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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文明: civilization)과 문화(文化: culture) 키비스(civis:시민)나 키빌리타스(civilitas:도시)에서 유래했다. 인류가 이룩한 물질적, 사회적 발전을 문명이라고 하며, 문화(文化: culture)의 어원은 라틴어 컬투라( cultura)에서 파생한 culture의 본래 뜻은 경작(耕作)이나 재배(栽培)이다. 나중에 교양이나 예술 등의 뜻을 가졌으며, 문화는 인류의 정신적이고 가치적인 소산을 문화이라고 하는데 미개 문화는 있어도 '문화는 선진국과 후진국이라는 것이 없다'라고 말한다. 영국 역사가 토인비는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모든 세계문명을 포괄적으로 다루면서, 문명의 단위를 국가보다는 크고, 세계보다는 작은 중간적인 범위에서 구하였다. 21개 문명을 들었는데 이들 문명 중에서 모체가 된 고대문명을 모문명(母文明)이라 부른다. 6. 아시아 중국 문명 7. 고대 인도 하라파 문명 7개 모문명은 서로 독립적으로 발생했다고 보았다. <고대의 동서 교통로[4대 문명 발생지, 실크로드(비단길), 초원길, 바닷길, 혜초의 여행길]> [1] 이집트(애굽)문명 (BC3000- BC332) 도시국가가있었는데 통일하여 일찍이 왕국이 건설되었고으며 파라오(바로왕)가 다스렸다. 퇴적층 흙이 검은데서 유래)라고 불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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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BC3000- BC332 년 약 2700동안 31왕조가 있었고, 카페의 연대는 두산백과를 참고로 하였으며, 추정 연대는 학자마다 다른데 왕조별로 참고삼아 간략하게 기록한다. 최고 번성 시대로 *피라미드 건설했으며, 카이로에서 12Km 떨어진 기자(기제: Gizeh)지역에 있다. 17 왕조가 51명의 왕이 통치하고 이것을 제2중대 왕국이라고 한다. 혼란의 시대이었다. 13, 14, 17 왕조는 남쪽을 다스리고, 왕권이 쇠퇴하여 힉소스(Hyksos)에게 망했다. 약100년 간 지배를 받았고, 힉소스는 북쪽 애굽과 수리아를 통일한 아시아의 정복자이며, 힉소스는 유대인과 혈연관계라고 하여 우호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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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했고, 19왕조 8명의 왕들은 애굽을 세계적인 제국으로 만들었다. 출애굽한 바로로 주장하는 학자가 있으나 두 가지다 근거가 있다. 했으나 실패하여 받은 상처를 이집트 전역에서 대규모 건설사업을 일으키는 것으로 표출되었다. 채석장, 벽돌공장, 운하, 신전, 성 만드는데 동원하였다. 자기혈통으로만 왕위를 이어가게 하였다. <BC15세기경 벽돌제조 과정의 벽화, 위 그림 중 살갗이 흰 3명은 유대인으로 추정>
되었고, 일시적 회복하였으나 BC330경에 알렉산더에 멸망했다. 에스겔(30:13) 예언대로 다시는 애굽왕이 나오지 못하였다. BC580경 예레미야가 유대인을 데리고 피난 왔고, 이 때부터 유대인은 돌아가지 않고 예수 이후에도 계속 살아 유대인의 중심지역이 되었으나 이들은 히브리어를 몰랐다. 알렉산드리아에서 이들을 위해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할 때 72명이 모였다하여 이 성경을 '70인 역'이라 하며,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구약성경이 '70인 역'이다. 이 일로 예루살렘 교회는 못마땅하게 여겼으나 알렉산드리아 교회는 예루살렘을 '어머니 성'으로 생각하며 사랑하였고, 유대인이 돌아가지 않은 이유가 있다. 알렉산더, 포톨레미왕조, 시저, 아구스도는 유대인에게 특권을 부여하여 알렉산드리아는 유대인, 애굽인, 헬라인이 사는 지역을 3등분하여 살았을 정도로 살기가 좋았다. 마가라고 하였고, 알렉산드리아는 알렉산더가 세운 도시중에 가장 유명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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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16층 높이의 건축물은 20세기에 와서 가능했다고 한다. 왕의 이름을 새겨 넣었고, 진짜 대리석에는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세월이 지나면 자신의 이름이 드려나도록 했으며, 등대꼭대기엔 커다란 이동식 거울을 달아 60km 떨어진 곳에서도 볼 수 있었고, 태양광선을 한곳으로 모아 바다에 있는 배를 불태울 수도 있었다. 지중해 지배권이 이 등대로 인하여 기독교를 믿는 콘스탄티노플이 열세를 면치 못하였다. 들은 칼리프는 파괴의 명령을 내렸으며, 보화의 욕심은 천 년의 등대를 무너뜨린 것이다. 14세기까지 있다가 대지진에 완전 파괴되었으나 현재 복원중이라고 한다.
기하학자 유클리드, 물리학자 아르키메데스, 수학자 헤론 등이 있었던 인류최초 대학 도서관이다, 이들이 강의하면서 연구를 했던 도서관은 문명국가의 자부심을 상징하는 곳으로 이것을 방패삼아 반란군이 도서관으로 피신하자 BC 2세기 프톨레이마이오스 7세는 도서관을 불태웠다. 도서관 확장에 나서자 프톨레이마이오스 왕조는 견제계책으로 전매사업인 파피루스 종이 수출을 전면 중단하여 더 이상 책을 만들지 못하게 하였다. 각 나라는 양과 염소 가죽이 더 질기고 편리한 것을 알아내었고, 양피지 책이 일반화하게 됐으며, 로마의 아우렐리우스 치하의 내전에도 불이 났다. 도서관을 복원하기 위해 이집트 정부의 주도로 유네스코와 선진 각국의 지원했다. 2001년 10월 13층 규모로 복원 개관했으며, 현재는 50만 권이나 800만 권으로 늘릴 예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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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원인 물을 공급하고, 또 경계의 의미를 지닌다. 동네가 많은데 이 동네는 어떤 경계를 이루고 있다고 보면 된다. 발달한 동기가 되었고, 다리는 화합의 의미가 되기도 하는데 첸교가 대표적이다.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의 요단강과 신화의 스틱스 강이 대표이다.
특히 송아지는 이스라엘인들도 섬기게 되어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게 되었다. '레'는 매이고, 동쪽의 신 '세트'는 악어이다. '도드'는 원숭이 이고, 도드의 부인은 헤카이며, 남쪽의 신 '느켑트'는 뱀이다. 나일 강이 성역이며, '바로'도 하나의 신이었고, 여러 신 중 그들은 영원한 삶의 상징인 '스카라브'라는 딱정벌레를 숭배하였는데 이 벌레가 자생번식하는 능력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18왕조, BC 1353-1336 재위)는 종교개혁을 하였다. 관장한다고 믿었으며, 왕들은 중요한 사항은 신들에게 신탁을 청하였다. 종교개혁 하여 태양의 신 아톤을 새로이 유일신으로 숭배하는 의식을 확립하여 많은 신은 사라졌다. 버린 다음 새 수도를 텔 엘 아마르나로 옮기고 '아톤의 지평선'아라는 뜻으로 '아케트 아톤'이라 했다. 넣어 씨앗을 밟게 하여 돼지가 밟은 곳은 새싹이 나게 하는 방식으로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스핑크스는 경이롭고 지대도 주위보다 높은데 이곳까지 배가 돌을 싣고 왔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매장하였다고 하며, 여기에 사용된 돌은 약700만 톤으로 7톤 트럭으로 100만대 분이다. 이 트럭을 한 줄로 세우면 약 6200 km 넘는데 미국의 동서 길이(약 5000 km) 보다 길며, 경부 고속도로 약15배나 되는 길이로 나폴레옹은 이 돌로 파리의 성벽을 쌓는 다면 3m의 높이에 두께는 30cm로 쌓을 수 있다고 계산했고, 그리스역사가 헤로도토스는 40만 명 인부가 20년간 일해야 한다고 계산하였다. BC 3000년경 제4왕조 쿠프카 왕의 무덤이 유명하며, 이집트인은 영혼이 육체로 되돌아와 부할한다고 믿었고, 고대건물은 거의가 천기와 지기에 맞추어 건설했는데 피라미드도 그 중 하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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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삶을 하늘에 연결하기 위하여 건설했고, 3개의 피라미드는 삼태성 모양을 만들었는데 삼태성은 제갈공명이 이 별을 보고 자기 죽을 때를 알았다고 한다고 하는 별이다. 짖기 위하여 떼어 갔기 때문이고, 인간이 만든 구조물 중 가장 정확하고 가장 크다고 한다. 만든 사람은 현대인의 두뇌만큼 위대하다고 한다. 같은 거대한 얼굴이 발견되었다고 하며, 아마도 화성인이 설계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에페소스)의 아데미(아르미테스)신전 5) 페르샤(바사) 할리카르낫소스의 마우솔루스왕 묘 5)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피로스 등대 6) 이스탄불의 성 소피아 사원 7) 이집트의 피라미드 무덤을 만들고, 비밀을 지키기 위하여 동원된 사람은 모두 죽였다. 도굴 당하지 않아 전부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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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의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들 페루 쿠스코의 잉카제국 수도와 석축, 영국의 스톤헨지, 멕시코의 마야 문명 등이다. 더 오래됐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고, 무덤의 주인 카프렌 왕의 모습이라 한다. 자기의 무덤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고, 앞발 사이에 비석이 있는데 내용 중에 꿈에 관한 이야기기가 있다고 하여 요셉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연습 중에 코가 떨어져 나갔다고 한다. 역사가 그대들을 지켜보고 있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스핑크스 상이 '거만하게 보인다'며, 턱수염을 대포로 떨어 드렸고, 후에 이집트를 지배하게 된 영국이 턱수염을 수습하여 대영 박물관에 보관하였다. 기인하며, 로마 콜로세움도 근처에 네로 황제의 거상 '네로 콜로소스'에서 이름이 왔다. 불교국은 더욱 많을 것이고, 미칼란젤로의 '다비드(다윗)'상도 일종의 콜로소스이다. 당겨 나오게 한 후 내장은 들어내고, 종려로 만든 술로 잘 씻은 후에 향가루를 뿌리고 다시 꿰맨다. 작은 집 같은 곳에 넣고, 좀더 큰 곳에 넣기를 세 번 반복하면 작은 방만한 커기가 된다. 이것을 무덤이나 피라미드 속에 넣어 보관하게 되고, 미라를 만들 때에 심장은 넣어두었다고 하는데 심장에 양심이 있다고 생각하였으며, 저승에서 심장으로 심판 받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찾아와 생계에 수단이 되었으나 기독인의 인구는 적지만 경제권을 쥐고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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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행복함
이집트의 역사를 더 알고 갑니다ㅎㅎ
출애굽할 때애굽왕 학소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