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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천안 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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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뉴스』 스크랩 애틋한 부성애 만점 아빠 ..어니엘
싱글바람[황바람] 추천 0 조회 17 09.03.09 14:2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그 찐하고 애틋한 부성애(父性愛) 만점 아빠, 어니 엘…


"안녕하세요, 저는어니 엘스의 아내 리즐이에요. 남아공의 스텔렌보쉬라는 곳에서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자라서 요하네스버그 출신인 어니랑 결혼했죠.
어니와 나는 남매를 두고 있는데 큰아이가 딸 사만다고, 둘째는 아들 벤이랍니다. 1999년생인 사만다는 활달한 아이로 아빠랑 수영하는 것을 가장 좋아해요. 둘이 수영장에서 놀면 죽은 사람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떠들썩하답니다. 벤은 2002년에 태어났는데 침착하고 느긋하답니다. 골프채 잡는 것을 좋아하는데, 감사하게도 아직 집 유리창을 깬 적은 없어요. 아빠만큼 덩치가 커질 것 같은 벤은 아빠가 TV에 나오면 뚫어지게 바라본답니다.”

“내 아들은 자폐증을 앓고 있다”
남아공 출신의 스타 골퍼, 큰 덩치지만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스윙을 하기 때문에 ‘이지 스윙’이라는 평가를 받는 어니 엘스의 공식 홈페이지에 그의 아내가 올려놓은 가족 소개다. 그냥 별 생각 없이 읽었을 때는 무척 화목해 보이는 모습이지만, 그들의 사정을 알게 된 뒤에는 걸리는 대목이 있었다. ‘침착하고 느긋하다’, ‘뚫어지게 바라보다’ 등 아들 벤을 설명하는 이 단어들에 대해 최근 어니 엘스가 좀더 자세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는 2008년 PGA투어 혼다클래식에서 우승해 3년 6개월 만에 다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그러고 나서 바로 다음 주 열린 PODS챔피언십대회에는 골프백에 ‘자폐의 소리(Autism Speaks)’라는 로고를 달고 나왔다. 그리고 PODS챔피언십 컷 탈락 직후 왜 그로고를 달고 나왔는지 설명했다. 그의 고백에 따르면 아들 벤은 심각한 자폐증을 앓고 있으며, 그의 가족은 외부에 알리지 않은 채 아들의 치료를 위해 전 세계 전문가들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엘스는 “전문가들은 너무 다른 이야기를 해 그 원인이나 치료법을 제대로 알기 힘들었다”면서 “힘겨운 나날이었고 생활의 우선순위가, 아니 삶 자체가 달라지는 일이었다”고 했다. “벤의 누나인 여덟 살 사만다가 누나가 아닌 엄마의 마음으로 동생을 보살폈는데, 그것도 마음 아팠다”는 아빠 엘스의 말이다. 지난 3년 반 동안 우승 문턱에서 수없이 좌절하며 “황태자라는 별명이 아깝다”는 소리까지 들은 그에게는 말 못할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엘스는 두 번의 US오픈과 한 번의 브리티시오픈 우승, 여섯 번의 월드매치플레이를 포함해 세계적으로 60회에 달하는 우승 경험이 있는 세계랭킹 톱랭커였지만, 수차례 우승 직전에 몰락하며 2m에 육박하는 큰 키와 건장한 체격에 걸맞지 않는 심약한 모습을 보여 왔다.

지난해 말 알프레드던힐챔피언십 마지막 날 18번 홀에서 트리플 보기를 하는 바람에 품속에 들어왔던 우승 트로피를 날려 버렸다. 올해 들어서는 지난 2월 두바이데저트클래식에서 4타 차 선두로 최종 라운드를 시작했다가 타이거 우즈에게 덜미를 잡혀 역전패를 당하기도 했다. 사만다를 낳기 전인 1998년 조니워커클래식에서도 엘스는 8타차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우즈에게 역전패하는 등 비틀거렸지만, 벤의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이전의 몰락은 희미해진 채 아들 때문에 애면글면 마음 쓰는 애틋한 부성애가 부각되고 있다. 우승 뒤에야 이런 사실을 털어놓은 것을 두고 아들의 병이 성적부진의 방패막이로 비춰질까 꺼렸던 것 같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분위기다.

자폐증에 관한 사회 관심 높아지길 바래
어니 엘스의 외할아버지 테오도르 어니 버막은 골프를 가족 스포츠로 만들어 엘스의 인생 방향을 잡아 준 사람이다. 어니 엘스의 아버지와 외할아버지는 사위와 장인 이상의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함께 골프를 즐겼고, 덕분에 엘스는 형 딕과 함께 어릴 때부터 골프에 익숙했다고 한다. 아버지 닐에 따르면 엘스가 골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네 살정도 됐을 때부터였다고 한다. 외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정기적으로 라운드를 했기 때문에 엘스는 형과 함께 코스에 자주 나가 골프를 익혔다. 엘스는 캐디 역할을 곧잘 했는데, 거리에 따라 아버지에게 클럽을 빼주고 퍼팅 라인을 살펴 조언하면서 매우 즐거워했다고 한다. 이처럼 외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형과 함께 어울려 코스를 누비는 행복한 소년 시절을 보냈기에 엘스는 아들 벤의 자폐증을 더욱 안타깝게 느꼈는지 모른다. 물론 벤이 골프에 관심을 보이기 때문에 함께 라운드를 할 수 있겠지만, 자신이 누리던 남자들끼리의 라운드 재미를 만끽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들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엘스는 자폐증 어린이를 위한 단체 ‘자폐의 소리’에 먼저 연락해 우승 상금 일부를 기탁했다. 엘스는 “우리는 그래도 경제적 어려움이 없지만, 형편이 어려운 집이 자폐 아이를 키우게 되면 큰 난관을 겪어야만 할 것”이라며 “150명 중에 한 명꼴로 자폐증을 앓고 있다. 자폐증에 대한 세상의 관심이 높아져 자폐증의 원인을 밝혀내고, 자폐증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적극적으로 후원에 나서겠다”고 했다. 그의 이런 노력은 벌써부터 힘을 발휘하고 있다. PGA투어 동료인 클리프 크레세지가 엘스에게 자신의 여덟 살 난 아들 메이슨도 자폐증을 앓고 있다며 동참의지를 보였다.

아들 치료를 위해 플로리다로 이주 예정
다시 엘스 이야기로 돌아가면, 그가 본격적으로 골프를 시작한 것은 여덟 살 때였다. 그는 급속도로 기량 향상을 보여 13세 때쯤에는 아버지만큼 볼을 멀리 날리는 스크래치(핸디캡 0) 골퍼가 됐다. 그러나 엘스가 골프에만 매달린 것은 아니다. 아버지 닐이 운수업에 종사하며 어느 정도 여유 있는 생활을 한 터라 엘스는 럭비, 테니스, 크리켓 등 다양한 스포츠를 익혔으며, 또한 모두 소질이 있어 테니스에서는 주니어 선수로도 활약했었다. 그러다가 14세 때 골프에 전념하기로 했는데, 60세가 되어도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유일한 스포츠라는 판단 때문이었다고 한다. 골프에 전력하기로 한 후부터 엘스는 거의 모든 주니어대회를 휩쓸었고, 19세였던 1989년 프로 전향을 선언했다.

그는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스윙으로 정평이 나 있다. 아버지 닐에 따르면 어린 시절 다른 친구들이 남아공 출신인 닉 프라이스를 존경할 때 엘스는 여덟 살 때부터 스페인 출신의 세베 바예스테로스를 우상으로 삼아 그의 스윙을 따라 하려고 노력했다. 특별한 코치 없이 동작의 기본을 스스로 체크해 가며 스윙을 익혔기 때문에 엘스의 스윙이 자연스러운 것 같다는 것이 닐의 해석이다. 자신의 스윙에 대해 엘스는 “늘 80~85%의 힘으로만 치려고 하고, 멀리 날리는 것보다는 정확하게 볼을 임팩트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고 말한다.

그는 보통의 미국 코스에서 자신의 거리(날아간 거리만)에 대해 드라이버 290야드부터 3번 우드 255야드, 2번 아이언 238야드, 7번 아이언 178야드, 피칭웨지 134야드, 54도 웨지 120야드, 59도 웨지 88야드 등 정밀한 계산을 해두고 있다. 또한 절대 그 거리에서 4~5야드 편차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유럽투어 평생회원 자격을 가지고 있는 그는 아마 톱랭커 중에 가장 많은 나라를 다니며 투어를 뛰는 선수로 꼽힐 것이다. 그가 지난해 활약한 곳은 카타르, 두바이, 태국, 중국, 영국, 남아공, 독일, 스코틀랜드, 캐나다, 싱가포르에 미국 12개 주까지로 비행거리가 만만치 않다. 가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엘스는 딸 사만다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는 물론 지난해는 아이의 개학 준비를 도와야 한다며 대회 불참을 통보해 뉴스가 되기도 했다.
또한 최근 아들의 치료를 위해 살고 있던 런던을 떠나 미국 플로리다 남부로 이주를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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