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맞아 고봉로 가로수 가지치기가 한창인데...
플라타너스는 일명 ‘닭발 가로수’가 되어 줄기만 앙상하게 남았다.
철거를 모면한 행운을 누린 새집은 줄기 가까이, 아래편에 터를 잡은 몇 가구뿐...
더 위, 더 먼 가지에 지은 새집들은 어찌 되었을까?
잘린 가지들과 함께 트럭에 실려 멀리멀리 버려졌을까?
어여쁜 짝을 찾아 연을 맺고 한 입 한 입 쌓아 올린 봄날의 희망도,
애지중지 품어 두근두근 세상에 나온 어린 새끼들의 여린 심장도,
함께 버려졌을까?
간신히 터를 지킨 저 집의 주인들은 전기 톱날의 트라우마를 안고 휑하니 볼썽 사나운 동네를 견딜 수 있을까? 저 집 안에 혹 버려진 어린 새들만 남아 떨고 있는 건 아닐까?
간신히 철거를 면한 저 집.
전기 톱날로 생계를 이어가야만 하는 이가 다한 최선의 배려.
싹둑 베어진 가지와 함께 부서져 내렸을 새집을 가슴에 묻고 집으로 돌아가는 이의 저녁.
하필 가로수에 터를 잡은 새의 슬픔,
먹고살아야 하는 인간사의 슬픔.
철거된 벽 너머 노출된 세간살이의 슬픔.
가로수 맨션의 수난 시절.
한 번에 성큼 말고, 조금씩 자주 가지를 치는 행정은 아득한 유토피아.
...
건너편 미루나무 가로수 먼 가지에 터 잡은 새집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위로 위로 향하는 미루나무 덕에 철거의 수난을 면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