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삭줍기
전홍구
태안의 갯바람이 우리의 복장과 모자를 흔들어대도
우리는 허리를 굽혀 모래밭에 자라는 낯선 풀을 뽑을 때
뿌리가 움켜쥐었던 것은 생명이 아니라 어느 봄날의 이방인
파도가 밀어 올린 플라스틱 조각들은 바다가 뱉어낸 딱딱한 문법들
우리는 모래알 사이에 박힌 인류의 오탈자들을 하나씩 지워나갈 때
비워진 자리에 서늘한 파도 소리가 깨끗한 수식어로 채워 주었다
천리포 수목원의 목련이 환하게 등불을 켜는 정오의 시간
누군가 버린 욕망의 찌꺼기가 얼굴을 내밀어 웃는듯했지만
줍지 않고 지나칠 수 없는 오늘 행사의 의미를 되살렸다
이삭을 줍듯 나는 오늘 대지의 멍 자국을 가만히 어루만졌다
지구의 상처를 지우고 돌아오는 길의 발자국 뒤로 생생한 봄이 돋아났고
내 시의 첫 줄은 가장 맑고 잔잔한 바다의 숨표로 마무리되었다.
2.
이삭줍기
우리는 햇살이 바람에 따갑게 불어쳐도 허리를 굽혀
모래밭에 뿌리 박힌 외래종 풀의 귀를 잡아당겼다
모래밭에 살면 안 되는 풀을 외래종 풀이라 했다
파도는 밤새 삼킨 플라스틱 조각들을 토해내며
“이것도 너희의 시냐?” 묻듯 발등 가까이 밀려왔고
나는 쓰레기봉투 속에 인간의 양심을 주워 담았다
누군가는 달래를 캤고 누군가는 추억을 줍지만
나는 신두리 해안사구 모래밭과 바다 사이에서
버려진 양심의 폐기물을 한 아름 이삭줍기했다
돌아오는 버스 창밖 붉은 노을이 흔들리자
오늘 하루 내가 주운 것은 쓰레기가 아니라
조금 늦게 해안사구에 도착한 봄의 마음이었다.
3.
환경정화의 이삭줍기
전홍구
2026년 5월 14일 8시 을지로3가역 9번 출구 앞에도 봄은 도착해 있었다. 아직 덜 깬 도시의 얼굴 위로 연둣빛 바람이 얇게 지나가고 있었고 한국 문예 작가회 회원 사십여 명은 각자의 작은 설렘과 피곤을 가슴 속에 품은 채 버스가 출발하길 기다리고 있었다.
누군가는 커피를 들고 있었고 누군가는 조용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 풍경 속에서 문득 이상한 생각을 했다. 시를 쓰는 사람들은 어쩌면 세상의 버려진 마음을 주워 담는 사람들인지도 모른다고.
버스는 서해안을 향해 달렸다.
회색 도시의 건물들은 점점 멀어지고 들녘과 논밭들이 창밖으로 펼쳐졌다. 도로 옆 이름 모를 꽃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고 하늘은 맑은 유리잔처럼 푸르게 닦여 있었다. 봄은 계절이라기보다 살아 있는 숨결 같았고 이팝나무 흰 꽃이 스쳐 갔다.
충남 태안군 원북면 신두리 해안사구에 도착하자 바다가 먼저 우리를 바라보았다.
바다는 생각보다 말이 많은 존재였다. 다만 사람처럼 소리를 내지 않을 뿐이었다. 파도는 쉼 없이 밀려오며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고 모래는 발밑에서 오래된 비밀처럼 사각거렸다.
우리는 호미와 쓰레기봉투를 나누어 들었다.
그리고 허리를 굽혔다.
나는 그 순간 사람이 허리를 굽힌다는 것은 단지 노동의 자세가 아니라 마음의 자세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만은 늘 고개를 들고 있지만 사랑은 언제나 허리를 낮춘다.
모래밭에는 외래식물이 깊게 뿌리내리고 있었다.
그 풀들은 마치 인간의 욕망처럼 질겼다. 하나를 뽑으면 또 하나가 보였고, 뿌리를 캐내면 모래가 함께 들려 올라왔다. 나는 풀을 뽑다가 문득 내 마음속에도 저런 외래종 하나쯤 자라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했다. 편리함이라는 이름의 욕심 무관심이라는 이름의 게으름 나 하나쯤이야 하는 습관들.
바닷가에는 수많은 쓰레기가 밀려와 있었다.
플라스틱병과 스티로폼 조각 낡은 슬리퍼 깨진 부표 그리고 그물 조각들….
그것들은 단순한 생활폐기물이 아니었다. 인간이 버린 시간이었다. 누군가의 무심, 누군가의 편리함 누군가의 외면이 파도를 타고 흘러와 해안에 쓰러져 있었다.
나는 쓰레기를 주우며 이상하게 가슴이 먹먹해졌다.
우리는 흔히 자연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랑한다면 왜 자꾸 버리는 것일까.
바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밀려오는 파도는 자꾸만 내 발등을 적셨다. 마치 “이것도 너희의 흔적이냐?”라고 묻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나는 바다가 거대한 거울처럼 느껴졌다. 인간이 버린 것들을 다시 인간에게 비춰주는 거울.
누군가는 외래종 풀을 뽑고 누군가는 쓰레기로 봉지를 가득 채워 돌아왔다. 그렇게 모인 쓰레기들은 작은 산처럼 쌓였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한 사람의 무심은 가벼운데 그것들이 모이면 태산이 된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문학도 이삭줍기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들판에 떨어진 낱알 하나를 줍듯 시인은 세상에 흩어진 슬픔과 기쁨을 주어 문장으로 엮는다. 사람들이 지나치고 버리고 잊어버린 마음들을 다시 주워 품는 일. 어쩌면 문학은 가장 오래된 환경정화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날 바닷가에서 쓰레기만 주운 것이 아니었다.
파도에 젖은 양심 하나 모래 속에 묻혀 있던 부끄러움 하나 그리고 아직 늦지 않았다는 희미한 희망 하나를 함께 주워 담았다.
천포리 수목원으로 이어지는 길은 고요했다.
나무들은 바람 속에서 서로의 어깨를 두드리며 살아가고 있었고 숲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침묵 하고 있었다. 꽃들은 아무 대가 없이 피어나고 있었고 새들은 국적도 없이 하늘을 건너고 있었다.
그 앞에서 인간만이 너무 많은 것을 가지려 하며 살아가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돌아오는 버스 안은 조용했다.
다들 피곤했는지 말수가 줄어들었다. 그러나 창밖의 노을은 유난히 붉었다. 마치 바다가 마지막 남은 햇빛으로 우리 가슴에 경고문 하나를 붙여주는 것 같았다.
“버리지 말라.”
그 단순한 말이 왜 그렇게 무겁게 들렸는지 모르겠다.
나는 생각했다.
오늘 우리가 한 일은 바다를 청소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을 조금 닦아낸 일이라고.
바다를 살리는 일은 거창한 구호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작은 비닐 하나를 버리지 않는 손 일회용품 하나를 덜 쓰려는 마음 그리고 내가 사는 세상을 잠시라도 내 몸처럼 아끼려는 태도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해 보았다.
오늘 신두리 해안사구에서 우리는 쓰레기를 주웠지만 어쩌면 바다는 오히려 우리 안에 버려져 있던 인간다움을 주워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오늘의 환경정화 봉사를 ‘이삭줍기’라고 생각해 보았다.
봄날의 바다에서 우리는 쓰레기보다 먼저 사람의 마음을 주워 담았고 그 마음을 빈 종이에 담았기 때문이다.
첫댓글 이삭을 많이 주셨네요?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