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서 - 절망을 건너는 법
‘불행’과 ‘행복’의 차이는 뭘까? 불행은 노력하지 않아도 오는데 행복은 노력해도 잘 오지 않는다는 것? 다니엘서는 지혜로운 사람 다니엘의 인생여정을 통해 ‘진정 시련과 절망은 불행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시련과 고통은 결코 누구에게도 만만치 않은 현실적 과제이며 무거움이지만 지혜로운 자에게는 시련과억압이 결코 불행과 상처가 될 수 없음을 가르쳐 주고 있다.
1. 개관
성경의 책들 중 다니엘서만큼 복잡한 문제를 많이 안고 있는 책도 없다. 다니엘서의 외형만 본다 하더라도 그 복잡한 구조를 쉽게 찾아낼 수 있다.
1) 두 가지 경전 : 다니엘서는 성경 안에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등장하는데 일부는 제1경전에 속하고 나머지 부분(3, 24-90; 13-14장)은 제2경전에 속한다. 이런 특이한 예를 보여주고 있는 책은 성경 전체에서 다니엘서와 에스테르기뿐이다.
2) 세 가지 언어 : 원어로 된 다니엘서를 보면 세 가지 언어(히브리어, 아람어, 그리스어)가 혼용되어 있다. 제1경전에 해당되는 부분은 셈족 계열 언어인 히브리어와 아람어로 서술되어 있는 반면, 제2경전 다니엘서는 그리스어로 되어 있다. 제1경전 역시 사용된 언어에 따라 두 부분으로 구분되는데 처음과 끝부분(1, 1-2, 4r과 8-12장)은 히브리어로, 그 사이에 들어가 있는 부분(2, 4s-7, 28)은 아람어로 쓰여 있다.
다니엘서 그리스 역본들도 각별한 관심을 갖게 하는데, 특별히 칠십인역과 테오도시온역이 큰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테오도시온역이 히브리 본문에 더 근접하다고 보고 있다.
3) 두 가지 위치 : 다니엘서가 배치되어 있는 자리도 성경에 따라 다르다. 그리스도교의 경전이라 할 수 있는 칠십인역에서는 다니엘서가 ‘예언서’범주에 자리하고 있지만, 히브리 성경은 ‘성문서’ 안에 포함시키고 있다. 다시 말하면 디아스포라 유다인들은 다니엘서를 예언서 그룹에 위치시켰지만, 본토의 유다인들은 이를 지혜문학과 가까운 성문서의 하나로 본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문학적 ․ 문체적 성격의 구분일 뿐 아니라 저작 연대와 정경 목록의 영입시기와도 관련되어 있어 더욱 복합적인 문제로 남아 있다.
4) 두 가지 장르 : 내용 역시 두 가지 장르가 혼합되어 있는데, 전반부(1-6장)는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이 벌이는 전설적 이야기들이 ‘설화’양식으로 소개되고 있는 반면에 후반부(7-12장)는 환시를 등장시키는 ‘묵시문학’ 양식을 취하고 있다. 다니엘 자신에 대한 정체성동 전반부와 후반부가 달리 제시되고 있는데, 전반부에서 다니엘은 뛰어난 현자로서 꿈에 대한 1차적 해석자로 등장하지만 후반부에서는 단지 환시를 볼 뿐 그 의미를 해석하지 못해 또 다른 천상적 해석가에게 의존하고 있다.
2. 저자와 제작 연대
전통적으로 다니엘서는 기원전 6세기경 바빌론에 유배 갔던 다니엘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예로니모는 「다니엘서 주석」이라는 저서에서 포르피리(Porphyry)의 증언을 인용하면서, 다니엘서는 기원전 6세기 작품이 아니라 기원전 2세기 작품임을 명시하였다. 곧 다니엘서가 배경으로 삼고 있는 시기는 바빌론 유배시기(기원전 6세기)지만 이는 그저 이야기의 배경일 뿐 실제로 책이 제작된 것은 그보다 400년 정도 후인 안티오쿠스 박해 때(기원전 2세기)라는 것이다.
다니엘서가 기원전 2세기경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뒷받침해 주는 단서들은 다니엘서 자체가 암시하고 있는 내용에서도 발견된다. 10-12장이 묘사하고 있는 정치․사회적 상황들이 기원전 2세기 중반 근동지역과 팔레스티나 지역의 정황을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 기원전 180년경 저술된 집회서의 예언자들 목록에 다니엘이 언급되지 않는다는 점, 반면 기원저 134년-63년 사이에 저술된 마카베오기 상권의 저자가 다니엘서를 알고 있었다는 점도 다니엘서의 2세기 저작설을 뒷받침한다. 특별히 다니엘서가 안티오쿠스에 의한 성전 유린(기원전 167년; 11, 31 참조)과 박해(11, 33). 마카베오가의 성전 정화(기원전 164년; 11, 34 참조)에 대하여는 자세히 보도하고 있지만 안티오쿠스의 죽음에 대해서는 정확히 묘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다니엘서의 최종 편집 연대를 안티오쿠스 왕의 죽음 즈음 혹은 죽음 직전인 기원전 164년경으로 추정하게 한다.
3. 구조와 간추린 내용
앞에서 언급했듯이 다니엘서(제1경전 부분만 본다면)는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라는 양대 구조로 되어 있다. 전반부(1-6장)는 바빌론에 유배 간 청년 다니엘에 대한 일화들이고, 후반부(7-12장)는 다니엘의 환시에 대한 북시 문학적 보도이다.
전반부 : 1-4장의 내용은 네부카드네자르 치하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예수살렘에서 유배 온 이들에 포함되어 있던 다니엘의 철저한 율법준수와 하느님께 대한 성실이 부각되어 있고, 이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진 하느님의 지혜가 핵심적 모티브로 강조된다. 5장에서는 벨사차르라는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여 예루살렘 성전에서 약탈해 온 용기들로 술을 마시는 연회를 여는데, 이런 신성모독의 죄가 어떤 재앙을 불러일으키는지를 보도한다. 그 죄의 결과는 왕의 비참힌 죽음과 바빌론 대제국의 멸망이었다. 6장은 메디아의 다리우스 치세를 배경으로 하면서 사자굴 속에서도 살아남은 다니엘의 이야기를 전한다.
후반부 : 7장부터는 다니엘의 환시가 보도된다. 바다에서 등장하는 짐승들의 환시(7장), 숫양과 숫염소의 환시(8장), 예레미야의 70주간에 대한 예언(9장), 아마포 옷을 입은 사람에 대한 환시(10장), 당시 역사적 정황에 대한 환시적 보도(11장), 마지막 때에 대한 환시(12장) 등이 소개된다.
4. 묵시문학의 등장 배경
묵시문학의 ‘위기’라는 특정한 상황에서 배태된 신학적 대응이었다. 곧 묵시문학은 평화로운 때 서재나 연구실에서 사색과 탐문을 거듭하다가, 혹은 성전에서 감미로운 관상에 잠겨 있다가 돌연히 미래에 대한 환시를 보고 이를 낭만적 문체로 써나간 일종의 ‘안방 문학’이 아니라는 것이다. 묵시문학은 당시의 정치적 독재와 억압․불평등에 대한 주체적 대응이라는 시대적 대의가 산출한 일종의 ‘사회, 정치, 신학적 총체’라고 할 수 있다. 인간 모두를 하나의 통치이념 안에 구속하려는 이데올로기는 ‘정복자에게 충성’이라는 획일적 명분만을 내세워 폭력과 불의를 자행했고, 이러한 무력 앞에서 유다인들의 신앙과 하느님은 절대로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말할 수 없는, 아니 말해서는 안 되는 이야기였다. 삼엄한 규제 속에 신앙과 하느님에 대한 소통이 갇히게 되자 그들은 일반덕 언어가 아닌 그들만의 언어인 상징, 꿈, 환시라는 장치를 통해 소통을 모색하게 된다. 같은 신앙과 같은 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도저히 해독해 낼 수 없는 언어로 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5. 여러 분파의 탄생 - 다니엘서의 기능
이러한 정치, 종교적 박해는 당시 이스라엘 선각자들에게 뜻을 같이하는 사람끼리 주체적인 그룹을 형성하게 했고, 이러한 그룹은 일종의 운동형태(movement)로 성장하게 된다. 바로 이것이 ‘유다이즘’과 여러 분파의 탄생이었다. 이 그룹들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바리사이파, 사두가이파, 에세네파 등이 있고, 또한 무력항쟁으로 투쟁에 나서 마카베오 집안도 끼어 있었다. 다니엘서 역시 이러한 반응의 한 부류라고 할 수 있는데, 다니엘서가 다른 운동과 차별되는 점이 있다면 그 어떤 대응보다 비폭력적이라는(글을 써서) 것이다. 그들은 독재의 무력에 또 다른 무력으로 맞서는 것은 결코 근본적 대안이 될 수 없음을 확신했다. 따라서 다니엘서 안에는 그 어떤 폭동이나 혁명의 그림자를 찾아복 수 없다. 그들은 오히려 ‘지금, 여기’의 현실 안에 숨어 있는, 그러나 반드시 존재하는 하느님의 주권을 초월적 시각으로 간파하고 그러한 신앙적 전망으로 지금의 모든 시련을 견디어 내자는 ‘종교적, 비폭력적 대안’을 일종의 문학 양식으로 제시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다니엘서가 제시하는 다니엘의 모습은 폭력이나 반역과는 거리가 멀다. 시련과 시험, 오해와 음모 속에서도 다니엘은 하느님 친히 함께 계셔주심에 대한 철저한 신앙만을 유일한 도구로 삼을 뿐이다. 바로 이러한 비폭력적 자세와 전망을 저자는 그 시대의 어둠을 이겨낼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지혜로운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6. 신학적 주제들
1) 야훼 신앙에 성실함
다니엘서가 일관되게 제시하고 있는 주제는 ‘하느님께 대한 성실’이다. 유배와 이방 종교의 위협 속에서도 청년 다니엘을 최고의 위치로 부상시켰던 비결은 그가 하느님께 가졌던 절대적 신앙과 공경이었다. 네부카드네자르와 벨사차르는 여러 신상들에 예를 갖추고 그들을 찬양하며(5, 4), 임금을 신처럼 숭배하기를 요구하지만 다니엘은 죽음을 각오하고 이에 맞선다(3; 5; 6장). 결국 다니엘서 전반부에 등장하는 일화의 대부분은 그러한 다니엘의 모습에 감동한 이방인들이 하느님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마무리된다.
2) 역사의 주인은 하느님
다니엘서 2장; 7장; 10장; 11장 등은 하느님을 공경하는 의인들의 세력에 대적하는 악의 세력들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들이 종국에는 하느님의 지배에 종속되고 굴복됨을 부각시키고 있다. 곧 역사 전체의 주권은 오로지 하느님께만 있다는 것과 역사의 모든 정치적, 사회적 움직임은 하느님의 경륜 안에 진행되고 있다는 것, 현재적 고통과 암울은 종국에는 ‘사람의 아들 같은 이’(7, 13 참조)의 승리로 돌아간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3) 묵시주의와 부활사상
이러한 내용은 묵시주의적 사고와 연결되고 하느님께 충실했던 이들이 받게 될 궁극적 보상으로서 부활사상을 산출시킨다. 다니엘서는 구약성경(제1경전) 안에서 인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내용을 가장 명시적으로 선포하고 있는 유일한 책이라고 할 수 있는데(12, 1-3 참조), 특히 부활이라는 특별한 신학적 모티브를 통해 공의로우신 하느님은 내세에서라도 의인들에게 선한 삶에 응당한 상급을 내리는 분이심을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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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행복과 성공을 만들어 내는 사람을 우리는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부른다. 지혜로웠던 다니엘이 터득한 행복의 비결은 언제 어디서든 ‘그분과 함께한다.’는 의식이었고, 사실 이 의식은 성경 전체가 끈질기게 모색하고 있는 구원의 비결이기도 하다. 절망이 우리를 삼켜버릴 수 있을지 몰라도 하느님을 정복할 수는 없다. 극도의 소외와 낯선 비방들 속에서도 다니엘이 절망하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과 입지를 구축해 낼 수 있었던 바로 그 지혜를 우리도 이제는 좀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저 막연하고 태연하게 있기에는 삶의 도전들이 너무도 만만치 않으니말이다.
야곱의 우물에 김 베아트릭스 수녀님이 게재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