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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가 부른 평화의 노래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받은 바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말씀이라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이사야 2:1〜4)
예언서 공부 둘째 시간입니다.
첫째 시간에는 이 시간 공부의 전체적인 방향에 대해서 말씀드렸으니까 실제적으로는 오늘이 예언서 공부 첫 시간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 시간은 설교가 아니고 성경공부라는 점을 말씀 드렸습니다.
그리고 문답식으로 하겠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누구에게 어떤 질문이 날아갈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긴장하시고 있어야 합니다.
첫 번째 질문, 지난 시간 공부의 제목이 무엇이었습니까?
정답, “나도 예언자이다”,
한자로 ‘예언자’.라고 쓸 때 ‘미리 예(豫)’자를 쓰기도 하지만 은행에 돈을 맡기는 것을 ‘예금(預金)’이라고 하는데 그 때의 ‘예(預)’자를 쓴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중국어 성경은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려드렸지요.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맡아가지고 있는 에언자들이라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저는 설교를 준비할 때 독일성서공회에서 낸 『해설 관주 성경전서』 한글번역본을 많이 참고합니다.
거기의 예언서 해설 부분에 이런 말씀이 있네요
예언자(선지자)라고 하면 보통은 앞일을 미리 말해 주는 사람으로 이해한다. 이는 이 낱말의 본 뜻이 아니고, 그
헬라 낱말(프로페테스)이나 히브리 낱말(나비)에도 그런 뜻은 없다. 나비는 두 가지를 뜻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무엇,
특히 제 스스로에게서 비롯되지 않은 것을 외쳐 널리 알리는 사람을 뜻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자신이 부르심을
받은 사람 곧 하나님이나 하나님의 영에게 징발 당한 사람을 뜻한다. 그 뜻의 폭이 넓기 때문에 이 표현은 정말
여러 가지 모습으로 드러나는 이스라엘 정선 세계의 대표자들을 한데 묶는 개념이 되었다
여러분 다시 한 번 “나는 예언자이다”라는 사실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언자답게 살기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자, 이사야 공부입니다.
여러분, 이사야에 대해서 아는 것이 많을 텐데 말해 보세요.
우선 이사야의 예언을 기록한 이사야서는 분량이 많다는 사실은 다 알고 계시지요?
이사야서는 몇 장으로 되어 있나요?
그렇습니다, 66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66’ 하면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성경의 권 수입니다.
성경은 구약 39권, 신약 27권, 합해서 66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저 위에 있는 천주교에서 쓰는 성경은 다릅니다.
천주교 성경에는 여러 권이 더 들어가 있습니다.
『토비드』 『유딧』 『마카베오상』 『마카베오하』 『지혜서』 『집회서』 『바룩』 이런
것들인데 저희 개신교에서는 이것을 성경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외경”이라고 부릅니다.
‘성경 밖의 문서들’이라고 풀이할 수 있겠지요.
1970년대에 개신교와 천주교가 성경을 공동으로 번역해서 공동으로 사용하자고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1977년에 『공동번역성서』가 나왔습니다.
이것은 없었던 일처럼 되어버렸는데 그 이유 가운데 하나가 외경 문제에 대해 개신교와 천주교의 입장이 달랐기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66장으로 된 이사야서는 신구약성경 가운데에서 장수가 가장 많은 성경이다’
맞습니까? 틀립니까?
틀립니다.
장수가 가장 많은 성경은 시편입니다.
150편으로 되어 있지요.
시편은 잘 아시는대로 ‘몇 장’ 하지 않고 ‘몇 편’합니다.
예언서들 가운데는 분량이 많은 성경이 네 권 있습니다.
이사야서, 지금 말씀드린대로 66장으로 되어 있고요,
예레미야서 52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에스겔서는 48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들을 ‘대예언서’라고 부릅니다.
다니엘은 12장으로 되어 있는데 분량도 그렇고 시기적으로도 늦게 기록되었기 때문에 대예언서에서 다니엘서를 빼는 분들도 있습니다.
‘대예언자’라는 말은 ‘위대한 예언자’라는 뜻이 아닙니다.
예언자는 다 위대합니다.
‘예언을 기록한 예언서의 분량이 많은 예언자’라는 뜻입니다.
이사야서 1장 1절을 봅니다.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라”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라는 말이 나옵니다.
오늘 본문도 2장 1절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받은 바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말씀이라
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라는 말은 이사야서 여러 군데에 니옵니다.
우리는 예언자 아모스를 잘 압니다.
어떤 예언자에요?
아모스서를 기록한 예언자,
문서예언자들 가운데 제일 먼저 활동을 시작한 예언자,
“오직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암 5:25)라고 외쳐서 ‘정의의 예언자’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예언자입니다.
질문, 여기에 이사야의 아버지라고 나오는 아모스는 그 사람입니까?
답, 아닙니다.
성경을 보면 ‘아모스’ 앞에 ‘1)’이라는 어깨번호가 있고 맨 밑에 “1) 히 아모츠”라고 풀이가 되어 있습니다.
‘구약은 히브리말로 기록되어 있는데 히브리말로는 이모츠가 된다’라는 풀이입니다.
『새한글성경』이라고 재작년에 새롭게 나온 성경이 있습니다.
대한성서공회기 최근에 홈페이지를 새로 꾸몄는데 들어가보니까 『새한글성경』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더군요.
『새한글성경』은 이사야서 1장 1절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가 본 것. 그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해 본 것이다.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가 유다
임금인 때였다
아예 본문에 ‘아모츠’라는 이름을 올려 놓았습니다.
이사야는 왕족이었거나 신분이 높은 사람이었던 것으로 짐작되고 있습니다.
이사야라는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구원을 베푸셨다”입니다.
좋은 이름이지요.
이사야서 1장 1절은 “유다 왕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이사야가 예언 활동을 할 때에 유다를 다스리던 왕들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웃시야의 이름이 제일 먼저 나옵니다.
이사야서 6장을 ‘소명장’이라고 부릅니다.
이사야가 예언자로 부름 받은 일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6장 1절을 보면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웃시야 왕의 이름이 먼저 나옵니다..
내려가서 8절에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부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때에 내가
이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라는 하나님의 부름과 이에 대한 이사야의 응답이 나옵니다..
이사야는 웃시야 왕아 죽던 해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웃시야의 다른 이름은 아사랴인데 그가 죽은 일에 대해서는 열왕기하 15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 이 말을 가지고 계산해 보면 이사야는 60년 안팎 예언 활동을 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공부를 준비하기 위해 이사야서를 시작 부분 읽어 내려가다가 오늘 본문에 와서, 특히 4절에 와서 마음이 떨려왔습니다.
2장 4절의 앞의 두 줄은 제가 읽겠습니다.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나머지는 여러분이 읽으시기 바랍니다.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이 왜 우리의 가슴을 찌르고 들어옵니까?
지금 세상이 평화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때 유대 나라의 형편도 평안하지 못했습니다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라고 했는데 아하스 왕 때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아람과 이스라엘이 연합해서 쳐들어왔습니다
열왕기하 16장 5절을 읽어 드립니다.
이때에 아랍의 왕 르신과 이스라엘의 왕 르말리야의 아들 메가가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싸우려 하여 아하스를 에워쌌으나
능히 이기지 못하니라
이스라엘은 북왕국입니다.
성경공부할 때 ‘북왕국 이스라엘 남왕국 유다’ 이렇게 외우던 일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아람과 손을 잡고 쳐들어왔습니다.
동족끼리 맞서 있는 우리의 형편과 비슷합니다.
아하스 왕은 성전과 왕궁 곳간의 은금을 내어다가 앗수르 왕에게 바치고 위기를 모면하지요.
히스기야 왕 때는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이번에는 앗수르가 쳐들어 옵니다.
기원 전 701년 경의 일입니다.
이사야서 36장 1절을 읽어 드립니다.
히스기야 왕 십사 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유다의 모든 견고한 성읍을 쳐서 취하니라
이때 예언자 이사야가 큰 일을 합니다.
어떤 일을 했는지 대개들 아실 텐데 그래도 댁에 가셔서 이사야서 36장부터 40장까지를 한 번 읽어보세요.
지금 세계의 형편이 평화롭지 못합니다.
이란을 둘러싼 전쟁이 여러 달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아침 6시나 밤 9시 종합 뉴스가 방송되는 시간에 TV를 켜면 이란 전쟁과 관련된 소식이 톱으로 나오는 일이 많습니다.
한때는 뉴스의 반 정도가, 또는 그 이상이 이란 전쟁 관련 소식이 차지하는 일도 많았습니다.
우리 화물선도 피격을 당했습니다.
지금 휴전상태라고 하지만 언제 깨질지 모르는 형편입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도 지루하게 계속되고 있습니다
전쟁이 일어난 것은 아니지만 대만해협의 긴장도 만만하지가 않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방문 보도에도 대만 문제가 거의 빠지지 않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 이야기할 필요 없지요.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도 긴장이 아주 높은 곳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남과 북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휴전선입니다.
군사분계선이라고도 합니다.
최근에 북한은 새로운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휴전선이 아니라 국경선이다’라는 주장입니다.
‘남한과 국한은 별개의 국가이다’ -적대적 두 국가론’이라고 하지요- 그러니까 남한과 북한의 경계선은 국경선이다‘ 이렇게 주장합니다.
북한은 최근에 헌법을 개정했는데 헌법에 이런 점을 분명하게 집어 넣었다고 합니다.
휴전선을 경계로 남쪽과 북쪽으로 각각 2km씩 물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은 무장한 병력이 들어가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비무장지대라고 부르지요.
그런데 그것이 잘 지켜지지 않아서 그 사이가 7,8백 미터가 되어 있는 곳들도 있씁니다.
비무장지대의 남쪽 끝부분을 남방한계선이라고 하는데 우라나라 정부는 남방한계선으로부터 상당히 넒은 구역에 민간인출입통제선을 쳐 놓았습니다.
서울에서 북쪽으로 백여리 가면 파주, 연천, 철원. 고성, 이런 곳들에 민간인 출입통제선이 그어져 있습니다.
그렇게 민통선을 그어놓고 ‘여기에서부터는 민간인 출입을 통제합니다.’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전에는 민간인 출입통제지역이 지금보다 넓었습니다.
그리고 출입 허가를 받는 절차가 아주 까다로웠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런 형편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비무장지대 주변은 두 가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나는 군인들이 가장 밀집해 있는 지역이라는 사실입니다.
남한과 북한이 많은 병력을 그곳에 배치해 놓고 있습니다.
하나는 지뢰가 가장 많이 묻혀 있는 지역이라는 사실입니다.
625 때 묻은 지뢰도 있고 그 뒤에 묻은 지뢰도 있다고 합니다.
북한은 요즘 미사일 발사를 자주합니다.
이름이 최현함인가, 신형 구축함을 하나 만들어서 여러 가지 훈련을 하는 소식이 자주 전해지고 있습니다.
북한 통치자의 어린 딸이 후계자로 내정된 것 같은데 그 어린 딸이 권총 사격 연습을 하는 장면이 TV에 종종 나옵니다.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데 ‘우리는 핵을 보유한 국가이다’라고 인정을 받기 위해서 애쓰고 있습니다.
우리의 형편이 이렇기 때문에 이사야가 부른 평화의 노래가 더욱 강하게 마음 속에 울려 퍼집니다.
이사야서 2장 4절을 읽으면서 ‘어, 이 말씀, 이사야서 말고 다른 곳에서 읽은 것 같은데’ 하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어디에서 읽었어요?
제가 미가서 4장 3절을 읽어 드립니다.
그가 많은 민족들 사이의 일을 심판하시며 먼 곳 강한 이방 사람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
거의 같습니다.
같은 말씀이 두 곳에 나오는 일에 대한 성경학자들의 의견은 각각 다릅니다.
이사야가 미가서를 인용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성경학자도 있습니다.
‘아니다, 반대로 미가가 이사야서를 인용했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성경학자도 있습니다.
‘둘 다 아니고 요엘서 3장 10절에 “너희는 보습을 쳐서 칼을 만들지어다 낫을 쳐서 창을 만들지어다 약한 자도 이르기를 나는 강하다 할지어다”라는 말씀이 있는데 이사야와 미가가 이것을 참고해서 한 예언일 것이다'라고 하는 성경학자도 있습니다.
’그것이 아니고 전해 내려오는 평화의 노래가 있는데 이사야와 미가가 그것을 인용한 예언일 것이다‘라고 말하는 성경학자도 있습니다.
저는 이 평화의 노래가 미가서에도 나온다는 사실을 대하면서 학생시절에 선생님에게서 들은 말이 생각 났습니다.
”여러분, 성경에 두 번 이상 나오는 말씀은 특히 중요한 말씀이라는 것을 아셔야 됩니다. 한 번만 나와도 중요한데 얼마나 중요하면 두 번이나 나오겠어요?“
여러분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 강해 다음에 우리는 찬송가 475장을 부를 것입니다.
이 찬송은 감리교신학대학 학장을 지낸 홍현설 목사님이 작사를 하신 것입니다.
’화해와 평화‘를 주제로 한 찬송가로는 찬송가에 딱 한 장 올라와 있는 찬송가인데요
인류는 하나되게 지음 받은 한가족
우리는 그속에서 협조하며 일하는
형제와 자매로다 형제와 자매로다
죄악은 뿌리깊게 우리 맘에 도사려
편당심 일으키며 차별의식 넣어서
대화를 막으련다 대화를 막으련다
주님은 십자가로 화해하는 본보여
불신의 이 땅 위에 믿음 사랑 되찾는
새 세계 명하신다 새 세계 명하신다
영광도 부끄럼도 함께 받는 우리니
믿음과 소망으로 튼튼하게 뭉쳐서
이 어둠 뚫고 가자 이 어둠 뚫고 가자
이사야 예언자가 부른 평화의 노래를 읽으면서 지금 전쟁 소식이 여기저기에서 들리고 있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가르쳐주는 찬송이라고 생각됩니다.
찬송가 이야기를 하나 더 하고 오늘의 공부를 마치겠습니다.
임진각에 가면 평화의 종각이 있습니다.
평화의 종각에 올라가는 계단은 층계가 21개입니다.
종의 무게는 21톤입니다.
종각의 크기는 21평방미터입니다.
이 종은 2000년 1월 1일 0시에 첫 타종을 했습니다.
그때 종을 스물한 번 쳤다고 합니다.
왜 ’21‘이라는 숫자가 많이 나올까요?
이제 21세기인데 21세기는 평화의 세기가 되고 통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그렇게 했다고 합니다.
지금도 그렇게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임진각 관리사무소에 일정한 금액을 내면 그 종을 칠 수 있게 합니다.
저는 신학생들이나 통일선교단체들과 함께 임진각에 가면 그 평화의 종각 앞에 서게 합니다.
그리고 종을 치고 찬송가 554장을 부르고 기도하게 합니다.
찬송가 554장 ”종소리 크게 울려라“는 테니손(A. Tennysdon) 이라는 잘 알려진 시인이 작사한 것입니다.
송구영신 예배 때 부르는 찬송이기 때문에 1절은 임진각에서 부르기에는 좀 적합하지 않지만 그래도 평화의 종각 앞에서 종을 치고 이 찬송을 부르면 모두 숙연해집니다
종소리 크게 울려라 저 묵은 해가 가는데
옛것은 울려 보내고 새것을 맞아 들이자
시기와 분쟁 옛 생각 모두 다 울려 보내고
순결한 삶과 새 맘을 다 함께 맞아 들이자
그 흉한 질병 고통과 또 한이 없는 탐욕과
전쟁은 울려 보내고 평화를 맞아 들이자
기쁨과 넓은 사랑과 참 자유 행복 누리게
이 땅의 어둠 보내고 주 예수 맞아 들이자 아멘
이사야가 부른 평화의 노래를 대하면서 이 나라, 이 세계가 평화의 땅이 되게 해 달라고 힘써 기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주님, 예언서 공부를 시작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이사야가 부른 평화의 노래를 살펴 보았습니다
주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드는 날이 속히 오게 하여 주옵소서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는 날,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않는 날이 속히 오게 하여 주옵소서.
이사야의 예언을 통해 이 일을 위해 힘써 기도해야 하는 사명을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는 찬양과 함께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둔지산(屯之山)의 종소리[山鍾 유관지 글모음]](http://t1.daumcdn.net/cafe_image/cf_img2/img_blank2.gi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