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사(고 박시하 권사님께) 어머님이 숨을 거두시던 날 예고도 없던 가을비가 내렸습니다. 여든 두 번이나 가을이 반복되었지만 올해의 가을비는 유난히도 새벽을 달리는 우리들에게 슬픔으로 다가왔습니다. 세찬 바람과 함께 어머님만 혼자 보낼수 없다며 수 없는 낙엽이 떨어졌습니다. 어머니의 인생이 저무는 것을 하늘도 땅도 알았던 것 같습니다. 낳아주신 어머니의 깊은 고통을 짐작조차 하지 못하고 맘 상하게 해드렸던 일들이 오늘은 더욱 깊은 아픔으로 와 닿습니다. 이제 다시는 이 땅에서 정선의 맑은 가을 하늘 아래서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아리랑공원의 낙엽을 밟을 수 없다는 생각에 목이 메입니다. 사랑하는 아들, 딸을 부탁한다는 유언도 없이 훌쩍 홀로 떠난 남편을 생각하며 33년 힘겹고 험난한 인생길을 걸으신 어머니, 겉으로 표현할 수 없는 외로움의 눈물을 가슴 속에 흐르는 기도로 대신해 오신 어머니,오늘 이제 남편 곁에 가셔서 왜 이렇게 일찍 떠났냐며 남편의 품에서 살아온 지난 날을 끝없이 얘기하실 어머니 7남매를 다 기르시고 그 것도 모자라 남은 생애를 손주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강릉으로, 춘천으로 서울로 다니시며 불꽃처럼 생을 사신 어머니, 어머니 이 시간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음은 어머니의 사랑 못잊기 때문입니다. 옥상에서 어머니와 같이 세월을 거슬러 강릉의 이야기, 서울이야기, 춘천이야기를, 주워 담을 수 없도록 말씀 하시며 같이 고추를 다듬던 어머니의 손길을 기다리는 아직 말려야 할 고추들이 저기 수북히 쌓여 있는데 어머니 정녕 떠나셔야 합니까? 명절 때면 전화 한 통화에 온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뻐하셨던 어머니,세상에 후회할 것들에 대해서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전화를 했는데 정작 후회하지 않을 어머니를 향해 전화번호를 누르기를 게을리했던 자식들의 무심함을 용서해 주십시오. 또한 손주 결혼에 방해될까 좀 더 생명을 연장시켜 달라고 그 고통 중에 주님께 기도 하시고 신혼 여행에서 돌아와 손주의 떨어지는 눈물과 함께 따뜻한 마지막 손을 잡고 무사히 돌아옴에 안도의 한숨을 쉬는 그 끝없는 자식을 위한 사랑을 무엇으로 측량할 수 있겠습니까? 오래오래 살면서 자녀들이 잘 되는 것을 보시려고 특별히 국수를 좋아하셔서 우리 자녀들이 좀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더 많은 국수를 사 드리려고 했는데 이제 생각하면 국수를 더 못사 드린것이 어머니의 생명을 단축시키는 결과가 되었군요. 어머니병실에서 괴로워하시는 것 보다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것이 더 편안하실 것 같아 이제는 보내 드리렵니다. 어머니가 늘 외로우실 때면 강가를 거닐며 외로움을 삭이던 그 강가에서 저희 자녀들이 어머님이 생각나면 집 뒤편 말없이 물끄러미 우리를 바라보시며 침묵으로 ‘열심히 살아라, 믿음으로 살라’고 하시며 어머니 말씀을 대언할 그리움의 강가에서 어머니를 생각하곤 하겠습니다. 어머니 자녀들을 위해 새벽마다 눈물을 뿌려 기도하던 그 선광교회 어머니가 앉으셨던 자리가 오늘은 더욱 커 보입니다. 때때로 듣는 어머니의 기도가 그토록 간절 하셨던 이유를 이제 조금은 알 것도 같습니다. 다시 채울 수 없는 그 자리를 저희 자녀들이 넉넉하게 채우겠습니다. 어머니의 십자가를 향한 그 아름다운 발자취를 자녀들이 이어가겠습니다. 어머니가 이루지 못한 사명을 자식들이 힘써 작은 불꽃처럼 생을 태우는 가슴으로 사는 인생이 되어 명예스럽게 빛나는 꽃송이로 향기있는 인생 살다가 주님이 오라시면 어머니를 뵙겠습니다. 오늘은 혼자 가셔야 하겠네요. 아직 저희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그리고, 생을 다하는 날까지 그리워할 것입니다. 안녕히 가세요. 2005년 11월 9일 좀 더 잘해 드리지 못한 넷째 사위 박병욱권사가 드립니다.
첫댓글 형제가 연합함이 어찌그리 아름다운지요..."
뒤늦게 이곳을 알았습니다. 할머님을 위해 좋은 공간을 마련해 주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