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리브해 크루즈 탐방록
카리브해에서 만난 문학과 역사유적
그리고 고혹의 바다
멕시코 코주멜 섬에 기항한 크루즈 배 로얄 캐리비안 오아시스호
남편 유기섭 수필가님과 함께
카리브해 크루즈는 미국 애틀란타로 가서 시가지를 둘러보고 하루를 유숙한 후, 플로리다 주의 마이애미 항구로 가서 크루즈 선박을 승선하는 것으로 시작했 다. 쿠바를 중심으로 카리브해를 돌며 아이티와 자메이카,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기항지 탐방을 했다. 마이 애미에서 하선하여 다시 멕시코 칸쿤을 거쳐 쿠바로 갔다. 미국 애틀란타에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거룩한 삶, 자메이카에서 콜롬비아의 탐험현장,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서 툴룸 유적지와 칸 쿤 바다, 쿠바에서 혁명광장과 헤밍웨이의 족적을 보았 다.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를 집필했던 암보스 문 도스 호텔', 헤밍웨이 박물관, '노인과 바다' 소설이 탄생 된 카리브해 바다와 코히마르 마을 등 소중한 문학과 역사유적 그리고 고혹의 바다 비경 등을 보는 아주 보 람되고 뜻 깊은 여정이었다. 순서대로 족적을 이어 간 단한 탐방록을 적고자 한다.
탐방 일시 : 2013년 2월 15일 금요일~3월 1일 금요일(14박15일)
탐방 국가 : 미국, 아이티, 자메이카, 멕시코, 쿠바
인천공항에서 14시간을 비행하여 미국 애틀란타 공 항에 도착했다. 한국보다 14시간 늦다. 애틀란타에서 마틴 루터 킹 박물관, 코카콜라 박물관, 올림픽 공원, CNN 센터 등을 탐방했다.
* 마틴 루터 킹 박물관
마틴 루터 킹 박물관은 온화한 분홍색 건물이다. 그는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흑인 목사이자 인권 운동가 다. KING이라는 글자가 화단에 놓여있다. 무덤은 물속 에 있다. 흑인들이 멸시와 폭행을 당하는 것을 보고 크 면서 인종차별을 없애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의 아버 지도 옳지 않은 것을 보면 굴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소 외된 사람들을 위해 활동해온 족적을 전시하고 있다. 그가 가장 존경했던 간디의 물품도 있다. 흑인을 돕는 현장에서 결국 백인의 총에 맞아 암살된 마틴 루터 킹 의 위대한 생을 보았다.
미국 애틀란타 마틴 루터 킹 박물관
코카콜라 박물관은 그 이름 값 만큼이나 매우 웅장하다. 미국 코카콜라 회사가 1886년부터 코카의 잎과 열매, 카페인 등으로 제조하여 판매하는 청량음료로 200여 개국 이상에서 판매된다. 맛 외에 강력한 브랜 드로 인지도 높은 상표는 미국과 자본주의를 상징하기 도 한다. 국외회사에서는 자본, 종업원 등을 철저한 현 지주의로 채용한다. 코카콜라 역사, 입체영상, 제조과 정 등을 보았다. 마지막 출구에서 코카콜라 1병을 선 물로 준다. 나는 코카콜라를 좋아하진 않지만 방문자 에게 베푸는 손길이 고마웠다. 세계인이 사랑하는 음 료의 본토에서, 아주 섬세하게 곳곳을 둘러본 코카콜 라 박물관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올림픽 공원은 1996년에 개최된 올림픽 실패 지역이 다. 197개국 IOC 전 회원국이 참여하고 각종 종목에 서 많은 기록이 갱신되는 성과를 거두었지만, 선수 숙 소를 도심 밖에다 잡아서 힘들었고, 교통대란과 폭탄 테러 사건 등으로 최악의 올림픽이라는 오명을 남겼다. 그로인해 애틀란타에서는 100년간 올림픽 유치를 못 한다. 우리나라는 여자 양궁이 뛰어난 성적을 거뒀고, 종합순위 10위였다. 올림픽 실패의 현장을 보며, 이것 을 교훈삼아 발전시킨다면 올림픽은 더욱 빛날 것이라 는 생각이 들었다.
* CNN 센터
세계 뉴스 보도국 CNN 센터는 입구에서부터 커다란 CNN 상징의 붉은 색 마크가 시선을 끈다. 1980년 설 립하여 24시간 동안 국내외 뉴스만을 방송한다. 커다 란 지구본과 CNN 방송기지 국가들의 국기가 게양되 어 있다. 한국의 태극기도 걸려있다. 메인 방송실과 일 기예보 제작과정 등을 둘러보는 탐방코스가 있다. 뉴 스 보도과정을 견학하고, 제작도 해보았다. 보도국 자 리에 앉아서 뉴스를 전하는 형식으로 말하자 즉시 영 문으로 타전되어 자막에 뜬다. 말과 동시에 글자로 새 겨져 나오는 광경이 신기했다. 세계 일기예보 제작과정 도 보여주었다. 파란 천으로 몸을 가리면 보도자막에 는 세계지도와 일기예보만이 뜬다. 평소에 보던 CNN 의 세계 뉴스와 일기예보가 이렇게 제작되는 것임을 알았다. 보도국 본부 사무실은 유리창 밖에서 견학했 다. 수많은 직원들이 컴퓨터를 3대씩 놓고 일한다. 2천 명 이상이 근무할 수 있는 큰 규모의 건물이다. 이제 CNN 세계뉴스를 볼 때, 그 현장을 보았으니 더욱 진한 감동으로 볼 것이다.
미국 애틀란타 세계 뉴스 보도국 CNN 센터
애틀란타 탐방을 마치고 비행기로 플로리다 주 마이 애미 포트 라더데일 항구 터미널로 가서 크루즈 배 오 아시스호를 승선하였다. 아주 크고 우람하다. 서부 카 리브해 크루즈다. 쿠바를 중심으로 서쪽의 자메이카와 멕시코가 주요 기항지다. 승선 후 비상훈련을 받았다. 배가 출항하는 것을 보기 위해 발코니에 나가보니 마 이애미 항구와 시가지가 비경이다. 경찰 보트의 보호를 받으며 물살을 가르고 점점 항구를 벗어난다. 하얀 백 사장과 푸른 물결이 도시를 덮고 있다. 사철 온화하여 그려내는 진풍경이다. 뷔페식당에서 석식을 하고 대극 장에서 저녁공연 뮤지컬을 보았다. 크루즈 여행에서 다 양한 세계의 뷔페음식과 밤마다 대극장에서 공연을 보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배에서 처음 맞이하는 아침, 발코니에 나가보니 카리 브해의 일출이 비경이다. 바다가 태양을 밀어올려 지구 에 탄생시키느라 붉은 진통이 하늘과 바다를 적신다. 배의 앞쪽에서 점점 올라온 붉은 덩이가 장엄하다. 내 어머니도 저렇게 나를 낳으셨고, 나도 두 아들을 저렇 게 낳았다고 생각하니 숙연해진다. 바다에서의 일출은 언제나 웅장하여 우주의 신비를 선사한다. 처음으로 기항하는 국가는 아이티다. 라바디 항구는 카리브해의 낭만적인 휴식처이며, 콜럼버스가 항해를 하던 중 휴식한 곳이다. 콜럼버스의 발견 후 아프리카 흑인노예들이 끌려와 개발하고 이룬 국가다. 2010년 강진으로 고통을 겪기도 했다. 아이티에 배가 진입하려 는데 높은 파도가 일었다. 기항하지 못하고 배를 자메 이카로 돌렸다. 유람선이 온다고 준비했을 아이티, 그 로 인한 경제적 도움도 기대했을 텐데 안타깝다. 눈앞 에서 아이티를 우람한 섬 풍경으로 보는 것으로 만족 했다.
* 크루즈 배 갑판 수영장
크루즈 배 갑판에는 아주 큰 수영장이 있다. 아이티 에 내리지 못한 시간을 배 안에서 산책하고, 갑판의 수영장에 가서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보람된 시간을 보냈다. 스파 온천욕을 하고 수영장에 들어가 수영도 했다. 스파 온천은 물이 따뜻하고 염기 가 거의 없다. 물거품과 함께 전신을 마사지 하는 스파 온천욕은 가만히 물속에 앉아있으면 아주 편안하다. 따뜻한 물의 스파 온천욕과 차가운 물의 수영을 병행 하면 아주 좋다. 우리 부부는 수영장 물속에서 달리기 시합도 하고, 손잡고 펄쩍펄쩍 뛰기도 하면 천진한 놀 이를 했다. 그리고는 태양빛이 그대로 들어오는 수영장 옆의 의자에 앉아 몸을 말렸다. 이런 체험은 크루즈 여 행이 주는 최대의 선물이다.
세계인이 함께 대화를 나누며 바다 낭만에 젖는 크루즈 배 갑판 수영장
배가 자메이카 팔마우스 항구에 기항한다. 자메이카 는 큰 섬나라로 쿠바, 멕시코, 아이티와 가깝다. 우리나 라는 지금 겨울인데 자메이카에서 여름을 맞는다. 계 절이 존재하지 않는 사철 푸르고 아름다운 나라다. 세 계적인 육상 강국이며, 우사인 볼트가 대표적인 선수 다. 레게음악과 가수 밥 말리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숲 사이 비경의 해변도로를 달리며 그의 숨결을 느꼈다.
* 자메이카 콜럼버스 다리
콜럼버스 다리가 자메이카 시골마을 좁은 계곡에 있 다. 1494년 콜럼버스가 처음 들어온 다리다. 해변에는 콜럼버스 박물관이 있다. 콜럼버스가 타고 온 배도 해 변에 놓여있다. 배에 앉아 그가 오던 날을 체험해보았 다. 이곳 200여 개의 마을이 콜럼버스가 온 후 스페인 과 영국의 지배로 노예매매의 중심지가 되었단다. 콜럼 버스의 신대륙 발견이 원주민에게는 치욕이고, 모든 것 을 망가뜨렸다고 한다. 중미에 와서 새롭게 안 것은 교 과서에서 배운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이 원주민에게 는 치욕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로 인하여 영토가 열렸고 세계 교류로 인류문명 발전에는 큰 도움이 되 었으니 긍정의 측면으로 바라보고 싶었다.
콜럼버스가 최초로 들어온 자메이카의 콜럼버스 다리
* 자메이카 오초리오스 던 폭포
오초리오스는 폭포와 해변을 끼고 있는 자메이카 북 부의 아름다운 휴향지다. 던강과 던 폭포와 던 공원 그 리고 바다를 품고 있는 아름다운 영토다. 숲속 던강의 폭포 물이 바다로 떨어진다. 해변에서 던 폭포에 이르 는 계곡의 물살이 거세다. 사람들은 반바지 차림으로 민물이 낙차하는 해변에서부터 손잡고 거슬러 오른다. 이 폭포는 거슬러 오르는 것이 주요 관광이다. 작은 폭 포들과 연못에서, 아래 해변까지 연결되어있는 180m 의 석회암 계단을 오르며 바라보는 것만도 아름다운 정경이다. 열대식물들이 꽃피워 우거진 나무들과 함 께 진풍경이다. 해변 백사장을 걸으며 비경을 가슴에담았다. 카리브해의 물빛은 예외 없이 아름답다. 먼 곳 은 코발트빛, 가까운 곳은 에메랄드빛, 비경이다. 쏴쏴 밀려오는 파도가 발목을 적신다. 자메이카 카리브해에 서 나의 족적을 쌓고 간다. 공원에는 미술작품과 목공 예품과 레게음악과 휴식하는 사람들로 아름답다. 모두 자메이카를 드러내는 정경이다. 세계인이 하나 되는 흐 뭇한 시간이었다.
자메이카 오초리오스 휴양지,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숲속의 던 폭포
* 자메이카 해변 휴양지 몬테고베이
몬테고베이 시가지를 지나서 해변으로 가는데 교복 차림의 흑인 중고생들이 하교한다. 우리를 신기한 듯 바라보며 웃는다. 나도 정답게 웃어주었다. 인간적인 정 은 인종과 나라의 구별이 없다. 몬테고베이는 국제공항 이 있는 자메이카의 유명한 해변 휴양지다. 청청한 바 다와 하얀 백사장, 열대식물들의 합창이 가슴 흔드는 불꽃이다. 바닷물 속에 몸을 담그니 카리브해 환상의 파도가 전신을 흔든다. 천진한 아이가 되어 모래성도 쌓으며 먼 나라에서 참 행복한 시간이었다. 안전요원, 파라솔, 샤워장 등 해수욕장 시설까지 잘 갖춰진 잊 지 못할 명소다. 카리브해는 정말 고혹의 바다다. 저토 록 시린 비경이 세계인을 부른다. 크루즈 배의 출항 시 간에 맞춰 승선해야하기 때문에 서둘러 자메이카 항구 로 돌아왔다.
자메이카 해변 휴양지 몬테고베이 해수욕장과 카리브해 비경
* 크루즈 배 로얄 캐리비안 오아시스호
크루즈 여행은 육로 여행과는 많이 다르다. 기항지 관광이 없는 날에는 배 안에서 여러 가지로 즐거운 시 간을 보낸다. 크루즈 배 로얄 캐리비안 오아시스호는 16층으로 선실은 2,700개다. 승객 5,400명과 배의 직 원을 합하여 총 8,000여명을 수용하는 세계 최대 호 화 크루즈 선박이다. 가장 뛰어난 시설은 8층의 센트럴 파크다. 지상의 공원과 동일하다. 하늘이 열려있어 비 가 오면 그대로 내려온다. 여러 식물들과 곡선 산책로 와 벤치와 식당이 있는 아름다운 공원이다. 산책하며 거닐어 보고, 벤치에 앉아서 휴식도 하고, 무료로 제공 해주는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도 골라 먹고 황홀한 낭 만이다. 배미에는 암벽등반 장치가 있다. 암벽에 줄을 매고 수직으로 오른다. 아래는 물 공연장이다. 짚 라 인 레포츠 시설도 있어 줄을 타고 허공을 왕래한다. 15 층 갑판에는 수영장과 미니 골프장, 산책로, 바다 전망 대가 있다. 이런 시설은 모두 배가 커서 가능한 것이다. 훌륭한 크루즈 배에 승선한 것은 큰 축복이다.
자메이카 팔마우스 항구에 기항한 크루즈 배 로얄 캐리비안 오아시스호
* 배 갑판에서 보는 카리브해 바다
배 15층 갑판에 가면 카리브해 무원의 바다가 전개 된다. 망망한 바다 앞에 서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준다. 무념무상으로 다 비워낸 영토에서 목숨 하나로 도 족하여 모든 것에 감사하다고, 모두에게 사랑한다 고 외친다. 저 끝없는 바다에 점 하나로 뜬 나란 존재 는 무엇인가. 무게를 바다에 던지고 나면 무한한 포용 의 가슴이 열린다. 남은 생은 더 성실하게 살겠노라고 다짐한다. 바다의 호텔로 달려주는 배에게도 눈물겹도 록 고맙다. 승선을 허락한 것에 감사하며 더욱 겸허하 게 살 것이다. 크루즈 여행은 관광만이 아닌, 광활한 바다 앞에서 올곧은 생의 가르침을 주는 철학적인 매력 의 여정이다.
크루즈 배 갑판에서 보는 카리브해의 청청한 바다
카리브해의 일출을 보며 멕시코 코주멜 섬에 기항한 다. 유카탄 반도의 마야 유적지 툴룸에 가기 위해 하 선하여 유람선으로 바꿔탔다. 멕시코 현지인들과 함께 승선하여 눈부신 바다를 달린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 를 바라보며 정겨운 표정이다. 세계여행은 명소만 보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그 나라 사람들과 한 자리에서 만 나는 것도 뜻 깊은 여정이다. 선착장에 내리자 카리브해가 명화를 그려낸다. 먼 곳은 진한 청색, 해변은 연한 옥색, 백사장은 하얗게, 층층으로 달려온다. 선착장 주 변이 넘실거리는 바다와 함께 낭만 가득이다.
유카탄 반도 들녘을 달린다. 선인장 노동자들의 비참 한 이야기를 듣는다. 이민자들이 숲에서 화전민으로 옥수수 재배로 연명하며 원주민 인디언들과 하급생활 을 한단다. 신분이 노예라서 그렇다. 이민을 가족과 함 께 보낸다는 신문광고를 보고 양반 부자들이 현혹되 어 이민에 참여했다. 처절한 삶이었다. 지금은 돈이 없 어 고국에 못 간단다. 1996년의 영화 '애니깽'이 그 이 야기다. 초기 이민자들은 아직도 성은 그대로 쓰고 이 름만 멕시코식으로 짓는단다. 우리의 선조가 그런 수모 를 당했다는 것이, 이야기를 듣는 내내 씁쓸했다. 저 울 창한 숲 너머에서 힘들게 사는 그들이 안타까웠다. 굳은 용기로 조선의 강인함으로 잘 살아 주기를 빌었다.
* 멕시코 마야 유적지 툴룸
멕시코 마야 유적지 툴룸은 고대의 작은 문명도시 로 유카탄 반도에 위치해 있다. 툴룸에 도착하여 유적 지로 가는 트램을 타려고 기다리는데 원주민들이 높 은 기둥에 줄을 매고 오르는 묘기를 선사한다. 신에게 풍작을 기원하며 청하는 기우제 볼라도레 전통제례 의 식이다. 18~40m 높이의 기둥에 올라가 꼭대기에서 줄 을 풀며 돌아 땅으로 내려온다. 티브이에서만 보던 아 슬한 묘기를 현장에서 보도록 여행객을 위해 선사해 주는 원주민에게 고마웠다. 야자수와 돌집이 어우러진 드넓은 툴룸 유적지 안으 로 들어왔다. 카리브해 해안에 삼면을 돌로 쌓은 군사 적 성벽이 있다. 900년경~1500년경의 도시로 정글에 위치한 다른 마야 유적지와는 달리 아름다운 카리브 해의 절벽에 있다는 것이 독특하다. 마야 문명은 서기 300년쯤부터 멕시코의 유카탄 반도를 중심으로 번성 했고, 1528년 스페인의 침략으로 멸망했다. 툴룸은 중 요한 무역항이었고, 학문과 경제와 문화가 발달했던 도 시다. 넓은 규모의 성내에는 성채, 신전, 돌집 등이 있 다. 이곳은 해가 제일 먼저 뜨는 해발 10m의 부자마을 이었다. 툴룸을 한 바퀴 돌며 내려다보는 산호해변은 유적지 못지않은 비경을 선사한다. 유적지와 바다의 환상적인 조화다. 멕시코 고유의 문화와 유적을 본 뜻 깊은 여정이다.
멕시코 유카탄 반도 카리브해 절벽 마야 유적지 툴룸
카리브해를 질주하여 다시 마이애미 항구에 기항하 였다. 크루즈 배에서 하선하는 날이다. 크루즈 배의 7 박 8일 일정이 마무리되는 시간이다. 배는 계단을 길 게 늘여놓아 우리의 걸음을 육지로 인도한다. 오늘이 마지막이라 하니 아쉬운 순간이다. 배의 직원들도 최선 을 다해 정성을 쏟는다. 지난 밤 마지막 정찬식당에서 도 승무원들과 함께 하얀 냅킨을 머리 위로 빙빙 돌리 며 행복한 추억을 쌓았다. 카리브해 크루즈 오아시스 호,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이다.
* 마이애미 에버글레이즈 국립공원
미국 마이애미 에버글레이즈 국립공원으로 간다. 마 이애미는 비가 많이 오는 지역이다. 땅 반, 물 반인 도 시다. 주택지대를 지나자 공원 습지가 시작되고, 평원 의 늪지를 감싸는 인공수로가 빙 둘러 있다. 인공수로 가 3천Km나 된다. 도로변에, 주택지대 바로 앞에, 큰 인공수로가 있다. 호수 같은 큰 물가에도 집들이 있다. 도심에는 마이애미강이 흐른다. 상가 옆 도로에도 많은 물이 흐르는 수로가 있다. 에버글레이즈 국립공원은 눈앞에 보이는 것만으로도 습지가 아득하다. 한국 경남 크기로 아주 큰 면적이다. 1979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고, 1987년 에는 람사르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었다. 지하수가 없어서 빗물이 이곳에 강을 이뤄 식수로 공급된다. 영 화 007의 에어보트를 승선하고 습지를 탐방했다. 심한 소음으로 귀마개를 끼고 배를 탔다. 습지 사이로 배가 달린다. 악어가 머리를 내밀고 도망치지 않는다. 가도, 가도 늪지만 전개된다. 나무를 심어도 물기로 인해 죽 어서 갈대 종류의 풀과 물만 가득하다. 아무 것도 없는 것이 볼거리인 세계 유일의 공원이라는 말에 웃었다. 큰 습지 공원을 보존하여 자연유산으로 대물림한다는 것이 위대한 일이다.
미국 마이애미 에버글레이즈 국립공원, 007 영화의 보트 승선 탐방
* 멕시코 유카탄 반도 칸쿤 해변
쿠바는 미국에서 곧바로 들어갈 수 없다. 쿠바와 미 국은 가까이 있으면서도 정치적 문제로 서로 등을 돌 리는 관계다. 여권에 미국의 입국 도장이 찍히면 쿠바 에 들어갈 수가 없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멕시코를 거쳐서 쿠바로 가기 위해 칸쿤으로 왔다. 칸쿤은 유카 탄 반도의 카리브해에 접해 있는 대규모 휴양지다. 큰 산호 산맥이 섬 일대를 지나고 있어 물빛이 비경이고 하얀 모래사장이 20여km나 된다. 에메랄드빛 바다와 함께 환상적인 비경을 선사한다. 맨발로 모래를 밟으며 멋진 낭만을 엮었다. 칸쿤 전체를 내려다보는 전망대도 올라갔다. 빙글빙글 돌아 올라가며 높이에 따라, 도는 각도에 따라 칸쿤 시가지가 진풍경을 선사한다. 1970 년대 초만 해도 칸쿤은 길쭉한 섬이었다. 고기잡이배 나 드나들던 한적한 어촌마을이 세계적인 휴양도시로 개발되었다. 공항으로 이동할 때 호텔과 리조트가 해 변에 줄지어 서서 이것이 칸쿤이라고 마지막까지 목을 늘인다. 먼 후일에도 가슴에 저장된 카리브해 칸쿤의 비경은 나의 젊음을 일깨우는 촉매가 될 것이다.
멕시코 유카탄 반도 칸쿤, 카리브해 하얀 산호모래와 해변 비경
멕시코 칸쿤에서 쿠바 하바나로 갔다. 저녁에 도착하 였다. 쿠바는 전기 사정이 좋지 않아 도시가 어둡다. 하 바나 베이의 300m 해저터널을 지나 하바나 모로성에 가서 저녁식사를 했다. 이 식당은 국영사업체로 쿠바 의 술 럼주와 함께 최선의 식사를 베푸는 손길이 아름 답다. 모로성과 까바냐 요새가 있어 해변에 대포가 전 시되어있다. 하바나는 16세기 스페인 사람이 건설하였 다. 쿠바를 드나드는 스페인 배들의 기착지로 활용 되 면서 중개무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오늘날에는 아름다 운 풍광으로 카리브해의 흑진주로 불린다. 쿠바는 사 회주의 국가로 우리나라와는 다른 성향의 국가다. 그래 서 조금은 긴장되지만 관광수입을 중요시하는 국가로 여행객을 환영하며 철저히 보호되고 있다는 말에 안심 이 되었다. 호텔에 오니 캄캄한 밤인데 밖에서 음악소리가 들인 다. 바로 앞 골목에서 나는 소리다. 어둠 속에서 한 무 리의 모임이 보인다. 쿠바는 밤의 문화가 풍성하다는 말이 실감난다. 극장, 역사적 공연장, 카바레, 나이트클 럽, 음악공연 등 다양하게 밤늦게까지 펼쳐진다. 생각 보다 훨씬 개방된 국가라는 첫인상이다.
쿠바에서 가장 놀라운 것 중의 하나가 자동차다. 영 화에서나 볼 수 있는 50년대의 고전적인 자동차들이 거리를 질주한다. 미군정 시절, 하바나 근교는 미국 부 호들의 휴양지였고, 수십 년 세월을 지나도 그들이 남 긴 유흥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그 당시의 올드카 는 외국의 자동차 마니아들이 눈독을 들여도 팔지 않는 쿠바의 명물이 됐다. 고쳐서 탈지언정 절대로 바꾸 지 않는 자동차다. 아주 견고한 모습으로 우아하고 고 풍스런 향수를 자아낸다. 인도의 간디 동상이 하바나 도심 공원에 자리하고 있 다. 간디 공원이라는 이름의 영토에는 아주 큰 나무들 이 우람하게 서서 공중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 참으 로 신기한 풍경이다. 주변에는 아파트와 대사관 건물들 이 있다. 아침이 열리는 쿠바 하바나의 첫 여행지 간디 공원에서 상큼한 산책을 했다.
* 쿠바 하바나 혁명 광장
하바나 혁명 광장에 들어서니 드넓은 광장에 거대한 탑이 솟구친다. 혁명 탑 앞에 민족 해방운동가 호세 마 르티 동상이 있다. 쿠바 혁명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인 물이다.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세운 탑이다. 호세 마르티 광장이라고도 부른다. 시민광장이었는데 1959 년 쿠바혁명 이후에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쿠바 는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콜럼버스가 1492년 쿠바 에 도착한 이후 스페인과 미국의 지배를 받아왔다. 독 립 이후에도 독재정치가 계속되었다. 쿠바혁명은 1959 년 카스트로가 독재자를 축출하고 권력을 장악한 사 건이다. 광장 앞 정부건물 벽면에는 체 게바라의 얼굴 이 있다. 얼굴 밑에 왼쪽은 '너 잘 하고 있어', 오른쪽은 그의 표어인 '영원한 승리의 그날까지' 글씨가 크게 새 겨져 있다. 그는 카스트로와 손잡고 쿠바 혁명을 이끌 었다. 체 게바라는 쿠바의 영웅으로 추대되고 있다. 쿠 바의 아픈 역사가 서린 현장을 보았다.
쿠바 하바나 혁명 광장, 호세 마르티 동상과 기념 탑
* 쿠바 하바나 해변의 모로성과 까바냐 요새
모로성은 해안절벽으로부터 하바나를 지키기 위해 건설한 까바냐 요새의 성이다. 군부대와 대포 등 국방 기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쿠바에서 가장 큰 요새다. 군 사감옥으로, 체 게바라가 집무지로 사용했다. 하얗고 큰 예수상도 세워져 있다. 외형으로는 성이나 요새라 는 개념보다 쿠바 도시의 한 자락처럼 전개되는 고요한 성이다. 해변도로를 따라 이동할 때 자주 보았다.
쿠바 하바나 해변 모로성과 까바냐 요새
쿠바에서 역사가 깊다는 시가 공장을 견학했다. 콜럼 버스가 처음 쿠바 섬에 도착했을 때도 원주민들은 담 배를 피우고 있었다. 지금도 쿠바산 시가는 이 가난한 나라를 먹여 살리는 가장 중요한 수출품이다. 쿠바 담 배 산업의 역사를 보는 박물관을 열고 있다. 1845년에 지어진 건물이다. 시가공장의 1층에서 간단히 설명을 듣고 쿠바의 주요 생산품인 시가와 럼주와 커피를 보 았다. 쿠바 시가는 상당히 크기가 크고 굵다. 다섯 가 지 잎으로 만드는데 해로운 물질이 전혀 들어있지 않단다. 여자들도 담배를 물고 다닌다. 아파트 발코니에 서도 여인들이 담배를 태우고 있다. 담배에 대한 인식 을 새롭게 해주는 시가공장이다. 쿠바의 럼주 박물관은 사탕수수를 발효하여 술을 제조하는 곳이다. 헤밍웨이가 즐겨 마셨던 술로, 쿠바 의 관광 상품이다. 입구에서부터 사탕수수 나무와 술 병, 술통, 동상 등을 전시하여 놓았다. 건장한 남자가 기다란 사탕수수 나무를 기계로 돌려 갈고 있다. 럼주 에 대한 역사와 제조과정의 역사를 사진자료와 실제로 사용했던 물건들, 그리고 제조공장의 모형과 함께 전시 해 놓았다. 내부를 탐방하고 럼주를 시식했다. 아주 진 한 알코올 향기다. 달콤한 사탕수수에서 어찌 이렇게 진한 술이 나올 수 있는지 신기했다.
* 쿠바 하바나 도심의 암보스 문도스 호텔
올드 하바나 도심의 암모스 문도스 호텔은 헤밍웨이 가 쿠바에 처음 들어와 7년 동안 머문 곳이다. 5층 건 물의 분홍색 외벽이 아름답다. 헤밍웨이가 머물던 511 호를 꾸며 그날을 재현한다. 그가 사용했던 타자기와 안경 등이 보존되어 있다. 이 호텔에 머물며 '누구를 위 하여 종은 울리나'를 집필했다. 해가 저물면 성당 옆 카 페에 들려 럼주를 마셨다. 이곳에서 쿠바의 한적한 해 변 마을로 옮겼다. 헤밍웨이는 떠났지만 암보스 문도스 호텔은 오늘날 아주 소중한 쿠바의 관광명소가 되었 다.
헤밍웨이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집필한 하바나 암보스 문도스 호텔
쿠바의 옛 국회의사당 건물인 카피톨리오는 오래된 건물로 박물관이며 시민들의 휴식처다. 건축학적으로 매우 정확하게 건설되었다. 쿠바의 독재자가 많은 노동 자와 기술자를 동원하여 지은 웅장한 건축물이다. 미 국 워싱턴 국회의사당을 건축한 사람이 지었다. 돔 부 분을 제외하고는 미국 국회의사당의 축소판이다. 미국 과 좋지 않은 관계인데도 워싱턴 국회의사당과 닮은꼴 이라니 신기했다.
* 쿠바 헤밍웨이 박물관
하바나에서 남쪽으로 12㎞ 정도 달려 헤밍웨이 박 물관에 갔다. 헤밍웨이가 1939년부터 20여년 거주했 던 저택을 박물관으로 만들었다. 시인인 내가 쿠바에 온 것은 어쩌면 헤밍웨이의 족적을 보기 위함이라 해 도 과언은 아니다. 입구에서부터 울창한 숲이 가슴을 설레게 하며 문학의 향기를 내뿜는다. 박물관에 들어 서니 생시의 생활모습 그대로 유품들을 전시해 두었다. 집필하던 서재와 많은 책들과 침대, 그리고 낚시도구 및 사냥물품들이 있다. 정원에는 그가 탔던 요트와 수 영장이 있다. 높은 전망대도 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 서 헤밍웨이처럼 쿠바 들녘을 뜨거운 문학의 가슴으로 바라보았다. 짙푸른 숲들이 그날을 읊조리는 듯 정겹다.
쿠바 하바나 근교 헤밍웨이 박물관
헤밍웨이 박물관 안내원에 의하면 헤밍웨이가 1961 년 61세에 미국 병원에서 심한 통증으로 자살했다는 것이다. 목에 주사를 놓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단다. 무 덤은 미국에 있다. 가족 중에도 자살자가 있다. 아버지 와 아들이 그렇게 자살로 죽었다. 본처만 네 명이었고, 좋아했던 쿠바 여인은 수없이 많단다. 결혼 이혼을 반 복하며 술을 많이 마시고 많은 여자를 상대하며, 몸이 탕진되었을 거라는 추측이다. 박물관은 세 번째 부인 과 살던 집이다. 재산은 모두 네 번째 부인에게 상속해 주었다. 요트와 이곳 집 등 모두를 그녀에게 줬다. 지금 은 네 번째 부인이 요트를 선장에게 주었는데 선장이 정부에 기증하여 국가 소유다. 헤밍웨이의 숨결이 서려 있어 세계인을 부른다. 미국의 헤밍웨이가 쿠바의 관광 수입을 올려준다. 쿠바에서 헤밍웨이를 만나는 뜻 깊은 여정이다.
헤밍웨이를 매혹시킨 쿠바는 오늘날에도 수많은 여 행객들을 매혹시킨다. 쿠바에 와보니 생각했던 것 이상 으로 아름다운 자연과 낭만과 예술의 향수가 고인 나 라임을 알게 되었다. 며칠 머무르면서도 사랑하지 않으 면 안 될 것 같은 묘한 정이 가슴을 흔든다. 바다가 그 렇고, 울창한 숲이 그렇고, 비록 스페인 식민지 시절의 오래된 건축물이지만 때 묻지 않은 순수의 거리가 그 렇고, 결코 바꾸지 않고 고집하며 몰고 다니는 고전적 인 자동차가 그렇다. 깊은 애정이 서린 쿠바다.
*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배경 쿠바 코히마르 마을
코히마르 마을은 하바나에서 동쪽으로 15Km 떨 어진 한적한 어촌마을이다. 마을에 도착해서 처음 만 난 것은 미국의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 동상이다. 1898-1961이라는 생의 기간도 새겨져있다. 바다를 응 시하는 흉상이다. 헤밍웨이가 저 바다와 이곳 마을의 실제 어부의 삶을 보며, 1952년 '노인과 바다'를 집필한 것이다. 낚시가 취미였던 자신의 생활상을 담아 놓은 소설이다. 해변에 고풍스런 등대 건물이 서 있다. 바다 에는 그날을 재현하듯 조각배가 떠 있다. 바다로 깊이 갈 수 있는 포구도 있다. 바다를 보며, 해변로를 걸으며, 낭만과 철학이 깃든 쿠바의 카리브해 고요한 영토에서 헤밍웨이의 자취를 더듬었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배경 쿠바 코히마르 해변 마을, 그의 흉상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로 노벨문학상을 탔다. 1954년 노벨상 수상소감에서 '이 상은 쿠바 것이다. 내 작품은 쿠바에서 나도 그 일원인 코히마르 주민과 더 불어 착상되고 창조되었다.'라고 고백했다. 이념도 다르 고, 피부색도 달랐던 낯선 영토에서, 헤밍웨이는 카리 브해의 아득한 바다를 보며 꿈을 포기하지 않는 한 늙 은 어부의 삶을 그려냈다. 큰 청새치와의 사투에서 인 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체험과 청새치 뼈다귀만 남은 절망 그리고 다시 바다에 나가자고 조수소년과 약속하 는 희망을 담았다. 헤밍웨이는 소설 속 노인 선장과 낚 시 친구로 정을 나눴고, 그를 통해 자신을 투영시킨 것 이다. 노인은 세상을 떠났지만 아직도 그의 가족들은 어촌마을에 남아 옛 추억을 전하고 있다. 골목에서는 오래된 자동차도 만나고, 가난 속에서도 때 묻지 않은 눈빛의 쿠바인들을 만났다. 모두가 소설 같은 풍경으 로 연출된다.
* 헤밍웨이가 카리브해를 바라보던 라테라자 카페
쿠바 코히마르 마을 해변 라테라자 카페에 왔다. 'LA TERRAZA'라는 상호가 걸려 있다. 마을에 하나 밖에 없는 식당 겸 카페다. 헤밍웨이가 즐겨 찾던 곳으로 이 곳에서 쿠바의 술 럼주를 기울이며 문학을, 쿠바를 사 랑했다. 벽에는 영화 '노인과 바다'의 사진이 걸려있다. 사투를 벌이며 힘겹게 끌어올린 청새치도 있다. 1, 2차 세계대전과 스페인 내전에 참여했던 사진도 있다. 나도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 앉아서 그가 즐겼다는 쿠바식 해물요리와 럼주로 석식을 했다. 헤밍웨이처럼 심오한 눈빛으로 바다를 응시했다. 바다에 어둠이 내린다. 그 날을 재현하듯 배도 지나간다. 그물로 고기 잡는 사람 도 보인다. 모두 헤밍웨이를 만나는 황홀한 순간이다.
<노인과 바다>의 배경 카리브해를 바라보던 카페
헤밍웨이는 쿠바에 대한 애정이 컸다. 쿠바 바다에서 낚시를 즐겼고, 쿠바의 여러 여인을 사랑했고, 쿠바의 술 럼주를 매우 좋아했다. 미국과 쿠바의 정치적 갈등 이 깊어지면서 그는 쿠바를 떠나야 했다. 그는 떠났어도 그날의 숨결은 쿠바 곳곳에 남아있다. 헤밍웨이의 족적을 생생하게 본 보람되고 뜻 깊은 여정이다. 나는 시인이다. 소설가는 아니지만 헤밍웨이의 문학을 사랑 한다. 학창시절 그의 소설을 감명 깊게 읽었다. 헤밍웨 이를 만나고, 헤밍웨이처럼 바다를 바라보는 이 순간 참으로 행복하다.
쿠바에서 비행기로 다시 멕시코로 왔다. 멕시코 코 요아칸 지역은 멕시코시티 남부로 예전에 늑대가 많이 서식하여서 붙여진 지명이다. 코요아칸은 코요태, 즉 늑대를 뜻한다. 공원에 늑대 두 마리가 마주 보고 있 는 석상이 있다. 멕시코를 정복한 최초의 스페인 사람 이 살던 집도 있다. 스페인 사람이면서도 멕시코의 독 립운동을 했던 신부님 동상이 광장 중앙에 세워져있 다. 멕시코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도 있고, 프라다 칼로 의 박물관도 있다.
프리다 칼로 박물관은 여류화가 프리다 칼로의 생가 다. 태어나고 사망한 곳으로 그녀의 삶을 보여주고 있 다. 작은 숲과 연못을 꾸민 정원에 파란색 건물로 지어 졌다. 그녀의 그림과 남편 조각품이 전시되어있다. 침실 과 유품도 있다. 그의 자화상에는 삶의 고통이 배어 있 다. 평생 수술과 진통제, 목발에 의지하여 살았다. 침대 에 누워 거울을 보며 자화상을 주로 그렸다. 슬프고도 힘든 자신의 마음을 강렬하게 나타내었다. 6세에 소아마비로 인하여 한쪽 발이 불구였는데, 고교 시절 스툴 버스로 하교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쇠창살이 척추 에서부터 자궁을 관통하여 평생 불임이 되었다. 두 번 의 결혼과 실패를 거치며 일생 동안 행복한 적이 없었 단다. 우리에게는 낯선 이름이지만 한 여인의 고독한 예술세계를 잠시나마 둘러보았다.
* 멕시코시티 도심의 콜럼버스 동상
멕시코시티 도심에 콜럼버스의 동상이 서 있다. 곧 철거 될 거란다. 콜럼버스가 이 대륙에 오면서 엉망이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배운 교과서의 내용과는 다 른 이야기를 듣는다. 콜럼버스가 들어오면서 멕시코 는 1521년부터 1821년까지 300여 년 간 스페인의 지 배를 당했다. 스페인은 아즈텍 왕국을 멸망시키고 식민 지로 삼았다. 콜롬버스 동상의 곁을 스쳐 지나가며 그 의 뒷모습이 보일 때, 신대륙을 발견한 위대한 인물로 만 알았던 그가 지하에서라도 자신의 동상을 망가뜨 려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 얼마나 처절할까 싶어 안타 까웠다. 세계여행을 하다보면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많이 얻는다.
멕시코시티 도심의 콜럼버스 동상, 원주민에겐 치욕으로 곧 철거 예정
멕시코 독립기념 탑은 멕시코시티 중앙도로 대로에 위치해 있다. 36m의 탑 꼭대기에 황금색으로 빛나는 천사상이 있다. 천사의 탑이기도 하다. 1910년 멕시코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건립되었다. 네 귀퉁이에 세 워진 형상은 법과 정의, 전쟁, 평화를 나타내고 있다. 독 립운동 영웅을 상징하기도 하며 그들의 유골이 안치되 어있다.
* 멕시코시티 국립 인류학 박물관
국립 인류학 박물관은 멕시코에서 가장 크며, 세계 의 박물관 중 하나다. 멕시코의 문명유물 전시실과 지 방 풍물민속관으로 구성되어있다. 마야인들은 아기 때 이마를 뒤로 짓누른다. 신과 같은 형상으로 만들려고 그런다. 이마가 뒤로 제켜져 있다. 나무틀에 넣어서 이 마를 누르다가 아기가 사망하기도 한다. 아스텍 전시실 에는 멕시코 상징이며, 멕시코가 다 들어있다는 커다 란 태양 모형의 돌판이 있다. 인간의 심장을 꺼내어 신 에게 인신공양을 하던 장면도 있다. 고산 지대의 호수 에 떠 있는 멕시코의 조감도가 벽면에 걸려있다. 아즈 텍 수도는 호수에 떠 있는 환상적인 도시였다. 에스파 냐의 탐험가가 도시를 발견했다. 물 위에 뜬 궁전, 신전, 탑을 보고 놀랐다. 국립 인류학 박물관은 대단히 큰 규 모로 마야인들의 생활상을 볼 수 있는 소중한 역사자 료 공간이었다.
멕시코시티 세계적인 규모의 국립 인류학 박물관
차풀테펙 공원은 국립 인류학 박물관 곁에 있다. 옛 날 왕이 휴식을 취하던 곳이다. 아름드리나무들이 빼 곡하게 들어차있다. 차풀테펙은 스페인어로 메뚜기란 뜻이다. 이곳에 메뚜기가 하도 많아서 그렇게 붙여진 이름이다. 멕시코에는 이런 식으로 지어진 이름이 많단 다. 스페인과 무관하지 않은 지명들이다. 소칼로 광장은 멕시코의 배꼽과 같은 중앙광장으로 일대가 모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정식명 칭은 헌법광장이다. 1843년 독립기념 탑의 기반석을 놓으면서 '기반석이 있는 곳'이란 뜻의 소칼로로 바꾸 었다. 아스텍 제국 수도의 심장부로 도시의 상징이기도 하다. 국립궁전, 에스파냐가 아메리카에 세운 최초의 대성당 등이 있다. 원주민들의 삶을 보는 소중한 장소 이기도 하다. 매일 아스텍 문화에 관한 공연이 펼쳐지 고 있다. 용맹스러운 아스텍 군인과 인디오 복장을 하 고 의식을 올리는 광경을 보여준다. 헌법광장은 과거와 현재의 멕시코를 만나는 소중한 장소다.
* 멕시코시티 과달루페 성당
과달루페 성당은 멕시코의 수호신 과달루페 성모를 기리는 성당이다. 포르투갈의 파티마, 프랑스의 루르드 와 함께 세계 3대 성모 발현지이다. 1531년 12월 효성 스런 인디언 후안 디에고가 숙부의 병을 고쳐달라고 신부에게 가는 언덕에서 성모 마리아가 두 번 발현하 여 성당이 세워졌다. 겨울에 장미를 만발시키는 기적을 행했다. 후안 디에고는 장미꽃을 품고 성당으로 갔는 데 가슴팍에 성모가 새겨져있었다. 그때 새겨진 성모 의 염료를 연구해 보니 이 세상에는 없는 우주의 염료 였다는 것이다. 후안 디에고의 가슴에 성모 모습이 우 주의 염료로 순간 분사 접착된 된 것이다. 그로인해서 성모 발현이 인정되었다고 한다. 성당 입구 후안 디에 고의 동상 가슴에는 그날의 성모가 새겨져있다. 기적 의 장소이며 정신적 지주의 성소다. 가난한 멕시코인들 과 인디언들에게 위안을 주고, 미래에 대한 희망과 꿈 을 주는 곳이다. 1533년 건축된 이래 수세기 동안 전 세계 성직자와 신도들의 순례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성모 발현일인 12월 12일에는 매년 예수의 고행을 따 르려는 신도들이 성당 입구부터 강단까지 무릎으로 기 어오른다. 멕시코 전역에서 3년 전부터 걸어서 온다. 산 간지역에서 노숙하며, 음식을 준비하여 먹으며 온다. 이곳에 도달하면 입구에서부터 무릎 꿇고 기어서 성당 안으로 들어가 참배한다. 붕괴위험으로 다시 지어 미 사 드리는 성당도 있다. 요한바오로 2세 교황 동상이 성당 곁에 세워져 있다. 무엇보다도 후안 디에고의 효성 과 성모 발현이 가슴을 울리는 성당이다.
멕시코시티 과달루페 성당의 후안 디에고 동상, 가슴에 새겨진 성모 발현 모습
성당 내부를 관람하고 밖으로 나오니 넓은 마당이 있다. 마당 끝에는 시계탑이 있다. 구 성당과 신 성당 그리고 성모 발현 언덕이 아주 신성하고 아름다운 정 경이다. 신축 성당 안으로 들어가니 정치와 종교 다툼 에서 폭발물로 망가질 뻔한 이 성당을 지켜낸 구부러 진 십자가가 전시되어있다. 폭발로 인해 구부러진 형상 그대로 두었다. 다음으로 간 곳은 성모 발현의 날에 나 타난 성모의 모습을 담아 높은 곳에 걸어둔 곳이다. 평 평하게 설치한 에스켈레이터 위에 올라 자동으로 왕복 움직이며 높은 곳의 성모를 본다. 후안 디에고가 본 성 모 마리아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보는 마리아의 모습 은 아니었다. 검은 머리에 갈색 피부를 가진 인디언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과달루페 성당의 성모 마리아도 검 은 머리에 갈색 피부의 모습을 하고 있다. 나는 몇 년 전 포르투칼 파티마에서 듣고 보았던 성모 발현 성당 이 떠올랐다. 참으로 신앙은 위대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성스러운 명소다.
멕시코시티 과달루페 성당 외경
테오티우아칸 유적지 입구에 선인장 군락이 있다. 멕 시코 선인장은 술의 원료로 쓰인다. 테킬라는 선인장의 포기를 쪄서 발효한 술이다. 세계 90여 개국에 수출한 다. 스페인 사람들이 증류법을 도입하여 개발된 이 술 은 생산지인 테킬라 시의 이름을 붙였다. 아주 큰 선인 장이 곳곳에서 자생하여 많이 보았다.
테오티우아칸은 멕시코시티에서 50여km 떨어진 해 발 2,300m에 있는 신들의 도시다. 7세기경 20만 명이 살던 고대도시는 어느 날 천 년의 영화를 접고 사라졌 다. 지금까지 아무도 모르는 사라진 문명이다. 지배자 의 무덤을 찾던 아즈텍 사람들이 발견했고, '신의 도시' 라는 뜻으로 테오티우아칸 이름도 지었다. 10분의 1 정도만 발굴했는데 여의도의 4배에 달하는 거대한 유 적이다. 광장과 신전, 죽은 자의 거리, 태양의 피라미드, 인간제물을 신에게 바쳤던 달의 피라미드 등이 있다. 주변에는 주거지와 경작지로 이루어져 있다.
* 멕시코 테오티우아칸 달의 피라미드
달의 피라미드는 죽은 자의 거리를 사이에 두고 태 양의 피라미드와 마주 보고 있다. 바닥 면의 한쪽 길이 가 140m와 150m이고, 높이는 46m다. 태양의 피라미 드보다 작지만 지형이 높은 곳에 세워져 있어 두 피라 미드가 비슷해 보인다. 달의 피라미드는 기원후 500년 경 건설된 테오티우아칸의 실질적인 상징이다. 인간의 심장과 피를 바쳐 제사의식을 행하던 곳이다. 스페인의 지배를 받던 16세기까지 천 년 넘는 세월 동안 지속해 왔다. 피라미드 계단 경사가 급해 줄을 잡고 사력을 다 해 올라 고대도시의 잔해를 조망했다. 산으로 둘러싸 인 드넓은 중앙 고원이다. 신전과 궁전, 태양의 피라미드, 케찰코아틀 신전과 대광장까지 보인다. 고요한 정적 이 흐르는 전설의 고대도시를 눈앞에서 바라보니 숙연 해진다. 멕시코의 어제와 오늘을 보는 소중한 명소다. 광장에서 멕시코 남자가 선인장과 야생식물을 으깨어 천연물감으로 그림을 그린다. 숱한 사람들이 죽어갔을 영토에서 그날의 영혼을 위로하는 듯하다.
멕시코 테오티우아칸 달의 피라미드
* 멕시코 테오티우아칸 죽은 자의 거리
죽은 자의 거리는 테오티우아칸의 중심으로 달의 피 라미드에서부터 태양의 피라미드까지 이르는 거리다. 주변에는 여러 유적들이 있다. 고대인들이 태양과 달, 농업과 관계가 깊은 물을 중시했기 때문에 신에게 의 식을 올렸던 장소로 추측한다. 제물로 바쳐지는 인간 이 길게 줄지어 대기했던 죽은 자의 길이 언제 그랬냐 는 듯 처연하게 쭉 뻗어있다. 제사장은 칼로 도려낸 심 장을 제단에 바쳤다. 신에게 바칠 인간 제물이 오가던 성스러운 길을 산 자들이 채우고 있다. 제물로 죽어간 사람들의 족적을 따라 아픈 흔적을 체험하며 한참을 걸었을 때 눈앞에는 거대한 태양의 피라미드가 그 위 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멕시코 테오티우아칸 죽은 자의 거리
* 멕시코 테오티우아칸 태양의 피라미드
태양의 피라미드 역시 테오티우아칸 유적지를 상징 하는 건축물이다. 밑면이 222m, 225m, 높이가 63m 로 거대하다. 우리나라 상암 월드컵 경기장의 7배에 이 르는 규모다. 기원전 200년경부터 세워진 것으로 추정 된다. 이집트 피라미드는 삼각형이지만 멕시코 피라미 드는 정상이 평평한 삼각주 모양이다. 4층으로 하루에 3천명의 인력으로도 30년은 걸렸을 것으로 계산된다. 아즈텍인들은 테오티우아칸을 발견한 뒤 그 규모에 놀 라 신들의 도시로 받들었고 태양과 달의 신화를 만들 어냈다. 250여 개의 계단으로 바라보는 것만도 아득하 다. 피라미드 정상에 서면 태양의 신에게 바쳐진 신전 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태양과 마주하고 광활한 멕시코 의 고원이 전개된다.
멕시코 테오티우아칸 태양의 피라미드
2월, 한국은 아직 겨울인데 이곳은 더운 날씨다. 또 한 태양과 아주 가까이 마주선 느낌이다. 테오티우아 칸 유적지를 모두 관람하고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먼 나라 멕시코에 와서 여러 가지 지식을 얻는 유익한 시 간이었다. 모든 탐방을 마치고 마야 유적지 식당에서 멕시코 전통음식을 먹었다. 옥수수 가루 반죽을 얇게 말려 튀 긴 토르티야에 소고기 등 육류와 선인장 열매 등 야채 를 볶아서 싸먹는 전통요리 타코다. 야채절임 소스를 발라 먹는데 매콤하고 톡 쏘는 맛이 상큼하다. 마야인 의 향수를 자아내는 옛 손길로 풍성한 식단을 베풀어 주는 손길에 고마웠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멕시코에서 미국 LA로 와서 인 천행을 환승했다. 인천공항에 오니 날씨가 무척 춥다. 같은 지구상인데 기온이 이렇게 다를까. 세계여행은 늘 새로운 자극으로 새로운 눈을 열어준다. 조국의 품 에 안기니 참으로 행복하다. 더욱 열심히 성실하게 살 것이다. 문학의 길에서 시인의 사명에 더욱 충실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