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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버스데이
아오키 가즈오
“아스카! 많이 컸구나.” 할아버지는 우쓰노미야 역의 플랫폼까지 아스카를 마중 나와 주었다. 키가 크고 마른 할아버지의 햇빛에 그을린 얼굴 위로 순식간에 미소가 번진다. 아스카는 잠자코 고개를 숙였다. “혼자서 괜찮았니? 착하구나, 우리 아스카!” 할아버지의 커다란 손이 아스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할아버지, 아스카는 언제나 혼자예요.
두 시간 전에 엄마가 한 말이 가슴을 날카롭게 찌르듯 아스카를 덮쳤다. 엄마는 아스카를 요코하마 역까지 데려다 주었다. 대합실 의자에 나란히 앉은 아스카의 귀에 대고 엄마는 말했다. “잘 들어. 이렇게 된 것도 다 네가 똑똑하지 못하기 때문이야. 너에 대해서 잘 생각해 봐. 학교에 가지 않아도 공부는 제대로 해야 해. 할아버지 할머니 말씀은 뭐든 잘 들어, 알았니? 괜히 나중에 잘못 가르쳤다는 말 듣기 싫으니까.”
아스카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목을 잡으려는 아스카의 손을 엄마는 탁 쳤다. “너 다 듣고 있잖아. 뭐라고 대답 좀 해 봐, 이제 그만 적당히 해!”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면서 엄마는 낮은 목소리로 말하며 아스카의 손등을 힘껏 꼬집었다. 너무 아파 아스카는 눈물이 났다. 엄마는 옆으로 홱 돌아앉았다. 그대로 아스카가 기차에 탈 때까지 엄마는 미간을 찌푸리며 미소 한 번 보이지 않았다.
아스카가 멍하니 있자 할아버지는 허리를 구부려 아스카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미소 짓는 할아버지의 눈이 아스카의 겁먹은 눈을 보고 있다. “잘 왔다. 아스카가 온다니까, 할머니는 너한테 맛있는 것 해 먹인다며 아침부터 아주 바쁘단다. 기다리고 있을 거야.” 할아버지는 아주 부드럽게 말했다. 아스카가 지금까지 느낀 적이 없는 따뜻함이었다.
할아버지 집은 우쓰노미야 시가지에서 조금 떨어진 조용한 곳에 있었다. 아스카는 할아버지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스쳐 지나가는 창밖의 풍경을 보고 있었다. 우쓰노미야에 온 건 세 살 이후 처음이라 기억이 없을 텐데 아스카는 이상하게도 정겨운 느낌이 들었다. 시내를 빠져나가자 집들이 띄엄띄엄해지고 밭이 많아진다. 아스카가 살고 있는 요코하마의 집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도시의 거리 풍경과는 상당히 달랐다. 하늘을 향해 팔과 다리를 마음껏 펼 수 있을 것 같은 여유가 느껴진다. 왠지 숨을 쉬는 것이 편하다고 아스카는 생각했다.
“우리 아스카, 혼자 기차 탄 건 처음일 텐데 불안하지 않았니?” 할아버지가 말했다. 아스카는 고개를 돌려 할아버지의 옆얼굴을 보았다. 앞을 본 채 할아버지는 말을 계속했다. “나오토가 전화를 했더구나. 아스카를 잘 부탁한다고 하더라. 못 본 사이에 아주 의젓해졌어.” 아스카는 다시 창밖을 보았다, 초록의 잔물결이 이는 논이 보였다. 바람에 흔들리는 초록 이삭은 태양빛을 받아 빛나고 있다. “편안히 하면 되는 거야, 몸도 마음도. 그렇지-아스카-?” 할아버지의 말은 뒤가 길게 끌린다. 서둘러 대답을 찾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아스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동차로 얼마나 달렸는지 모를 정도로 아스카는 창 밖의 경치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논이 다시 밭으로 이어지고 조금씩 집들이 늘어난 곳에서 할아버지는 차를 세웠다. “자, 다 왔다, 아스카. 네 엄마가 태어나 자란 집이다.” 할아버지는 아스카에게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스카는 커다란 눈을 더욱 크게 떴다.
나무에 둘러싸인 오래되고 커다란 집에 지금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 분만 살고 있다. 어릴 적 엄마의 추억이 가득 담긴 집. 아스카는 마음 한구석이 찌릿찌릿 아팠다. 고개를 숙이고 할아버지 뒤를 따라가는 아스카를 달콤한 향기가 맞이해 주었다. 솜털 같은 예쁜 꽃잎이 사뿐히 아스카의 어깨에 떨어진다. 올려다보니 분홍색 꽃이 나무를 덮듯이 활짝 피어 있었다. 정말, 예쁘다……. 아스카의 입술에서 후-하고 감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잠자는 나무란다. 본래 이름은 자귀나무인데, 밤이 되면 잎을 닫고 잠을 잔단다. 할아버지가 어릴 적엔 잎이 열리고 닫히는 순간을 보고 싶어서, 아침 일찍부터 이 나무 밑에서 기다리곤 했지.” 할아버지는 그때가 생각나는 듯 이야기했다. “이 나무 껍질을 상처 난 곳에 붙여 두면 아주 씻은 듯이 낫지. 옛날엔 신세를 많이 졌어.” 할아버지는 잠자는 나무를 올려다보며, ‘하하하’ 하고 소리내어 웃었다. 어릴 적 할아버지의 얼굴이 가지 끝에 달려 있는 것 같아 아스카는 황급히 눈을 비볐다.
바람이 불어 잠자는 나무가 흔들렸다. 분홍색 꽃잎이 나풀나풀 바람 속을 떠다니다 아스카의 어깨와 머리 위로 떨어진다. 아스카는 쭈그리고 앉아 발 밑에 떨어진 꽃잎을 주웠다. 주머니에서 꺼낸 티슈에 정성스럽게 꽃잎을 싸서 손가방에 넣었다. 아스카가 잠자는 나무에 완전히 마음을 빼앗긴 모습을 할아버지는 싱글거리며 보고 있었다.
“아휴-우리 아스카 많이 컸구나.” 집안에서 할머니가 뛰어 나왔다. 할머니는 꿈을 꾸는 것같이 멍한 아스카의 얼굴을 양손으로 안았다. 마늘 냄새가 확 풍겼다. 할머니의 얼굴은 웃음으로 가득했다. “잘 왔다, 아스카.” 할머니는 아스카를 꼭 껴안았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아스카의 몸이 긴장으로 굳어지는 것을 보았다. 아스카는 안기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피곤하겠다, 아스카. 자 어서 안으로 들어가 푹 쉬자 꾸나.” 할아버지가 아스카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숨을 멈추고 있던 아스카는 할머니에게서 떨어지자 ‘하-’ 하며 숨을 내쉬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서로 마주 보며 슬픈 듯 눈살을 찌푸렸다.
할아버지 집 뒤쪽에는 넒은 밭이 있고 채소도, 꽃도, 과일 나무도 나주 많이 있었다. “이건 복숭아나무야. 심은 지 44년이나 됐지. 매년 달고 맛있는 복숭아를 먹게 해 준단다. 아스카의 이모가 태어난 해에 심은 거란다.” 할아버지는 복숭아나무를 쓰다듬으며, “그래, 하루노가 벌써 마흔네 살이 됐구나”라고 작게 중얼거렸다. 아스카가 옆에 있는 것도 잊은 할아버지는 복숭아나무를 오랫동안 올려다보았다. 아스카는 그 동안에 맛있어 보이는 복숭아를 여러 개 찾아냈다.
이윽고 할아버지는 쓸쓸한 듯 웃으며 말했다. “하루노 이모는 오랫동안 아팠지. 열여섯 살 어린 나이에 저 세상으로 가버렸단다.” 아스카는 깜짝 놀라 할아버지 얼굴을 보았다. 엄마에게 하루노라는 언니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스카는 모르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얼굴을 찌푸릴 정도로 엄마는 복숭아를 싫어했다. 맛있는데 왜 그럴까 하고 아빠도 나오토도 의아해했다. ‘언니 생각이 나 너무 슬퍼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고 아스카는 생각했다.
할아버지는 아스카보다 앞서 걸어갔다. 감나무, 무화과나무, 사과나무……. 할아버지는 허리에 손을 대고 가슴을 뒤로 젖혀 초록 나무들을 올려다보았다. 할아버지 옆에서 아스카도 똑같이 허리에 손을 대고 가슴을 뒤로 젖혀 할아버지가 보고 있는 쪽을 올려다보았다. ‘찌리리’ 하는 작은 새의 울음소리와 나뭇가지를 지나는 바람 소리가 들린다. 여름 햇살이 수그러든다. 자연의 흐름 속에 시간이 흐르고 있다.
“이건 배나무다. 나오토가 태어난 해에 심었으니까 지금 열네 살이 되었구나. 이제 겨우 좋은 열매를 맺기 시작했단다.ꡓ 줄기를 쓰다듬으면서 할아버지는 배나무를 올려다보았다. 초록 잎이 흔들리고 아직 작은 하얀 열매가 여러 개 얼굴을 보였다. ‘오빤 좋겠다’라고 아스카는 생각했다. ‘오빠의 생일은 다들 기억하는구나’라고 생각하니 조금은 샘이 났다. 아스카는 나무 밑동을 톡톡, 발로 찼다.
할아버지가 이리오라며 손짓을 했다. 아스카가 옆으로 가자 할아버지는 아스카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둘이서 함께 올려다본 나무에는 초록잎에 싸인 오렌지색 열매가 여러 개 빛나고 있었다. “이건 살구나무야. 아스카가 태어난 해에 심었지. 살구는 말이다, 옛날부터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나무라고 한단다. 약도 되고 잼도 만들 수 있지. 이제 겨우 열한 살인데도 아주 실한 열매를 맺는구나.” 할아버지는 팔을 뻗어 잘 익은 살구 하나를 땄다. 그리고 아스카의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오렌지색의 윤기 나는 살구가 아스카의 손 위에서 데굴데굴 움직였다. 아스카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제 생일을 기억하고 계셨군요. 고맙습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품에 뛰어들어 매달리고 싶을 만큼 아스카는 기뻤다.
대지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가지가 휘어질 정도로 열매를 맺은 아스카의 나무가 있었다. 아스카는 할아버지를 흉내내어 줄기를 쓰다듬은 후 뺨을 대고 말을 걸었다. ‘잘 있었나요? 처음 뵙겠습니다. 아스카예요.’ 아스카의 머리 위에서 솨솨 -나뭇잎 스치는 소리가 난다.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가 난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아침은 빠르다. 비가 오지 않는 한 매일 아침 밭에 나간다. “예쁘게 피었구나.” “오, 색이 참 곱구나.” 채소와 꽃들에게 말을 걸고, 풀을 뽑고, 필요한 여러 일들을 한다. 아스카도 아침 일찍 일어나게 되었다. 대바구니를 들고 할아버지 뒤를 따라 걷는다. 샌들을 신은 맨발을 아침 이슬에 적시며 밭이랑을 걸어간다. 걸으면서 아스카는 몇 번이나 크게 심호흡을 한다. 이른 아침 대기의 상쾌함은 아스카에게 닫힌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는 용기를 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침밥을 푸자 갓찐 파릇파릇한 강낭콩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아스카야, 입 벌려봐.” 할머니가 아스카의 작은 입에 빨갛게 익은 나무딸기를 톡 하고 넣었다. “어때, 맛있니? 이따 할머니랑 같이 잼 만들자.” 아스카는 눈을 감고 나무딸기의 달콤한 맛을 느껴보았다. 딸기의 달콤한 향이 가슴 깊숙이 스며왔다.
“휘익” 할아버지가 준 양배추 잎에서 애벌레가 쏙 하고 얼굴을 내밀었다. 아스카는 깜짝 놀라, 양배추와 대바구니를 내던지고 말았다. 할아버지는 웃으면서 양배추를 줍더니, 커다란 손으로 애벌레를 쓱 잡아 다른 양배추 안에 넣었다. 쭈그리고 앉아 할아버지는 애벌레를 보고 있다. 아스카도 할아버지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양배추 잎 속으로 돌아간 애벌레는 뿔을 흔들며 열심히 양배추를 갉아 먹고 있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아스카는 애벌레가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스카가 우쓰노미야에 온 지 3주가 지났다. 엄마로부터는 전화도 편지도 없었다. 가끔 엄마가 없는 틈을 타 나오토가 전화를 걸었다. 하시모토 선생님의 편지를 보내주는 것도 나오토였다. “하시모토 선생님이 학교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까 편히 쉬고 오래. 아, 나도 가고 싶다. 아스카는 좋겠다, 좋겠어.” 익살맞은 나오토의 목소리에 아스카는 미소를 지었다. 대답을 걱정하지 않아도 나오토의 전화가 아스카는 고마웠다. “이크, 엄마다. 그럼, 다음에 또 걸게, 아스카.” 나오토의 말 끝에 “나오토, 엄마 왔다!”하는 엄마의 밝은 목소리가 들렸다. 오랜만에 듣는 엄마의 목소리는 오랫동안 아스카의 귓가에 맴돌았다.
그날 밤 아스카는 꿈을 꾸었다. 요코하마 아스카의 집 -. 아파트 7층에 아직 어린 아스카가 있다. 엄마를 찾으며 울고 있다. 엄마의 웃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아 방문을 연다. 방안은 끝도 없는 어둠. 발을 들여놓는 순간 아스카의 몸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손발을 내저으며 여기저기 잡을 만한 것을 찾는다. 무언가가 손에 닿았다. 엄마의 손이다. “살려줘! 엄마!” 잡으려 하는 아스카의 손을 엄마는 뿌리친다. 아스카의 비명과 엄마의 웃음소리. 어둠 속으로 점점 빨려 들어가는 아스카. 어둠의 구멍 위에서 아스카를 내려다보고 있는 엄마가 말한다. “ 잘 가라, 아스카. 넌 태어나지 말아야 했어.” 아스카는 가위에 눌려 울고 있었다. 아스카의 우는 소리에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놀라 일어났다. 할아버지는 아스카의 손을 잡고 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아스카, 아스카, 일어나.” 할머니는 아스카를 안고 몸을 흔들며 뺨을 쳤다. 잠에서 깨어서도 아스카는 한동안 할머니 팔에 안긴 채 흐느껴 울었다. 마음 깊숙이 쌓여 있던 것이 일시에 터진 듯한 느낌이었다.
할아버지가 따뜻한 우유를 갖다 주었다. 아스카는 아기로 돌아간 것처럼 할머니에게 안겨 우유를 마셨다. 꿀을 탄 따뜻한 우유는 정말 맛있었다. ‘외로움도 슬픔도 싹 없애주는 신비한 마법의 음료 같아’ 아스카는 생각했다. “아스카, 할아버지 눈을 보고 잘 들어라.” 할아버지는 말에 힘을 주어 이야기했다. 할아버지의 커다란 손이 아스카의 손을 꼭 쥐고 있다. “안심해도 돼. 할아버지는 아스카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뭐든 할거야. 어리광도 좋아. 할아버지는 아스카가 어리광을 부리는 게 아주 기쁘거든.” 할아버지의 눈과 아스카의 눈이 마주쳤다. 아스카의 가슴이 뭉클해졌다. 아스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이번에는 할머니가 말했다. “아스카야, 할머니는 아스카를 아주 많이 사랑한단다.”
‘하시모토 선생님, 행복이란 정말 기분 좋은 거예요. 아스카는 지금 행복을 느껴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저를 소중하게 생각해 주셨어요…….’
할아버지는 뒷마당 연못가에서 꿀벌을 치고 있다. 두 개 나란히 놓은 네모난 상자에 붕붕 날갯짓 소리를 내며 꿀벌들이 드나들고 있었다. ‘쏘이면 큰일이야’하고 아스카는 꿀벌의 날갯짓 소리가 날 때마다 목을 움츠리고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런 아스카를 보고 할아버지는 조금 정색한 얼굴을 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속담을 알고 있니?” 아스카가 세게 고개를 가로젓자 머리에 살짝 얹혀있던 밀짚모자가 휙 하고 벗겨졌다. 할아버지는 허리를 구부려 밀짚모자를 줍더니, 아스카의 길고 부드러운 머리 위에 톡 하고 얹었다. 그리고 아스카를 쳐다보며 할아버지는 말했다. “아무리 작고 힘이 약한 것에도 의지가 있다. 깔봐서는 안 된다, 그런 뜻인데 말이야…….” 아스카의 눈이 더욱 커졌다.
아스카의 슬픔과 할아버지의 말이 부딪쳐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모두 소중한 마음을 갖고 있는 똑같은 생명들이라는 가르침이라고 할아버지는 생각한다. 할아버지는 벌레에게도 마음이 있다고 생각한단다. 어때, 그렇게 생각하면 즐겁지 않니? 친구들이 많이 생겨 마음이 아주 풍요로워질 거다.” 할아버지는 목에 걸고 있던 하늘색 수건으로 얼굴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 “아니, 어쩌면 풀이나 꽃, 벌레가 인간을 관찰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적인지 아니면 자기편인지를 확실히 구분하고 있을지 몰라. 자연과 함께 살다보면 그렇게 생각될 때가 종종 있단다.”
할아버지와 아스카는 나무 그루터기로 만든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꿀벌은 영리한 곤충이야. 자기 적을 아주 잘 알고 있지. 아스카처럼 들썩거리고 있으면 벌도 경계할 걸? 공격당했다고 생각해 반격해오지. 무섭다는 생각이 들 때에는 가만히 상대의 태도를 지켜보는 게 좋단다. 먼저 상대를 믿어보는 거야.”
아스카에게 미소짓는 할아버지의 이마에 꿀벌이 날아와 앉았다. 아스카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할아버지가 가만히 있자, 꿀벌은 이내 다시 날아갔다. “쏘일 때도 가끔 있긴 하지만 그것도 나름대로 좋은 체험이 되지. 아스카야, 자신의 입장에서 보면 사물의 본 모습을 보지 못한단다. 상대를 믿는 것, 용서하는 것은 자신을 소중히 하는 것이기도 해.” 할아버지가 한 말이 어려운지 아스카는 가만히 생각하고 있다.
뭔가를 생각하게 될 때 아스카는 미간을 찌푸리며 콧방울을 벌렁거리는 버릇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아스카의 얼굴을 보고 유쾌한 듯이 웃었다. “하하하, 우리 아스카에겐 조금 어려운 모양이구나. 천천히 생각하면 돼. 시간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할아버지는 아스카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거려 주고 채소밭으로 갔다.
아스카는 꿀벌 상자가 보이는 곳까지 다가갔다. 주위 공기가 움직이지 않도록 살그머니 쭈그리고 앉았다. 마음속으로 꿀벌에게 말을 건다. -꿀벌님, 당신을 믿어요. 난 당신 편이에요. 그러니까 쏘지 말아요. 아픈 건 싫어요……. 말을 걸면서 눈을 감자 마음이 차분해진다. 마음을 놀라게 하는 두려움과 불안의 파도가 서서히 잔잔해진다. 지금 아스카의 마음에 있는 것은 꿀벌의 잔잔한 날갯짓 소리뿐이다.
지금까지 나는 누군가를 믿은 적이 있었나? 이렇게 마음을 비우고 누군가에게 마음을 맡긴 적이 있었나? ‘사실은 엄마를 믿지 않았어’라고 아스카는 생각했다. 언제나 자신이 상처받을까봐 두려워하고 버둥대며, 마음을 닫고 있었던 것 같다. 엄마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텅 빈 아스카의 마음에 물이 솟구치듯 감정이 되살아났다. 눈물이 나서 이유도 모른 채 아스카는 울었다. 할아버지는 아스카의 작은 어깨가 흔들리는 것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잠자코 지켜보고 있었다. 아스카의 슬픔을 나무 사이를 지나는 바람이 할아버지 마음에 전해 주었다. “참을 것 없다, 아스카. 실컷 울면 돼…….” 할아버지는 중얼거리며 하늘색 수건을 눈에 대었다.
<아오키 가즈오, 『해피 버스데이』중에서>
ㅋㅋㅋ^^*글씨를 많이 쓰신다고 많이 힘드셨겠어요~! 저 이거 읽는데 10분이나 걸렸어요~..ㅋㄷㅋㄷ!너무 느리나??ㅋㅋ
너무 재미있고
미를 느꼈어요. 선생님 이거 적는다고 힘드셨겠어요. 그 대신 이거에 대한 보람을 느끼겠조


다시 말하지만 너무 너무 너무 너무재미있고 재미있고 재미있고 재미있었어요. 적어주셔서 감사합니다. (4-1 김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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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저다읽었습니다.. 많이 재미있어요..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들릴께요...^*^바이바이
안녕 ㅋㅋ 난 왜왓을까요? 알아맞추면 상금을 줄까?
선생님 다읽엇어요 글쓰시느라힘드셨겟내요
다읽음 ~!
이 책도 정말 좋아하는 책입니다. 전체 내용을 한번 읽어볼 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