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여행-1통권1
음울한 분위기의 괴기로운 그로테스크한 공간. 마치 깊은 어둠을 닮은 검은 연기가 공간을 가득 채운 그 안에서 한 존재의 울부짖음이 공간을 울렸다.
“라푸네, 라푸네, 나의 라푸네….”
애잔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는 소름 끼치는 저주로 바뀌었다.
“베르그, 저주받아 마땅한 놈. 그래 나는 널 저주한다. 네놈의 뇌를 유리병에 담아 영원히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하여 이언스 계곡 깊숙한 곳에 봉인할 것이다. 이놈~!”
그리고 다시 애잔함이 가득한 목소리로 ‘라푸네’를 불렀다.
“아아~! 라푸네, 나의 라푸네….”
그렇게 애잔하게 ‘라푸네’를 부르고, ‘베르그’라는 자에게 소름 끼치는 저주를 퍼붓기를 반복하던 목소리는 갑자기 희열에 들떠 부르짖었다.
“성공이다. 마계의 문이 열렸다. 이제 나를 버린 세상은 멸망할 것이다. 라푸네 베르그 네가 날 농락하고 구하려 한 세상은 너로 인해 멸망할 것이다. 그리고 너는 나를 영원히 버리지 못할 거야!”
수백 개의 갓 태어난 어린아이의 해골로 그려진 마법진에서 진득한 어둠의 검은 구멍이 생성되었다. 그 어둠이 물처럼 출렁이더니 검은 머리와 검은 눈동자를 가진 미남자가 발가벗은 모습으로 솟아올랐다. 그러자 진득한 마기의 영향을 받아 당장이라도 흘러내릴 듯한 짓무른 피부에 산발한 회색 머리의 노파가 주문을 외듯 물었다.
“마계의 족속이여, 그대는 누구인가?”
“나는 공간과 차원의 마왕이다.”
“헉!”
마계의 문을 열어 마계의 마물을 소환하려던 노파는 스스로 마왕이라 밝힌 존재가 소환되자 크게 놀랐다. 노파는 벌렁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마왕과의 계약을 시도했다.
“위대한 마왕이여, 나는 그대와 계약을 원한다.”
“거부한다!”
“….”
“그보다 여기는 어디지?”
마계의 문을 연 노파. 마녀는 소환자와 계약을 하지 않으려 하는, 자칭 마왕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주문을 캐스팅했다.
“리턴Return!”
[리턴Return]은 소환 마법으로, 소환된 존재를 돌려보내는 디스펠(Dispell) 주문이었다. 컨트롤되지 않는 존재는 아무리 마왕이라도 마녀에겐 필요 없었다. 그러나 상대는 역시 마왕이었다. 소환된 존재를 돌려보내는 [리턴Return] 주문을 캐스팅했는데 오히려 마계와 연결된 문이 닫혀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준수하기 그지없는 모습을 하고 있는 마왕의 몸이 심한 가뭄을 만난 땅처럼 갈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커억~! 이런, 속았다.”
그리고 마녀는 뭐가 어찌 된 것인지 모르지만 일단 괴로워하는 마왕을 제압할 요량으로 주문을 캐스팅했다.
“패러라이즈Paralyze!”
[패러라이즈Paralyze : 마비] 주문이었다. 그러나 상대는 마왕이었다.
“크아~!”
마왕의 갈라진 피부에서 인간의 그것과 같은 선명한 붉은 핏줄기가 뿜어져 나오고 그 강력한 힘을 품은 피의 화살이 마녀를 덮쳤다. 마녀는 물론 피의 화살을 맞은 공간 안의 집기란 집기는 모조리 부서지거나 구멍이 숭숭 뚫렸다. 그러나 정작 마계에서 소환된 마왕이란 존재 또한 무사하지 않았으니….
“이런! 마계에 적응된 몸이 붕괴할 줄이야.”
그랬다. 마계의 마왕들이 마계에서 마력보다 훨씬 미약한 마력을 가진 이유는 마력의 태반을 신체를 구성하는 데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라혼은 본래 ‘인간’ 끝까지 인간의 몸을 버리지 않았기에 중간계로 나서면서 신체를 따로 구성하지 않았다. 그러나 미친 마녀의 [리턴Return] 주문에 마계의 문이 닫히자 마계의 마기에서 완전히 벗어난 마기에 찌든 신체가 붕괴되기 시작했다. 라혼은 일단 몸의 붕괴를 전력을 기울여 막는 수밖에 없었다. 신성력을 이용한 신성 마법을 사용했다간 자칫 마기에 찌든 신체가 소멸할 수도 있었다.
***
“퓨리피케이션Purification!”
“기분 나쁜 곳이군.”
“그래요. 하지만 이언스 계곡의 마녀 소굴이니까 어쩌면 당연한 일이죠.”
신성 주문 [퓨리피케이션Purification : 정화]이 펼쳐지자 마녀가 걸어놓은 저주 마법이 무산되어 계곡을 감싸고 있던 기분 나쁜 안개가 걷히면서 일단의 사람들이 들어섰다. 겉보기엔 과연 저걸 입고 움직일 수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풀 플레이트 아머, 전신판 갑옷을 입은 기사와 서너 명의 신관들. 주먹만한 진보라색 수정이 박힌 지팡이를 든 매혹적인 보랏빛 머리를 가진 이지적인 미녀. 각양각색의 무구와 무기로 무장을 한 10여 명의 사내들이었다.
“나이트 그레이드, 오비라이언 형제는 쉬어야 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오비라이언 신관님.”
“더 이상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합니다.”
“별말씀을…. 스탄티 신관님, 그는 계곡 밖으로 보내 후위대와 쉬게 하십시오. 그리고 다른 분은 괜찮으시겠지요?”
“괜찮습니다.”
“저도 괜찮습니다.”
아마도 풀 플레이트 아머를 입은 자가 기사이며 그가 이 무리의 리더인 듯했다.
“그럼 제가 선두에 서고 오드넷 씨와 함 씨가 제 뒤를 받쳐주십시오. 그리고 메이지 카이렌이 뒤를 따릅니다. 나머지 인원은 신관님들을 보호하며 천천히 진입하는 겁니다.”
“예.”
“예.”
“아! 그리고요. 이언스의 마녀는 네크로맨서(Necromance)로 유명하니까 언데드가 공격해올지 몰라요.”
나이트 그레이드는 보랏빛 머리의 메이지 카이렌의 경고에 고개를 끄덕이며 마지막 지시를 했다.
“그럼 모두 긴장을 늦추지 말기를 바랍니다. 출발하겠습니다.”
그렇게 일단의 일행은 음습한 이언스 계곡 깊숙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마녀가 거처하는 기이한 악령 문자가 새겨진 동굴에 도착할 때까지 언데드는커녕 그 흔한 트랩도 걸리지 않았다.
“이거 왠지 맥이 빠지는군요. 음습한 것 외엔 걸리는 것이 없으니…. 하지만 여기 입구는 뭔가 있는 것 같아요. 디텍트 매직Detect Magic!”
여마법사 카이렌은 마녀의 거처로 들어서는 입구에 적혀 있는 악령 문자를 보고 뭔가 수상한 점을 느꼈는지 [디텍트 매직Detect Magic : 마법 감지] 주문으로 입구를 살폈다.
“역시, 패러라이즈 주문이에요. 마녀가 인정하지 않은 존재가 이곳을 지나면 마비 증세를 보일 거예요. 이건 암흑 마법 계열이니까 신관님이 나서시는 게 좋겠군요.”
카이렌의 말에 스탄티라 불린 신관이 나서서 두 손을 모아 기도하며 주문을 외웠다.
“리무브 커스Remove curse!”
[리무브 커스Remove curse : 저주 해제] 주문이 시전되자 성스런 하얀 빛무리가 동굴 입구에 피로 쓰인 악령 문자가 지워졌다. 그때….
―카오!
“헉!”
―쾅!
서너 구의 좀비(zombi)가 무서운 속도로 튀어나와 입구이 마법 트랩을 무산시킨 신관을 물어뜯으려 했다. 그러자 바로 곁에 있던 기사는 몸통을 던져 적을 공격하는 록 스트라이커로 좀비의 몸통을 들이받았다. 기사의 갑옷은 보통 평범한 갑옷이 아니었던 듯 좀비와 접촉한 순간 하얀빛이 터져나오면서 기사에게 록 스트라이커로 들이받힌 존비는 재로 변하며 부서졌다. 기사는 나머지 좀비와 더 이상 드잡이질을 벌이지 않으며 신관을 데리고 뒤로 물러섰다. 동시에 등을 보이는 기사를 덮치려던 좀비를 후위에 있던 두 용병이 손에 들고 있던 도끼를 던짐으로써 일단 주춤하게 만들었다.
“카이렌!”
“라이트닝Lightning!”
―파직~!
카이렌의 보라색 수정에서 번갯불이 작렬했지만 아직 세 구나 남은 좀비는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좀비의 썩어 문드러지는 살이 타는 냄새에 눈살을 찌푸린 나이트 그레이드는 은보다 효과가 좋은 미스릴이 코팅된 바스타드 소드를 뽑아들고 카이렌의 [라이트닝Lightning] 주문에 주춤한 좀비를 그대로 내리쳤다.
“이야압!”
―쭈악!
그러자 좀비 한 구가 그대로 오른 어깨부터 사타구니까지 갈라지며 스러졌고, 곧이어 기사는 오른쪽으로 몸을 한 바퀴 반을 회전하며 왼쪽을 파고드는 좀비의 목을 잘라냈다. 나이트 그레이드가 그렇게 순식간에 좀비 두 구를 상대하는 사이, 두 용병 사내는 나머지 한 구의 좀비의 머리통을 도끼로 찍어 부숴놓았다.
“역시 이언스의 마녀의 좀비답네요. 좀비가 이렇게 재빠를 수가 있다니.”
카이렌은 아직도 꿈틀대는 좀비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용병들의 보호를 받던 신관 하나가 나서서 좀비의 잔해를 모으게 하고는 뭔가 붓고 신성력으로 불꽃을 만들어 좀비의 잔해를 태웠다. 그 모습을 본 카이렌은 입맛을 다시며 지나가는 투로 중얼거렸다.
“아깝네, 좀비의 잔해는 귀한 마법 시약인데….”
“메이지 카이렌, 언데드의 잔해는 부정한 것입니다.”
“알아요. 그리고 전 성황청이 금지하는 마법 시약은 사용하지 않아요.”
그렇게 좀비의 잔해까지 처리한 일행은 횃불을 만들어 들고는 다시 마녀의 동굴로 조심스레 들어섰다. 그러나 저항은 마법 트랩과 좀비 네 구가 전부였던 듯 거미줄과 그로테스크한 각종 표본이 보관된 지저분한 마녀의 거처는 썰렁했다.
“오드넷, 함, 다른 곳으로 통하는 통로가 있는지 살펴봐주시오.”
“알았소.”
마녀의 거처에 정작 마녀가 없자 허탈해진 일행은 여기저기 둘러보기 시작했다.
“나이트 그레이드, 여기 문이 있소.”
함이라고 불린 용병이 발견한 문은 서가 사이에 파묻혀 있었는데 문고리 대신 손을 집어넣을 수 있게 홈이 파여 있었다. 기사는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조심스럽게 문을 잡아당겼다.
―끼이이익!
“흠! 이건?”
“피 냄새로군.”
문을 열자 동굴에서 진득한 피 냄새가 쏟아져 나왔다. 그러자 기사는 더욱 긴장하며 좁아 보이는 통로로 들어섰다. 그리고 나이트 그레이드가 발견한 것은 마녀의 시체와 피부가 흉측하게 갈라진 남자의 시체였다.
“뭐야? 우리 말고 누가 마녀를 해치운 거야?”
“아뇨, 사고가 있었던 모양이에요. 저 남자는 아마도 제물이었던 모양이고, 마지막 순간 뭔가 잘못되어 폭발한 모양인데요?”
“그렇군.”
“됐소! 일이 어찌 되었건 이언스의 마녀가 죽었으니 성황청에서 그에 합당한 보상이 주어질 것이오. 어서 이곳을 태우고 떠납시다.”
그때 발가벗은 남자를 살펴보던 젊은 신관이 소리쳤다.
“여기 이 사람 아직 살아 있어요.”
“어디? 정말이네. 미약하지만 숨을 쉬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