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도 오고나서 꽃들이 너도나도 피어나는 4월에 답사를 떠났다.날씨도 맑고 따뜻했다.
9시 다 되어 단북면사무소에 도착해서 신용우감사님과 백인수 선생님을 만나서 악수하고 조금 기다려서 의성읍에서 온 분들과 합류를 했다.한 달만에 만나는 반가운 분들과 인사를 하고 나서 단체사진을 찍고 4대의 자가용에 나누어타고 첫 목적지인 단밀면 서제리거북석으로 향했다.
그림 1) 거북석
거북석은 서제리 417번지에 있다.길가에 차를 대고 길가 철망집 속에 있는 돌거북을 보았다.햇살이 비추어 누런 거북이가 빛난다.
이 마을에는 조선시대 부녀자들의 바람기가 세서 마을이 술렁거릴 때 한 스님이 지나가다가 촛대바위를 보고 고개를 흔들며 주민들에게 바위쪽을 향해 거북상을 땅에 묻어 나쁜 일을 방지하라고 일러주어서 주민들이 마을앞 500보 앞 논에 묻고 대보름에 제를 올렸다고 한다.2012년에 경지정리를 하다가 포크레인에 걸려서 발견되어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고 한다.보면 거북 등에 포크레인에 긁힌 자국이 남아 있다.거북이는 지금도 마을을 말없이 지켜주는 듯 한없이 앞산을 바라보고 있다.
그림 2) 신당
신당은 서제리 467-2번지에 있다.거북석과 가까워 운전 안 하는 분들은 걸어서 그기까지 갔다.운전자는 차타고 갔다.
주위에 자갈을 깔아놓고 그 안에 벽돌담을 아담하게 쌓고 그 안에 신당이 있다.신당을 관리하는 아주머니가 문을 열어 주셨다.
파란색 양철지붕에 벽을 하얗게 칠해 놓고 새끼줄을 왼쪽으로 꼬아서 문종이를 하나씩 끼워놓았다.뒤편에는 당나무도 보인다.
신당은 마을을 지켜주는 신을 모신 집이다.그런데 관리하는 분이 무당들이 가끔씩 와서 제물을 차려놓고 굿을 하고 기를 받아 간다고 한다.무당들은 먼 곳에 있지만 신이 이곳으로 가라고 알려주어서 찾아온다고 한다.지금은 못 오게 "무당 굿판금지"안내문을 달아놓았다.마을을 지키는 신의 힘이 약해지면 마을도 약해질 것 같다.
그림 3) 선돌
선돌은 서제리 417번지,391-25번지에 있다.거북석 왼쪽에 있고,거북석 북쪽 100m정도 떨어진 길가 오른쪽에 있다.신당과 가까워 걸어 가서 봤다.거북석 왼쪽의 선돌은 길쭉하고 끝이 뭉특한 모양으로 새끼줄을 돌의 목부분에 감아놓았다.크기는 높이 130cm,폭 50cm,두께 30cm정도이다.또다른 선돌은 길쭉하고 끝이 뾰족하고 새끼줄을 돌의 허리부분에 감아놓았다.크기는 높이 200cm,폭 30cm,두께 30cm 정도이다.여기 선돌은 마을 뒷산에서 내려오는 정기가 앞에 있는 들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세워놓았다고 한다.
정기가 가다가 선돌에 모였다가 다시 마을로 퍼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앞들이 넓어서 3기는 있어야 다 막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림 4) 안동권씨 분산각석
안동권씨 분산각석으로 차를 타고 이동을 했다.서제리 산 9번지에 있다.선돌에서 북쪽 길로 700m정도 가면 길가 왼쪽 암벽에 있다.
길가 암벽에 잘 보이도록 동쪽방향으로 새겨놓았다.보니까 나무가지가 각석을 가리는게 눈에 띄어 바로 차에 실린 사다리를 꺼내어 암벽에 걸치고 가지를 톱으로 자르려고 했는데 여러 선생님들이 꺾으면 된다고 해서 그대로 하니 잘 부러진다.글씨중에 물때가 묻어 시꺼면 부분은 칫솔로 문질러서 알아보게 했다.세 군데 나누어 새겨놓았는데 오른쪽은 암벽을 조금 파고 그 안에 새기고
가운데는 그냥 새기고 왼쪽은 암벽을 깨서 지붕만 남기고 그 안쪽에 새겼다.오른쪽에는 束薪頂 此岩上 山主 安東 權氏 墳山 坤坐 亥坐(속신정 차암상 산주 안동 권씨 분산 곤좌 해좌)라고 새겨놓고 가운데는 丹西 庚子 三月 日(단서 경자 삼월 일) 이라고 새겨놓았다.왼쪽은 坤坐 亥坐 壬坐(곤좌 해자 임좌)라고 새겨 놓았다.안동 권씨의 무덤이 이 곳 위쪽 산에 있어서 잘 찾아갈 수 있게 표시를 해 놓은 모양이다.바위에 새긴 글씨를 보면 저절로 반갑다.
그림 5) 나주정씨 분산각석
나주정씨 분산각석은 서제리 산 9번지에 있다.안동권씨 각석에서 오른쪽으로 암벽을 10m정도 돌아가면 보이는데 북쪽방향으로 새겨져 있다.그런데 나무와 덩굴로 좀 가려져서 잘 안 보인다.그래서 덩굴을 먼저 끊어내고 약간 위쪽에 있는 나무를 자르니 글씨가 잘 보인다.여러 선생님들이 나무를 잘라서 치우고 나는 사다리를 걸치고 올라가 글씨를 덮고 있는 이끼와 물때를 분무기와 칫솔로 걷어내었다.큰 글씨를 먼저 청소하니 오른쪽에 작은 글씨가 있다고 하셔서 청소를 하니 6글자가 나와서 글씨를 파악하고 해석을 하다가 마지막 글자를 해석하기 힘들었는데 박금숙선생님이 풀이를 해서 여러 선생님들이 좋아했다.글씨는 欠范山 羅州 丁氏 墳山 後孫 若愚 以範(흠범산 나주 정씨 분산 후손 약우 이범)이라고 새겨놓았다.글씨가 좀 닳아서 오래전에 써놓은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크고 멋있게 써 놓았다.나주 정씨가 이 산에 묘를 써놓은 것을 알아보라고 새겨놓은 것으로 보인다.
그림 6) 기동사경 각석
기동사경 각석은 서제리 산31-4번지에 있다.나주정씨 각석에서 남쪽으로 200m정도 내려와서 오른쪽 좁은 길로 1km정도 들어가니 갈림길이 나오는데 오른쪽 좁은 길로 20m정도 올라가니 길가 오른쪽 큰바위에 있다.바위를 사각으로 파고 안쪽에 글씨를 새긴 대리석을 넣고 세멘으로 틈을 메꾸어놓았다.이런 경우를 가끔씩 보는데 잔 글씨를 많이 새겨야 할 때는 자연석에 새기면 글씨가 오래가지 못하기에 매끈한 대리석을 쓴다.따뜻한 남쪽방향으로 보고 있다.글씨는 基洞 四景(기동 사경),東流渭水 靑龍之形(동류위수 청룡지형),西立佛山 白虎之像(서립불산 백호지상),南護菊峴 千里之郭(남호국현 천리지곽),北高王頭 萬年之城(북고왕두 만년지성),金寧 后人 金鎭道 題(김녕 후인 김진도 제),海州 后人 吳大根 書(해주 후인 오대근 서),吳圭根 金敬淵 金丙洙 吳琮煥(오규근 김경연 김병수 오종환),檀紀 四三O八年 乙卯 正月 日 立(단기 사삼O팔년 을묘 정월 일 립)이라고 새겨져 있다.1975년에 김진도라는 분이 기동 마을의 사방 경치를 표현했다고 한다.눈높이에 새겨놓아서 보기가 아주 좋다.
점심을 먹고 나서 단북면사무소 주차장에 있는 여민정(與民亭)에서 간식을 먹으며 잠깐 쉬었다가 오후의 첫 번째 답사지인 단북면 효제리에 있는 대제지 둑으로 갔다.
그림 7) 대제지 둑
대제지 둑은 효제리 369-1번지에 있다.길가에 차를 대고 나오니 조금 더워서 모자를 쓰고 둑으로 올라갔다.나지막한 언덕이었다.
둑의 약간 낮은 곳은 물을 건너편에서 이쪽으로 넘기는 곳이라고 했다.둑으로 다 올라가니 넓은 효제리 들판이 잘 보인다.둑 아래는 수로를 깊이 일자로 파서 물이 지나가도록 만들어 놓았다.대제지는 큰 저수지였는데 못둑이 활장처럼 생겨서 활못이라고 불렀다고
한다.1970년 이전에는 둑이 다져진 층층을 확인할 수 있었으나 1972년에 대경지정리를 하면서 둑을 헐어 논으로 만들면서 완전히 사라졌다고 한다.고인돌을 보기위해 성암리로 이동을 했다.
그림 8)성암리 고인돌
성암리 고인돌 때는 성암리 1218번지에 있다.성암1리 칠성마을 앞 소공원에 고인돌들이 여러 개가 나란히 있는게 보인다.바로 근처에 쉼터가 있어서 참 좋다.열매 달리는 개나리도 있다고 해서 신기하게 봤다.이 동네는 신용우 감사님의 댁이 있는 곳이라고 어느 선생님이 알려주셨다.논에 박힌 고인돌들 때문에 농사를 짓는데 걸려서 이쪽으로 옮긴 것도 있고 못 옮긴 것은 땅속에 묻어놓았다고 한다.형태는 전부 땅에 박혀있는 고인돌이다.땅에 박힌 것은 고인돌인지 얼른 구별이 안 간다.아는 분이 알려줘야 그렇구나 한다.돌 위쪽에 모두 표시를 해놓으면 어떨까 생각한다.이연리로 이동했다.
그림 9) 이연리 고인돌
이연리 고인돌 때는 이연리 844번지에 있다.근처까지 차를 몰고 갔다.앞쪽 검은 비닐을 깔아놓은 밭 중간에 고인돌 4기가 띄엄띄엄 자리를 하고 있다.비닐덮은 밭의 고인돌은 처음 본다.밭가에도 넓적한 돌이 있길래 물어보니 지하문식 고인돌이라고 했다.넙적하고 길쭉한 돌 두 개를 땅에 새워서 묻고 그 위에 같은 모양의 돌을 덮는 방식이라고 했다.처음 듣는 방식이다.한국전통창조박물관으로 이동했다.
한국전통 창조박물관은 이연리 801번지에 있다.폐교된 단북초등학교를 수리해서 들어섰다.원래는 구미시 무을면이 있는 금오민속박물관이 있었는데 건물이 오래되어 안전검사에 통과되지 못해서 그 안에 있는 물건들을 이 곳으로 옮겨오고 이름도 바꾸었다고 한다.
인상이 좋으신 박물관장님의 안내로 들어가서 안내책자를 받고 1층부터 2층까지 차례대로 둘러보았다.민속품들과 사모님이 만든 종이공예품을 구경하고 내려와서 식탁에 둘러앉아 준비한 향이 진한 목련잎차와 찌짐과 과일을 먹고 나서 답사를 마치고 헤어졌다.
DSCN2570.jpg(거북석)
DSCN2573.jpg(신당)
DSCN2575.jpg(선돌)
DSCN2618.jpg(안동권씨 분산각석)
DSCN2612.jpg(나주정씨 분산각석)
DSCN2596.jpg(기동사경 각석)
DSCN2578.jpg(대제지)
DSCN2583.jpg(성암리 고인돌)
DSCN2586.jpg(이연리 고인돌)
첫댓글 이 번 답사에 심선생님 역할이 컸습니다. 답사글 잘 봤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바위글이 많아서 좋았습니다~^^
답사후기와 선명한 사진이 그날의 감흥을 새롭게합니다.
회장님의 모자에 꼽은 복사꽃이 눈길을 끕니다~^^
대제지의 위치에 있어서 의견이 대립되지요 그 대립되는 이유와 위치를 병기 하였으면 합니다.
대립하는 의견이 뭔지 모르겠습니다~^^
@닥밭골 심충성 심선생님, 이재중 선생님의 말씀은 1. 현재 세워진 대제지 유허비(안계고교)가 서 있는 일원에 대제지가 있었다는 의견(고 조현주 선생님, 고 이중헌 문화원장님 의견, 한동선 당시 의성농지개량조합장님은 생존해 계심), 2. 신용우 선생님의 의견으로 단북면 효제리 일원에 대제지가 있었다는 의견 이 두 가지를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어느 의견이 맞는지는 저도 현장답사를 다녀오지 않아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단북면 효제리 일원일 가능성이 있다고 사료됩니다. 효제리의 제자가 제방이 있었음을 증명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선안지(단북면 효제리 484번지) 일원에 대제지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