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에 대한 성경적 고찰
Ⅰ.시혼(詩魂)은 하나님의 창조적 능력의 반영(反映)
시를 쓰는 마음은(시혼:詩魂) 인간의 부패한 본성 중에서도 가장 순수하고, 가장 오염이 덜된 아름다운 감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맑고 순수한 시혼(詩魂)은 미(美)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한 형상이기도 합니다.(창세기 1:26~27) 그런 까닭에 피조물의 미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속성이 그 사물 속에 투영된 것이며, 그것은 또 하나님께서 각기 그 특성에 따라 개성있게 아름다움을 창조해 주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느헤미야 9:6, 욥기 26:13)
따라서 인간이 시를 쓰는 아름다운 마음은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이 반영된 것이며(욥기 32:8~9, 33:4, 시편 104:30), 그리고 인간의 그 재능 위에 성령을 부어 주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여지도록 은사가 나타나게도 하십니다.
구약시대 하나님의 성막을 지을 때 특별하게 부름 받은 브사렐과 오흘리압이란 장인(匠人)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두 사람에게 뛰어난 인간의 재능 위에, 하나님의 신(성령)을 충만케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 가지 공교한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보실 때, 브사렐과 오흘리압이 성막 일을 하기 위해서는 재능만 가지고는 안되겠기에, 그들의 재능 위에 하나님의 신을 부어주시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원하시는 대로 성막 일을 할 수 있도록 성령의 은사를 더하셨던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사렐을 지명하여 부르고 하나님의 신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 가지 재주로 공교한 일을 연구하여 금 은과 놋으로 만들게 하며, 보석을 깎아 물리며, 나무를 새겨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고, 내가 또 단 지파 아히사막의 아들 오흘리압을 세워 그와 함께 하게 하며, 무릇 지혜로운 마음이 있는 자에게 내가 네게 명한 것을 다 만들게 할지니”(출애굽기 31:1~6, 35:30~35)라고 기록된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Ⅱ. 예술에 관한 성경적 원칙들
위의 출애굽기 31:1~6절과, 35:30~35절 말씀에는 예술에 관한 성경적 원칙들이 나타나 있습니다.
1. 하나님께서 예술을 중요한 것으로 간주하셨습니다.
보수적이고 지극히 성경적인 그리스도인이기를 원하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예술(문학, 미술, 음악 등)을 어떻게 여기시고, 또한 예술에 관해 진정 무엇이라 말씀하시는지 알아보지도 않고, 자신의 미학적(美學的) 취향을 편협하게 제한해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분명 하나님은 모세에게 성막을 지시한 그대로 짓도록 명하시고, 그리고 자세한 예술적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예술에 관한 관심과 깊은 섭리가 계심을 깨닫게 합니다.
2. 예술을 할 수 있는 능력은 하나님의 은사입니다.
즉 예술가는 하나님의 소명(召命)에 의하여 된다는 것입니다.
“너는 무릇 마음에 지혜 있는 자 곧 내가 지혜로운 영으로 채운 자들에게 말하여 아론의 옷을 지어 그를 거룩하게 하여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 (출애굽기 28:3)
“모세가 브살렐과 오흘리압과 및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곧 그 마음에 여호와께로 지혜를 얻고 와서 그 일을 하려고 마음에 원하는 모든 자를 부르매”(출애굽기 36:2)
성막 짓는 일을 하는 자들, 그리고 그 일을 돕기 원하는 모든 자들 곧 “그 일을 하려고 마음에 원하는 모든 자들”은 여호와께서 그들의 마음속에 지혜로운 영과 능력을 주셨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이 때의 예술적 재능은 인간의 천부적 능력이나 개인적 재주가 이루어 낸 바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은혜요, 은사의 열매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은사(카리스마:χáρισΜα)는, 불신자 일 때도 주어진 일반 은총에 속한 재능 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거듭난 다음 하나님의 신(神)을 부여 받음으로써, 교회와 하나님을 위한 유익한 도구로 활용된다는 원리입니다.
“은사(恩賜)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主)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린도전서 12:4~7) (참고, 고린도전서 12:17~27)
3. 예술의 핵심적인 목적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입니다.
음악, 미술, 시(詩) 등 모든 예술적 표현은 하나님을 향한 경배가 되어야 합니다.
성막은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예배)드리고, 하나님은 또 그 백성들을 만나주시는 장소였습니다.(참고, 출애굽기 25:21,22) 때문에 성막을 짓는 데 소용되는 모든 것들은 화려하고 또 영화롭고 아름답게 만들어져야 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너는 성막을 만들되 앙장 열 폭을 가늘게 꼰 베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로 그룹을 공교히 수놓아 만들지니”(출애굽기 26:1) 라고 하셨고, 또 “네 형 아론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서 영화롭고 아름답게 할지니”(출애굽기 28: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영화롭게 되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재물이든 재능이든 간에 인간이 하나님께 드려야 할 가장 좋은 것, 가장 훌륭한 것만이 여호와를 영화롭게 할 만한 것들이 됩니다.
그래서 성상(聖像)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예술 작품을 귀히 여기고, 예술 작품을 이용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표현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술을 숭배한다거나, 악한 것과 거짓된 것을 미화시키는 데 예술을 이용한다거나, 또는 미적 체험을 종교적 진리와 혼동하는 것에 대해선 경고하고 있습니다. 종교 개혁 때에는 전반적으로 성상 파괴주의가 성행했습니다.
중세시대엔 교황의 궁정에서조차 거짓된 교리와, 자기 만족적 미학을 추진시키기 위해 예술을 사용하여 십계명 중 제2계명을 범했습니다.
여기서 십계명의 제2계명을 범했다는 것은, 우상(偶像)이 되는 예술적 형상을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그럼 예술품을 만드는 것은, 제2계명에 상충(相衝)되는 일인가?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偶像)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출애굽기 20:4~6)
십계명 중 두 번째인 이 계명은, 특별히 하늘에 있는 것이든 땅에 있는 것이든 혹은 물 속에 있는 것이든 “새긴 우상, 형상”을 만드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계명이 모든 종류의 (문화)예술을 금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의 참 뜻은 ‘너를 위하여 어떤 우상이나 형상’을 만들어 그것들에게 절하고 섬기지 말라는 것이지, 그것을 만드는 자체가 우상이거나 숭배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아니됩니다. (참고, 요한계시록 9:20)
성경에서 제2계명이 금하고 있는 ‘형상’(자연물과 같이 형체를 지니는 것)은 원래 이스라엘 신앙과 늘 경쟁을 벌였던 구체적인 이방 종교를 말하는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즉, 별이나 행성 혹은 ‘하늘 위의 군중’(신명기 4:19)을 경배하는 것, 또는 동물이나 지하에 사는 어둡고 원시적인 신들이나 지상의 여신들(금송아지, 바알, 아스다롯)을 섬기는 것, 그리고 물고기 신(다곤)이나 리워야단(이사야 27:1)이나 그밖에 애굽인과 가나안 족속들 사이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었던 다른 여러 신들을 섬기는 일을 금하신 말씀입니다. 따라서 제2계명이, 모든 만드는 형상을 금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구약시대 성막과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주신 지시들 즉 꽃과 소의 형상을 주조(鑄造)하라고 하신 말씀(역대하 4:3,4)과 상충(相衝)될 것입니다.
하지만 제2계명을 문화 예술에 적용 할 경우, 제2계명의 효력을 전면 부인하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는 있습니다. 우리는 우상에게 경배해서도 안되거니와 어떤 경배의 대상을 만들어서도 안됩니다. 요컨대 제2계명은 예술을 경배해서도 안되며, 경배되는 예술품을 만들어서도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
그렇기 때문에 종교 개혁자들이 예술의 우상 숭배를 공격한 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 일이었고, 결코 변명할 여지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특히 루터파와 영국국교회는,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훼방하는 예술만을 배격하는 경향을 띠었습니다. 쯔빙글리(Zwingli)는 더욱 급진적이어서, 교회 안의 모든 그림들과 조각들은 다 우상 숭배적인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쯔빙글리가 예술을 배척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쯔빙글리는 예술 자체에 반대한 것이 아니라, 중세 교회가 성상(聖像)에 의지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한 것에 반대했다는 말입니다.
요컨대 개혁파 교회는 예술을 종교적으로 이용하는 것에는 반대했지만, 예술로서의 예술은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칼빈은 “나는 어떤 형상이든지 절대 허용할 수 없다는 미신적 생각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지만, 어떤 상(像)을 조각하고 그림을 그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이기 때문에 그것들을 순전하고 정당하게 사용하기를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아무튼 성경이 말하는 예술의 목적은 세속적 예술과는 다르게, 미(the beautiful)와 선(the good)의 관계보다는 미와 거룩(the holy)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술이 우상화(偶像化)되는 것만을 피한다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은사로써, 훌륭한 선교의 도구와 예배 행위까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4. 예술은 문명사회의 발전뿐만 아니라 개인적 복지(福祉)에도 유익합니다.
문명(文明)이란 사람의 지혜가 열리고 정신적, 물질적 생활이 풍부하고 편리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문화(文化)가 자연 경작(개간)을 통한 특정 집단의 정신 활동임에 비하여, 문명(文明)은 보다 기계적, 물질적 방면까지 포함하는 말입니다. 선교 문화 인류학적 측면에서 볼 때, 기독교가 특정 나라에 들어갔을 때 기독교의 복음 문화가 그 민족의 토착 문화를 수용 내지 변혁 시켜, 미개한 국가가 문명국가로 발전한 경우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한반도에 기독교가 맨 처음 들어온 것은, 역사를 거슬러 올라 먼 옛날 가야 시대(김수로왕이 세운 나라로 법흥왕 2년에 신라에게 망함)때, 아유타국의 공주를 통해 유입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후 다시 한반도에 기독교 복음이 불씨를 지피게 된 것은 개항(開港)과 더불어 인천에 상륙한 선교사 언더우드와 아펜젤러에 의해서입니다. 이 두 선교사는 각각 미국의 장로교와 감리교에서 파송한 자들이었습니다. 당시 내부로, 봉건 체제가 근저로부터 흔들리는 정치․사회적 혼란을 겪게 되는 이조 사회는 주변 열강들의 각축장이 되어 외세의 위협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공공연한 매관 매직이 행하여지고, 돈으로 관리가 된 양반들의 수탈과 착취로 영세 소작농으로 몰락한 농민들은 고향을 버리고 유랑하거나 산 속으로 들어가 화전민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하여 농민들의 불평과 불만은 강도의 무리를 이루게 되거나 민란을 도발하는 등의 음성적 형태로 나타나기에 이릅니다. 바로 이와 같은 극도의 정치적 혼란으로 이조 사회가 부패와 타락 일로의 위기로 치닫고 있을 때 기독교가 전래된 것입니다.
기독교는 정치, 사회적 혼란으로 말미암아 도탄에 빠진 민중들에게는 생명과 재산을 보호받기 위한, 가난하고 억눌린 자의 복음으로 받아들여지고, 지도층에게는 교회를 기반으로 하여 민족 운동을 전개해 보려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기독교는 순수한 종교적 차원에서보다는, 민중들에게는 현실적 압박으로부터의 도피를 위해 이용되었고, 관리들에게는 개화를 위한 구국의 방편으로 이용되었습니다. 이렇듯 기독교는 한국의 근대적 시민 사회를 형성함에 있어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문학의 사회적 기능을 생각할 때도, 기독교가 우리 근대화에 끼친 사상적 영향은 실로 막대합니다. 우리의 생활에 있어서 이제 기독교란 단순한 외래적 사상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지탱해 나가는 버팀목으로서의 구실을 하고 있음을 보더라도 의심할 바 없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의식 구조 속에 또 하나의 사상으로 자리잡은 기독교 사상은 앞으로 우리 문학에 있어서도 더욱 심화된 사상적 기초를 이루게 될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아니 이미 기독교는 우리 현대 문학의 사상에 깊이 뿌리 내려졌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직은 정신적(기독교적) 호흡이 길지 못한 문학적 풍토지만, 유능하고 뜻 있는 크리스챤 시인, 작가들에 의해 비단 개인적 구원과 초극의 면에서만이 아니라, 역사와 표상적 삶에 뿌리를 둔 기독교적 정신의 구현으로서의 문학 작품들은 계속 산출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Ⅲ. 가르치는 예술가
끝으로 하나님께서는 성막 일을 통해서 우리에게 한가지 더 첨가해서 밝히고 있는 것은, 출애굽기 35:34에 보면 “또 그와 단지파 아히사막의 아들 오흘리압을 감동시키사 가르치게 하시며”라고 기록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성경이 뜻 있고 재능 있는 그리스도인에게 예술적인 초자연적 은사가 주어지는 것을 밝히고 있는 동시에, 이 예술은 남에게 가르칠 수 있고 또 가르침을 받을 수도 있는 것임을 시사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술적 열망에 불타는 한 예술가가 여러 천부적 재능을 소유하고 있을 수 있으나, 그 재능들은 흔히 가르치는 사람을 통해서 숙련되고 열매 맺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만 가르치고 배우는 일은 하나님께서 예술을 할 수 있도록 선택하시고 재능을 주신 사람 곧 “그 마음에 여호와께로 지혜를 얻고 와서 그 일을 하려고 마음에 원하는 모든 자”에 해당합니다.(출애굽기 36:2)
그러면 브사렐과 오흘리압을 감동시키사 가르치게 하셨다는 말씀에서(출애굽기 35:34), ‘감동시키사’라는 뜻은 무엇인가. 이것은 성령님께서 브사렐과 오흘리압의 마음을 굳게 하고, 편안하고, 친절하고 즐겁게 갖도록 지시하시어서, 자원 봉사코자 하는 남, 녀 성도들에게 온전히 성막일을 할 수 있도록 필요한 기술들을 가르치게끔 감동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예술적 능력이 하나님의 은혜에 달려 있지 않다거나, 훌륭한 선생은 가르침을 통해 어떤 사람이든 예술가로 키울 수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예술가라는 직업을 갖도록 선택하신 사람이, 그 마음에 여호와께로 지혜를 얻고 와서 그 일을 하려고 마음에 원하는 자들에게 ‘가르침’이란 수단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사 즉 지혜와 총명과 지식 등을(출애굽기 35:31) 전달해 줌으로써, 더욱 유능하고 재능있는 예술가로 배양할 수 있게 섭리하셨다는 것입니다. 대체적으로 하나님은 어떤 수단 없이는 역사(役事)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참고, 로마서 10:14~17)
聖田 박 대산 시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