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재
산삼을 캐다니!
지난해 봄 강원도 영월산 8부 능선에서 산삼을 발견했던 그 날의 일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설렌다. 며칠간의 황금 휴일이 눈앞에 있으니 마음이 들떴다. 내가 앞장서서 뿔뿔이 흩어져 사는 친정 식구를 모았다. 강을 끼고 있는 평온한 펜션에서 가족이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데 뜻밖의 소식 하나가 우리를 들뜨게 했다.
영월에 사는 이모가 이곳으로 오는 중이라는 것이다. 어린 시절 우리 오 남매가 유독 따랐던 이모다. 한창 일손이 바쁜 농번기라 이모한테는 차마 연락을 하지 못했는데 친정어머니가 연락 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모부가 큰 인심을 쓰셨나 보다. 새로 상을 차리려고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는데 벌써 이모가 도착했다. 우리는 마치 이산가족이 상봉한 것처럼 부둥켜안고 환호를 했다.
사흘은 너무 짧았다. 오빠 내외는 먼저 서울로 떠나고 우리는 이모를 집까지 바래다주고 거기서 헤어지자고 했다. 여전히 재미있는 이모의 우스갯소리를 들으면서 추억 이야기를 가득 싣고 산마루를 몇 개나 넘었다. 저녁 햇살이 영월강을 고요하게 할 즈음 드디어 이모 집에 도착했다. 이모의 메밀 부침개 유혹에 저녁밥만 먹고 일어서려는데, 이모부의 폭탄선언이 그만 발목을 잡았다. 내일 새벽에 산삼을 캐러 가자는 것이다. 산삼이라니!
이모부의 이야기는 대충 이러했다.
지난해 여름 산에 올라갔다가 삼을 몇 개 발견했다고 한다. 그중 두 뿌리를 캐서 사람들에게 보여줬더니 장뇌삼이 아닐까 하더란다. 그런데 어떤 이가 한 뿌리 당 20만 원씩 주고 두 뿌리 모두 사 가더니, 이튿날 다시 와서 삼을 더 살 수 없느냐고 했다 한다. 그때야 이모부는 '그게 산삼이었구나!’하고 눈치를 챘다는 것이다. 나머지는 아직 너무 어린 것 같아 몇 해 더 묵혀 놓았다가 캐려고 아껴 두었는데, 산에 올라가는 사람들에게 들킬까 봐 아무래도 불안하여 내일 새벽에는 캐야겠다는 것이었다.
그날 밤은 온통 산삼 이야기뿐이었다. 산삼 열매가 빨간색을 띠는 때는 여름이라는 것도 그날 처음 알았다. 산삼을 발견하고도 얼른 캐지 않고 어떻게 그냥 두고 내려올 수 있었느냐는 나의 말에 “그러게 말이야. 그 자리에서 바로 먹었어야지. 에구, 또 모르지 뭐. 혼자 먹었는지도."하고 눈을 찡긋하는 이모 말에 우리는 그럴지도 모른다며 맞장구치며 웃었다.
“지금 비가 살살 내리는데 올라가겠어?”
이모부의 목소리는 두어 시간 잠을 자던 우리들의 단잠을 깨웠다. 이모부는 약주를 아무리 거하게 해도 새벽에 일어나서 소 여물 준비와 논, 밭일에 게으름을 피우는 일이 없는 부지런한 농부다. 장화를 신고 곡괭이를 들고 있는 이모부를 보면서, “아이고, 그럼요 이모부.”하며 벌떡 일어났다. 예전에 어떤 책을 읽으니 심마니는 산삼을 캐러 가기 전 몇 가지 수칙이 있던데 지키지 않고 산에 올라가도 되려나 생각하면서 재빠르게 세수를 하고 나섰다.
산길이 따로 없는 숲 속에는 빛바랜 나뭇잎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산길은 미끄럽고 살금살금 내리던 빗방울은 어느새 모자를 타고 목덜미를 적셨다. 우리는 고사목을 붙들고 올라가다 미끄러지면 다시 기어 올라갔다. 빛바랜 낙엽을 타고 빗물은 땅속으로 스며들었다. 산을 오를수록 점점 더 힘들었지만, 산삼을 캘 수 있다는 기대감이 힘을 덜어주었다. 산삼은 하늘에서 내려준 선물이라 하여 천삼(天蔘)이라 하던데, 어떻게 그런 기회가 내게도 올 수 있을까. 나한테도 그런 신령스런 물건을 얻을 횡재가 찾아온단 말인가.
다행히도 산삼은 등산객의 손을 타지 않고 무사했다. 모두 열한 뿌리였다. 모두 캐어야 한다는 이모부 말에 나는 높이가 낮은 산삼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거의 몸을 옆으로 기울이다시피 해서 난생처음 산삼을 캤다. 빗물을 털어내려다가 혹여 잎이 상할까 봐 조심스러웠다. 이모부가 가지고 온 상자 안에 정성스럽게 담아서 산을 내려왔다.
인정 많은 이모부는 그중 한 뿌리를 친정어머니께 드렸다. “늙은이가 뭐 이런 걸 먹어.” 하시는 어머니께 이모부는, “잎사귀까지 드셔야 좋아요.” 하며 억지로 손에 쥐여 드렸다. 나머지는 우리 부부에게 주시면서 작은 것은 아이들 먹이고, 큰 뿌리 몇 개는 팔아달라고 했다. 이참에 식구들끼리 앉아서 나눠 먹으면 좋으련만 이모부의 생각은 달랐다. 현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타지로 보낸 자녀를 걱정하는 이모부의 간절한 소망에 누구도 입안을 달콤하게 할 제안을 할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자 바쁜 사람은 남편이었다. 산삼 전문 감정사를 찾아야 한다며 이곳저곳 전화를 했다. 아이스박스를 들고 들어 온 남편은 우리가 캔 삼은 지종 산삼이며 큰 것은 25년산, 작은 것은 10년산 정도라고 했다. 감정을 마친 감정사는 상품의 신선도를 유지해야 한다며 이끼를 깔고 덮어 주었다. 이끼를 베고 누워있는 산삼은 훨씬 신분이 높아 보였다.
이제는 산삼을 팔아야 하는 일만 남았다. 신선도를 유지해야 하는 물건이라 하루가 지날수록 조바심이 났다. 큰 기대를 하며 기다리는 이모부를 생각하면 좋은 가격으로 빨리 팔아 드려야겠는데 임자가 선뜻 나타나지 않아 걱정이 태산이었다. 남편은 여기저기 전화를 해서 산삼을 보려는 이가 있으면 만사 제쳐놓고 쫓아다니느라 분주했다. 나 역시 때때로 냉장고의 서랍장을 열어 보며 상품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정성을 쏟았다. 신분 높은 산삼을 위해 밖으로 쫓겨난 과일이나 채소는 날이 갈수록 상하거나 시들어져 갔지만 나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산삼이 어느새 내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를 잡아버린 것이다.
며칠 뒤 남편이 적당한 가격에 팔렸다고 하며 내 일처럼 좋아했다. 우리는 후유- 한숨을 돌렸다. 매일 같이 이모부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얼마나 심리적 부담이 컸던가! 순박한 이모부는 우리 부부에게 고맙다는 전화를 몇 번이나 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정작 산삼이 팔렸다는 말을 들으니 안도감과 함께 마음 한쪽에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어쩐지 나의 횡재가 빠져 나가는듯한 아쉬움이 생기면서 산삼을 선뜻 내어놓기가 아까워지는 것은 왜일까. 어쩌면 나는 산삼을 나의 횡재로 착각했던 것은 아닐까. 나도 모르는 사이 잠시나마 귀한 물건이 나의 욕망 속으로 들어왔던 것은 아닐까.
여름도 가고 겨울이 찾아왔다. 찬바람이 꽁꽁 닫힌 창문을 세차게 두들겼다. 텔레비전을 켜니 벌써 눈이 많이 내린 산간지역이 있다고 전했다. 올해는 배추작황이 좋지 않다더니 배춧값이 금값이라고 걱정하는 어느 주부의 얼굴이 화면을 메웠다.
김장이 ‘금장’이 되겠다는 말이 나온 지도 여러 날이 지났다. 현관 벨이 울려 문을 여니 무거운 상자 두 개가 택배로 왔다. 강원도 영월에서 이모가 보낸 선물이었다. 포장을 뜯으니 보기만 해도 군침 도는 유기농 절임 배추가 비닐 속에 차곡차곡 누워 있었다. 마치 지난 봄날, 이끼 위에 누워 있던 그 산삼처럼 나의 손을 기다리고 있는 배추를 보자 탄성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이게 웬 횡재야?”
* 장뇌삼 : 사람의 손으로 직접 산삼 씨앗을 받아 재배한 것.
* 지종 산삼 : 새들이 산삼의 씨를 먹고 산중에 배설하여 생긴 산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