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렉트로닉 뮤직'(Electronic music: '전자음악'[電子音樂])이란 그 음악의 제작 과정에서 '전자 악기'(electronic musical instruments)와 '전자 음악 기술'(electronic music technology)을 사용한 음악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전기-기계적인 수단'(electromechanical means)을 사용해서 만든 음향과 '전자적인 기술'(electronic technology)을 사용해서 만든 음향 사이에는 구분이 가능하다.(주1) '전기-기계적인 음향생성 장치'의 예로는 텔하모니엄(telharmonium: [역주] 전자 오르간의 조상격인 악기), 하몬드 오르간(Hammond organ), 일렉트릭 기타(electric guitar: 전기 기타) 같은 악기들이 있다. 그리고 '순수하게 전자적인 음향을 생성하는 장치'의 예로는 테레민(Theremin: [역주] 극히 초보적인 음향생성 전자장치), 사운드 신디사이저(sound synthesizer: [역주] 음향의 전자적인 생성, 변형이 가능한 장비. 주로 건반형 입력장치를 가진 것이 많음), 그리고 컴퓨터가 포함될 수 있다.(주2)
'일렉트로닉 뮤직'이란 용어는 한 때, [클래식 음악의 전통에 이어지는] 서양의 아트 뮤직(art music)에만 거의 배타적인 관련성을 지니는 말이었다. 하지만 1960년대에 적절한 음악적 기술력이 확보되어 손쉬운 이용이 가능해지면서, 이 용어는 전자적인 수단을 사용하여 만든 음악을 의미하게 되었고, 점차 대중적인 음악 영역에서도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말이 되었다.(주3) 오늘날의 '일렉트로닉 뮤직'은 실험적인 아트 뮤직에서부터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lectronic dance music)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범위를 포괄하고 있다.
(주1)"일렉트로닉 뮤직의 소재는 전자적으로 생성되거나 변형된 음향(sounds)이다. (중략) 그 위상에 관한 역사적 논의의 일부에 관해서는, 두 가지 기본적인 정의를 살펴보는 것이 도움을 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순수하게 전자적인 음악'(purely electronic music)과 '일렉트로-어쿠스틱 음악'(Electroacoustic music)의 구분이다." ---- Thomas B. Holmes (2002), Electronic and Experimental Music: Pioneers in Technology and Composition (2nd ed.) (London: Routledge Music/Songbooks), p.6.
(주2) "일렉트로-어쿠스틱 음악은 자연세계의 소리를 전자적으로 변형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따라서 자연세계의 모든 소리가 일렉트로-어쿠스틱 음악의 음원(音源, source material)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소리들은 마이크나 녹음기, 혹은 디지털 샘플러(digital sampler: 음원을 채록하는 디지털 장비)의 대상 영역이며, 라이브 음악이나 녹음된 음악과 관련을 가질 수 있다. 라이브 공연 중에는 전자 장치를 이용하여 자연 음향을 실시간으로 변형시킨다. 이때의 음원은 공연장 주변의 소음에서부터 뮤지션들이 현장에서 연주하는 전통적인 악기 소리에 이르기까지 그 어떤 것이라도 이용가능하다. --- Thomas B. Holmes (2002), 앞의 책, p.8.
(주3) "전자적으로 생성된 음악은 주류적 대중문화의 한 부분이 되었다. 환경에서 획득한 소리의 사용, [배경음악적 특성을 지니는] 앰비언트 뮤직(ambient music), 턴테이블을 이용한 음악(turntable music), 디지털 샘플링(digital sampling), 컴퓨터 음악(computer music), 어쿠스틱 사운드의 전자적 변형, 사람 발언의 일부를 이용한 음악과 같은 음악적 개념들은 한때는 급진적인 것으로 여겨졌지만, 현재는 다양한 장르의 대중음악에서 채용하고 있다. 뉴에이지(new age), 랩(rap), 힙합(hip-hop), 일렉트로니카(electronica), 테크노(techno), 재즈(jazz), 그리고 팝 음악(popular song) 같이 레코딩이 필요한 장르들은 모두 고전적인 일렉트로닉 뮤직에서 파생된 프로듀싱 기술과 효과들에 강하게 의존하고 있다." --- Thomas B. Holmes (2002), 앞의 책, p.1.; "1990년대 무렵에 일렉트로닉 뮤직은 음악적 삶의 거의 모든 구석구석까지 침투했다. 그것은 밀교(密敎)적 성향의 실험적 음악인들이 연주한 에테르 같은 음파에서부터, 거의 모든 대중음악 레코딩에서 나타나는 두드러진 신코페이션(syncopation: [역주] 당김음. 속칭 '엇박자')에 이르기까지 그 외연이 확장되었다." --- Lebrecht, Norman (1996), The Companion to 20th-Century Music (Da Capo Press). p.106.
(사진) 레온 테레민(Léon Theremin: 1896~1993) 교수가 1919~1920년경에 발명한 테레민(Theremin)의 모습.
1. 기원 : 19세기 말 ~ 20세기 초
소리를 녹음하는 능력이 종종 일렉트로닉 뮤직의 제작과 관련을 가지긴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반드시 필요한 일도 아니다. 현재까지 알려져 있는 가장 최초의 녹음장치는 프랑스인이었던 에두아르 레옹 스콧(Édouard-Léon Scott de Martinville: 1817~1879)이 1857년에 발명했던 포노토그래프(phonautograph)라는 기기였다. 이 장비는 소리를 시각적 신호로 변형시켜 기록했지만([역주] 연기에 그을린 종이나 유리 표면에 곡선 등의 자국을 남겨서 기록), 다시 소리를 재생해낼 수 있었다.(주4) 이후 1878년에는 미국의 발명가 토마스 에디슨(Thomas A. Edison: 1847~1931)이 포노그래프(phonograph)라는 기기를 만들어냈다. 이 기기는 원통형의 실린더를 이용하여 스콧의 기기와 유사한 기능을 하도록 한 것이었다. 에디슨이 사용한 실린더도 때로는 재사용이 가능하긴 했지만, 에밀 벌리너(Emile Berliner: 1851~1929)는 1887년에 디스크를 이용한 포노그래프를 발명했다.(주5)
하지만 후대의 일렉트로닉 뮤직에 깊은 영향을 준 중요한 발명품은 미국의 리 드 포레스트(Lee De Forest)가 1906년에 만든 삼극 진공관 '오디온'(audion)이었다. 오디온은 최초의 열이온 관, 즉 진공관이었다. 오디온이 나타남으로써 전기신호 증폭장치(=앰프), 라디오 방송, 전자계산기 등 여타 기기들이 탄생할 수 있었다.
일렉트로닉 뮤직이 등장하기 전에도, 작곡가들 사이에서는 새롭게 출현하는 기술들을 음악적 목적으로 사용해보려는 열망은 증가하고 있었다. 전기-기계적인 설계를 채택한 몇몇 악기들이 탄생했고, 이러한 악기들은 후대의 전자 악기들이 출현할 수 있는 길을 닦게 되었다.
미국의 발명가 타데우스 캐이힐(Thaddeus Cahill: 1867~1934)은 1898~1912년 사이에 텔하모니엄(Telharmonium)을 발전시켰다. 텔하모니엄은 때때로 '텔레하모니엄'(Teleharmonium)이나 '다이나모폰'(Dynamophone)이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이 악기는 그 크기가 너무 커서 사용이 불편했기 때문에 보급에는 난점이 있었다.
(사진) 타데우스 케이힐이 발명한 텔하모니엄의 모습.
초창기 전자악기로 종종 언급되는 것 중 하나는 소련(=현재의 러시아)의 레온 테레민(Léon Theremin: 1896~1993) 교수가 1919~1920년경에 발명한 테레민(Theremin)일 것이다.(주6)
앞서 언급한 오디온 진공관의 발명자인 리 드 포레스트가 1915년에 발명한 '오디온 피아노'(Audion Piano),(주7)(주8) 러시아의 니콜라이 오부코프(Nikolai Obukhov: 1892~1954)가 1926년에 발명한 '크로익스 소노'(Croix Sonore) 같은 악기도 초창기의 전자악기들에 포함된다.
또한 프랑스 작곡가 올리비에 메시앙(Olivier Messiaen: 1908~1992)이 유명한 오케스트라 곡 <투랑갈릴라 교향곡>(Turangalîla-Symphonie)이나 그밖의 곡들에 사용했던 옹드 마르트노(Ondes Martenot) 같은 악기도 있다. 옹드 마르트노는 메시앙 외에도 주로 프랑스인들인 여타 작곡가들도 사용했는데, 앙드레 졸리베(Andre Jolivet: 1905~1974) 같은 이들이 여기에 포함된다.(주9)
(주5) Russcol, Herbert (1972), The Liberation of Sound: An Introduction to Electronic Music, Englewood Cliffs, New Jersey: Prentice-Hall, p.67.
(주6) 익명 (2001), "Theremin", BBC h2g2 encyclopaedia project (2001-4-2l), Guide ID: A520831 (Edited). [주석] --- 역사적으로 능동소자(active component)를 사용한 세계최초의 전자악기는 리 드 포레스트가 1915년에 발명한 '오디온 피아노'일 것이다. 그는 '오디온 진공관'을 발명했는데, 이 부품은 증폭(amplification) 및 진폭(oscillation)을 위해 사용됐다. 하지만 당시에는 진폭을 위한 수동소자(passive components)도 연구 중이었다. 예를 들면 네온 관(neon tube)이 대표적이다. 또한 더 많은 초창기 전자악기들에서도 발견된다.
'오디온 삼극 진공관'이 발명된지 꼭 1년 뒤인 1907년, 이태리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페르초 부소니(Ferruccio Busoni: 1866~1924: 우측 사진)는 <새로운 음악적 미학에 관한 스케치>(Sketch of a New Esthetic of Music)를 출판했다. 이 책은 미래의 음악에 있어서 전자 음원 및 여타 새로운 음원들을 사용하는 문제를 논의한 것이다. 그는 미래의 미분음적 음계(microtonal scales)에 관해 다음과 같이 적었는데, 아마도 캐이힐이 만든 다이나모폰이 만들어내는 음계에 관한 내용으로 보인다.
"오직 오랜 시간과 주의깊은 일련의 실험들 및 지속적인 귀(=듣기)의 훈련을 통해서만, 아직 익숙하진 않지만 이미 접근가능한 이러한 유연한 음악적 재료들이 다음 세대의 예술로 승화될 수 있을 것이다."(주10)
또한 부소니는 <새로운 음악적 미학에 관한 스케치>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소위 '서양음악'(occidental music)이라 부르는 예술의 한 장르로서의 음악은 그 역사가 400년을 넘지 못한다. 그것은 발전도상에 있는 것이며, 아마도 기존의 관념을 넘어선 발전으로 나아가는 바로 첫번째 단계에 서 있다고 보아야 것이다. 우리는 '고전'(클래식, classics)과 '거룩한 전통'(hallowed traditions)을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그것들에 관해 이야기해오지 않았던가! 우리는 규칙들을 형식화시켰고, 원칙을 말했으며, 법칙을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아무런 책임도 알지 못하는 한 아이가 성숙하도록 그 법칙들을 적용시켜 왔던 것이 아닌가!
있는 그대로 어린 이 아이에 대해, 우리는 이미 그가 하나의 광휘로운 속성을 소유했음을 인식한다. 그것은 그의 모든 누나들을 넘어서는 것을 신호로 만들고 있다. 또한 법칙의 창제자들은 자신들이 만든 법칙을 바람에 날려버리지 않는 한 이러한 신묘로운 속성을 보지 못할 것이다. 이 아이는 허공을 떠내려가고 있다! 그것은 자신의 발 아래에 있는 땅을 딛고 서 있지 않다. 그것은 중력의 법칙을 알지 못한다. 그것은 거의 무형에 가까운 것이다. 그 질료는 투명하다. 그것은 대기를 반향한다. 그것은 거의 자연 그 자체이다. 그것은 자유롭다!
하지만 그러한 자유란 인류가 거의 전적으로 파악하지 못한 어떤 것이며, 결코 완전하게 자각하지도 못할 어떤 것이다. 인류는 그것을 인식하지도 인정하지도 못한다.
그들은 이 어린이의 사명을 부인한다. 그들은 그것을 교수형에 처할 것이다. 이 붕 떠있는 존재는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깔끔하게 걸어야만 한다. 도약하도록 허용되진 않을 것이다. 그것이 무지개의 노선을 따르는 기쁨인 것처럼, 그리고 구름 사이의 햇살처럼 말이다."(주11)
많은 음악가들이나 작곡자들이 부소니의 저술이나 그와의 접촉을 통해 심오한 영향을 받았다. 아마도 그러한 이들 중 가장 주목할만한 사람은 부소니의 제자였던 프랑스 작곡가 에드가르 바레즈(Edgard Varèse: 1883~1965)일 것이다. 바레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함께 미래 세계의 음악적 방향에 관해 토론하곤 했다. 혹은 평균율 체계의 속박에 관한 한 다루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지닌 건반악기가 우리의 귀로 하여금 그 본성상 소리의 무한한 점진적 변이 중 극소한 부분만을 수용토록 하는 일을 탄식했다. 그는 우리가 겨우 듣기 시작할 수 있었던 전자악기에 대단한 흥미를 갖고 있었다. 나는 그가 특히 '다이나폰'이라 불리는 악기를 연구하던 것을 기억한다. 그의 모든 작품들을 들어보면, 그 이후 출현하게 될 미래의 음악에 관한 예언을 수없이 반복해서 발견할 수 있다. 실제로 그가 예견하지 않았던 발전들이란 거의 없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그의 예언은 특히 그러하다. --- "나는 거의 이렇게 생각한다. 새로운 위대한 음악에는 기계들이 필요할 것이고,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아마도 산업 역시 그러한 예술적 상승에 동반자가 될 것이다."(주12)
(주10) Busoni, Ferruccio (1962), Sketch of a New Esthetic of Music, translated by Dr. Th. Baker and originally published in 1911 by G. Schirmer. Reprinted in Three Classics in the Aesthetic of Music: Monsieur Croche the Dilettante Hater, by Claude Debussy; Sketch of a New Esthetic of Music, by Ferruccio Busoni; Essays before a Sonata, by Charles E. Ives, New York: Dover Publications, Inc., p.95.
(주11) 앞의 책, pp.76~77.
(주12) Russcol, Herbert (1972), The Liberation of Sound: An Introduction to Electronic Music, Englewood Cliffs, New Jersey: Prentice-Hall, pp.35~36.
이태리에서는 미래주의자(퓨처리스트, Futurists)가 출현하여 다른 각도에서 음악적 미학을 변화시켰다. 미래주의의 주요한 철학적 목표는 '소음'(noise)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으로서, 이전에는 심지어 아주 멀리 떨어진 음악적 요소로조차 인정받지 못하던 소리들에 예술적, 표현적 가치를 부여했다.
발릴라 쁘라텔라(Balilla Pratella)는 1911년에 발표한 자신의 논문 <미래주의 음악의 기술적 선언>(Technical Manifesto of Futurist Music)을 통해, 자신들의 신조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의 신조는 대량주의와 거대 공장들, 그리고 철도, 대서양 횡단자들, 전함들과 자동차, 그리고 비행기에 관한 음악적 정신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은 음악적 시(詩)가 지닌 위대하고도 중심적인 주제들을 기계 및 전기의 승리의 왕국에 부가하고자 하는 것이다."(주13)
미래주의자로서 이태리 화가이자 작곡가였던 루이지 루솔로(Luigi Russolo: 1883~1947)는 1913년 3월 11일에 <소음예술>(The Art of Noises)이란 강령을 발표했다. 그는 1914년 4월 21일 밀라노에서 최초의 '소음예술'(art-of-noises) 콘서트를 개최했다. 이 공연에서 루솔로는 자신이 만든 소음기계인 '인토나루모리'(Intonarumori)를 사용했다. 루솔로는 이 악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이 악기는 어쿠스틱 소음 유발 악기로서, 웅웅거리는 소리, 으르렁거리는 소리, 질질 끌리는 소리, 콸콸흐르는 소리 등의 음향들을 수동으로 조작하여 나팔과 확성기를 통해 재현하는 것이다."(주14)
이 시기에는 초창기 전자악기들이 풍부하게 탄생했고, 전자악기를 위한 최초의 음악들도 작곡되었다.
최초의 악기는 레온 테레민이 1919~1920년 사이에 레닌그라드에서 제작한 '에테르폰'(Etherophone)이었는데, 이 악기는 나중에 '테레민'이란 명칭으로 바뀌었다. 테레민의 발명은 최초의 잔자악기 전용 음악의 작곡으로 이어졌다. 이 전자악기는 소음기계와는 다른 것으로서, 기계적 소리를 재현할 목적을 갖고 있었다.
1929년, 우크라이나 출신의 작곡가 조셉 실링거(Joseph Schillinger: 1895~1943)는 <테레민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최초의 에어폰 조곡>(First Airphonic Suite for Theremin and Orchestra)을 작곡했다. '클리브랜드 오케스트라'(Cleveland Orchestra)가 초연한 이 곡의 공연에서 레온 테레민은 협연 독주자로 참가했다.
테레민 외에도, 프랑스인 모리스 마르트노(Maurice Martenot)가 1928년 '옹드 마르트노'를 발명하여 파리에서 첫선을 보였다.(주15) 이듬해에는 미국의 전위적 작곡가인 조지 앤타일(George Antheil: 1900~1959)이 자신의 미완성 오페라 <미스터 블룸>(Mr. Bloom)을 발표했다. 이 음악은 기계적 장치들과 전자적인 소음제조기, 그리고 모터와 앰프들을 위한 최초의 음악이었다.
1927년, 미국 발명가 오닐(J. A. O'Neill)이 녹음장비를 개발하면서 음향 레코딩이 극적인 도약을 했다. 그의 장비에는 자기처리된 리본이 사용됐다. 하지만 그는 상업적으로는 실패했다. 그보다 2년 뒤, 로렌스 하몬드(Laurens Hammond: 1895~1973)가 전자악기 제조회사를 설립했다. 그는 초기적인 '리버브 장비'(reverberation units: 잔향감을 증폭하는 장치)와 더불어, '하몬드 오르간'(Hammond organ)을 생산했는데, 이 악기는 원래 '텔하모니엄'의 원리를 기반으로 한 것이다.(주16) 로렌스 하몬드는 존 하넛(John Hanert) 및 C. 윌리암스(C. N. Williams)와 함께 또 다른 전자악기인 '노바코드'(Novachord)도 발명하려고 했다. 하몬드의 회사는 이 악기를 1939~1942년 사이에 제조했다.(주17)
(사진) '하몬드 오르간' 사가 1937년에 출시한 '하몬드 B3' 모델은 회전식으로 도플러 효과를 만들어내는 레슬리 스피커(Leslie speaker) 시스템을 장착하고 있었다. 하몬드 사의 오르간 제품들은 원래 교회의 파이프 오르간을 대체할 목적으로 제작되었지만, 이후 락과 재즈 등 다양한 장르들에서 사용되면서 20세기 건반악기의 발전사에서 가장 중요한 제품 중 하나가 되었다.
영화에 사진-광학적 음향 녹음 방법이 사용되자, 음파를 시각적 영상으로 바꾸는 일도 가능해졌다. 또한 그와 반대의 방식인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음파를 이용하여 소리를 신디사이징(synthesizing: 합성)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바로 이 시기에 '사운드 아트'(sound art) 장르의 실험들이 시작되었고, 그 선구자들에는 루마니아계 프랑스인 트리스탄 차라(Tristan Tzara: 1896~1963), 독일의 화가 쿠르트 슈비터스(Kurt Schwitters: 1887~1948), 이태리의 미래주의 시인이었던 필리포 톰마소 마리네티(Filippo Tommaso Marinetti: 1876~1944) 같은 이들이 있다.
(주15) 최종적으로 옹드 마르트노를 사용한 작곡가들에는 피에르 불레즈(Pierre Boulez: 1925~ ), 아르튀르 오네게르(Arthur Honegger: 1892~1955), 앙드레 졸리베(André Jolivet: 1905~1974), 샤를 쾌슐랭(Charles Louis Eugène Koechlin: 1867~1950), 올리비에 메시앙(Olivier Messiaen: 1908~1992), 다리우스 미요(Darius Milhaud: 1892~1974), 질레스 트렘블래이(Gilles Tremblay: 1932~ ), 에드가르 바레즈(Edgard Victor Achille Charles Varèse: 1883~1965) 같은 이들이 있다. 메시앙은 1937년에 6대의 옹드 마르트노를 위한 곡인 <아름다운 물의 제전>(Fête des belles eaux)을 작곡했고, 1943~1944년 사이에는 여성 합창 및 관현악곡인 <하느님 현존의 3가지 소전례>(Trois petites Liturgies de la Présence Divine)를 작곡하면서, 옹드 마르트노를 위한 독주 부분도 창작했다. 그리고 1946년에 작곡한 <투랑갈릴라 교향곡>에서도 옹드 마르트노를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