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시화인 한란과 더불어 동백나무, 동박새는 서귀포시를 대표하는 나무와 새이다. 그 중에서도 동백나무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로 자생식물이다.
동백꽃은 가을에서 봄까지 비교적 긴 기간 동안 피고 지기를 계속한다. 가을에 피는 꽃을 추백, 봄에 피는 꽃을 춘백, 겨울에 피는 꽃을 동백이라 이르지만 우리는 통 틀어서 동백이라 부르고 있다. 대나무 소나무 매화나무를 세한삼우歲寒三友라 하듯이 다른 꽃들이 모두 지고 난 추운 겨울에도 정답게 만날 수 있는 동백꽃을 친구에 빗대어 세한지우歲寒之友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부분의 꽃들이 벌 나비나 곤충의 도움으로 꽃가루받이를 하지만 동백꽃은 곤충이 아니라 새가 도와주는 조매화이다. 몸집이 작고 예쁜 동박새, 꽃에서 꿀을 얻는 대신에 꽃가루받이를 시켜 열매가 맺을 수 있게 해주는 사랑의 전령사인 샘이다.
얼마 전에 올레 5코스인 위미리를 지나는데 낭랑한 새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제주도기념물 39호로 지정된 위미리 동백나무 군락지는 거대한 과수밭 울타리. 열일곱 살 나이에 위미리 마을에 시집온 ‘현맹춘’이는 해초 캐기와 품팔이를 하며 돈을 모아 돌멩이와 바위투성이의 황무지를 사들여 개간하면서 방풍을 하기 위해 한라산에서 동백씨앗을 따다가 심었다고 한다. 제주의 거친 바람에 도전장을 낸 한 여인의 강인함과 억척스럽고 끈질긴 집념이 일구어 낸 동백나무군락지. 130년이란 세월이 흐르면서 울울창창해져 이 길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동박새의 맑은 노래를 선물하는 이국적인 풍경을 연츨하고 있다.
동백나무는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대만 등지에만 분포하는 서양에는 없는 나무다. 식물학자이자 선교사인 독일인 게오르그 카멜(Georg Kamel; 1661-1706)이 유럽에 소개하였는데, 그는 필리핀에서 선교활동을 하다 죽을 때까지 동백나무 연구의 선구자로서 논문을 남겼다. 후에 그를 기리는 의미로 카멜리아(Camellia)라는 동백나무 속명(屬名)이 만들어졌다.
동백나무는 윤기 흐르는 검푸른 잎사귀에 눈이 소복이 쌓인 풍광도 눈에 부시지만, 한겨울 추위를 녹이며 피어나는 붉은 꽃송이는 가슴 깊이 정열을 간직한 여심을 보는 듯 뜨겁다. 그래서인지 유독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야기가 동백꽃에 비유되었다.
프랑스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 2세'의소설 ‘동백꽃 여인(La Dame aux Camelias)’은 한 달에 25일은 하얀 동백꽃을 5일은 붉은 동백꽃을 가슴에 꽂고 파리의 이름난 극장에 나타나는 고급 창녀 '마그리트'와 귀족청년 '아르망'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두 사람의 애틋하고 아름다운 사랑은 파리 상류사회의 고급매춘부라는 신분의 벽에 가로막혀 끝내 이루지 못한다는 비극적인 내용이다. ‘베르디‘는 이 소설을 토대로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를 작곡했는데, '동백꽃 여인’ 대신 ‘방황하는 여인’이라는 뜻의 ‘트라비아타’라는 제목을 붙였다. '헤일수 없이 수많은 밤을 … 기다리는' 우리 가요 속 동백아가씨는 어떤가. 서울 샌님과 섬아가씨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붉디붉은 동백꽃송이마냥 애처롭기 그지없다.
대개의 꽃들이 피었다가 질 때면 바람에 난분분 지건만, 동백꽃은 목채로 송두리채 툭 툭 떨어져서 고스란히 제 나무그늘에 드러눕는다. 떨어져서도 떠나지 못하는 안타까움에 동백나무 그늘은 서러움이 선혈처럼 낭자하다. 제주의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이런 풍경에서 4·
3을 주제로 작품집을 낸 강요배화백의 '동백꽃 지다'가 전해주는 메시지를 되새겨 본다. 그림을 보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가슴이 저려오는 것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한으로 남은 제주인의 역사가 숨쉬는 까닭은 아닐까.
여남은 살 무렵 할머니의 친정인 수산리에 간적이 있었다. 60년대인 그 당시에는 웃드르인 수산리로 가는 버스도 없어서 어머니의 손을 잡고 눈 속을 걸어가던 기억도 잊혀지지 않지만, 뒷간 옆에 서있던 커다란 동백나무에서 눈 위로 툭툭 떨어지던 붉은 꽃송이는 동백꽃을 볼 때마다 클로즈업 되오는 풍경이 되었다. 그 이후에도 외갓집이나 이모네를 갔어도 동백나무는 뒷간 옆에 서서 꽃송이를 피우고, 나무 그늘에는 떨어져 누운 꽃들이 핏빛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꽃 지고 열매가 익으면 기름을 짜서 호롱불을 켜고, 머리에 발라 곱게 단장하던 할머니, 이모, 외숙모도 이제는 저 세상으로 가고 없어도 동백꽃은 여전히 피고 진다.
첫댓글 정영자선생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글도 잘 쓰시고 사진도 잘 찍으셨네요~~
감사 감사
명준샘도 복 많이 받으시고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