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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문학 2009년 창간호 게재
눈물고운 땅, 아프리카 남아공 / 시인 김윤자
현지시간으로 새벽 5시, 한국시간으로 낮 12시, 하늘에 빛이 고인다. 동녘에서부터 내 조국 하늘을 열고, 태양은 힘차게 달려와 아프리카를 연다. 힘찬 여명이다. 밤새 고단한 날개로 달려온 비행기인데 창공을 향해 뻗은 비상의 날개가 위대하다. 아프리카 땅을 밟는 것은 이집트에 이어 두 번째다. 남아공에서는 요하네스버그와 프리토리아, 케이프타운 세 도시를 둘러보았다.
예쁜 나라다. 남한의 11배 크기인데 인구는 남한과 동일한 4700만 명이다. 수도는 행정 프리토리아, 입법 케이프타운, 사법 블룸폰테인, 이렇게 세 도시로 나뉘어져 있다. 삼권 분립이 철저하다. 수도가 세 개라는 것도, 대통령이 이동하여 집무를 본다는 것도 검은 대륙의 나라에서 듣는 신기한 이야기다.
* 레인보우 컨트리
남아공은 레인보우 컨트리, 무지개 나라다. 원주민을 몰아내고 백인이 다스리던 나라에서 유혈사태 없이 1994년에 흑인 대통령 만델라가 탄생했다. 유럽계 다인종 백인을 수용하여 함께 어울려 살기로 약속하고 출범했다. 계급은 분명하여 1.백인, 2.인도인, 3,혼혈인, 4.흑인이다. 상단에서부터 1,2,3,4 계급이 피라미드 구조 지배정책으로 운영되는 나라다. 이런 체계에서 만델라가 흑인과 백인이 동시에 어울려 살 수 있는 무지개 나라를 세운 것은 위대한 업적이다.
하지만 그 동안 흑인에게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아 흑인정부가 들어섰는데도 이끌어 갈 수 없었다. 그때부터 흑인교육 정책으로 대학정원 중 25%를 흑인 먼저 뽑고, 75%를 흑인과 백인 경쟁시켜 뽑는 등, 여러 면에서 노력하여 1998년부터 지금까지 경제, 정치, 교육면에서 상당히 안정적이다.
그래도 아직 문제가 남아 있다. 백인은 미리미리 내다보고 일하는데 흑인은 백인이 해놓은 자취를 따라 산다. 결국 남아공은 현재 10%의 백인이 90%의 흑인을 부리고 산다. 흑인과 백인은 사는 곳도 다르다. 흑인은 허름한 노변, 깡통 같은 판잣집에서 산다. 저 멀리 보이는 도심, 백인 부자들 소유의 높은 빌딩과는 천지 차이다. 피부색도 서러운데 삶까지 서럽다는 대목에서 서늘하지만 이민국이라 불릴 만큼 여러 인종이 모여 살며, 그 가운데서도 흑인들의 노력으로 민주주의의 구슬을 꿴 것은 고운 무지개다.
유럽을 수용하고 /아프리카를 수용하고 /백인을, 흑인을 한 장의 화포 안에 /곱게 그려 내겠노라고 /약속하고 출범한 만델라호의 /아름다운 이야기도 /곳곳에서 까만 사람들이 /정복차림으로 자신의 소중한 몫을 엮어내는 것도 /아프리카의 미국이라고 부를 만큼 /화사한 도시의 물결도 /모두 무지개 자락에 /걸터앉았는데 /외진 곳에, 차여 누운 자갈처럼 /아직도 경계선 너머에서 /웅크리고 살아야 하는 /흑인의 소슬한 판잣집은 /무지개 끝의, 또 한 가지 늘어난 /고독한 회색일까 -김윤자 시 [레인보우 컨트리] 전문
* 전쟁으로 얻은 값진 유산
요하네스버그는 수도는 아니지만 경제 활동이 활발한 도시다. 금광이 발견되어 더욱 풍요롭다. 프리토리아는 외지에서 들어온 외로운 자들이 교외광장에서 모여 형성된 도시다. 현재는 여러 관공서가 들어서서 다부지고 알찬 도시다. 케이프타운은 흑인의 도시가 아니고 영국과 네덜란드 사람들이 들어와 백인의 도시로 키운 곳이다. 아프리카 최남단 항구 도시로 지구상 모든 인종, 식물과 동물을 볼 수 있는 열린 도시다.
요하네스버그에서는 광활한 초지에서 자유와 행복을 마음껏 누리며 사는 동물들을 보았다. 프리토리아에서는 조국수호를 다짐하는 전쟁기념관과 드넓은 대지에서 옆으로 길게 누운 대통령 집무실 유니온궁 빌딩을 둘러보았다. 케이프타운에서는 장엄한 테이블 마운틴과 낭만의 거리 워터프론트, 천연생태를 전시하는 물개섬, 그리고 지구 최남단 영토인 케이프타운 국립공원, 대서양과 인도양이 만나는 곳에서 포효하듯 목을 내민 희망봉 등을 보았다.
이런 모든 곳곳에서 느끼는 것은 자연과 문화의 조화다. 자연은 천혜의 조건이지만 문화는 타인이 전수시켜 놓은 것으로 아프리카 치고는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네덜란드와 영국이 남기고 간 것이 상처만은 아닌 듯싶다. 슬픈 역사가 얽혀있지만 지배자들이 머물면서 발전시켜 놓은 값진 문화유산으로 위로 받으며 산다. 아프리카의 미국이 남아공이다. 내가 생각한 아프리카는 정녕 아니었다. 백인이 일구어 놓은 화사한 국가에서 독특한 자연이 접목된 풍경은 외인에게는 비경이다.
오르고 또 오르면 /밝은 역사가 보일까 /아담한 언덕에 덩그러니 /접히지 않는 설움을 펼쳐놓고 /전리품도, 요원도, 발길도 없는 적막 /줄루족 피의 관이 /건물의 머리에서 발끝까지 둥글게 뚫린 /원형 틀 안에서 /뜨거운 호흡이고 /부조로, 십자수로, 유화그림으로 토로하는 것이 /전부인 집 /조상의 피와 땀을 신성시 하자고 /창문을 노랗게 물들이고 /물방울처럼 뭉쳐 번져나가자고 /바닥을 부채꼴로 조각하고 /영국은, 네덜란드는 벌써 역마차로 /옥토를 누비고 있는데 /희생당한 어머니와 아이가 오롯이 서서 /눈뜨고도 빼앗긴 하늘을 그리워하는 -김윤자 시 [전쟁기념 박물관] 전문
* 테이블 마운틴 축복의 봉우리
케이프타운 공항에서부터 테이블 마운틴이 보였다. 보통 산과는 다르다. 보는 곳에 따라 다르지만 산정이 테이블처럼 평평하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1087m 고봉의 구름은 식탁보다. 바다가 융기하여 형성된 산이다. 저 산을 보고자 세계인의 걸음이 이곳에 모인다. 기묘한 자연을 신은 선사하였고, 그 앞에서 사람들은 신비로운 눈을 열고 있다.
뒤로는 산이 아버지처럼 우뚝 버티어 섰고, 앞으로는 어머니 같은 바다가 도시를 포근히 감싸고 있다. 산과 바다, 그 사이에서 곱게 자란 도시 케이프타운은 세상모르고 아름다운 숙녀로 앉아있다. 12사도 봉우리라 불리는 테이블 마운틴 자락의 산봉우리들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어 바다와 산이 만난 절창이다.
이곳은 네덜란드와 영국의 마찰이 심했던 도시다. 원래는 네덜란드가 먼저 들어왔는데 영국이 밀어 올리며 강하게 차고 들어왔다. 그때 영국군을 막으려고 세운 네덜란드 성벽이 아직도 덩그러니 서 있다. 역사의 유물로 전시해 두고 있음이다. 국회의사당은 영국에서 벽돌까지 갖다 지었고 영국 빅뱅시계의 1/2 크기로 시계까지 만들었다 하니 지배하고, 지배당하는 역사의 고리다.
그런 중에도 테이블 마운틴 산정은 칼로 떡 자르듯 반듯한 평지로 고요하다. 언제 서글픈 세월이 있었냐는 듯 바위들이 예술 향기를 자아내고 있다. 길은 뽀얗게 열려 있어 사람들은 그 길을 따라 걷는다. 대평원의 산정을 걷고 싶은 만큼 갔다가 온다. 애련한 땅에 용기를 주는 축복의 봉우리다.
거대한 식탁 하나 /아프리카의 표상이다. 갈망이다. /더 이상 밀릴 곳도 없는 /검은 대륙의 끄트머리 /산봉우리를 키워야 할 산이 /가슴선 쯤에서 모난 상념들을 도려내고 /정좌하여, 젖은 자유를 말린다. /산이 산이기를 거부하였으니 무엇이 두려울까 /사자상을 발아래 엎드려 앉히고 /때론 사람의 형상으로 고요하다. /항구도시의 비경이 솟구쳐도 /꼿꼿한 절벽이 일어서도 /넘지 못한 경계선 마디가 있어 /하늘과 마주하여 /신과 마주하여 /평평한 세상을 꿈꾸는 산정의 대평원 - 김윤자 시 [테이블 마운틴] 전문
* 아프리카는 아프리카
남아공 국기는 오색찬란하다. 만델라 정권 때 만들었다. 남아공 대륙과 흑인 인권에 대한 상징이다. 파랑은 삼면이 푸른 바다, 녹색은 푸른 초원, 노랑은 풍부한 자연, 검정은 흑인, 흰색은 백인, Y자 모양은 여러 인종이 합해서 산다는 뜻이다. 그리고 빨강은 흑인이 인권을 위해 흘린 피다. 참으로 복잡한 색상들이, 그런 깊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니 다시 깊은 가슴으로 살펴보았다. 흑인의 용기이며 위대한 승리의 깃발이다.
남아공은 2010년에 월드컵이 열리는 나라다. 2008년 4월 현재 월드컵 스타디움 공사가 한창이다. 2007년 10월에 착공했는데 2010년까지 완공될 지는 의문이란다. 호텔, 전기, 교통도 큰 문제라고 한다. FIFA에서 물으면 다 고치겠다고 하는데 잘 개선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흑인의 한계가 차츰 드러나고 있다. 시스템은 영국 수준인데 일하는 자가 흑인인 관계로 시스템이 좋아도 잘 유지되지 않는다. 그것이 흑인이 넘기 어려운 벽이다.
광활하다가, 쓸쓸하다가, 산도, 바다도, 평원도 모두 눈물고운 땅에서 아름다운 것만 보고 듣고 담아가고 싶은데, 또 하나 가슴 서늘한 이야기를 들었다. 남아공 공항에서는 여행가방 분실 등, 불상사가 잦다는 것이다. 가방을 풀어 핸드폰을 꺼내기도 하고, 다른 사람 가방에 모르는 짐이 들어있기도 하고, 지폐모양의 종이가 있으면 꺼내기 위해 가방을 찢고, 한 푼의 팁을 받기 위해 외객을 붙잡고, 이것이 아프리카란다. 만델라가 흑인을 깨우치고 남아공을 발전시켰다고 해도, 까만 피부의 숱한 백성들은 아직도 서글프게 산다. 결론은 아프리카는 아프리카다.
최상의 의자에 앉았는데도 /그들의 땅에 /그들의 발목을 온전히 담갔는데도 /까만 두뇌의 한계는 /산도, 물도 넘지 못하여 /또 다시 하얀 두뇌를 불러 노를 저으라 하니 /정지된 원시의 향수에 /듣는 이의 귀가 서러워서 /공항 시스템이 미비로 조금 지체되는 것도 /한 푼의 팁을 위해 짐을 붙잡는 /얄팍한 손길도 /뜨거운 가슴으로 붉은 눈시울에 담았다. /십 퍼센트의 백인이 /구십 퍼센트의 흑인을 부리고 산다는 /소설 같은 이 좌판에서 /엎어도, 뒤집어도 /아프리카는 아프리카다. -김윤자 시 [아프리카는 아프리카] 전문
눈물고운 땅, 아프리카 남아공-작가와 문학 2009년 창간호 기획 공간테마 여행과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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