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나의 달리기에 관한 사연과 기록들
시기 : 1999년부터 현재까지
작성 : 2002년 9월 30일부터
1. 달리기를 시작하기 전에는
나의 달리기는 정확하게 지난 해인 2001년 3월 1일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 이전 나의 이야기가 나에게는 필요하다.
1999년 말 온통 세상은 새로운 밀레니엄 이야기로 세상이 모조리 바뀌거나 엄청난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처럼 야단법석이었다. 심지어 미사일 오발이나 항공기 이착륙의 대혼란이며 예금통장에서의 주인없이 돈다발이 뒤섞힌다는 등 통제와 관리, 권한과 지배의 힘을 가진 자들의 우려에 왜 우리는 덩달아 소란을 피워야 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난 이를 믿지 않았다. 그냥 어제와 오늘처럼 일상이 이어지는 순환의 시간과 세월이 있을 뿐이라고. 그러나 내면은 그렇지 않았다. 무던히 나의 일만 하다가 나이가 만 47세에 접어드는 2000년은 서서히 중년을 스스로 감지하는 기회가 타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에 의해 하나하나씩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인생의 시계는 자신만이 관리할 수 있는 권리와 이를 채워가는 자신만의 의무가 있다는 평범한 사실을 발견하는 것은 전적으로 주변의 일들이었다. 그 가운데 하나를 든다면 연구실 창을 통해 사계절의 변화를 생활 속에서 보여주는 주목나무의 교훈이다. 같은 모습의 반복처럼 보였던 침묵의 교훈은 끊임없는 변화에의 갈구이며, 그것을 몸소 실천하는 성실한 자기 가꾸기였다.
까치가 날아들고 청솔모가 사각사각 무언가를 뒤척이고 바람과 비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가운데 학생들의 재잘거림과 웃음소리는 세월을 잊게하였다. 그런데도 정작 나는 무엇인가?
이렇게 서두를 마련했으니 시간이 허락되는 대로 나의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때론 상념과 회환이 교차할 것이며, 마라톤에 얽힌 갖가지 에피소드며, 단상, 시, 수필을 올리려고 한다. 이런 공간을 마련해 준 집행부의 수고에 감사를 드린다. 오늘은 글쓰기 1로 마감하고자 한다.(작성 2002년 9월 30일)
2. 21세기 시대의 전환기
2000년의 새해 제주도에서의 해맞이는 가족과 함께 했다. 그러나 요란한 주변의 모습에서보다는 내면의 목소리는 오히려 조용했다. 과연 21세기,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2001년부터 시작되는, 는 우리 인류에게 무엇을 감추어 두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더 궁금한 것이었다.
그 동안 학교에서 강의와 연구 외 보직을 맡은 것은 국제사회지도자과정의 주임교수였다. 근 3년의 시간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기도 얻기도 했지만 정작 이 일을 그만두고 싶었다. 그러던 중 대학의 언론 3사(대학신문, 방송국, 영어신문사) 주간 교수직을 맡음으로서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본연의 연구와 강의에 충실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평소 관심을 가졌던 대학언론을 직접 관장하는 기회도 중요하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변화의 한 가운데서 자신의 기준을 나름대로 가지는 것과 이에 대한 대처는 순전히 자신의 노력에 달려 있다는 확신으로 인해 또다시 나를 반성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나를 중심으로 가족을 살펴보면, 큰 녀석이 내년이면 고 3학년이 되며, 오십을 앞 둔 나의 위상은 나의 의지나 관심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도 어느 시점에서는 끝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나무처럼, 비극같은 예술적 형태도 절정을 향해 성숙하다가 정점을 넘어서면 다시 시들어가다 마침내 죽고 만다"라고 주장했듯이, 성숙과 정점이 어느 다른 사람처럼 같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줄곧 중년의 나를 따라 다녔다.
그동안 건강을 지키려는 노력은 언제나처럼 아침 5시 30분이면 일어나 등산, 산보로 이어졌으며, 설악산 공룡능선, 용아장성, 지리산 대청봉, 한라산 백록담, 인근에 있는 산들을 꾸준히 다녔다. 그러나 이것도 시간과 돈이 많이 드는 것으로 판단되어 변화를 갖고 싶었다. 요약하면, 이제 나에게 놓여진 과제는 둘이다. 하나는 오십을 앞 둔 나는 이전과 달라야 한다는 명제이며, 다른 하나는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대학진학을 앞 둔 큰 아들에게 아버지로서 무엇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는 다짐이었다.
마침 이때 나는 마라톤에 관한 책, 독일의 외무부 장관 요쉬카 피셔의 <나는 달린다>를 읽게 되었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마라톤은 달리는 명상의 시간이다"으로 여태까지의 고민을 해소하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이렇게 몇 가지 요인과 동기로 달리기를 시작한 것이다.
어느듯 2000년의 한 해도 저물고 2001년의 새해가 어제처럼 아무런 일도 없는듯이 나의 앞에 나타났다. 겨울의 회갈색 산길 오솔길에는 낙엽이 그대로 수북히 쌓여 있었고 바람은 여전히 매섭게 산허리를 감싸고 돌았다. 마른 숲 속에 봄 기운이 전해지기에는 아직 마음의 겨울이 길기만 하다.
3. 첫 달리기
이렇게 봄이 오지 않은 금정산 기슭 구서동 산복도로의 새벽은 6시 30분이 지나면 어렴풋이 길을 연다. 첫날 삼일절 이른 새벽 선경 3차 윗쪽 해장국집까지 달리는데도 숨이 찼다. 그러나 오기로 남산고등학교까지 가는데는 그리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제부터 차를 타면 미터기가 바빠진다. 거리를 재는 것 때문에. 읽은 자료에 의하면 우선 5킬로미터부터이다. 집 바로 위 우정갈비 앞에서 남산동인지 청룡동인지 범어사 일방통행도로가 끝나는 압구정갈비집 입구까지가 2.5km이다.
왕복 5킬로미터를 나흘만에 달려보았다. 그땐 그냥 운동화에 긴바지였으므로 땀이 속옷을 적셨다. 그때 기억으로는 달리기의 각오때문에 유년시절 운동회 때 달리기의 연장선, 그것도 불확실한 기억의 연속선에서, 에 놓인 순박한 달리기에 불과했다. 그러나 일주일을 계속해서 달리다 보니 일과에서의 피로가 엄습했다. 그리고 힘이 든다는 신호가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무슨 대책이 필요했다. 자료를 다시 읽는다. 하프를 완주하려면, 주간 운동량이 30킬로미터가 되어야 하며, 언더배기 달리기와 근력강화가 필수라는 점이다. 휴식의 중요성이 무엇보다도 위안이다.
2주 3주를 넘기면서 한 번도 쉬지않고 달렸다. 3주 째 일요일 거리의 차가 별로 없는 시간, 경동아파트를 지나 오르막 길을, 그땐 왜 그리도 멀고 가파런지, 치고 올라간다. 매표소 앞을 지날 쯤 가픈 숨소리는 겨우 진정해졌지만 다리는 천근만근 걸음이 제것이 아니다. 처음으로 10킬로미터를 달린 것이다. 다시 출발점에 돌아오니 등산을 가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으며 날은 여명을 거두고 있다. 스트레칭을 적당이 아는대로 하였지만 오리걸음은 반드시 했다. 어느듯 주변 산기슭에 진달래가 피기 시작했으며, 가로수인 벗나무에 꽃 봉오리가 맺히기 시작하면서 달리는 걸음은 빨라진다. 간혹 봄의 훈훈한 바람이 남아 있는 언땅의 찬 기운에 섞혀 나의 몸과 가슴을 지난다.
시간을 재는 것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으므로 그렇게 3주를 달렸다.
첫 달리기에서부터 3주까지 연습량은 합계 대략 70킬로미터(연습기록 1)이다.
이때 공대 강인준 교수로부터 제10회 경주벗꽃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지 않겠느냐는 말을 듣는다. 그래 한번 달려보자. 우선 10킬로미터부터. 물론 신청시기를 놓쳤으므로 현장접수(그땐 가능했음)로, 당일 5시에 출발하는 것으로 약속을 했다. 그리고 체육과 김태운 교수도 참가한다는 이야기. 아내에게 부탁하여 마라톤 바지(지금도 중요한 경기에는 반드시 입고 뛰는)를 구입하고, 양말과 신발을 샀다. 거금 10만이 들었다.
이제 2주가 남았다. 이때부터도 매일 5킬로미터, 주말에는 범어사 순환도로를 포함 10킬로미터 달리기, 다시 3일 동안 매일 5킬로미터, 경기 이틀 전까지 열흘 동안 50킬로미터(연습기록 2)를 달렸다. 설래이는 마음으로 4월 7일 아침 5시 집을 나선다.(작성 2002년 10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