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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diers(군인들).. #0.서지훈이여야만 하는 이유.
20XX년 3月 국방부 제 5 회의실.
시계 바늘이 2시를 정확히 가르키자 중장 한명이 일어났다.
그와 동시에 회의실의 모든 불빛은 차단 되고 흰색의 빈 슬라이드에는
"이 곳이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로체스터섬'의 지도입니다. 제 3차 대전과 동시에 테러범과 우리 연합군과의 10년째 끝나지 않는 싸움의 가장 치열한 곳이라고도 할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은 모두들 알고 계실겁니다. 얼마 전 영국의 한스 장군과 우리군의 최병호 대령의 연합군이 이 곳을 탈환하기 위해 보병대대, 즉 4개의 중대(640명)를 파병하였습니다."
"어제까지 교전중이라는 연락만 왔을 뿐 그 다음부턴 무전이 끊겼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중장의 설명을 듣고있던 한 소장의 질문에 중장의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말을 이었다.
"1시간 전에 영국으로부터 무전이 연결되었습니다.. 연합대대는... 640명 모두 전멸하였습니다.."
".....!!!!"
순간 회의실 분위기는 고요함만이 있을 뿐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얼마간의 침묵이 끝나자 중장은 침을 한번 꿀꺽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제가 긴급회의를 소집한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로체스터섬은 테러범의 게릴라전에 의해 연합군의 피해가 너무나도 커지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UN은 연합군의 대표격인 국방부와의 긴급교섭을 방금 전에 끝냈고 체제를 조금 변동시키기로 하였습니다."
중령의 말이 끝나자 슬라이드가 한번 깜빡이더니 영사되어있던 지도 대신에 누군가의 사진이 영사되었다.
왜소하다 못해 가녀린 이미지, 앳되어 보이는 하얀 얼굴의 남자...
"김중사.. 이 사람은 대체 누구인지..?"
"25살, 최연소 중령의 자리에 올랐던 서지훈 중령입니다."
"25살!!"
"제 3차대전을 맞이하여 국방부에서 새로이 마련한 군대제도.. ATT(Army Training Test -육군 훈련 시험)에서의 성적별 능력에 따라 나이와 관록을 불문하고 능력별로 그 직위를 높여가는 제도에 따라 한국 군대 창설 이후 처음으로 ATT시험 만점으로 육사를 수석 졸업한 서지훈 중령입니다"
"아, 서중령의 이야기를 들어본적이 있네-. 육사의 SF(Special Forces-특수부대) 출신이라지? 그 해의 SF 졸업자들이 엄청나다고 들었는데.."
"네.. 서지훈을 포함한 6명이 모두 중령1명, 소령3명, 2명의 대위로 최연소로 임명되었습니다.*(중령>소령>대위) 특히 서지훈 중령은 사격 부분에서 명중률 99.9%로 UN 가입 국가의 군인 중 가장 우수한 실력을 인정받은바입니다.."
"근데 서중령의 이야기가 왜 지금 거론된다 말입니까..?"
"UN과의 교섭에서 서지훈 중령을 주축으로 하는 대대 하나를 훈련시켜 로체스터 섬에 투입 시킬 작전을 세웠습니다."
"아무리 최연소 중령에 오를 정도로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너무 어립니다. 전투 경험도 부족할지도 모르고 그런 어린 사람이 선두에 선다면 대대의 사람들도 순순히 따르지 않을 것 같은데.."
"그렇습니다. 너무나 무리한 작전입니다."
"로체스터 섬을 제외한다면 아직 전쟁은 연합군쪽에 유리하게 기울고 있습니다. 조금은 여유를 생각하는 것이..................."
여기저기서 빗발치는 이의제기에 김중사가 조금은 난감한 듯한 표정을 짓자 테이블 한쪽에서 조용히 김중사의 이야기를 듣고있던 박중사가 조용히 말을 꺼냈다.
"서중령에 대해서는.. 내가 조금 알고 있긴 하지요.."
".......?"
"여러분께서는..'왈키리아 전투'를 기억하십니까..?"
왈키리아 전투.. 제 3차대전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서 연합군의 4개의 대대, 즉 한 연대(2560명)와 민간인(군 가족 포함)200명 중 생존자가 단 3명이었던 끔찍한 사건.
모두들 박중사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자 박중사는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한마디 내던졌다.
그 한마디에 회의실은 또 다시 침묵에 휩싸였다. 이의를 제기했던 사람들은 모두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서지훈 중령은 이 왈키리아 전투의 유일한 3명의 생존자 중 한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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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diers(군인들).. #1. 은색의 아우디-
20XX년..
한국은 힘겨웠던 남북통일을 이룩함과 동시에
이는 테러군이 왈키리아 섬에 대치중이었던 연합연대를 전멸시키며
그리고 끔찍했던 전투로부터 10년..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낮의 고속도로를 질주하고 있는 은색의 아우디-..
차 만큼이나 세련된 은색의 은테 안경을 한번 들어올렸단 내린 민은
조수석에서 고개를 빳빳히 세운 채 졸고있는(...) 남자.
'자율능력별군대'라는 명목 하에 '두발자유(...)'가 허락된 탓인지
반듯한 이마에서 콧등으로 이어진 예쁜 라인은 그의 긴 속눈썹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었고
그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버리는 민..
"군인이란 녀석이.. 나이를 먹어서도 이런 얼굴이라니..
"...안잤어."
"뻥까고있네- 그렇게 고개 빳빳히 세우고 졸면 누가 모를 줄 아냐..?
"시끄러.."
무미건조하고 차가운 말투. 쌍커플이 없는 서늘한 눈매에선 냉기까지 흐르는 듯 하다.
하지만 민은 이미 익숙한 듯 그 모습에 피식피식 웃으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짐은 제대로 챙겨왔냐..?"
"내가 애냐.. "
"생긴건..."
"죽고싶구나.."
"야야..니가 그런말 하면 농담으로 안들린단 말야.."
"....."
"너의 그 늘씬하고 잘빠진 섹시한 베레타는 당연히 챙겨왔겠지..?
"제티가 아니라........셀티다.. "
"아..맞다. 제티는 그 옛날에 나온 우유에 타먹는 그 이상한 가루였어.
장난스럽게 말하는 민을 한번 노려보고선
베레타 M92FS..
가벼우면서도 연사력과 위력이 강하여 살상용으로는 최고로 칭하는 은색 권총..
손질이 잘 된 듯 햇빛을 받아 반짝이며 빛나는 셀티는
그 모습을 보며 싱긋 웃는 지훈.
어쩌면 누군가를 비웃는듯한,
지훈의 그 모습에 민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또 한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뭐야.. 왜 한숨인데.."
"야..서지훈.."
"어?"
"너.. 부대 들어가거든 절대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웃지마라."
"왜?"
"아아...그게...그게....에이씨...그러니까!!! 위험하다고!!!!!"
"....??"
지훈이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눈을 두어번 깜빡깜빡하자
그도 그럴것이 목까지 오는 차이나 카라의 까만 제복은
지훈의 가늘고 새하얀 목을 가린
상상속의 민은 얼굴이 벌개지며 괜히 엑셀만 구박하고 있었다.
"왜 이렇게 속력이 안나!!!"
"야, 강민.."
"아이씨!!왜!!"
"....속도위반이야.. 카메라에 찍혔어."
투덜투덜하는 민과 어이없다는 표정의 지훈을 태운 은색의 아우디는
그렇게 한참을 도로를 따라 달리다 민이 속력을 서서히 줄였다. 커다란 간판이 그들의 시야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324부대. 관계자 외 출입엄금]
헌병 두명이서 지키고 있는 삼엄하게 보이는 철문앞에 당도하자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서지훈 중령님!"
그모습에 지훈은 예의 그 미소를 또 한번 씨익-
"부탁이고 뭐고 행동 제대로 안하면 이마에 구멍날줄 알아..
'히익-!' 하고 기겁하는 민의 표정과는 달리
지훈의 표정은..아까 전까지와는 달리...
조금은 즐거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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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diers(군인들).. #2. EOD(폭발물 처리반)의 김성제
새로 재건축 한 듯 깨끗하고 반듯한 흰색의 작은 맨션들..
맨션 앞의 주차장 대신인듯한 널다란 공터에는
324 부대 안 군용 아파트 B동 앞에 선 요환은 짐가방이 무거운 듯
"홍진호.. 너무 늦었다.더워 죽겠다고..거기다가 열쇠를 너가 가져가버리면 어떻게하냐!"
"미안하다..요환아.. 중대장한테 가서 전입신고 하고 오는데
"중대장도 심기가 편한건 아니겠지..
"말투 꼬라지 봐라.. .지훈이가 니 이야기 들었으면.....
"에이..설마 육사 선배를 죽이기야 하겠냐.."
"선배는 선배고..지금은 지훈이가 우리보다 높으니까..
" 안봐도 비디오다.. 또 안에서 뭐같지도 않은 것 가지고 둘이서 시비 붙었겠지.."
"푸훗-.."
뻔하다는 표정으로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하는 요환의 말에
내리쬐는 햇볕에 조금은 더운듯한 요환과 진호..
큰 키와 탄탄하면서도 늘씬하게 뻗은 그들의 체형때문인지
"덥고..짜증나고..담배피고 싶다.."
더위가 짜증나는 듯 다시한번 표정을 살짝 찡그린 요환이
그모습에 진호가 조금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잊었냐. 성제가 너 담배 피는거 싫어하잖아."
"아... 그랬었지..."
"육사 졸업하고선..성제랑 연락 안하고 지냈었어...?"
"으응... 소식만 간간히 들었지.."
"성제.. 여기 324부대 EOD(Explosive Ordnance Disposal -폭발물 처리반)에 있다지..?"
"성제 특기잖아. 여기 324에서 스카웃했었어.."
"안만나볼꺼야..?"
".............."
"임요환??"
"어짜피.... 훈련 내내 볼껀데.. 뭐.."
조금은 굳어버린 요환의 표정에 진호는 씁쓰름한 미소를.. 그 미소에 요환은 미안한 듯 고개를 숙였다.
"너와 성제는.. 여전하구나.. 그때 이후처럼.. "
"............."
"이 형님이 가슴이 아프다.."
"형님 좋아하시네- 그러면 대체 넌 윤열이 어쨌냐..?"
"...어어?? "
"아까부터 묻고싶었는데 왜 윤열이 내버려 두고선 나랑 같이 가자 그랬냐고..!
"미안하지만 노코멘트입니다.. 그리고 선후배로 치면 그쪽도 만만치 않았는데요 임요환 소령님-!"
조급은 복잡한 표정의 두 사람. 요환의 짐가방에 둘다 걸터앉아서 한참동안이나 말이없다.
[너와 성제는.. 여전하구나.. 그때 이후처럼.. ]
[육사 SF의 최고의 선후배가 아니었던가... 홍진호소령님-?]
"푸훗.."
"크크크..."
순간 동시에 터져나온 두 사람의 웃음..
"푸하핫..야야..임요환.. 나랑 윤열이가 최고 선후배라고..?"
"...실언이야 실언.. 그러는 너도 나랑 성제가 뭐가 어째....?"
"나도 실언이였어.. 우리가 아무리 윤열이랑 성제와 친하다 해도..."
"그렇지.. 강민과 서지훈만 하겠냐고.."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맨션 앞 공터를 울렸다.
짐가방을 챙겨들며 숙소로 향하는 요환의 시선이 연병장 너머의 회색 건물에 고정되었다.
'성제야.....'
조그맣게 나직히 이름을 불러보지만 바람결의 요환의 목소리는 곧 흩어지고 말았다.
-선배 오해예요!!
=넌...넌..대체...넌 대체 누구야!!!
-선배.. 제 말 좀 들어봐요.. 난 정말 아무것도 몰라요..
=...너가...너가 그런거야..
-절.. 못믿으시는건가요......?
=너가.. 너가 다 그런거야..
-선배....
=너가 다 죽인거야....
-..........
=너가 다 죽인거라고 김성제!!!!!!!!!!!!
"............"
"김대위님!"
"........."
"김성제 대위님!!"
"어...어???"
도면이 잔뜩 그려진 테이블에 멍하게 앉아있는 성제를 부른 것은
"무슨..일이지..?"
"작업 전에 김대위님께서 저에게 2시가 되면 알려달라고 하셨잖습니까..."
"...2...시..?"
"에이..김대위님도, 오늘 SF동기와 선배들이 2시에 도착한다고 어제 그렇게 말씀하셔놓고선..."
"아...그렇지..."
그제서야 생각이 난 듯 시계를 한번 바라보는 성제.
진녹색의 EOD작업복은 성제에겐 큰지 조금은 헐렁헐렁 해보였고...
작업에 지친걸까 조금은 힘이 없어보이는 모습은 안그래도 가녀린 성제의 이미지를 더욱 부각시켜주고 있었다.
"정말 대위님은 군인과는 어울리지 않는 얼굴 이라니....흐읍!!!!!"
"......."
성제의 모습에 무심코 입밖으로 나온 말에 소위 자신도 놀라 황급히 손으로 입을 막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고개를 돌려 정소위를 가만히 쳐다보는 성제의 눈매에선
아까까지의 여리고 부드러웠던 분위기는 사라지고
순간 형용할수 없는 냉기가 흘러나왔다.
아니 그것은 냉기보다는 살기에 가까웠을지 모른다.
"시..시정하겠습니다!"
"이 나이에 당신보다 윗자리에 있어서 기분이라도 나쁜건가...?"
"그렇지 않습니다 대위님!"
당황해하는 정소위의 목소리가 떨려오자 성제는 그 모습에 피식- 한번 미소를짓더니 아무런 감정도 섞이지 않은 무미건조한 말투로 말을 이어나갔다.
"조금 있다가 새로운 ADAM(Area Denial Artillery Munition -대인용지뢰탄)을 시험해볼 생각이야.. 정소위가 시범지대 가운데 서서 피해지수 실험체가 되어준다면... 그 공적으로 충분히 내 자리까지 올라갈수 있을텐데..."
"..대..대위님!.."
"...싫은가 보네.. 명령이라도...?"
"......"
"윗 명령에 불복종하는 당신이야 말로 군인과는 어울리지 않는군..
"예..?"
"군인이란 말이지.. 어떤일이 있더라도 위의 명령에 복종해야해..
그것이 아무리..
얼굴이 하얗게 질린 정소위를 뒤로하고 자리에서 일어서 작업실 문을 열고 나가는 성제..
연병장 너머로 보이는 하얀 건물에 한없이 살기를 내뿜던 성제의 눈가에는 물기가 맺혀갔다.
"요환선배..."
세찬 바람..
성제의 목소리는 바람결에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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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diers(군인들).. #3. 지훈의 조건.
"서지훈..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너가 잘 못한거야.."
"......."
"이건 너와 내가 함께 사는 곳이야..양보란게 필요하지 않을까....?"
"내가..왜?"
"야!!! 이건 상식적으로도 납득이 안돼!!!!!"
"내 상식으론 이해 돼 강민-"
팔짱을 턱하니 끼고선 그 까만 눈동자를 깜빡깜빡하며 민을 쳐다보는 지훈..
민은 답답해 미어터지는 가슴을 퍽퍽 두드리다 냉장고를 가르키고선 버럭-소리르 질렀다.
"그게 뭐가 어때서.."
"내가 먹을꺼랑 너랑 내가 함께 쓸 것들 다 못넣잖아!"
".....굶어-.."
"야!!!!"
지훈은 전입신고를 끝내고 숙소배정을 받고 난 뒤부터 민에게 계속 저런식이였다.
숙소배정표엔 'A동 101호 강민-서지훈' 이라고 아주 분명히 써져있었고 그로 인해 지훈의 심기는 조금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거기서 끝났으면 좋으련만 아무것도 모르는 민이 배정표를 보고선
"너랑 나랑도 정말 질기고 질긴 인연이다. 육사 내내 같은 방 썼는데 이번에도 룸메이트네-!"
라고 말하며 '안되겠어.. 우리 그만 하자.. 니가 아무리 날 좋아하는걸 알겠지만....' ..라는 실언을 내뱉고 만 것이다.
순간 지훈의 눈에서 무언가 '번쩍-'함을 느낀 민은 셀티의 저격이 두려워 눈을 질끈 감았지만 지훈은 무덤덤하게 민의 아우디에서 자신이 가져온 아이스박스 4통을 아무말 없이 가져왔을 뿐이었다.
......그리고 시덥지도 않은 시비가 시작되었다.(...)
빨리 치우지 못하겠냐며, 날씨가 더워서 빨리 상한다고
지훈을 따라다니며 소리를 질러대는 민의 모습에
조금씩 짜증이 나기 시작한 지훈은 뒤돌아 서서
'내말이 말같지 않아!!!! 난 니 선배라고!' 외치고 있는 민의 얼굴에
셀티의 총구를 겨냥하였다.
보이지 않을만큼 재빠르고 정확한 동작-..
"어이...서..서지훈.."
"....시끄러워..시끄러워..시끄러워..."
"왜...자..장난을 치고 그래..총 내려놔.."
"....내가 셀티 꺼내는거..절대 장난이 아니라는거 알고있지...?"
"..야..야아..."
씨익-하고 예의 그 미소를 한번 지으며 서서히 다가오는 지훈의 모습에
하지만 곧,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열려있는 냉장고 본체가 민의 뒷걸음질을 막아버리고 말았다.
냉장고에 등을 붙이고 당황해하고 있는 민의 얼굴을 겨냥하던 셀티의 총구가 목선에 닿았다.
"히-익-!"
순간 피부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금속체에 민은 온몸에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목선을 타고선 명치까지 훓고 내려가는 셀티의 총구..
그 묘한 촉감과 느낌에 민의 얼굴이 서서히 붉어지고 있었다.
총구가 명치에 다다르자 지훈은 총을 쥔 손에 한번 힘을 주더니
"이봐..강민.."
"..으응....?"
"...다 시끄러우니까 닥치고 하나만 해.."
"...뭐...뭘...?"
"나랑 같이 지내고 싶으면 내 행동, 내 말에 토달지마.."
"그건 그렇지만.."
"너랑 나와 지낼때의 기준은 .. 나 서지훈이다.."
그제서야 총을 제복 안에 집어넣는 지훈..
지훈이 이미 저만치 걸어감에도 불구하고 민은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 자리에 멍하게 서서 지훈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민..
'저..저자식...저런 얼굴 위험하다고...젠장..'
"야! 서지훈!!"
"..닥치라고 했다.. 이마에 바람구멍 만들어줄까..?"
"니 말 알아들었으니까.. 그럼 내 부탁도 들어줘."
"..뭔데?"
"...너 딴놈한텐.. 이런 짓 하면 안돼!!!!"
시뻘개진 얼굴로 소리를 빽-지르는 민의 모습에 지훈은
"야.. 강민.."
"....?"
"내 목에 있는 점, 몇 개 인지 아는 사람 너뿐이야.."
"..쿨럭...크흠..흠흠.."
'자식..돌려 말하기는...'
지훈의 애매한 대답을 이해한 듯 민의 얼굴엔 흐뭇한 미소가 한가득..
"야 서지훈- 어디가? 좀 있으면 애들 온다고-"
"사격장.."
"딸기 우유 하나 먹어도 ㄷㅗㅐ....?!!!!!"
'탕-!'
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민의 얼굴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 벽 한구석에 박혀버린 탄환..
연기가 피어오르는 셀티의 총구를 한번 어루어 만진 지훈이 다시 제복 안으로 셀티를 집어넣으며 말했다.
".....46개다.. 세어놨다."
"요환아.. 나랑 있을땐.. 기준은 나 강민이다."(....)
"미쳤냐? 헛소리 남발하는거 보면 제정신은 아닌가보다."
"이게 진짜.. 여튼 따라와.."
"진호랑 지훈이는..."
"걔네들에겐 아쉽게도 지금 볼일이 없구나-"
"아 맞다..그리고 너 아까 A동에서 총소리가..난 거 같...."
진호와 함께 숙소 짐정리를 끝내고 미팅 시간까지 좀 자볼까나-..하는 순간 민이 난데없이 나타나 요환을 끌고 나온 것이다.
민이 걸음을 멈춘곳은 연병장 한쪽 구석의 나무 그늘..
한숨 겨우 돌린 요환이 민에게 이유가 뭐냐고 꼬치꼬치 캐 묻자
"요환아.. 부탁 하나만 하자.."
"왜..명령이라도 하시지? 강소령님!"
"장난 아니야.."
"뭔데...?"
말하길 망설이는 듯 한 민과
답답하다 못해 이젠 화가 나려는 요환..
그 모습에 민은 어쩔수 없다는 자포자기한 표정으로 이야기 했다.
"이제부터.. 누굴 만나던 화내거나 자리 뜨지 않기다.."
"아 그니까 누가 오는데.."
"대답 부터 해.. "
"야, 강..민.. 너 설마.."
"민이형.. 기다렸어요? 조금 늦었죠..?"
조금은 낯설어 버린..
새까만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웃으면 누구보다 예쁜 얼굴이였다.
하지만 점점 보게 되었던 것은 그의 굳어버린 표정이었다.
"....성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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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diers(군인들).. #4. 미소의 의미
'탕-!'
사격장 내에서 5번째의 총성이 울렸다.
표적지의 구멍은 단 하나뿐... 모두 정 가운데였다.
숨을 한번 내어 쉬고선
다시 한번 표적지를 신중하게 바라보는 지훈의 눈은 더없이 침착하였다.
아니ㅡ 어쩌면 아무것도 담고 있지 않았다고 하는게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탕-탕-탕-!'
세발이 연속으로 나가자 어깨에 힘이 들어갔는지 지훈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오랜만의 연속사격이어서일까.. 7번째 총성까지는 표적지의 구멍이 하나였으나, 마지막 8번째 총성이 울리고 나자 바로 옆에 또 하나의 구멍이 생겼다.
'젠장..'
"아..아쉽네- 웬일로 표적지에 구멍이 두 개가 나버린거야?"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 그 목소리에 지훈은 뒤도 돌아보지 않으며 셀티에 실탄을 다시 장전 시켰다.
"야, 서지훈.. 오랜만인데 인사도 안해주는거야..?"
"응..하긴 아버지에게 이번 임무 설득시키는게 힘들었긴 했어..
"하긴, 국회의원 이윤재의 아드님께서 로체스터 섬 탈환작전에 참가하신다니
"니가 아무리 비꼬아 말해도 충분히 반가워 하는거 알아.."
"......"
씨익-하고 귀엽게 웃으며 지훈에게 다가온 윤열이
탄환은 지훈이 아까 만들어놓은 두 번째 표적에 정황히 저격되었다.
"아...아깝다. 역시 지훈이처럼 정 가운데는 잘 안되네.."
"일부러 거기 맞춘거겠지.."
"글쎄다..."
"아버지 어떻게 설득시킨거야? "
"두달 단식했어.. 둘째아들 죽어간다고 어머니께서 난리를 피워주신 덕에 허락이 바로 떨어졌지.."
"두달 단식.. 너 바보냐?"
"너 알잖아, 우리 아버지 성격 어떤지.. 웬만한 방법으론 안통하거든.."
"......"
아무 표정 없이 윤열을 바라보는 지훈과는 달리
그 미소의 의미를 지훈이 모를 리가 없었다.
"이윤열.."
"왜에?"
"내가 우리 SF멤버들 중에서 가장 싫은 사람이 누군지 알아..?"
"흐음..누굴까?"
"강민...... 그리고 너야.."
"........"
"둘다 날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지훈의 대답에 윤열은 그 말에 시인이라도 하듯 고개를 두어번 끄덕였다.
모든걸 알고 있으면서도,
휘둘리지 않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바라보는 윤열..
"지훈아.. 있잖아 날 너무 미워하지 마라.."
"........"
"그 일은 내가 만든게 아니라 우리 아버지가 그런거잖아?
"......."
"그럼 나는 나갈께. 모임시간까지 늦지마-!"
윤열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사격장을 울리는 한발의 총성..
"이윤열.."
"응?"
"난 널 미워한적도 없고..
"...그래..?"
"날 이렇게까지 만들어 주신 분이 바로 너희 아버지니까..."
'탁..탁..'
요환 역시 음료수를 사고 있는 민의 뒷모습을 원망스럽게 쳐다보며
"어이- 많이 기다렸냐? 잔돈이 없다길래 시간이 좀 걸렸지 뭐야..
"고마워, 민이형.."
"........"
생긋 웃으며 캔을 받아드는 성제와 달리 요환은 아무말이 없었다.
그런 요환의 모습에 민은 예상이나 해었다는 듯 요환의 어깨를 툭-치며 옆자리에 앉았다.
"성제는..잘 지냈어..? 너가 연락이 제일 안됐어.."
"..아, 여기서 너무 바빴거든.."
"EOD가 일이 많나봐...?"
"아무래도 전시상황이니까..새로 만들어지는 폭발물들이 한두가지가 아니거든..
"그렇구나.. 살이 많이 빠진 것 같다.. "
"그래..? 모두들 다 잘 지내지..? "
"나와 진호는 따로 공부 좀 했었고.. 윤열이는 단식했다고 하더라. 아버지 설득시키느라고...
"......요환...선배는...? "
조금 떨리는 성제의 말에 요환이 한번 흠칫 했다. 아무 대답 없이 바닥만 바라보고 있는 요환에게 민이 팔꿈치로 옆구리를 툭툭 쳤다.
"...상해에 갔다.."
"...!!!"
"형 성묘하러..."
요환의 말이 끝나자 성제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더니 입술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꼭 그렇게 말해야겠냐'라며 작은 목소리로 요환을 나무라는 민에게 요환은 '사실대로 말한 것 뿐이야-'라고 묵묵히 대꾸할 뿐이었다.
또다시 아무말 없이 어색해진 분위기... 짐짓 심각하게 까지 느껴지는 공기에 민은 애써 큰 목소리로 밝게 이야기 했다.
"우...우리 밖에 나가자!! 성제야.. 모임시간까지 뭐 할꺼 없냐?"
"아..좀 있으면 ADAM(Area Denial Artillery Munition -대인용지뢰탄) 피해지수 시험해볼껀데..."
"그거 보러 가도 돼?"
"응.. 담당책임자가 나라서.."
"그럼 가자.. 뭐해 요환아.. 너도 가자."
"난 안가-.."
"임요환.. 너 왜그래.."
"미..민이형.. 요환 선배 싫다고 하잖아.. "
이젠 한계라는 듯 요환에게 화를 내는 민을 보고 성제가 팔을 잡아당기며 말렸다.
자신을 생각하여 요환을 불러준 민에게 미안했고..
또 요환을 아직까지 똑바로 바라 볼 자신도 없었기 때문이다..
"...어짜피 강민 너가 나 억지로 끌고온거잖아!!"
"야..임요환!!!!!!!"
"성제 너도 그래.. 사람 죽이는 폭탄 실험하는게 구경거리냐..?
"서..선배.. 전...그냥.."
"그렇게 재밌니...?
우리 형 죽였을때도 그렇게 재밌었어? 그랬냐고!!"
요환의 절규에 가까운 외침에 성제는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이젠 눈물도 흐르지 않는다.
항상 따뜻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그 사람의 눈빛은..
이미 경멸로 변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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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diers(군인들).. #5.회피의 이유
오후 4시.
324부대 남쪽 끝에 위치해있는 건물 2층의 회의실..
길다란 직사각형의 테이블에 진호와 요환, 윤열과 성제가 나란히 마주앉아 있는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요환과 성제는 아까 전의 일로 서로 고개를 숙인 채 아무말이 없었고
잠시 뒤, '달칵-'하는 문소리와 함께 지훈과 민이 들어오자
진호는 '살았다-'는 표정으로 민과 지훈을 아주 애정이 듬뿍 담긴 눈으로 바라보았고
윤열은 아까 전의 미소는 어디로 갔는지 어느새 미간에 주름이 두어개 잡혔다.
뭔가 어색하고 심상치 않은 공기의 흐름에 지훈이 날카롭게 지적하자
4명 모두 흠칫 할뿐 아무 대답이 없다.
"지금 왜이러냐고 묻고 있잖아... "
또 다시 이어지는 침묵..
"진호형.. 분위기 왜이래..."
"아하하.뭐..뭐해? 빨리 회의 안해?"
"그..그래!! 진호말이 맞다.. 시간도 없는데 빨리 하자.."
간절하기 까지한 진호의 눈빛을 모른척 할수 없었던 민이 진호를 거들자
지훈이 민을 한번 쓰윽-노려보더니 회의실 테이블을 쾅-하고 내려쳤다.
"강민 소령, 임요환 소령, 홍진호소령, 김성제 대위, 이윤열 대위..!"
"예..옛!!"
"잘들어.. 나 지금 장난하러 온거 아냐.. 우린 며칠뒤에 훈련끝나고 전쟁에 투입돼. 알아들어? 우리 죽으러 간다고!..그런데 지금 이 분위기 뭐야..지금 소풍가..? 다들 제정신이냐고..!!!!!!!!!"
순간 조용해진 회의실 안..
지훈의 말은 틀린것이 없었다.
며칠 뒤면 목숨을 내놓는 전투에 참여한다. 살아올수 있다는 기약은 그 누구도 할 수 없다.
그것을 알면서도 모두들 각자들의 사정으로 느슨해져있었다.
"임소령,김대위.. 명심해.. 둘의 개인적인 이유들.. 가볍지 않다는거 알아.. 하지만 지금은 전시상황이야.. 공과 사는 구분해..."
"서중령님.. 하지만 그 문제는 제 실책..."
"김대위,..명령이다.."
"....시정하겠습니다!"
가차없이 성제의 말을 잘라버리는 지훈의 말..
저 사람이 서지훈이다..
자신의 기준에서 맞지 않는 것은 아무 감정 없이 내쳐버리고
앞만 보고 똑바로 가는 사람.
서지훈은...그런 사람이였다.
숨소리조차 제대로 들리지 않을 듯 침묵만이 가득한 회의실 분위기에
"...동기나 후배이면서 위에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거..
지훈이 말을 마치고 자리에 앉자 민이 커다란 서류 화일을 꺼내어 지훈의 앞에 내어놓았고 진호는 슬라이드를 내려 영사기를 틀었다.
요환이 회의실 불을 끄자 흰 슬라이드에는 로체스터 섬의 지도가 영사되었다.
민이 가져다 준 서류 파일을 대강 넘겨본 지훈이
"여기가 임무중의 가장 주요지대인 로체스터섬의 수풀지대이다. 이곳만 탈환한다면 이미 승기는 우리쪽이 잡은거나 다름없지. 하지만 이 수풀지대를 이용한 테러군의 게릴라 전투에 우리 군은 아무런 대응도 못하고있어.
"하지만 전면전은 테러군이 바라는데로 시나리오가 흘러갈텐데.."
"이대위 말대로야.. 이 방법으로는 우리 모두 죽고 말아..
"그럼..생각해둔 방법이라도..."
윤열이 고개를 한번 갸웃-하며 질문하자 지훈은 성제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번 작전은 김대위의 도움이 전적으로 필요해.."
"저..요..?"
"....김대위의 실력이라면..충분히 가능하다.
"평소라고 한다면...."
성제가 지훈의 말에 말끝을 흐리며 요환을 한번 쳐다보았다.
아무말 없이 지훈만 가만히 쳐다보는 요환..
그 모습에 성제는 또다시 고개를 숙였다.
"김대위!!"
"예.옛!!!"
"과거는 과거다. 너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오명은 언제든지 씻을 수 있어.
성제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조용하게..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힘이 들어간 지훈의 말에
성제의 입가에는
아주 오랜만의 그 예쁜 미소가 가득 피어났다.
1시간 반동안 지속된 회의에 지친 듯
"피곤했지..? 지훈인 언제나 스파르타 식이니까.."
"난 니가 제일 피곤해 보여 홍진호.."
"왜..?"
"윤열이랑 눈마주칠 때 마다 너 식은땀 장난 아니던데.."
"......"
복잡해진 표정의 진호를 보고 장난기가 생긴 요환은
벌떡 일어나 진호의 배에 퍽-주저앉았다.
"커..커헉!!!!!이..임요환!!내려와..숨..막혀.."
"당장 불어.. 윤열이랑 무슨 일이야!"
"커헉..내려오라니까!! 그..그래야 말을 하지..쿨럭.."
"흐음......그럼 힘빼줄테니까 조금 힘들어도 말해봐.."
"야!!!!"
"너 도망갈꺼 뻔히 아니까 그러는거다.. 내가 한두번 속냐.."
조금은 새침한듯한 요환의 말에 진호는 포기한 듯
하지만 그 미소는 절대 평소와 같은 반가운 미소가 아니다.
"음..그러니까.. 내가 얼마전에..선을 봤거든..?"
"선..그래 선을 봤구나... 뭐????!!!선을 봤다고?!!!!"
"..엄마가 너무 좋은 자리라면서 꼭 가봐라지 뭐야.. "
"윤열이 화날만 하네.."
"아니...그게..문제는... 그여자가 너무 맘에 드는거야..."
"왜.. 예쁘던?"
"웃는게 윤열이랑 똑같았어..."
"............"
순식간에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요환..
'그럼 그렇지.. 홍진호 눈에는 뭐만 보이는거지..' 라고 중얼중얼 거리자 진호는 주먹으로 요환의 배를 한번 가격했다.
"아! 아프다 홍진호!!"
"그러니까 누가 그렇게 쓸떼없는 소리 하래..?"
"...육사 출신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가지고 새삼스럽게... 아 그래서..어떻게 됐는데?"
"그렇게 있다가 집에 데려다 주려고 하는데 동생이 데리러 온다고 했다는거야..
"응..그런데..? 그 동생도 웃는게 윤열이랑 똑같던..?"
"아니.."
"그러면..?"
"그 동생이 윤열이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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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diers(군인들).. #6.서지훈이니까-
회의를 끝내고 숙소로 돌아온 민은
답답했던 제복을 벗어버리고선 간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TV앞에 앉아서 이리저리 채널을 돌렸다.
오늘 연합군 사망자가 58명이다.
사람들이 무의미하게 죽어가고 있다.
우스개 소리로 인구증가로 인한 식량부족의 문제는 사라졌다는 이야기도 항간에 나돌 정도이다.
오늘 베네수엘라 지역에서 테러군이 연합군들의 시체를 광장 한군데에 모아
며칠 뒤 자신도 저 시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민의 머릿속에 들어온다.
죽는 것은 두렵다.
하지만....
'포로가 될 바엔 차라리 저 꼴이 되는게 나아..
"강민- 안씻어..?"
"이것만 보고.."
샤워를 방금 마친 지훈이 멍-하게 TV만 바라보고 있는 민 옆에 털썩-앉았다.
지훈에게서 느껴지는 상쾌한 스킨향..
"재미없는거 보고 있다."
"하는게 이것밖에 없는걸 어쩌냐.."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젖은 머리카락 위에 수건을 아무렇게나 올려놓고선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며 투덜거리는 지훈의 모습에 민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머리 잘 말리고 나와야지.."
"귀찮아..어짜피 좀있다 마를껀데.."
"감기걸려..."
민이 지훈의 머리위에 있던 수건을 들고선 머리위의 물기를 닦아주자 지훈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민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노친네.."
"이게 걱정해주니까!!"
"흐음... 강민이 내 걱정을 왜 해?"
"선배가 후배 걱정하는건 당연한거야.."
"아.. 맞다.. 강민이 선배였었지.."
"...야..!!!"
민이 노려보는걸 아는지 모르는지 지훈은 뉴스를 보며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 꽤 많이 죽었네.. 테러군 잘한다.."
"남의 일인 것처럼 말하지마.. 우리도 곧 전투에 투입되잖아.."
"그래서..걱정돼...?"
"으응...?"
"걱정되냐고 묻고 있잖아.."
"걱정이 안될 수는 없지.."
민의 머리카락의 물길을 털어주던 민의 손길이 멈추고 조금은 침울한 목소리로 대답하자 지훈은 몸을 돌려서 그 까아만 눈동자로 민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뭐..뭐야 서지훈!"
"지금 누구 밑에 있는데 걱정이 된다는거야..?"
"하하..야..."
"지금..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조금은 새초롬해 보이는 지훈의 모습에 민은 다시 한번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누구긴 누구야.. 서지훈 중령님이시지.."
"그러니까 걱정은 집어치우고 차 키나 빌려줘.."
"차...? 차는 왜..?"
"내일 두 명을 스카웃 하러 공군 기지에 가야하니까.."
늦은 시각 군용아파트 B동 201호의 벨이 울려왔다.
"에씨-누구야?"
"진호야.니가 나가봐.."
막 자리에 누우려던 진호는 짜증이 가득한 표정으로 현관으로 나가 문을 열었다.
"누구세.....헉!!!"
"안녕하세요.. 홍 진 호 소 령 니 임-!!"
진호가 문을 열자 미소속에 살기를 가득 담은 윤열이 싱글싱글 웃으며 현관안으로 들어왔다.
'어버버버...' 하고 있는 진호와 달리 윤열은 신발을 가지런히 현관에 놓아두고선 거실 쇼파에 다소곳히 앉았다.
"진호야..누가 왔는.......커헉.."
"요..요환아.. 나 지금 위험한 상황 맞지....?"
"요환형.-! 늦은 시간에 미안해~!"
"미안하다 친구.. 이건 너와 윤열이의 문제인 것 같으니
"임요환..너 가면 죽는다."
황급히 현관으로 달려나가던 요환의 발걸음이 진호의 중얼거림에 멈추고 거실에는 요환, 진호, 윤열 사이에 알 수 없는 냉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뭔가 분위기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느낀 진호는 요환의 팔을 끌어당겨 윤열의 맞은편 쇼파에 앉아서 애써 싱긋-웃으며 말했다.
"그..그래.. 윤열아.. 이.. 이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이니..?"
"응.. 방금 우리 누나한테 전화가 와서.."
"..쿨럭..."
"지..진호야..."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결코 웃지 않고 있는 윤열의 입에서 '누나'라는 말이 나오자 진호는 물런이고 무슨 연유인지 요환마저도 움찔-하고 말았다.
"누나가 진호형에게 꼬옥-! 전해주라는 말이 있더라고.."
"아하하..뭘까.. 뭘까 요환아.."
"야..그걸 나한테 물으면 어떻게해!"
"진호형.. 누나가 형 맘에 쏙-들었데."
"...아하..그래...? 고..고맙다고 전해드리렴.."
"그리고..로체스터 섬에서 꼭 살아서 돌아오래.."
"그럼..살아와야지..나는 요환이랑 어깨동무하고 당당히 귀국할꺼야.."
"그런데 진호형..."
"으응..?"
순간 목소리가 가라앉은 윤열의 목소리에 진호는 침을 한번 꿀꺽..
"과연... 무사히 살아돌아올 수 있을까나.....?"
윤열의 입가에는 미소가 방긋-..
진호의 이마에선 식은땀만 흐를 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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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diers(군인들).. #7. 도현의 눈물.
0725 공군기지의 훈련장 위로 보이는 하늘은 더없이 맑았다.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한 파란 하늘 위로 AH(Attack Helicopter-공격용 헬기)한대가 창공을 가르며 훈련장 표적지들에 사격연습을 하고있었다.
보통 헬기는 안정감 있는 고공 비행을 하지만, 이 AH는 마치 바람을 타는 전투기처럼 예의 그 비행법을 무시하고선 저공 고공을 가리지 않고 엄청난 속도로 질주중이였다.
훈련장 한 구석에서 입술을 뾰로통 하게 내민 한 남자가 그 모습을 아주 못마땅한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그 작은 얼굴에 포옥 들어가는 캡 모자를 거꾸로 뒤집어 쓰고선 팔짱을 척-낀채 미간에 주름 몇 개를 지으며 하늘 위의 헬기를 열심히 노려보며 중얼거리는 한마디..
"...착륙하기만 해봐.. 죽었어 박정석..."
헬기는 '투투투투-'하는 소리와 함께 엄청난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훈련장 착륙장에 무사히 착륙했다.
모래바람이 조금 가라앉자 헬기의 문이 열리더니 정석이 헤드폰을 벗고선 싱글싱글 미소를 띄운 채 자신을 열심히 노려보는 남자에게 손을 흔들며 내려왔다.
"도현아 도현아..어땠냐? 역시 나의 사격 솜씨는 최고이지 않..........아야!!!!!!!!!"
'퍽-'하는 소리와 함께 정석의 머리를 강타한 것은, 실눈을 뜨고선 여전히 정석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도현의 손에 들린..
'스패너'였다..(...)
"왜때려!! 그 무식하게 생긴걸로 머릴 때리다니..사람 죽일 일 있냐!"
"그래 오늘 너한번 죽어봐라.. 계속 이딴식으로 비행할꺼냐고!!"
"아!!아야!! 아아아아!!그만 때려!! 왜 그런데!"
"엔진과열. 바람저항 무시. 착륙시 속도조절 안함........... 니가 죽을려고 용을 쓰는거지.. 이러니까 니가 타는 헬기마다 고장이 나서 내가 바빠지잖아!"
"헬기 고치라고 있는 정비군이 바빠야지 그럼 한가해야 하냐!"
"이게 한마디도 안져~!"
"야야..솔직히 말 해봐.. 그래도 나 오늘 점수는 꽤 좋았지..?"
어깨로 도현을 툭툭 치며 '칭찬해 주길 바라는 눈빛'을 잔뜩 보내는 정석의 모습에 도현은 한숨을 푸욱 내쉬고선 고개를 두어번 끄덕였다.
도현의 끄덕임에 정석은 입이 귀까지 걸린 듯 환하게 웃으며 도현의 어깨에 손을 척-올렸다.
"어이.. 고소공포증인 친구 대신에 이렇게나 비행을 잘하니.. 참 감동스럽지 않냐.."
".....감동은 무슨 감동이야.."
"공군이 무슨 고소공포증이냐.. 하긴 니가 또 정비하나는 우리기지에서 끝내주게 하지.. 풀었다 조였다 분해했다 맞췄다 하는게 우리 나도현 취미이자 특기잖아.."
"그런데 이제 니 헬기는 고치기 싫어..말도 안들으면서 원하는건 많아요. 이거는 이렇게 해달라 저것은 저렇게 해달라...에휴 저 웬수.."
"에이..그러니까 내가 나도현 좋아하는거잖아.."
"즐즐즐즐~ 씻고서 회의실로 가봐. 누가 너 찾는다고 하더라.. 여튼 인기도 많아요."
"나도현..질투하는거지! 에이..나랑 같이 가자.. 응? 같이 가자~!!!!"
어깨동무를 한 채 '삐졌어? 삐졌어?'를 연발하는 정석의 모습에
도현은 예쁘게 한번 웃을 수밖에..
테이블에 걸터앉아있던 지훈은 자리에서 내려와 문쪽을 향했다.
제복을 입고선 뚜벅뚜벅 걸어오는 두 남자.. 육군의 제복과는 다른 흰색의 제복이지만 차이나카라라는 것은 모든 군대의 공통이였다.
정석이 테이블 앞에 서있는 지훈을 바라보는 눈빛은 그 누가 봐도
'웬 어린애가 여기있나..'였다.
정석의 어이없다는 표정에 지훈의 이마에는 힘줄이 하나 섰다.
"그쪽이 박정석 준위..그리고 그 뒤가 나도현 준위인가..?"
"그러는 너는 누구냐.."
"324부대에서 온 서지훈 중령이다..."
"아..그래..중령...중령.. .헉!"
팔짱을 끼고선 정석에게 "중령"이라고 말하는 지훈의 모습에 정석과 도현은 순간 머리가 멍해옴을 느꼈다.
아무리 봐도 얼굴은 19살 아니면 20살이다..
'제복차림으로 봐서는 갓 들어온 군인인데'라는 표정의 정석과 도현에게 턱-하니 군 신분증을 꺼내는 지훈..
거기엔 분명히 '중령 서지훈'이라고 적혀있었고 사진은 앞에있는 본인과 일치하였다.
"추..충성 죄송합니다! 0725공군 기지 헬기장 준위 박 정 석입니다."
"충성! 0725 공군 기지 정비군 준위 나 도 현입니다."
정석과 도현이 자세를 바로 잡고 거수 경례를 하자 지훈도 가볍게 경례하고선 의자에 앉았다.
'야 어떻게..넌 이제 죽었다 박정석.' '몰라 말시키지마~' 라고 속삭이는 정석과 도현에게 A4용지 크기만한 흰색 서류봉투를 건내는 지훈..
"이게 대체...무엇인지.."
"스카웃 하러 왔어."
"예?"
"박정석준위를 우리 324부대에서 스카웃 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저를 왜 육군에서 스카웃 하려고 하는겁니까?"
"봉투 열어봐.."
흰색 종이 위에 깔끔하게 프린트 된 로체스터 섬의 지도.
지도를 본 도현은 순간 얼굴이 굳어지며 주먹을 꽉 쥐었으며 정석도 심각한 얼굴로 지도를 내려놓았다.
"지도를 봤으니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해도 알꺼라 믿어. 우리 324부대에서는 나를 중심으로 특수부대를 결성하여 훈련을 마친 뒤 로체스터 섬으로 출격한다. 그러기 위해선 AH(공격용 헬기)와 CH(Cargo Helicopter 수송헬기)를 합친 UH(Utility Helicopter 다목적용 헬기)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지."
"그 사람이라는 것은.."
"실적을 봤어. 저공비행을 그정도로 한다는 것은 전투시에 굉장히 유리해질수 있어. 빠르고 정확한 것이 가장 최우선이니까. 사격점수도 기지 내에서 높은 편이니.. 이정도면 우리 군들을 맡겨도 괜찮을 것 같군.."
"전 아직 대답을 내리지 않았습니...."
"안돼요!!!!"
정석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외치는 도현..
아까부터 굳어졌던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었으며 속눈썹 마져도 조금씩 떨려왔다.
"안돼요. 정석이 데려가면 안돼요.."
"도현아.."
"더이상 나한테서 정석이 마저 데려가지 마세요."
"도현아 왜그래.."
"정석이 마저 데려가면.. 정석이 마저 그렇게 되버린다면 전 이제 주위에 아무도 없어요.."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에 맺혀오는 물기..
지훈은 도현을 한번 가만히 바라보더니 무언가 생각난 듯 물었다.
"나도현 준위라고 했지...? 당신 아버지 나재현대위가 분명......."
"그만!!!!!!!"
지훈의 말을 가로막는 정석..
아버지 이야기가 나오면서 도현이 양손으로 귀를 막고선 부들부들 떨고있자
정석이 도현의 어깨를 한팔로 가만히 끌어안으며 지훈의 말을 저지했다.
"..가겠습니다. 그 임무 제가 하겠습니다."
"정석아!!!"
"이런 날 올꺼라는거 나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어.. 도현이 너도 이제 그 악몽에서 깨어나야지...."
정석이 커다란 손으로 도현의 어깨를 토닥여주자 도현은 정석을 한번 물끄러미 바라본 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협상은..체결인가..?"
"예.."
"그럼 이 문서에 싸인을 하도록 해."
"아, 저기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
"뭐지..?"
"나도현 준위도 함께 가도록 해주십시오.."
"이유는?"
"전..도현이 옆자리 아니면 잠을 못자거든요..."
조금은 쑥쓰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는 정석의 모습에 지훈은 왼쪽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피식 웃었다.
"문서에는 분명히 나도현 준위도 임무에 동참하게끔 되어있어.. 기계쪽에 꽤나 특출나다고 들었는데.."
"..그냥 좋아하는 것 뿐입니다.."
동그랗게 떠지는 도현의 눈..
지훈의 머릿속에는 성제의 모습이 한번 쓱-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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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diers(군인들).. #8. 죽여야만 했다.
324부대 A동 102호에 가져온 짐을 열심히 정리하고 있는 정석과는 달리
도현은 거실 벽에 기대어 생각에 빠져있었다.
지훈은, 도현과 정석에게 324부대 간부들을 모두 소개해줬음에도 불구하고
-그 중에는 성제도 포함되어 있었다- 더 이상 도현에게 폭발물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저 하루빨리 적응한 뒤,
마음의 준비가 되었으면 성제에게 찾아가 보라고 명했을 뿐이였다.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이 짐정리를 다해버린걸 알아챈 정석은
벽에 기대서 정신없이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 도현의 모습에 조금 심통이 난 듯
도현의 애장품인 커다란 토토로 인형을 집어던졌다.
엄청난 크기의 토토로 인형은 그대로 날아가 도현의 얼굴에 퍽-.............
"니가 띵가띵가 노느라 내가 정리 다 해버렸잖아..뭐야? 내가 머슴이야?"
"누가 머슴이래? 누가 혼자 다하랬어??."
"왜그렇게 신경이 날카로운거야..? "
"복잡하잖아..뭔가.."
머리가 아파오는 듯 기대 있던 벽에서 스르르 미끌어져 주저 앉는
도현의 모습이 안쓰러운지,
세워놓은 무릎위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도현의 옆으로 간 정석은
그의 어깨를 한번 힘껏 끌어안았다.
"또 뭐가 그리 걱정이야..여기 사람들도 다 좋잖아..
지훈이,윤열이,성제 모두 우리랑 같은 나이이니 직급이 높아도 말 놓아라..그러고.
진호형도..요환이 형도 민이형도 다 잘해주는데. 뭐가 걱정인데.."
"정석아..."
"응?"
"나 솔직히 무섭다..."
"내가 있는데 뭐가 무서워.."
정석의 장난스런 말에 대답하는 도현의 목소리는
떨리다 못해 물기가 촉촉이 섞여있었다.
"그런게 아니고....
우리 아버지 과거... 또 똑같이 되풀이 될까봐..."
"도현아...그 악몽 없애려고 우리 여기 온거잖아..."
"그래도.. 너마저 데려갈까봐..
그 헬기가 너마저 데려갈까봐.. 나 너무 무서워.."
몸을 잔뜩 움츠린채 부들부들 떠는 도현을 두 팔로 가만히 앉아주는 정석..
정석의 가슴과 맞닿은 도현의 등에서 '두근두근'하고 들려오는
정석의 심장소리에
도현은 괜시리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도현아."
"응?"
"너한테서 좋은 냄새가 나.."
"나..샤..샤워도 안했는데.."
"나 이제 너가 없으면 잠도 못들어......"
도현의 목덜미에 고개를 묻는 정석의 얼굴에
가만히 손을 대어보는 도현...
손 끝을 타고오는 그 따스함에 위로받고 있는 것은
정작 자신이었다..
밤 공기는 쌀쌀했다.
재규어XJR에 기대있던 요환은 피부를 스치는 차가운 밤바람에
알싸한 담배연기가 그리워졌다.
아니 어쩌면 문득 숙소로 걸려온 자신을 찾는 낯익은 목소리에
조금은 그리움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선..배..?"
뒤에서 들려오는 조심스런 목소리.
밤공기를 타고오는 불가리 BLUE향에 요환은 숨이 멎는다.
가로등에 가까워질수록 뚜렷하게 나타나는 성제의 얼굴..
차라리..눈을 감아 버리고 싶다.
"이 시간에 불러서 미안해요.."
"무슨 일이지..?"
그를 느끼지 않으려고 함에
입에서는 차갑기 그지없는 대답만 나올 뿐..
"이번..임무 때문인데.."
"이번 임무는 너의 문제이지 나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걸로 아는데.."
"... 뭔가 오해가 풀리지 않는다면 전 이번 임무를 해낼 수 없어요.."
"오해를 푼다고 해도 우리 형과 그 많은 사람이 살아돌아오진 않아.."
"선배!!!!!!!!"
대답을 마치고선 뒤돌아서는 요환의 팔목을 잡는 성제..
뿌리쳐야한다.
미워해야한다.
그는 살인자이다.
형뿐만 아니라 수없이 많은 사람을 죽인 살인자이다.
하지만..
그 손길이 요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선배.. 이것만 알아줘요.."
"...뭐야.."
"나 선배 용서 받기 바라지 않아요.
그래요 난 살인자예요.. 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죽였어요..
그 중 하나가 선배의 형이라는건 절대 변하지 않는 사실이죠..
하지만....."
"..............."
"내가 그러지 않았으면...
선배가 죽었을꺼예요.."
달빛의 사라짐과 동시에 요환이 어둠에서 똑똑히 볼 수 있었던 것은
하얀 얼굴을 타고 흘러내린 성제의 한줄기 눈물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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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diers(군인들).. #9. 엇갈린 기억 上 (번외)
지금부터 시간은 4년 전 그들의 육사생활로 거슬러 올라간다.
1. 요환의 Memory..
내리쬐는 햇볕, 기나긴 행렬..
이미 몸도 마음도 지쳐버렸지만 요환과 성제의 얼굴은 아직도 들뜬 기운이 가시질 않았다.
중국의 상하이-..
반란군의 주둔지였다가 얼마 전 연합군의 진압으로
지금은 포로들과 난민들이 함께 모여 사는 곳..
육군사관학교에서 1년에 한번 가벼운 전투 경험을 갖게하는 최고 영광을 자리를 성제와 요환이 가지게 된 것은 요환의 형 경환의 공이 컸었다.
다른 사람들은 비오 듯 땀을 흘리고
말 없이 중얼거리며 불평을 내뱉음에도 불구하고 성제와 요환이 계속 싱글거리는 웃음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
경환은 그 모습에 싱긋 웃으며 뒤에서 그들의 어깨를 툭- 쳤다.
"뭐가 그렇게 즐겁냐..요환아-"
"좋을수 밖에..솔직히 우리가 뽑힐꺼라 생각을 못했거든."
"사실 실적만 봤다면 민이랑 지훈이 데려와야 하는데
내가 우리 예쁜 성제 때문에 뒤에서 목소리 좀 크게 냈잖냐.."
"아..정말이예요? 경환형? 내가 이래서 경환형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니까.."
"어어..너 요환이 냅두고 이래도 되는거냐?
아! 이제 거의 다와가네.."
"형, 우리 가게 되는 곳 어떤곳이야?"
"힘들진 않을꺼야..우리가 먼저 도착해서
반란군들 진압했으니까.. 포로들 그냥 상태 봐주고.. 전쟁 난민들 도와주고..그러는거지.. 가벼운 전투가 있긴 하지만.. 그건 정말 가끔이야.."
"근데..형... 너무 말하는게 신나보이는데..? 무슨 일 있었어?"
'입찢어지겠네 그만웃어~'라고 덧붙이는 요환의 말과 같이
경환은 아주 행복해 보이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상해에서의 일을 말하면서도 초점은 저 허공 한가운데에 맞춰저 있었다.
"요환아.."
"응..?"
"형이.. 어떤 여자를 좋아하게 됐거든..? 근데 그 여자도 형을 좋아하는거 같아.."
"와아..경환형..축하해요..누구예요? 연합군 여군...? "
"전쟁 포로 여자 테러군이야............"
요환과 성제에게 속삭이듯 말하는 경환.
요환과 성제는 그 말을 듣자마자 주위를 살필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포로이지만 전시상황인 지금에서 적과의 내통은 군법에 따라 처형...
아련하게 그녀를 생각하는 듯 먼 곳을 바라보는 경환의 눈빛은..
세상 어느때 보다 행복해 보였다.
사랑에 빠진 사람의 눈이 저렇던가..
그 사람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그 사람이 중심이 아니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한 사람을 바보로 만들면서도 미치도록 행복해지는 것이..
사랑에 빠진 사람이던가..
"못 살아.. 뭘 해도 우리 형이라니까...휴우.."
못 살겠다는 듯 하지만 웃음 띤 얼굴로 어깨를 으쓱하는 요환..
'사랑이란 그런건가요.. 아무리 위험한 일이라도
그 사람밖에 보이지 않는......'
상해에서의 하루는 훈련의 반복인 육사와는 달리 조금은 여유롭기까지 했다.
아침에 일어나 가벼운 시찰과 함께 아침 공기를 쐬고..
조금 직급이 높은 군인들은 네트를 구해 임시로 편을 갈라 족구를 하며,
그 사이에 성제와 요환은 난민촌을 돌며 식량지급과 보건사업을 도왔으며..
그 주위 난민촌을 돌며 망을 보면서
무전으로 경환에게 군의 위치를 알려주며 그들의 사랑을 지켜주는것도
어쩌면 요환과 성제에게는 스릴있으면서도 짜릿한 시간의 한부분 이었다.
갑작스런 경제위기로 투항하는 포로군을 받아줄 수 없다는 불안한 소문이 떠돌자
경환이 힘들어 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기우일 것이라며,
투항한 포로들을 나라에서 받아주는건 국제군법에도 써있는 일이라고
요환과 성제는 경환을 위로했다.
그렇게 상해에서의 시간은 하루하루 흘러가고 있었다.
여유와 낭만...그리고 사랑을 포함하여
각가의 사람들에게 1분 1초가 특별한 그런 행복한 시간은 영원할 것만 같았다.
한밤중의 긴급소집.
난민촌옆에 있던 포로수용소 쪽에서 엄청난 대규모 폭발음이 일어나자
시찰병은 시찰에 나섰고, 곧 보고 결과가 들어오자
각 간부급 군인들은 임시 수용소 회의실에서 긴급회의를 가졌다.
요환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경환이 없었다.
그리고.................성제도 없었다.
"무슨 일입니까?"
"그 폭발음은 무었이죠?"
"테러군의 진압입니까?"
"어떤 보고가 들어온 겁니까!"
빗발치게 쏟아지는 질문에 다들 진정하라고 손짓을 하는
부대 책임자 김대령은 방금 들어온 시찰병의 보고문을 읽고선 대답했다.
"일단 폭발음은 난민촌 바로 옆 포로수용소 근처에서 대규모 폭발이 일어나면서 생긴 것이다.
시찰병이 긴급 투입됐지만 포로 수용소 안의 포로들은 전원 사망, 아울러 대규모 폭발로 인한 영향에 옆의 난민촌의 사람들도 대부분 사망하거나, 살아남은 사람들은 중상으로 오늘 밤을 넘기는 것이 고비라고 한다."
"대체 누구 자행한 일입니까!!"
"폭발물의 잔해를 살펴보았지만 우리 연합군이 사용하는 폭발물은 전혀 아니며
테러군이 사용하는 것도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개인 소장의 창작 폭발물인 듯 하며 우리 본부에서는 이런 결론을 내리기로 했다.
하지만 발화의 실패로 그 자리에서 모두 터진 것으로 국방부에 보고서를 제출한다.
더 이상 이 일로 인해 왈가왈부 하는 일이 없도록 하고 우리의 일은 이제 여기까지이므로
내일 모레 이곳을 떠날 채비를 준비하도록 한다.. 회의는 이상이다."
그 빠른 시간안에 벌써 결정지은 듯 빠르게 책을 읽는 듯한 김대령에게
요환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꽉 쥐고선 목구멍 까지 차오르는 그 무언가를 참고 이야기 했다.
순간 조용해진 회의실 안..
대령을 똑바로 응시하는 요환의 눈을 한번 피한 대령은..
한숨을 크게 내쉬더니 입을 열었다.
"내 따로 불러서 이야기 하려고 했는데..
김성제군은 숙소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네..
그리고 자네 형 임경환 대위는..
야간 시찰 중 폭발로 인한 화염으로 사망하였다..."
요환은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드라마에서 보면 '자네 가족 중 누가 죽었다.'라고 말하면 그 자리에서 오열을하며
미친 듯이 울어제끼지만 실제론 그것이 아니다.
뒷통수를 크게 한번 맞은 듯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저 발걸음은 폭파현장으로 자연스럽게 향하고 있다.
형이 죽었다.
분명 경환은 그 여자 테러군과 시찰을 핑계로 함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폭발과 함께 화염속에서 함께 죽어갔을 것이다.
이때까지 나오지 않았던 눈물이 경환을 상상함과 동시에
수도꼭지를 살짝 틀어놓은 듯 가늘게 가늘게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경환이 죽었다.
이곳의 일이 끝나면 입국하게되는 그 여 테러군과 함께
조그만 가정을 꾸리고 싶다고 시원하게 웃음짓던..
행복에 겨워서 보고있는 요환과 성제로 하여금
되려 자신들이 행복해짐을 느끼게 했던
경환이 죽었다.
포로 수용소에는 까만 잔해들만 어지럽게 놓여있을 뿐이다.
이 중에 거둘수도 없는 경환의 재가 섞여 있을 것이다.
가까이 오지 말라는 시찰병의 고함소리에도 불구하고
요환은 주저앉아서 아직도 열기가 남아있는 그 검은재에 얼굴을 가져가 보았다.
"으아아아악!!!!!!!!!!!!!!!"
참지도 않았지만 어디선가 올라오는 북받침에 요환은 결국 오열하고 말았다.
누가 상상이나 했던가.
그 평화로운 시간속에서 이런 일이 있을꺼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던가..
전쟁에서 죽는 사람이야 많고 많지만..
그것이 자기 가족이 될거라고 생각이나 했었던가..
시찰병에 의해 끌려나와 아직도 끅끅-거리며 울음을 참지 못하는
요환의 발에 무엇인가가 걸려왔다.
허리를 굽혀 폭발물의 파편을 유심히 바라보는 요환..
다른 폭발물과 조금은 틀린 특이한 모양의 파편에
요환의 눈이 어느새 커다랗게 떠졌다..
결코 낯설지 않은..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머릿속을 잔뜩 지배해오는 생각들..
[폭발물의 잔해를 살펴보았지만 우리 연합군이 사용하는 폭발물은 전혀 아니며
테러군이 사용하는 것도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개인 소장의 창작 폭발물인 듯 하며 .............]
..개인 소장의 창작 폭발물인 듯 하며..
하늘엔 별도 보이지 않았다.
검은 거울과도 같은 상해의 하늘엔
울음섞인 요환의 절규만이 울려퍼졌다.
..soldiers(군인들).. #10. 엇갈린 기억 下 (번외)
2.성제의 Memory
자신의 숙소 침대에 멍하게 앉아있는 성제의 눈동자 안에는
아무것도 들어와 있지 않았다.
그 까만 눈동자 안에는 '암흑' 그 한가지 만이 들어와있을 뿐이다.
잠을 자고 싶어도 잠을 이룰 수 없다.
'덜컹-'하고 거칠게 문을여고 성제의 방에 들어온 사람은
눈물로 이미 두눈이 충혈된 요환이었다.
"선배........."
죽일 듯 성제를 노려보던 요환이 손에 들고있던 파편을 성제에게로 향해 보여줬다.
"선배.. 오해예요!!!"
"넌...넌..대체...넌 대체 누구야!!!"
"선배.. 제 말 좀 들어봐요.. 난 정말 아무것도 몰라요..
난 그저 시키는대로 했었을 뿐이라구요!"
"...너가...너가 그런거야.."
"절.. 못믿으시는건가요......?"
"너가 다 죽인거야....
"선배...."
".........."
"너가 다 죽인거라고 김성제!!!!!!!!!!!!"
파편이 지나간 성제의 하얀 얼굴에 어느새 빨간 줄이 생기더니..
한방울..한방울 씩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성제는 손을 천천히 들어 자신이 뺨에 난 상처를 만져보았다.
피가 얼굴에 번짐과 동시에 손에 묻어났다.
"아프니..? 왜.. 니 얼굴이 피나는게 그렇게 싫어..?
"모르는 척 시치미 떼지마..."
"모르겠어..? 니가 만든 이 폭탄으로 온몸이 타들어가면서 죽었다고...!!!!"
성제는 무릎을 굽혀 떨어진 파편을 주웠다.
'내 형을 살려내!'라고 울부짖은 요환의 모습에 성제는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포로 수용소 폭발 6시간 전,
성제는 대령의 갑작스런 호출에 요환의 '저녁먹자!'란 이야기도 거절한 채 본부로 뛰어갔다.
본부는 무슨일인지 오늘따라 출입을 통제하는 헌병의 숫자가 많아보였다.
'누가..왔나..?'
평소와 다르게 삼엄한 경비에 성제는 어깨를 살짝 움츠리며
본부의 대령실의 문을 열었다.
방금 전화를 끊은 듯 수화기를 내려놓은 김대령은 한쪽에 놓여진 쇼파에 앉으라고 말하며 자리를 내어 주었다.
앞의 살벌한 분위기와는 달리 뭔가 느껴지는 위화감에 성제는 얼떨떨한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성제의 표정에..
조금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김성제군..당신이 육사 SF에서 폭발물로 좋은 성적을 얻고 있다지..?"
"과찬이십니다.."
"보통 폭발물 연구는 어떤 것을 하는가..?"
"일단 새로운 폭탄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 따라 그 폭탄처리에 대한 연구와
연구하는 폭발물도 있습니다.."
요목조목 또박또박 말하는 성제의 말에 빙긋이 웃는 김대령의 미소 속엔
성제를 불편하게 하는 그 무엇인가가 들어있었다.
"내가 김성제군과 좋은 거래를 하나 했으면 하는데.."
"거..래요..?"
"지금 한국의 사정을 알고 있는가...?"
"떠나온지 꽤 되어서 자세히는 모르지만..
지금 갑작스런 경제파동으로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있다는 것은 알고있습니다.."
"그래.바로 그걸세.."
"예..?"
"현재 한국 정부는 그 경제위기를 넘기느라고 갖은 애를 쓰고있지.
국방비에 예산이 너무많이 들어가기도 했지만 국내사정 어려웠던 것은
전 세계인이 알고 있지 않은가..
어제 정부와 국방부의 비밀회의가 열렸고 아까 전 그 결론이 났지.
"네에..? 하지만 진압군의 선두부대의 국가가
투항포로를 자국민으로 받아주는 것은 국제법에도 정해져 있는 일이고..
만약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국제적인 위신이...."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되는가..? 내가 아까 김성제군과 좋은 거래를 하고 싶다고 말했을텐데.."
성제는 정리되지 않는 머릿속을 하나하나 차근히 풀어가기 시작했다.
대령은 자신에게 폭발물 이야기를 꺼냈다.
자신의 폭발물은 성제의 개인 창작 폭탄이다.
대령은 좋은 거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성제는 순간 머릿속에 지나가는
너무나도 엄청난 생각에 눈을 크게 뜨고선 어찌 할 줄을 몰랐다.
대령은 지금 자신에게 자신의 개인폭탄으로 경제사정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어진
포로들을 몰살시키라고 말하고 있다.
물론 자신의 개인 폭탄이면 들킬 염려가 전혀 없다.
특허를 내지 않았기 때문에 자국의 것도. 그렇다고 테러군의 것도 아니다.
들킬 염려가 없는 한국 국방부는
대충 핑계거리를 만들어서 '그들은 자멸했다.'라고 말한 뒤 돌아오면
뒤는 깨끗해질 것이다.
"..대..대령님!!!!!!!!!! 대체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겁니까!!!"
"아..물론 힘든 일인 것은 나도 아네.. 그래서 거래라고 하지 않았나..?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대체 국방부는 무슨 생각을.. 그것은 대량학살입니다.. 전 못합니다..죄송합니다."
"김성제군!"
말을 마치고 꾸벅 인사한 뒤, 뒤돌아 문을 향해 가는 성제의 발걸음을 잡은 것은
힘이 들어간 대령의 목소리였다.
"성제군. 모든 것을 들은 이상 그냥은 못돌아가지..."
"예..에...?"
"당신의 선배 임요환의 형 임경환의 행동을 조금 조사해봤더니.. 엄청난 짓을 저질렀더군.. 연합군이 테러군의 포로와 그런 관계라니..... 성제군도 군인이라면 알겠지..?
전쟁 시 포로와의 금지된 접촉은 군법으로 처형이라는 것을.."
"대령님...!!!"
"그리고 자네가 특히 따른다는 그 임요환군도 임경환군의 행동을 보고도 묵살한 죄로 같이 처형 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나...............?"
"대체 무엇을 원하시는 거죠.."
"간단해.. 취침시간이 되면 포로 수용소 주변에 자네의 폭탄을 설치.
그리고 폭발시켜주면 돼.. 내가 원하는 규모는 알고 있겠지....?"
성제의 머릿속엔 아까 대령의 말 중에 나왔던.
'요환'이라는 단어와 그 뒤에 나온 '처형'이라는 말이 맴 돌 뿐이었다.
분명히 거절해야한다.
자신이 생각하는 행동은 분명이 국제법에 어긋난 행동이고
대량학살이며 그 제안을 거절하는 것이 정당하다.
하지만..
자신이 고개를 내젓고 문을 나가는 순간
요환은 흰 천으로 눈을 가린채 기둥에 몸을 묶이고선
5대의 권총이 그의 목숨이 끊어질때까지 끊임없이 발포하는..
군법처형에 들어가게 된다.
침을 한번 꿀꺽 삼켰다.
이제 어떻게 해야할지 행동을 정해버린..
자신 스스로가 너무 무섭고 두려웠다.
'나......원래 이렇게 잔인한 인간이었던가..'
성제는 떨리는 목소리로 천천히 입을열었다.
이미 나타난 성제의 표정에 대령은 예상이라도 한 듯 한 껏 더 웃음을 지었다.
".....내 직급같은건 바라지 않아요.. 그 대신 한가지만 약속해줘요..
경환형, 요환형의 목숨은 지키겠다고.. 경환형이..야간 시찰병을 맡고있으니 내가 나간 후 그 명령 철회해줘요..."
"좋아좋아.. 성제군.. 그렇게 무서운 표정 짓지 말도록 해..
다 나라를 위한 일이라고.."
"난 나라를 위해서 하는게 아닙니다..."
"............"
"그 사람을 위해서 하는 거예요..."
사랑이란 그런건가요.. 아무리 위험한 일이라도
성제가 이야기가 끝나자 인사도 잊은 채 방 밖으로 나가자
대령은 콧웃음을 쳤다.
그는 전화 코드선을 뽑아 버렸다.
"너무 인정이 많군 김성제군..
대령실의 열어 놓은 창밖에는 경환이 시찰을 하기위해
군용지프에 시동을 거는 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마지막 폭발물을 묻은 성제의 손에는 까만 흙이 잔뜩 묻어있었다.
더러웠다.
아니, 오히려 더러운 것은 자신이였다.
손에 묻은 흙은 씻을 수 있지만
포로수용소에서 연합군의 임시숙소로 한걸음 한걸음 천천히 걸어간다.
영화 같은 것을 보면 명령으로 정의에 반하는 행동을 한 조연이
그 업보를 이기지 못해 자살하는 씬이 종종 나오곤 했다.
하지만 자신은 폭발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전지대까지 걸어가고 있다.
양심마저도 속이고 있다.
무고한 사람을 죽인 죄는 자신의 죽음으로 갚아야 마땅하겠지만..
계속 그를 옆에 두고 싶고, 계속 그를 보고 싶다는 생각에..
이기적이게도 두 발은 그렇게 한걸음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수용소가 조금은 멀게 느껴졌다.
성제는 심호흡을 한번 했다.
이미 결심을 굳혔지만 스위치가 들린 오른손의 떨림은 멈추지가 않는다.
차마 두 눈 뜨고 볼 수 없기에 수용소 건물을 등지고선 우뚝 섰다.
간간히 불어오던 바람이 멈췄다.
적막...
그 고요함이 두려움이 되었다.
성제 자신이 폭발물이 되어 누군가 건드리려고 한다면 폭발할것만같았다.
'당신 모르죠...? 내가 지금 무슨 행동을 하는지..
당신을 이렇게 사랑해서 돌이킬수 없는 행동까지 하고 있는..
나무를 스치며 나는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
성제는 눈을 감고선 떨리는 오른손을 서서히 올렸다.
그의 엄지 손가락은 이미 스위치를 힘껏 누른 상태였다.
"콰앙-!!!!!!!!!!!!!!!!!!!!!!!!!!!!!!!!!!!!!!!!!!!!!"
"요환..선배.."
이런 일을 저질러 놓고서도..
그의 이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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