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배우러) 다니지 않은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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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복음서 7:15
유다인들은 "저 사람은 배우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저렇듯 아는 것이 많을까?" 하고 기이하게 여겼다.
청중속에는 학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성서에 대한 예수님의 깊은 지식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성서". 공동번역에는 성서라는 말이 빠져 있는데 그리이스말의 (γράμματα)라는 표현은 고전(古典)의 말로서 알파벳과 문법의 개략적인 지식만을 나타내는 말이지만, 요한 복음에서는 모세의 성서(5:47)라는 뜻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전 후 관계를 비추어 보면 그것과 같은 뜻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이 자신의 마을에서 읽기 쓰기를 배웠는지 안 배웠는지 알고 있었을까? 그것과 달리 모두는 그가 예루살렘의 율법학자 학교에 다니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율법학자들은 예수께서 어떻게 그렇게 쉽게 자신을 가지고 성서를 인용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또 그분의 가르침에 어떠한 근거가 있는지 의문을 품고 있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예수란 인망을 얻고자 하는 한 혁신분자(革新分子)에 지나지 않았다(스트락크=빌레르벡크 t.II, p.486).
출처 : 신약성서주해집 (페데리꼬 바르바로) - 요한복음서 p.197
고향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그는 라삐 학교에 다닌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이 있는 진리를 뛰어난 지혜로 말씀하신다. "저 사람은 어떤 지혜를 받았기에 저런 기적을 행하는 것일까?" 고향 나자렛의 사람들이 당황해 한 것은 그들이 예수님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예수님이 교육받은 귀족 출신이 아니라 천한 노동자 출신임을 알고 있었다.
출처 : 신약성서주해집 (페데리꼬 바르바로) - 마르코 복음서 6:4 p.214
- 마르코 6,3
- 요한 7,15-16
- 마태 13,5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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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가파르나움아! 네가 하늘에 오를 성 싶으냐?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너에게 베푼 기적들을 소돔에서 보였더라면 그 도시는 오늘까지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잘 들어라.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오히려 더 가벼운 벌을 받을 것이다.'
- 마태 11,23~24 -
“가파르나움아! 네가 하늘에 오를 성싶으나?”, 가파르나움의 회당과 율법학자의 학교는 상당히 유명하였다. 더욱 이 사회 출신들이, 유난히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하여 반대하고 있었다. 자기들의 학교에서 수업하지 않은 “목수의 아들”이 무엇을 알겠는가? “눈이 잘 보인다고” 우쭐거리는 소경들(요한 9:41)은, 예언자에게 바리사이파 사람의 면허장이 필요 없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예수님의 “업적”을 그 눈으로 보면서도, 거기서 하느님의 표시를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예수님의 기적을 보았더라면, 소돔도 회개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가파르나움은 회개하지 않았다. 실로 정신적 소경의 눈을 뜨게 한다는 것은, 육욕의 죄를 회개시키기보다도 어려운 일이다.
가파르나움의 이 완고함과 오만에 대한 하느님의 벌은, 정말 엄한 것이다. 하늘에까지 머리를 처 들었던 도읍은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그렇다. 예수님의 이 예언은 빈틈없이 엄중하게 실현되었다. 현대의 고고학자가 이 도읍의 폐허는 물론, 일찍이 존재하고 있던 장소조차 알아내지 못할 만큼 멸망했다. 더욱 거기에는 물질적인 파멸뿐 아니라, 보다 더 혹심한 재앙까지 있었다. 현재에도 여기서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반항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새삼 말할 것도 없지만 그것 때문에 여기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영원히 멸망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사람 각자의 운명은 그 마을 자체의 운명과는 다른 것이다.
“심판 날에” 곧 마지막 심판 날에 모든 인간의 책임이 추궁될 것이다. 이 무서운 날에, 소돔의 벌은 가파르나움보다도 가벼울 것이다. 오만과 육욕은 함께 모두 대죄이기는 하지만, 오만은 하느님께 반항한다고 하는 더 무서운 요소를 품고 있는 것이다.
출처 : 신약성서주해집 (페데리꼬 바르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