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지역의 교육에 헌신한 우리 종친 현대 인물 3인을 소개합니다.
조재돈은 1881년에 태어나 1942년에 사망했다. 그는 김제지역에 남자 중학교가 없어 학생들이 타지역으로 가야 학교공부를 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이에 그는 전북 순창군에 있던 자신의 소작 농지 6만6천여평을 기성회에 기부하였다. 기성회는 이 기금을 바탕으로 모금운동을 펼치었다. 이 돈을 모아 김제에 학교교육을 받을 수 있는 소박한 교정을 만들고 젊은 청년들에게 교육을 실시하였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1947년 9월 25일 김제제일중학원으로 개원하였다. 같은 해 11월 29일 김제공립중학교로 인가받았다. 현재 김제중학교의 전신이 된 것이다.
조재식은 1898년에 태어나 1957년에 사망하였다. 그는 김제가 광범한 농촌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농업학교가 없는 것을 통탄하였다. 이에 그는 사재 전답 5만여 평을 농업학교 건립기금으로 희사하였다. 이후 그는 농업학교 설립을 위한 기성회가 결성된 후 기성회장이 되었다. 기성회원과 임원이 혼연일체가 되어 1950년 6월 1일 김제농업중학교를 설립하였다. 이듬해 8월 김제농업고등학교로 승격되어 복지 농촌 건설을 위하여 필요한 영농인재 양성에 공헌하였다. 이 김제농업고등학교는 1998년 3월 1일 김제자영고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현재 이 학교는 창의적 개척으로 지역사회 발전에 앞장서는 자영인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으며 교훈은 '창조, 자립, 협동'이다.
조인행은 1873년에 태어나 1942년에 사망했다. 1911년 6월 24일에 개교한 김제공립보통학교는 1935년도 들어 학생들의 증가로 인해 학교건축이 어려워지자, 그는 1937년 어떠한 보상도 일체 바라지 않고 오로지 김제의 초등 교육이 잘 이행되기를 바라는 일심으로 당시 1천원(현 시가 약 75억 여원)을 기부하였다. 이 기금이 기반이 되어 학교는 증설된 후 1941년 4월 1일 김제중앙국민학교 개칭되었고 이후 1996년 3월 1일 김제중앙초등학교로 교명을 바꾸었다. 현재 이학교는 시간관리를 잘 하는 어린이, 신용사회의 기본이 되는 도덕인, 순발력과 경쟁력을 가진 지식 사회인 육성을 목표로 삼고 정진하고 있다.
조재돈, 조재식, 조인행 등은 부국의 길이 바로 교육에 있음을 자각하고 자신들의 사재를 털어 기부하여 지역 교육발전에 앞장섰다. 그들의 교육에 이바지한 정신은 김제 지역 젊은 청년 누구나 평등하게 교육을 받아 미래 한국 사회의 참다운 사회인이 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들의 교육정신은 멀리 고려후기에 활약한 문량공 조간의 교육정신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고, 조선시대 용암서원이 유교교육을 담당하여 김제 지역의 학문의 장을 열었던 것에서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 3인의 참교육정신의 소유자가 있었기에 지금도 김제시의 청소년들은 바른 인성과 창의적인 꿈을 실현하려고 즐겁게 공부하고 있고, 교육자들은 사명감을 갖고 교육활동에 전념하고 있다(출처,조형토, 김제조씨 인물과 문화유적, 제1집, 문량공조간유허비각중수회,2011, 3, 63면~6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