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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강해(2) 2023. 7. 9
기도의 사람, 느헤미야
느헤미야1:5-11
<공감의 사람, 느헤미야>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을 방문하고 돌아온 동생에게서 아직도 예루살렘 성은 무너져있고 성문은 불타버린 채 백성들은 능욕당하면서 그대로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슴을 치며 통곡하며 금식하며 울며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공감의 사람).
왜 느헤미야는 이렇게까지 기도하였을까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누구를 참으로 사랑한다는 증거는 그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사랑의 가장 구체적인 표현입니다. 사랑한다면 기도하십시오.
한편, 경영학자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성공적인 경영을 위해서는, 우선순위를 정하고, 가장 중요한 일, 최우선적인 일("First Things First")들부터 먼저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 가장 우선적인 일은 무엇입니까? 예, 기도입니다.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마무리하는 것입니다.
오늘 느헤미야를 보십시오. 인간적으로 생각해 보면, 느헤미야가 자기 민족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은 먼저 아닥사스다 왕에게 도움을 청하는 일입니다. 그는 ‘술 관원’으로 왕의 신임을 한 몸에 받고 있었습니다(관계의 힘은 엄청나게 큼, 전관예우). 그는 언제든지 아닥사스다 왕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왕에게는 안 되는 일이 없습니다. 왕이 곧 법이기에 왕의 말 한마디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요? 자기 힘으로 이루었다고 교만하게 됩니다. 결국은 타락의 길로 갔을 것입니다.
다행히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에게 먼저 호소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을 최우선적인 일로 삼고, 무릎을 꿇고 금식하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사람을 움직이는 것보다 하나님을 움직이는 것이 먼저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보다 앞서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진리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잠언16:9)이시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탈출시키시고, 반드시 지키라고 정하신 법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보다 먼저 움직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불기둥과 구름 기둥이 움직이지 않을 때에는 멈춰있으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이렇게 정의하였습니다. 신1:33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
우리는 예수님의 삶을 통해서도 그 진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40일을 금식하시며 기도하셨고, 공생애 내내 기도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십자가를 지는 순간까지 기도하기를 쉬지 않으셨습니다(마26:34-46). 기도가 무용한 일이라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왜 그렇게까지 기도의 본을 보이시려고 애를 쓰셨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마지막 순간까지 호소하신 말씀은 “깨어 기도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과 제자들(베드로, 요한, 야고보)이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기도에 성공하신 예수님은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셨고, 기도에 실패한 제자들은 예수님을 부인하거나, 멀리 도망갔습니다.
예수님은 몇 번이고 “깨어 기도하라”고 권면했지만, 그들은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기도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바라기는 우리 성도들도 어떤 사업을 하든지, 어떤 결정을 하든지 시작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실행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루를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마무리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며칠 전, 저는 내비게이션을 믿지 못해, 시간을 지체한 일이 있었습니다. 제2자유로에서 자꾸 옆길로 빠지라고 안내를 해도, ‘내가 아는 길인데 왜 이래’ 하며 무시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못 가 후회하였습니다. 사고로 인해 엄청나게 막혔던 것입니다. 예전과 달리 요즘 내비게이션은 첨단화되었습니다. 막히는 길을 미리 피해 가게 합니다.
기도는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치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때 내가 알지 못하는 길로 인도할 때도 있고, 돌아가는 길로 안내할 때도 있지만, 이유를 알지 못해도 따라가면 더 좋은 길로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의 계획을 아뢸 때, 하나님은 더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도의 사람, 느헤미야>
그럼 느헤미야의 기도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의 기도는 오늘날 우리의 기도의 모범이 되는 기도입니다.
먼저, 느헤미야는 ‘여호와 하나님’을 분명히 부르면서 기도하였습니다(기도의 대상).
5절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어떤 이는 “하나님, 부처님, 천지신명님....”이라며 자기가 아는 신 이름은 다 갖다 붙입니다(이름을 빼 먹으면 그 신이 노할까 봐 염려 – 사도행전 17장에 보면 바울이 아테네에서 복음을 전하는 중 ‘알지 못하는 신에게 드리는 제단’이 있음을 발견하고 예배하고 기도해야 할 분명한 대상이 하나님이심을 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또한, 느헤미야는 그의 기도에서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민족이 당면한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부터 하나님께 아뢰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원하심, 전능하심, 신실하심, 우리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사랑과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먼저 찬양했습니다.
기도는 먼저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한편, 느헤미야의 기도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정확한 가르침을 줍니다.
1) 느헤미야는 먼저 ‘하늘의 하나님’(the God of heaven)이라고 고백합니다(존재).
이 말씀은 위치를 표현한 말이 아닙니다. ‘질적 차이’를 표현한 말입니다. 하나님의 존재의 초월성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헬라나 로마신화에는 신은 언제나 땅에 속하였고 인간과 섞여서 함께 사는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적 사고에서 하나님은 세상에서 초월해 계시며 인간과는 전혀 별도로 높이 존재하시지만 인간을 향해 그 자신을 계시하시며 인간 역사 안에 친히 내재(內在)하셔서 세상을 주관하신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이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은 우리의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은 인간을 초월하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셔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시며 우리의 모든 간구에 응답하실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시간을 초월하시며 불가능이 없으신 하나님이시기에 그분은 우리의 찬양의 대상이 되시며 또한 기도의 대상이 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떤 모양으로도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이 땅에 있는 그 어떤 모양이라도 하나님을 상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은 하나님은 이 땅의 모습을 띤 우상들과는 차원이 다르신 분입니다. 그분은 영적인 분이십니다.
2) 그리고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the great and awesome God)이라고 합니다(능력).
‘하늘의 하나님’이 하나님의 존재의 초월성을 보여주는 표현이라면,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은 그분의 전지전능하신 능력을 표현하는 고백입니다. 그런데 ‘두렵다’는 표현은 ‘무섭다’는 뜻보다는 ‘놀랍다’는 뜻에 더 가깝습니다. 하나님은 위대하시고 놀라우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에 대해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전1:25)고 말씀하셨습니다.
생각해 보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역사도 우리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 방법입니다.
3) 하나님은 한번 맺으신 언약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십니다(성품).
이는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고백입니다.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겠다고 먼저 계약을 맺으시고 그 계약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신명기의 약속).
야고보 사도는 하나님의 한결같으신 성품을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약1: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거짓이 없으시며, 변함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이와 같이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서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기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허공에다가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분의 존재의 위대하심과 능력의 제한 없으심과 변함 없으신 그분의 사랑과 은혜를 찬양하면서 기도를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느헤미야는 ‘회개’의 기도를 드립니다(회개).
6~7절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7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기도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 엎드리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서게 되면 사람들은 공통으로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존재인지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의 만난 베드로 – 눅5:3~8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5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6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7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욥이 그랬습니다. 욥은 자신을 정죄하는 친구들에게 맞서서 자신의 의로움을 주장해왔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하나님을 만나게 되자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욥40:5-6)
머릿속에서만 상상하던 하나님, 다른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던 것을 귀로 듣기만 하던 바로 그 하나님을 직접 만나게 될 때에, 욥은 지금까지 자기가 해왔던 말들을 스스로 거두어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부족함과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며 회개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느헤미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깨닫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자신의 민족이 왜 이토록 고난 당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조상들이 하나님을 배반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느헤미아는 자신의 조상과 자신도 예외가 아님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였습니다!” 민족, 조상의 범죄함에 자신도 책임이 있음을 통감하고 고백합니다(동일시의 원리).
사실 우리는 그러지 않습니다. 잘되면 자기 탓이요, 안되면 조상 탓으로 돌립니다. 우리는 자신의 죄를 솔직하게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죄의 원인을 자꾸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려고 합니다(하남~양평 고속도로 취소를 보면...).
아담과 하와를 보십시오.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 어떻게 했습니까? 하와는 뱀 탓을 했고, 아담은 하와 탓을 했습니다. 심지어 아담은 ‘당신이 나와 함께 있게 한 여자가 나를 꼬였다’(창3:12)고 하면서 은근히 하나님에게 책임을 떠넘기지 않았습니까? 이런 못된 속성들이 여전히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회개 기도를 한다고 하면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는 않고 다른 사람의 죄를 묵상하면서 그것을 대신 기도해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구누구가 빨리 회개하게 해주옵소서!” 물론, 그렇게 기도할 때도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먼저 자신의 죄를 돌아볼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느헤미야는 유대민족의 죄악에 대하여 책임을 지려고 하며, 자기의 죄와 민족의 죄로 회개하며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갈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기도의 두 번째 단계는 ‘회개’하는 것입니다.
셋째,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부여잡고 중보기도 하였습니다(중보기도와 간구).
8~9절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을 것이요/ 9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 10 이들은 주께서 일찍이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 주의 종들이요 주의 백성이니이다.”
느헤미야는 이 기도에서 레위기 26장과 신명기 30장을 인용합니다. 주님이 하신 그 말씀, 주님이 주신 그 약속의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께 강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신 약속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중적인 약속으로 하나는 이스라엘이 불순종하면 이역 땅으로 포로로 끌려갈 것이라는 말씀이었고 이것은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다른 약속은,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면, 하나님은 그들을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가셔서 그들을 복 주시며 보호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1~2차 귀환하여 성전은 다시 건축했으나 아직 성곽을 지어 예루살렘 성을 방어하지 못하고 있으며 아직은 많은 사람이 귀국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주님 첫 번째 약속하신 말씀이 참되다는 것은 우리가 포로 생활하며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주님,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다시 데리고 가셔서 우리를 보호해 주시고, 복 주시겠다는 약속은 아직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주님! 주께서 약속하신 그 말씀을 이제는 수행해 주시기를 청원합니다"라고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고난받는 동족을 위하여 중보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 그의 말씀을 가지고, 그의 약속을 상기시키며 기도드리면 하나님의 응답이 있는 것을 강하게 체험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성경 속에 하나님이 말씀하신 약속이 모두 몇 개가 있는지 한 번 계산해보았답니다. 그랬더니 몇 개나 되는지 아십니까? 자그마치 7천 개 이상의 약속이 성경 속에 기록되어 있더랍니다. 여러분, 그 약속들은 저와 여러분을 위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것을 붙들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반드시 그 약속을 지키십니다.
이와 같이 기도의 세 번째 단계는 ‘중보와 간구’하는 것입니다.
넷째, 느헤미야는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이 자신을 부르시는 것을 깨닫고(소명)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결단하게 됩니다(결단).
11절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
그는 기도 가운데 깨달음을 얻었었습니다. 하나님이 바로 자신을 쓰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루살렘의 성곽을 쌓으려면 아닥사스다 왕의 허락도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왕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좌하는 사람은 바로 자신입니다(왕의 술 관원).
그래서 결단의 기도를 드립니다.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하고 기도했습니다. ‘이 사람’은 ‘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다’입니다.
에스더서에 보면, 하만의 음모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때 에스더의 사촌오빠이자 양아보지같은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에4:14). 그러자 에스더가 결단을 합니다.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이로 인해 하만의 음모가 밝혀지고 이스라엘은 위기에서 벗어납니다(부림절).
기도는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부터 변화를 가져옵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기도하라. 마치 모든 일이 하나님에게 달린 것처럼…. 그리고 일하라. 마치 모든 일이 너에게 달린 것처럼….”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기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소명을 주시고, 그 소명을 감당할 힘을 주십니다.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켜 가십니다.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이와 같이, 기도의 마지막 단계는 바로 우리 자신의 ‘헌신과 결단’입니다. “하나님, 제가 먼저 순종하겠습니다. 제가 먼저 시작하겠습니다”하고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맺는 말씀 - 기도의 모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느헤미야의 기도가 어떤 과정으로 진행되어 왔는지 그 흐름이 보이십니까? 그는 예루살렘 성이 허물어진 현실을 마음 아파했습니다. 그 문제를 가지고 금식하며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제일 먼저 그는 하나님의 찬양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시고 얼마나 놀라우신 분인지 고백하였습니다.
둘째, 자신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회개하였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약속들을 붙잡고, 그 약속이 속히 성취되기를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도하는 중에 소명을 받고, 자신의 삶을 헌신하기로 결단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의 모범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이 방식을 따라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최우선순위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움직입니다. 하나님으로 일하시게 합니다.
렘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하나님은 기도하는 우리를 사용하셔서 문제를 해결하고, 삶을 회복시키고, 세우시기를 원하십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이 ‘기도의 사람, 느헤미야’와 같이, 기도를 통해 개인과 가정과 믿음의 공동체를 회복시키시고 다시 세워나가는 하나님의 거룩한 일꾼으로 쓰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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