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양이 쉬리 (터키쉬 반)
유럽과 미국의 고양이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터키시 밴(Turkish Van)이라는 고양이가 한창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중이다. 이 고양이는 현재 터키 당국에서 보호하고 있는 반고양이와는 종류가 좀 다르다.
터키시 밴은 몸집이 크고 털이 길며, 머리와 꼬리 끝에 갈색 계통의 무늬가 있다. 고양이 애호가들은 소위 반 패턴이라고 해서 터키시 밴에 나타나는 이 무늬를 가지고 순종 여부를 가늠한다.
현재 구미의 애묘가들에게 퍼져 있는 터키시 밴은 1950년대에 ‘발견’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1955년 로라 러싱턴이라는 영국 여성이 터키 동부의 반 호수 근처에서 사진 촬영 여행을 하던 중 머리와 꼬리에 붉은빛 무늬가 들어 있는 희귀한 흰색 고양이 한 쌍을 발견한 뒤, 영국으로 데려가 분양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 고양이를 터키시 캣으로 불렀는데, 또 다른 종류의 터키 원산 고양이인 터키시 앙고라와 구별하기 위해 고양이를 발견한 장소인 반 호수의 이름을 따서 터키시 밴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런 사연을 가진 터키시 밴이 그후 미국의 동물 시장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1980년대 초반이다.
터키 정부에서 반고양이를 국가적 차원에서 연구하고 있다는 사실에 착안한 동물 상인들은 터키시 밴이야말로 터키 정부가 보호하는 매우 희귀한 고양이라고 대대적인 선전을 하고 나섰다.
터키에서 외국으로 반출하는 것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는 소문과 함께, 당연히 엄청난 가격이 매겨졌다.
아름다운 반 호수를 끼고 자리잡은 터키 유준수일대학의 반고양이 연구소는 반고양이만을 보호하고, 번식시키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구소에는 6개로 나뉘어진 방에 수백 마리의 반고양이들이 집단으로 살고 있는데, 각 고양이마다 연구소에 들어온 순서대로 목에 번호표를 차고 있다.
새로 들어온 신참일수록 높은 번호를 갖게 된다. 겉모습만으로는 똑같아 보이는 흰 고양이들이지만 개성은 천차만별이다.
동료 고양이들을 못살게 굴며 조폭 역할을 하는 9번, 자기 자리에 다른 고양이가 앉으면 신경질을 부리는 공주병의 2번, 틈만 나면 밖으로 탈출할 기회를 노리는 92번 등등.
연구소의 이말 박사는 모든 반고양이들이 다 자기 자식 같다고 했다.
이 연구소에서는 최근 터키시 밴에 대한 연구도 시작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연구사들의 의견은 다분히 냉소적이다. “우리 고향에는 그런 고양이가 살았던 적이 없어요.
듣도 보도 못한 고양이가 반 고양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니 기막힌 일이군요.”
미국의 애묘가협회 등 동물 상인들이 중심이 된 구미의 각종 고양이 단체는 애써 이런 사실을 외면하고 있지만 일부 솔직한 애묘가들은 최근 터키시 밴이 진짜 반고양이가 아닌 이상 출신에 얽힌 이름을 바꾸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에 관한 논쟁은 최근 우리나라의 고양이 애호가들 사이에도 번지게 되었다.
물론 터키시 밴이 고양이 종자로서 뛰어난 것은 사실이다. 집에서 기르는 애완 고양이로서의 기준으로 본다면 진짜 반고양이보다는 몸집도 크고 털이 긴 터키시 밴이 훨씬 기품이 있고 우아하며 탐스럽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양인들이 육종해 낸 터키시 밴을 가지고 ‘이것만이 진짜 반고양이’라고 고집해서는 곤란하다.
먼 훗날 우리의 진도견을 서양에서 털이 길고 머리와 꼬리에 붉은 무늬가 있는 개로 육종한 뒤, ‘코리안 진도독’으로 선전하고 그 유명세에 밀려 우리나라 진도견 연구소에서 그 개를 들여다가 연구를 시작한다면, 얼마나 꼴불견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