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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편에 이어>
지난 편에 살펴본 세계 남자 마라톤의 추세는 간단히 말해서 이렇다. 케냐와 에티오피아가 우수한 선수자원을 대량으로 배출하면서 세계 마라톤의 기록수준이 가파르게 올라간 것처럼 보이지만, 그 두 나라를 제외하면 나머지 국가들이 모두 기록 정체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마라톤만 ‘거꾸로’ 가고 있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 육상계도 마라톤 기록이 안 나온다고 한탄만 할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 가깝게는 매년 SUB 2:10 주자 배출, 조금 더 나아가면 아시안게임 챔피언 재탈환 정도를 목표로 삼는 게 적당할 것 같다. 지금으로선 한국기록 경신도 과한 목표다. 황영조, 이봉주처럼 걸출한 스타들이 세계를 호령했던 시절은 재현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사실을 괴롭지만 받아들여야 한다.
마라톤 기록정체는 대부분 국가가 겪는 일
또한 시즌 우수선수들에게 국제대회 참가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국제대회 입상을 노리려면 경험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서울국제, 경주국제, 대구국제, 중앙서울, 조선일보춘천 대회 등 굵직한 국제대회가 있다. 그중엔 무려 골드라벨을 받은 대회(서울국제마라톤)까지 있지만, 정말로 세계 각국의 선수가 격돌하는 대회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흑인 선수들을 적당히 앞에 ‘깔아놓고’ 치르는 국내대회 정도로 보인다. (심지어 국내선수 시상을 따로 한다)
우리나라 엘리트 선수들이 이런 국내개최 국제대회(이른바 메이저대회)에만 관행적으로 참가하는 것이 국제경기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은 아닐까? 국내선수들의 최근 국가대항전 성적을 보면 그런 생각이 커진다. 지난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결과만 보더라도 남녀 모두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시즌기록에도 한참 뒤처지는 기록을 작성했다.
우리나라에서 열린 대회이므로 기후나 시차, 음식의 영향을 받았을 리 없다. 그렇다면 부진의 원인은 큰 경기가 주는 압박감, 낯선 외국 선수들과의 경쟁에 대한 부담 등으로 좁혀지는데 이는 곧 국내에서 열리는 국제대회가 ‘국제대회 경험치’를 제대로 만들어주지 못한다는 증거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사실 이렇게 조심스럽게 의심할 필요도 없다. 최고의 기록은 최고의 선수들이 격돌하는 대회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여러 번 확인한 바 있으니까 말이다. 황영조와 이봉주는 각각 2차례 한국기록을 모두 해외메이저대회에서 작성했다 (황영조 : 92벳부-오이타, 94보스턴 / 이봉주 : 98로테르담, 00도쿄) 이봉주와 함께 한국 유일의 2시간 7분대 주자인 김이용도 대기록을 로테르담마라톤에서 세웠다.
현존하는 최고의 마라토너들은 세계6대 메이저대회에 다 나온다. 그들과 잠시라도 경쟁해보는 것이 선수들에겐 지옥훈련 못지않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해외대회에 선수를 보내려면 돈이 많이 들지만, 마침 바로 이웃나라 일본의 도쿄마라톤이 6대 메이저대회 중 하나다. 육상계로서는 국내 메이저대회를 보호하는 것도 중요하겠으나 선수들의 국제대회 경쟁력을 높이는 것보다 우선일 수는 없다.
국제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들의 전략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혹자는 ‘직업선수라면 어느 대회에 나가든 우승을 노리고 뛰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젊은 유망선수들은 순위목표를 낮춰 잡고 기록중심의 레이스를 펼치는 것도 필요하다. 오늘날의 마라톤은 전략이나 노련함으로 기록격차를 커버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일단 기록으로 가까워져야 전략이고 뭐고 써먹을 기회가 생긴다. 무조건 입상을 목표로 도 아니면 모 식의 레이스를 펼치기보다는 현실적인 순위와 기록을 목표로 정해서 작은 성공의 경험을 쌓는 것이 장기적으로 성공의 토대가 될 것이다.
<③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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