었는데 이를 줄여 행정(杏亭)으로 고쳐 지금에 이른다. - 운봉읍행정복지센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