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과 기독교의 차이
638년 예루살렘이 점령당하고 비잔틴(희랍정교권) 제국의 지역이 이슬람권으로 넘어가고 두 번째 칼리프(왕) 우마르 1세가 회교 사원을 세운다. 초기는 기독교인 성지 순례를 허락했으나, 셀죽 트르쿠의 통치부터 이슬람들이 방해하기 시작했다. 교황 우르반 2세 Deus Vult(하나님이 원하신다)를 주장 1096년 잠간 탈환한 후에 다시 점령당한다. 그 후에 8차에 걸친 십자군 전쟁은 모두 실패, 두 종교의 골은 커졌고, 20세기가 될 때까지는 성지는 회교도의 수중에 있게 되었다.
이슬람이란 의미는 순종, 항복(surrender)을 의미한다. Islam이란 말의 뿌리는 slm에서 왔다. 이 slm은 평화롭게 되는 것(to be in peace), 혹은 완전하게 되는 것(to be an integral whole)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슬람하면 신의 법에 항복하는 것이며 그래서 완전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무슬림은 항복한 사람을 말한다. Surah 59:19는"Be not like those who forgot God. and [eventually] God caused them to gorget themselves" 자신을 알라에게 포기하는 자는 알라가 그의 인격을 완전하게 만들어 준다고 한다. 쿠란 22:78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무슬림이란 이름을 주었다고 한다.
주전 570년 메카 출생, 어려서 고아가 되어 숙부 밑에서 자랐다. 25세 때 부유한 미망인 Khadija와 결혼하여 안정된 생활을 하였다. 이 무렵부터 그는 상업을 하는 한편, 메카 근교에 있는 힐라山의 동굴로 들어가서 명상에 잠겼다. 610년, 40세 무렵에 최초의 계시를 받았다. 알라(히, 엘)믿음, 천사 미카엘이 "낭송하라" 말함, 이 단어가 코란이 되었다. 622년 야트립(메디나)로 도피(히즈라). 믿음의 공동체(umma)를 만들고 팔년 동안 최초의 모스크(masjid)라는 기도의 장소를 세웠다. 메디나에서 성공은 경쟁관계의 부족을 잘 중재했으며, 무적의 용장. 칼을 든 교주로 변신, 유대인을 잘 포섭했다. 630년 메카 정복하고 사당들을 제거하고, 카바(검은 돌로 지은 정육면체 모양의 신당)를 유일신 알라를 숭배하도록 만들었다. 그의 업적은 새 종교, 유일신 개념의 알라의 뜻에 헌신한 단합된 아랍 제국 설립, 선교의 동기 부여했다.
부인 Khadija와 숙부 Abu Talib이 기원후 620년에 죽게 되자 Muhammad와 그를 신봉하는 사람들을 죽일 음모가 싹트기 시작했다. 622년 7월 16일 Muhammad는 결국 북방에 위치하고 있는 친근하게 느껴진 Yathrib시로 도망갈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 도망을 Hegira라고 말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이슬람교의 시작인 것이다. 이슬람교의 달력은 그 날부터 시작되며 햇수는 "A.H."로 계산되어지는데 이는 "Hegira의 해"라는 뜻이다. Yathrib시는 그 후에 Madinat an-Nabi(예언자의 도시)라고 재명명했는데, 이는 Muhammad을 기념하기 위해 지은 이름이었으나, Media라고 더 잘 알려지게 되었다.
코란은 이슬람교의 경전이다. 이것은 114녁몬 또는 장으로 되어있는데 짧은 장은 뒷부분에, 그리고 긴장은 앞부분에 놓여 있다. 내용을 보면, 모두가 Muhammad에 관한 말이다. 그가 한 말을 양피지 혹은 마른 약대 뼈 등에 적어 놓았던 것을 그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모두 기록한 책이다. 그 내용은 혼잡한 감이 있으나 그들은 그 책이 하늘에 있는 원본으로부터 사본해 온 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슬람교가 세계 각처로 전파됨에 따라 여러 가지 교훈이 생기게 되어 마침내 Hadith(전통)에다 기록했다. Hadith란 말은 sunna 혹은 습관이라고 불렸다. 이것은 Muhammad이 주어진 환경 하에서 생각하며 행동하리라고 하는 것을 기술한 것이라고 그들은 믿고 있다.
코란과 그 교리
마호메트가 40 세경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 근교의 히라산(山) 동굴에서 천사(天使) 가브리엘을 통해 계시를 받았다고 한다. 의미는 ‘읽혀야 할 것'이라고 한다.
1) 성격- 신의 말씀으로 주장, 천국에 있는 원본 "책의 어머니"의 복사. 비판- 신과 책이 어찌 영원할 수 있느냐?
2) 신 개념- 알라 신은 한분, 영원, 무한, 정의, 자비, 사랑, 주권적 의지-성품. 약 270회가 나온다. Allah는 al-ilah에서 나왔다. al-ilah는 이슬람이전 아라비아 시에서 유발된 인격적 신으로 나타난다. 셈족어 신을 말하는 el과 공통어 뿌리이다. 사랑의 하나님을 말하지만 심판의 하나님이 더 강하다. Shahadah에서 나타난 것처럼 알라의 유일신 개념을 강조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삼위일체 하나님을 배격한다. 결국 마호메트의 이전에 널리 지배한 다신교 개념으로부터 메카의 최고신인 알라를 유일신으로 내세웠다. 창조를 말하는 것은 "He says, Be! and there it is. (36:82)"
3) 심판- 알라의 심판. 그날은 자연 재해, 천둥소리와 나팔소리로 행위의 책에 근거하여 정 의에 따라 심판. 지옥은 고문, 불의 옷, 사지가 부서진다. 낙원은 시내와 나무로, 알라 가 창조한 극락의 여자와 결혼하며, 기쁨의 장소이다.
4) 코란과 예수- 마호메트 이외에 예수를 가장 존경하며, 탄생은 정상적, 성령에 의함이 아니라, 코란은 예수의 기적과 이적을 약간 다룬다. 죽음과 부활, 승천을 언급하고 있다.
모슬렘이 되는 다섯 조건(아르칸 알 이슬람, 오주)- 이바닷(이것을 행하는 것이 신께 대한 의무)
1)증언- 샤하다(shahada), "신은 유일하며 마호메트는 그의 선지자이다"라고 신경을 고백 해야한다. 이것은 과거 마호메트가 다신교를 반대하고 유일신 사상을 강조한 면을 보여준다. 또 마호메트가 유일한 신의 선지자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2) 기도- 살랏(splat)- 신과의 대화가 아니라, 헌신의 표현, 신에 대한 순복의 표시. 기도 조건- 메카에 있는 카바를 향함, 정결. 모스크 안에 물탱크가 있다. 모스크란 말- "엎드려 절하는 장소"의미. 하루에 다섯 번.
3)구제-자캇(zakat)- 의무적 구제금과 자발적인 구제금- 이것들은 공덕사상에 가깝다. 심 판날 저주에서 방지. 벌을 받는데 벌을 하람(haram)이라 한다.
4)라마단(Ramadan) 금식- 스왐(swab)-라마단(이슬람력 9월) 전체에 낮에 금식, 유대인의 절기에서 영향을 받음(욤 기펴). 신을 생각, 헌신, 인간의 연약함 알고, 그에게 의존.
5)성지 순례- 하지(hajj, 하지의 달, 이슬람력 제 12월)- 평생 한번은 해야 함. 7번 카바를 돈다. 의식에 따라함
* 그 밖에 종교적 의무로서 지하드(Jihad)가 있다.
코란을 성경에 비추어 볼 때의 모순점
성경이 이슬람 교리에 끼친 영향은 지대한 바 있다. 그 예로서 아랍 사람들은 그들의 조상이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인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그들이 믿고 있는 하나님의 성품, 육체의 부활, 천국과 지옥 등이 모두 성서의 교리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전혀 상반되는 차이점이 있기도 하다. 여기에서 그 몇 가지를 생각해 보자.
1. 코란은 누가복음 1장 26-38절(Surah 3:45-47)과 비슷한 구절에서 예수님의 처녀 탄생을 기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부인하고 있다. 코란은 예수를 아브라함, 요나, 그리고 다른 선지자와 동등한 선지자로 보고 있다. 한편 예수를 Muhammad보다 훨씬 하위에 놓여 있으며 슈라서 4:171절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예수는 알라신의 사자에 불과하며……"
Muhammad은 예수 스스로 주장한 여러 가지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예를 들면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시다"(요10:30),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요14:9),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요8:58).
성경 마태복음 17장 5절에 하나님께서 예수를 그의 아들이라 불렀다고 기록하고 있다. 마귀들도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인식하게 되자 떨었다(마8:29). 의심하던 도마도 예수님을 가리켜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다"(요20:28)라고 했던 것이다. 요한은 그리스도가 창조의 주(요1:1-5)임을 확증했다. 바울도 역시 골로새서1:15-17에서 똑같이 말했고, 또한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골2:9)라고도 말했다. 이러한 문제들에 관하여 Muhammad은 다만 그 사실을 무시했거나 부인했던 것이다.
2. 코란에 보면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죽은 사실이 전혀 없다고 쓰여져 있다. "사람들이 예수를 죽이지도 십자가에 못 박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에게 그처럼 보였을 뿐이다……"(surah 4:157). 어찌 그럴 수가 있겠는가? 이슬람교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리기 직전에 알라신이 그를 천국으로 데리고 갔다고 하고 있다. 그렇다면 누가 십자가상에서 죽었단 말인가? 유다가 예수를 솜씨 좋게 닮았다고 그들은 그럴듯하게 꾸몄기 때문에 마리아와 제자들까지도 바보로 만들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그들의 주장은 모두가 성경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것임은 물론이다. 유다는 예수를 배반했다고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다(막14:10,11,43-45). 후에 그는 그가 행한 배반행위를 후회하여 목을 매어 자살했던 것이다(마27:5). 유다는 갈보리 산의 십자가상에서 죽은 것이 아니고 그는 밧줄 끝에서 죽었던 것이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그리스도의 처형에 대한 것이 구약성서에 예언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십자가에서의 처형을 목격한 사람들의 증언이 복음서 네 권에 각각 실려 있음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이룬 대속적인 죽음 그 자체야말로 신약전서의 근본 핵심이 되는 것이다(고전1:23, 2:2, 15:3-4, 갈2:20,6:12-14, 엡2:16 참조). 예수께서는 그의 죽음에 관하여 여러 번 예언한 바 있었다(마16:21). 왜 그는 죽었는가? "많은 사람의 대속물"(막10:45)로 죽으셨던 것이다. 그의 흘린 피를 인하여 "죄사함"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마26:28). 바울에 의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성전에서 제공하던 동물의 희생물(히9장)을 끝맺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히9:28).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다(요1:29).
3. surah 4:111에 기록되기를 사람은 제각기 자기 죄 문제를 해결해야 된다고 되어 있다. 이슬람교인은 다섯 가지 믿음의 표주를 지킴으로써 죄에서 구원을 얻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게 하지 못할 경우에는 그 개인의 과실이며 책임이라고 보는 것이다. "죄를 짓는 사람은 누구나 그 죄에 대한 책임을 진다."(surah 10:109)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면 성경의 교훈을 생각해 보자. 이사야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고 말하고 있다(이사야53:6). 용서를 얻는 단 한 가지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믿음만이라고 신약전서는 가르치고 있다. Muhammad은 그의 추종자들이 우상숭배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노력했다. 후에 그 스스로를 예언자라고 말하고 규범과 규칙을 지키는 종교를 만들어 냈던 것이다. 유대교와 마찬가지로 이슬람교는 무거운 책임의 짐을 사람에게 부담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와 같은 무거운 것을 사람들로부터 없애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11:28-30)고 하셨다.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것은 단지 Muhammad은 단 하나의 죽은 예언자요, 그리스도는 살아계신 구세주시라는 차이다.
오늘날 우리는 종교의 다원주의 시대의 현실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이 적응해야 하는 새로운 현실은 기독교인들의 신앙에 타종교인들의 신앙과 함께, 곧 다종교적인 환경 속에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이렇듯, 기독교인이 아닌 다른 종교인들과 부딪히게 되는 현실은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타종교에 대해 알아야 할 것과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함이 요구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두 종교 간에는 내용은 비슷한 면은 있으나, 신의 대한 본질적인 개념 차이는 구별되어진다. 특히 이슬람교의 예수에 대한 신성의 부정은 기독교의 사상의 핵심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이러한 차이는 양 종교간의 연구와 접촉에 있어서 많은 문제가 제기된다. 국내의 기독교의 선교대상 지역으로 관심도의 증가와 이슬람의 세계적인 활동추세로 볼 때 국내의 이슬람에 대한 연구가 계속되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