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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2일자 월스트리트 저널의 기사로 구글 번역으로 해석해봤습니다.
"전사자 추모공간인가 어두운 과거를 연상시키는 곳인가,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을 분열시키고, 중국을 불안하게 한다."
WSJ Chieko Tsuneoka, Aug. 12, 2024
지금부터 80년 전 일본의 카미카제 특공대들은 알류샨 열도에서 과달카날 섬에 이르기까지 미국 함대에 돌격하면서 산화했다. 그들에게는 약속이 주어졌다. 영혼은 도쿄의 야스쿠니 신사에 모셔질 것이라고.
야스쿠니 신사는 천황의 이름으로 국민들을 전쟁에 동원하려는 종교적이면서도 군국주의의 상징, 약 250만명의 병사들의 원혼이 신도의 제신으로서 위령 현창되고 있다.
일본은 79년 전인 8월에 전쟁에 패배했다. 하지만 야스쿠니 신사는 지금도 존재하고 요즘은 자위대와 긴밀하게 접촉하고 있다. 이는 일본의 침략을 막기 위해 싸운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 국내에서도 경계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더욱이 미국이 전후에 기초한 일본헌법에 정해진 종교와 국가의 분리를 완전히 받아들이지 않았던 일본의 보수파들에게 활력을 불어 넣고 있다.
일본은 방위비를 거의 두배로 올리고 미국과 함께 인도와 태평양 지역방어를 추진하고 있다. 위협이 닥치면 중국과 북한기지들을 바로 공격할 수 있도록 변경했다. 이러한 적극적인 방어전략은 지금까지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이로 인해 울창한 숲의 야스쿠니 신사 경내는 일본의 군사력 부활에 대한 논쟁의 중심이 되었고, 일본군이 다시 목숨을 걸고 최전선에서 싸우도록 명령받은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논쟁의 중심에 놓여있다.
일본에는 나라에 목숨을 바친 사람들을 위한 공적인 위령 시설은 아직 없고, 미국 워싱턴 근교의 알링턴 국립묘지에 해당하는 시설은 없다. 야스쿠니 신사는 사설 종교법인으로 2013년 당시 아베 총리가 참배하였다가 미국과 중국에서 비난받은 후부터 총리가 참배한 적은 없다.
야스쿠니 신사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야스쿠니를 전몰자를 모시는 정부의 공식 위령시설로 삼는 호기라고 생각한다.
“일본의 총리가 알링턴에 가듯 미국 대통령이 야스쿠니에 오는 시대가 오면 좋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미국과 일본은 새로운 장을 열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지난주 오스트레일리아 대사 야마가미가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는 새로운 위령시설을 만드는 것보다 기존 시설을 활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야스쿠니에는 짊어지고 있는 역사가 있어, 사람들이 존경하거나 칭찬하는 등의 경외의 마음이 있다고 한다.
올해 4월에 전해군제독 오오츠카 카이오가 야스쿠니 신사의 사제장(chief priest)으로 취임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자위대 출신자가 사제를 맡는 것은 두번째로 퇴역한 4성 장군이 전시 중에 사제를 맡은 이래 최고위의 인물이다. 영어를 유창하게 하고 아프리카 지부티 주재 대사도 맡았던 적이 있는 오츠카는 야스쿠니가 ‘평화를 사랑하는 일본인의 영혼’을 구현하고 있다고 한다.
오츠카는 취재에 응하지 않았지만, 취임하기 전에 야스쿠니 신사의 사보에는 그가 외국의 군인이나 대사들을 야스쿠니 참배에 안내했다고 나타나 있다.
방위성 정책에 따르면 종교시설에 군부대원들이 참배하는 것, 상관이 부하에게 참가를 강제하는 것 등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 1월에 육상자위대 간부들이 관용차를 이용하여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2월에는 해상자위대 간부후보 졸업생들이 실습함대 항해에 앞서 제복차림으로 참배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해상자위대는 자발적이며 개인적인 참배라고 해명했다.
일본헌법에는 육해공군을 보유하거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무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의 원폭 투하를 포함해 미군의 폭격으로 주요 도시가 초토화 되었다. 그때부터 일본은 군대에 대해 과민하게 반응하게 되었다. 지식인이나 언론, 그리고 일반 국민들 사이에 이 나라를 다시 한번 군국주의자의 손에 넘겨서는 안 된다는 결의가 나타났다.
게이센 대학 법학 교수인 사유리 사이토는 야스쿠니 신사가 일본을 2차 세계 대전으로 이끈 신권 국가의 본질을 나타낸다고 지적하였다. 그녀는 오늘날 자위대에서 신사의 존재감이 높아지는 것은 군국주의 체제가 부활하고 있는 조짐이라고도 했다.
"그러면 전쟁전과 후가 연결되어 있다"고 사이토는 말했다.
중국 정부도 마찬가지로 우려하고 있다. 자위대 출신이 야스쿠니 신사의 사제에 취임한 것을 비판하고 일본은 '군국주의와 결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국에서도 야스쿠니 신사는 전쟁의 상징으로 본다. 수개월 전 누군가가 야스쿠니 신사 입구 돌기둥에 방뇨하고, 영어로 화장실(toilet)이라고 스프레이로 그리는 동영상이 중국의 소셜 미디어에 유포되었다. 일본은 7월에 이사건으로 중국인 남성 한명을 체포하였고, 두명을 지명수배하고 있는 중이라고 발표했다.
야스쿠니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현재의 자위대는 아시아의 광대한 지역을 지배하고 있던 대일본 제국 군대와는 다르다고 한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전쟁 전의 가치관으로의 회귀라는 점에서는 사이토 의 견해와 일치한다. 그들은 당시 일본이 전쟁사망자들을 존엄하고도 신성한 장소에서 추도할 필요성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퇴직한 육군 최고 장교였던 요시후미 히바코는 작년에 일본 정부에 야스쿠니를 국유화할 것을 촉구하며, 민족주의 로비 단체가 발행한 잡지에 글을 썼다. 비슷한 주장을 하는 다른 사람들은 현재 방위청의 기념관은 허가받은 사람만 접근할 수 있는 곳에 있으며, 공식적인 장소로 대체할 수 없다. 그래서 고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싸우고 있는 병사들에게 그들의 희생은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으로 안심시킬만한 장소라고 할 수 없다고 했다.
야스쿠니 신사의 오오츠카와 친분이 있는 육군 자위대로서 현 자민당 의원인 사토 마사히사는 2004년 이라크에서 일본 평화유지군의 파병을 준비하기 위해 이라크에 파견된 임무를 회상했다. 그는 부대원이 사망할 가능성에 대한 임무를 수행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관을 이라크로 가져와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의 일본 자위대에서는 “사람들이 생명에 위협을 받는 상황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들이 사망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야스쿠니에는 미국이 A급 전범으로 규정한 14명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들은 1978년 자위대 출신 사제의 지휘하에 안치되었다. 쇼와 천황의 참배는 1975년이 마지막이다. 역사가들에 따르면 유죄판결을 받은 지도층들이 모셔져 있는 것에 불쾌감을 안고 있었다고 한다. 그 이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천황은 없다.
미국은 아베가 2013년에 참배한 당일, 인근 국가들과 관계를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비난했다. 근린 국가란 한국 등 대일본 제국에 식민지화되어 야스쿠니 신사를 비난해 온 나라들이다.
재일 미국 대사관의 홍보담당관은 2013년의 성명을 고수하고 “치유와 화해를 촉진하는 방법으로 역사적 유산 문제에 대처하는 것의 중요성”을 중시한다고 말했다.
전호주주재 일본대사 야마카미 씨는 미국은 일본과의 동맹의 중요성을 고려하여 야스쿠니 신사의 의의를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과 미국이 과거의 역사문제를 둘러싸고 다툼을 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워싱턴 칼리지의 앤드류 오로스 교수(정치학)는 한일관계를 보다 긴밀하게 하려는 미국의 노력을 생각하면 미국이 야스쿠니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다는 견해를 보였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경우를 포함해 미국 고위급의 방문은 조만간에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 치에코 츠네오카는 도쿄의 월스트리트 저널 기자 겸 연구원, 비즈니스, 정치, 문화를 포함한 광범위한 주제에 대해 보도하며, 안보문제 담당이다. 그녀는 뉴욕 타임즈의 리서처로도 일했는데, 1999년부터 일본의 방위 문제를 면밀히 모니터링하기 시작했다. 외교 관계 위원회의 셰일라 스미스 박사가 쓴 "Intimate Rivals: Japanese Domestic Politics and a Rising China"를 포함한 일본 정치에 대한 책과 비즈니스, 게이샤, 헬로 키티에 대한 책을 리서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