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죽음
빗소리 뚫고
새끼고양이 앙칼진 울음소리 들린다
슬레이트 지붕들은
폭포처럼 물줄기를 쏟아내고
자장자장
우리 아기 잘도 잔다 우리 아가
오늘따라
노인의 웅얼거림이 없다
끙끙 앓던 신음도
뼈를 틀던 몸놀림도
어두운 하늘이
검은 창문을 천둥으로 두드려보고
번개를
몇 번을 치고 나서야 알았을까
입 벌린 죽음이 그 방에 누워있다는 걸
새벽마다
함께 나섰던 밀차는
장독 옆에 우두커니 서 있고
댓돌 위 낡은 신발은 어리둥절 젖고 있다
이미 지쳤을까
이승의 고단함
조용히 내려놓고 싶었던 걸까
골목은 밤새 소란스러운데
방안은 새벽까지 말이 없다
중독자
나는 한때 슬픔의 중독자였네
황혼이 검게 물들면
세상이 곧 캄캄해질 거라는 걸 알아서 슬펐네
옛집 싸리문만 보아도 슬퍼졌네
쏟아지는 빗속에서
담장너머 할머니 장독대를 보아도
무너진 구들장을 보았을 때도 그랬네
휘영청 보름달빛에 젖은
마곡사 뒤뜰을 보아도
깊은 밤 소쩍새 우는소리
가뭇없이 가슴이 차올랐네
나는 중독자였네
당신 사진만 보아도 슬픔이 넘쳤네
무엇으로 해독할 수도
치료할 수 없는 지독한 중독자였네 나는
흐르는 강물처럼 넘쳐나
어찌할 줄을 몰랐네
슬픔의 홍수를 막을 수는 없었네
당신이 떠난 후
조금씩 버리는 법을 알기 시작했네
여기저기 길거리 잡지에 버리기 시작했네
슬몃슬몃 가족들도 모르게 버렸네
슬픔이
시가 될 수 있다는 걸 감사했네
이야기가 될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네
황폐해지는 줄도 모르고
일회용품을 버리듯 버리고 버렸네
언제부터인지 속은 메말라가고 있었네
돌이 킬 수 없는
아주 메마른 땅이 되어버렸네
또 다른 중독이 되어 서서히 죽어가고 있네
울음인간
산을 오른다
저 높은 곳은 숨이 차고 죽을듯한 곳
바위 틈사이로
쫄쫄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쪼그려 앉아 깨끗한 물로 얼굴을 닦고
손으로 한 움큼 떠 마시니 온몸이 투명해진다
바람은
고단한 허파를 뚫고 가고
얼굴은 서늘해진다
나무사이사이 거미줄과 날것들이 노랗게 선명하다
아마,
죽은 엄마만 나를 볼 수 있을 거야
투명해졌으니까
큰 바위에 기대어 있으니
시체위로 겁도 없이 송충이가 기어오른다
부패한 육체를 볼 수 없었나보다
나무 끝에서 새들이 떨어지는 연처럼 펄럭대고
몸이 날개와 합체된 기분
물아일체(物我一體)?
그림자도 사라지고
물고기가 몸을 들락날락 거린다
재채기가 나고 옆구리가 간질간질하다
불신으로 가득했던 몸 구석구석이 가벼워진다
엄마 미안해
여기에 도착해도 나는 엄마를 찾을 수가 없네
유리병 같은 몸뚱이에 물이 차오른다
끝없이 떠다니는 울음인간
비틀대던 큰새가
뱃속을 할퀴며 지나간다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며
나는 더 깊고 투명한 인간으로 소멸한다
영혼의 순례길*
무릎이 뭉개지는 아픔으로
손바닥 살이 파이는 고통으로
걸어가야 한다
이마로 밀고 가는 바닥의 길
산이 흐르듯
가슴이 조용하면 될 것이다
차마고도
키 낮은 꽃들이 흔들리고 있으면 좋다
전생에 어떤 죄가 있는지
굳이 알 필요는 없다
불가촉천민으로 함께 살아가야 할 낙타
짐을 지고
세찬 눈보라에
눈 쌓인 비탈을 기어오르거나
고사목이 순교자처럼 서있는 정상을 헤매어도
침묵으로 답을 하자
손톱으로 돌밭을 바득바득 긁으며
일곱 겹의 담*을 지나가듯 조용히 가야 할 길
모든 게 바닥이기에
가끔 목을 구부려 세상을
거꾸로 뒤집어보는 목도도 해야 한다
끝에는 있을까
의심하지 말자
답이 없는 바닥을 읽어내는 순례의 길
형체도 없는 것을 찾아 헤매는 일
시(詩),
신(神)을 찾는 마음으로
울퉁불퉁 바닥을 쓰는 것이 유일무이 한
길이 날 배신해도
밤하늘을 긋고 떨어지는 유성의 찰나처럼
몸이 반응하길
신발 끄는 소리에도 은유를 포착할 수 있는 믿음으로
언제나
형식을 발견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2018년 영화
*2024년 쇼군
빗소리2
고단한 어깨를 씻어주듯
비 내린다
토방(土房)에 나와 빗소리 듣는다
오늘은 너에게 끌린다
산사입구 아름드리 소나무 매끈한 맵시
유연한 산맥풍광
그리고
는개,
쪽마루에 가만히 앉아
종일토록 귀 열고 듣고 있으니
직유로
은유로
의인으로
환유로
열거법, 으로 보인다
감정이 차올라
한 시간 더 듣고 있으니 어둑어둑해졌다
과장으로
대구로
반어로
대유로
영탄법, 으로 빗소리
들·린·다
카페 게시글
27호 통진문학
통진문학 27호(김근열) 수정
멍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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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18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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