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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강해(2) 2018. 7. 18
서원을 갚은 한나
삼상 1:19-28
<서원하며 기도한 한나>
아이를 낳지 못해, 또 브닌나로부터 받은 모멸감을 견디지 못해 한나는 성전에 올라가 울며, 서원하면서 기도하였습니다.
11절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삭도를 머리에 대지 않고 나실인으로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겠다는 서원입니다.
오래 기도하던 한나는 지쳐서 속으로 말하고 입술만 움직였습니다. 그러자 엘리 제사장은 그녀가 술에 취한 줄로 알고 그녀를 책망하였습니다. 한나는 자신을 오해한 엘리에게 화를 내지 않고 겸손히 자신의 원통함을 이야기하였습니다(12-16절).
한나의 말을 들은 엘리는 그녀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녀를 축복해 주었습니다.
17-18절 “엘리가 대답하여 이르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18 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
놀라운 것은 엘리의 축복기도를 듣고 한나의 마음속에 근심이 사라진 것입니다. 그녀의 마음에 응답의 확신이 생겼습니다.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고 했습니다. 주의 종의 입을 통한 축복을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한나를 생각하여 주신 하나님>
집으로 돌아간 한나에게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19절 “그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돌아가 라마의 자기 집에 이르니라 엘가나가 그의 아내 한나와 동침하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예, 기도한 대로 응답이 이루어져 한나가 임신한 것입니다.
이것을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는 말씀으로 표현했습니다. 임신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졌음을 표현하는 말씀입니다. ‘생각하다’(자카르 : זכר)는 ‘기억하다’의 뜻으로 어떠한 일을 마음속에 항상 담아 두고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창 8:1; 느 5:19). 하나님께서 한나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잉태케 하신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가 일으키는 역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으로 하여금 우리를 생각하게 합니다. 기억하십니다.
마치 부탁을 들으면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기도하여 하나님이 늘 생각하시기 하는 성도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사무엘이라 이름하였으니>
드디어 때가 차서 아들을 낳았습니다.
20절 “한나가 임신하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
한나는 아들을 낳고 이름을 ‘사무엘’이라고 지었습니다. 그 뜻은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즉 ”내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얻었다”는 뜻입니다.
한나의 신앙이 그 아들의 이름을 통해 잘 드러납니다.
어떤 일이 벌어지면 자기가 잘해서 그렇게 된 줄로 알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기도하고도, 기도의 응답으로 이루어졌음에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나는 달랐습니다.
남편과 그저 동침해서 낳은 아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아들임을 고백한 것입니다.
그랬기에 자신의 서원 또한 지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젖 떼기까지>
한나는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한 서원을 지키기로 결심하였습니다.
21-23절 “그 사람 엘가나와 그의 온 집이 여호와께 매년제와 서원제를 드리러 올라갈 때에/ 22 오직 한나는 올라가지 아니하고 그의 남편에게 이르되 아이를 젖 떼거든 내가 그를 데리고 가서 여호와 앞에 뵙게 하고 거기에 영원히 있게 하리이다 하니/ 23 그의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그대의 소견에 좋은 대로 하여 그를 젖 떼기까지 기다리라 오직 여호와께서 그의 말씀대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이에 그 여자가 그의 아들을 양육하며 그가 젖 떼기까지 기다리다가.”
기도가 응답된 후에도 엘가나는 해마다 매년제와 서원제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매년제’(제바흐 하야밈 : זבח־הימים)는 때를 따라 드리는 제사란 뜻입니다. 이스라엘이 해마다 지킨 제사로 온 가족이 함께 참여하였습니다(삼상 20:6, 29). 그런데 일 년 세 차례 지켜야 하는 유월절, 맥추절, 초막절 중 어느 한 절기에 매년 제를 지켰는지 아니면 그 절기들과 별도로 지켰는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서원제는 하나님께 드린 서원을 공식화하는 제사입니다. 여기에서 정관사 ‘ב’(the)가 붙은 것은 자식을 주시면 일평생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한 한나의 서원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한나는 함께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사무엘의 젖을 뗀 후에 올라가서 사무엘을 영원히 하나님께 드리고자 하였습니다. 오해하지 말 것은 그녀가 자신의 서원을 지키기를 두려워하여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왜 젖을 뗄 때까지는 데리고 있고자 했을까요? 젖을 먹이는 동안은 절대적인 보호의 기간입니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 어머니의 젖을 먹으면서 사랑을 경험하고 절대적인 신뢰감이 형성됩니다. 신앙적인 바탕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도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머니가 젖을 먹여 키우는 것의 놀라운 결과를 우리는 모세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습니다(출 2장).
이스라엘 자손은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가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였습니다. 어려운 노동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였으나 그들의 번성함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급기야 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 (십브라와 부아)에게 히브리 여인이 해산할 때에 그 자리를 살펴서 아들이거든 그를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두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려두었습니다. 그리고 애굽 왕이 책망할 때에 “히브리 여인은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더이다”라고 아뢰었습니다.
그 엄혹하던 시절에 태어난 아기가 바로 모세입니다. 석 달 동안 그를 숨겨 키웠으나 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갈대 상자에 태워 나일 강에 갈대 사이에 두었습니다. 그때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일 강에 왔다가 갈대 상자를 발견하고, 그 아기를 불쌍히 여겨 자신의 양자로 삼았습니다.
모세의 누이 미리암이 그것을 엿보고 있다가, 바로의 딸에게 “내가 가서 당신을 위하여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이 아기에게 젖을 먹이게 하리이까”하고 묻습니다. 바로의 딸이 허락하자 자신의 어머니를 불러오니, 그가 바로 모세의 친어머니 요게벳이었습니다. 요게벳은 모세에게 젖을 먹이면서 무슨 일을 했겠습니까? 젖을 먹이며 모세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심었습니다. 수유 교육이 모세의 어머니가 모세에게 해준 전부입니다.
그 후 모세는 이집트 궁전에서 인간적인 교육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젖을 먹일 때 심어 놓은 신앙이 그가 장성했을 때 나타났습니다. 모세는 장성하자 고통받는 이스라엘 백성의 편에 섰습니다. 이집트 왕자의 지위를 초개와 같이 버렸습니다. 그가 위대한 출애굽의 역사를 섬겼습니다. 이 모든 것이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이 젖을 먹이며 모세를 교육한 데서 온 것입니다.
사무엘은 나중에 불량자인 흡니와 비느하스와 자랍니다. 그런 가운데도 사무엘이 비뚤게 나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젖을 먹이면서 한 어머니의 신앙 교육 때문입니다.
이렇듯 어머니의 사랑과 신앙교육이 어린 시절 아이들의 심장에 새겨질 때에 일평생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 자녀들이 되는 것입니다(물론 아버지의 역할도 중요).
오늘 본문에서 사무엘의 아버지의 신앙 역시 대단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남편 엘가나가 한나가 서원을 갚도록 도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엘가나는 한나의 의견을 존중해 주었습니다. 그녀가 젖을 떼기까지 기다려 주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녀의 서원을 인정해 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민30:6-8 “또 혹시 남편을 맞을 때에 서원이나 결심한 서약을 경솔하게 그의 입술로 말하였으면/ 7 그의 남편이 그것을 듣고 그 듣는 날에 그에게 아무 말이 없으면 그 서원을 이행할 것이요 그가 결심한 서약을 지킬 것이니라/ 8 그러나 그의 남편이 그것을 듣는 날에 허락하지 아니하면 그 서원과 결심하려고 경솔하게 입술로 말한 서약은 무효가 될 것이니 여호와께서 그 여자를 사하시리라.”
남편 엘가나도 훌륭한 믿음의 소유자입니다. 한나는 남편 엘가나와 상의하지 않고 아기를 드리겠다고 서원하였습니다. 사무엘은 한나의 아들이지만 엘가나의 아들이기도 합니다. 엘가나가 자신과 상의도 없이 한 서원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반대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 소유는 무효가 됩니다. 그러나 엘가나는 한나의 서원 기도와 믿음을 존중하여 주었습니다. 엘가나는 한나가 서원을 갚도록 허락하여 주었습니다.
이러한 엘가나의 자세는 성경이 가르치는 남편상이기도 합니다.
벧전3:7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그렇습니다. 사무엘이라는 위대한 선지자가 탄생한 것은 어머니 한나와 아버지 엘가나의 믿음이 바탕이 되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들 부부처럼 영적으로, 육체적으로 동반자가 되어야 합니다.
<젖을 뗀 후에>
이스라엘에서는 생후 3년 동안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정확히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젖을 뗀 후에, 아마도 3년이 지난 후에 한나는 사무엘을 데리고 여호와의 집에 갔습니다.
24-25절 “젖을 뗀 후에 그를 데리고 올라갈새 수소 세 마리와 밀가루 한 에바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지고 실로 여호와의 집에 나아갔는데 아이가 어리더라/ 25 그들이 수소를 잡고 아이를 데리고 엘리에게 가서.”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한나의 마음에 어떤 유혹과 갈등이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서원을 지키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얼마나 어렵게 얻은 아들입니까? 이 아들을 하나님께 바치고 나면 곁에 두고 볼 수 없는데, 그 아들을 어떻게 그렇게 쉽게 포기할 수 있겠습니까? 온갖 핑계나 잔머리를 굴리 수 있습니다.
율법에 정해진 레위인의 법적인 복무기간은 30-50세입니다(민4:3). 경우에 따라 25세부터 시작한 경우도 있고(민 8:24-25), 20세부터 시작한 경우도 있지만(대상23:24) 평생 하나님께 헌신하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한나도 그 핑계를 대면서 20살까지 자신이 데리고 있다가 하나님의 집으로 올려보내겠다고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세 살이 되어, 젖을 떼자마자 서원한 대로 이행하였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농부가 있었습니다. 장날이 되어 황소 한 마리를 팔려고 집을 나섰습니다. 마침 강을 건너게 되었는데, 거기에는 나무로 만든 오래된 다리가 있었습니다. 그 다리 위로 황소를 끌고 가는데, 갑자기 하늘이 시커멓게 되더니 천둥, 번개가 치는 것입니다. 그 소리에 황소가 놀라서 발작을 일으켰습니다. 가뜩이나 오래된 낡은 나무다리인데, 황소가 거기에서 날뛰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다급해진 농부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발 이 황소 좀 얌전하게 해주세요. 그러면 황소 판 돈의 절반을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그러자 그 말이 끝나자마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갑자기 구름이 걷히고 하늘이 맑아지고 황소가 얌전해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농부에게 고민이 생겼습니다. 하나님과 약속한 것을 지키려니까 그 돈이 너무나 아까운 것입니다. 그렇다고 약속을 무시하자니 하나님께 받을 벌이 두렵고 말입니다. 그래서 궁리를 하다가, 꼼수를 하나 생각해 냈습니다. 시장에 가자마자 닭을 한 마리 사서 황소의 끈을 닭의 목에다 걸고 함께 끌고 다니면서 이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자, 닭을 사세요. 이 닭은 300만원인데, 닭을 사면 황소는 그냥 덤으로 드립니다.” 황소를 덤으로 주었으니 황소 값이 없어지는 셈이지요. 닭 판 돈은 하나님께 드리지 않아도 되지요. 그야말로 꼼수입니다.
성경에도 서원한 것을 지키지 못해 벌을 받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 행5:1-11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2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3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4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5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6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 7 세 시간쯤 지나 그의 아내가 그 일어난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오니/ 8 베드로가 이르되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이르되 예 이것뿐이라 하더라/ 9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하니/ 10 곧 그가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는지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의 남편 곁에 장사하니/ 11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갚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교훈하는 말씀입니다.
서원을 하고서 갚지 않는 것보다는 차라리 서원을 하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전 5:4-6).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꼭 갚는 것은 하나님을 경홀히 여기는 성도의 자세이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행위입니다(렘 44:15).
한나는 자신이 하나님께 서원한대로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더군다나 한나는 서원을 갚기 위해서 수소 세 마리를 잡고 밀가루 한 에바와 포도주 한 가죽 부대를 드렸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자신의 정성을 다 드렸습니다.
민수기 15장에 보면 하나님께 서원하는 사람이 드리는 제물에 대한 규례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소 한 마리에 소제로 가루 3/10에바를, 그리고 전제로는 포도주 1/2힌을 드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한나는 규정의 세 배에 가까운 풍성한 예물을 가지고 하나님께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정성을 다하여 드렸습니다. 한나가 하나님의 성전에 올라간 것이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헌신이면서 동시에 감사와 감격이 넘쳐 풍성한 제물을 드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확실한 믿음과 신실한 고백으로 자식을 하나님 앞에서 자라도록 헌신한 것입니다. 정말 대단한 믿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한나가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합니까?
성전에 있는 엘리에게 드리는 것입니다(25절 “그들이 수소를 잡고 아이를 데리고 엘리에게 가서.”).
이는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당시에 엘리는 타락해 있었습니다. 특히 그 아들들은 불량자였습니다. 이런 불량자와 함께 있느니 차라리 내가 데리고 있는 것이 낫다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나는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되 성전에 가서 하나님의 종 엘리에게 사무엘을 드렸습니다.
<한나의 신앙고백>
그러면 한나는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26-28절 “한나가 이르되 내 주여 당신의 사심으로 맹세하나이다 나는 여기서 내 주 당신 곁에 서서 여호와께 기도하던 여자라/ 27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내가 구하여 기도한 바를 여호와께서 내게 허락하신지라/ 28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가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한나는 과거 자신의 모습을 잊지 않았습니다. 한나는 여기서 기도하던 여자라고 말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올챙이적을 생각하지 못하고 교만해집니까?
오죽했으면 “화장실 갈 때 마음 다르고 화장실 나올 때 마음 다르다”는 속담이 있겠습니다.
한나는 과거 아들이 없어서 원통 해하며 하나님 앞에 울며 간구하던 자신의 모습을 잊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기도 할 때 다급했던 그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응답해 주신 하나님을 잊지 않았습니다. 내가 기도하였더니 하나님께서 기도한 바를 허락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녀는 아이가 생긴 것을 우연으로 돌리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잘해서 얻은 것으로 생각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하신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이 믿음이 있었기에 한나는 자신의 서원을 갚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특별히 본문 28절에 보면 “여호와께”라는 단어가 무려 세 번이나 사용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라는 말은 “여호와를 위하여”라는 의미를 가진 말입니다. “여호와를 위한 것”이라고 세 번이나 강조하여 말씀한 것은 한나의 이 행동이 전적으로 여호와를 위한 행동이었음을 강조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에는 분명한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행동도 하나님의 영광을 우선하여 행하여야 합니다.
고전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기도도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구하여야 합니다.
마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한나는 하나님을 위하여 결단하고 행동함으로 믿음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이런 그녀의 믿음이 아들 사무엘에게 고스란히 유산으로 넘어간 것입니다.
<맺는 말씀 - 서원을 갚은 한나처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셨기 때문에, 나도 하나님께 약속을 지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믿음입니다. 기도했으면 기도한 대로 살아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찬송했으면 찬송한 대로 살아가는 믿음입니다. 하나님께 약속했으면 그 약속을 지키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 일로 인해서 내게 어떤 불이익이 온다고 하더라도, 아무리 상황이 달라졌다고 하더라도 한번 약속한 대로 실천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의 기도가 정말 믿음의 기도가 되려면 그 기도가 삶으로 나타나는 것이어야 합니다.
다급할 때는 살려달라고 그러다가, 살려주면 하나님 잊어버리고 오리발 내밀고 그런다면 그것을 어떻게 믿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한나의 믿음은 진짜였습니다. 약속을 지키는 것이 진짜 믿음입니다. 한나는 하나님께 드리기로 약속한 대로, 사무엘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무엘을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로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이 믿음의 어머니 한나와 같이 하나님 앞에 기도한 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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