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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보 선 용접사고

1033호선(스타보 74K Chemical tanker)이라고 하면 누구나 한 마디씩 하고  싶은 배, 갖가지 쓰라린 기억과 고난으로 점철된 배, 그래서 잘 잊혀지지 않는 배다,  그 당시만 해도 진수 후 대체로 5개월이면 인도를 하던 터였지만 이 배는 무려 17개월이나 안벽에 머물렀고, 계획보다 무려 일 년이나 더 지연되는 희대(稀代)의 기록을 남겼다. 그로 인하여  당시 조선소 경영은 말할 것도 없고 대외 신뢰도 추락, 후속선 공기지연과 종업원 사기저하 등 그 폐해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카고 홀드 수정용접이  한창 진행 중이던 1985년 3월 어느 날의 작업일보를 보면, 당일 우현 2번창과  4번창에 용접사 58명, 그라인더 50명 가우징 18명, 총 126명이 주야 2교대로 투입되었으며, DNV 본사에서 파견된 Inspector 4명이 작업과정에 2교대로  입회했던 것으로, 그 당시 수정작업의 규모나 심각성의 일단(一端)을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그 당시 관리부서에서 작성한 집계에 의하면 DNV 인스펙터 용역에 1.5억, 수정작업 6만 시수로 계상해서 3.6억, 지연 페날티 3.8억 등을 포함해서 총 15억이 손실되는 것으로 추정했다.

본 주제는 이토록  작업내용이 방대하며, 기술적인 부분의 표현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백서 형식의 구성을 피하고, 필자의 주변에서 일어난 에피소드 중심으로 쉽게 적고자 하며, 상세한 부분은 추후 별도로 정리해 볼 생각이다.

  당시 내외적 상황

  1970년대 두 차례에 걸친 석유파동 여파로 그 당시 해운 경기가 부진했고 이로 인한 선주의  인수기피 경향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 당시 2도크를 열어 처음 시작하는 때라 아직 기술력이나 관리력이 영글지 못했는데, 그 연장선상에서 발생된 1025/26호선 Jumborizing 공사는 후속선에 심각한 인력 부족 사태를 야기했다.

  1033호선이 기공(1984일6월4일) 된 그 해 여름은 장마가 엄청 길었다. 블록은 얹었지만 용접을 할 수가 없었다.  앞서 진수한 호선에 인력이 빼앗긴 탓이기도 했지만 설령 용접사가 있다 해도 지겹게 내리는 비가 용접사의 손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급기야 진수 일정이 수차례 연기되는 가운데 돌관작업 등 바람직하지 못한 작업진행이 불가피했다.

  당시는 CO2 용접이 조선현장에 본격 사용되기 전이라 대부분 그레비티 등 피복용접에 의존하였던 반면 아쉽게도 이 배는 피복용접봉으로 하기 힘드는  필렛드 개선 용접이 많았다. 종횡격벽이 모두 Corrugate Type이고 Stool의 상하부, Slant plate 주변, Hopper Tank, Side tank 연결부가 모두 용착량이 많은 개선 필렛트 형상을 하고 있어 CO2 용접이 조금만 더 일찍 개발 보급되었더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기록에 의하면 본선 조립 탑재 기간 중에 선급으로부터 품질 클레임을 약 60여 회 받을 것으로 되어 있는데 대부분이 부재 간 간격 과다, 습기 찬 곳에서의 용접 등 웍크맨쉽 관련이었음을 볼 때 바람직한 품질규범과 그 당시 현실여건 사이에 괴리(乖離)가 컸음을 짐작하게 한다.

부산으로 도망가다.

필자는 그 당시 조립공장을 맡고 있었는데 어느 날 상부로부터 외업을 맡으라는 명령을 받는다. 그 당시 본선은 진수가 되어 (84년10월 15일) 안벽에서 카고 홀드를 검사하고 있었는데 홀드 당 수십 개씩의 크랙이 발생되어 검사 진행이 잘 안 된다는 것이었고, 선급 측은 조선소가 모종 특단의 조치를 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중이었다. 연일 문제가 확대되는데 중압감을 이기지 못한 필자가 고작 생각해 낸 것이 부산으로 도망가자는 것이었으니  돌이켜 보면 실소를 금할 수 없다. 부산에 가서 여기 저기 기웃거려 봤지만 뾰죽한 방책이 없었고, 며칠 냉랭한 시간을 보내다보니  스스로 초라해지면서 자책이 일기 시작했다. 그래, 죽어도 가서 죽자. 안으로부터 알 수 없는 오기가 솟구치면서 잠을 설치던 다음 날  당시 선각부장이었던 Manager Park 앞으로 가 투항했다.

문제는 나날이 커져만 가고

(84년11월3일) Class와 선주는 진수 이후 발견된 크랙 18개의 사진을 제시하면서 카고 홀드에 물을 넣고 용접부 검사를 하자고 요구함.

약 두 달간 각 홀드에  물을 넣고 수압시험을 함.

(85년1일9일) 수압시험 중 크랙 141개가 발견되었고, 조선소가 문제를 자꾸 감추려고 한다. 수압시험 다시 하자. 그리고  비파괴시험과 파괴시험(가우징)을 병행하자고 요구함.

(85년1월15일) 1034호선도 똑 같은 방법으로 테스트 하자고 요구함.

(85월1월16일~ 2월6일) DNV 본사로부터 용접Inspector 6명이 파견되어 본선 현장 조사 실시.

(85년2월5일) DNV가 모든 횡격벽 (Trans Bulkhead)를 해체 후 새로 용접하고, 모든 수동 용접부를 가우징 한 후 새로 용접하지 않으면 철수하겠다고 나옴.

(85월2월19일) 용접수정에 관한 책임자 급 확대회의 실시.

  이 회의 참석자와 이해 당사자 간의 입장 차이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DNV 측      Tech. Dir. Dr.T.C Mathiesen (Oslo)

            Vice Pres. Mr.H. Viig (kobe)

            Pri. surveyor Mr.Mansika (koje) 외 2명

            Surveyor Mr.Gunnersen (SHI)

            그 동안 제시한 품질 클레임 서류 일체와 품질 취약부분 사진을 모은 엘범을 제시하면서 이 배는 이미 정상적으로 돌려놓을 수 없는 상태라고 초 강경 자세로 나옴.

선주 측     Superintendent Mr. Kroetoe

            Superintendent Mr. Tveter

            Class (DNV)가 만족하는 배를 만들어 주는 것이 계약 정신이다.

그것이 안 될 경우 본선 인수가 불가능.

조선소 측   부사장 Dr. K.U.Chee 

            부사장 Mr. Y.H.Seo  

            Ex.Man.  Dir. M.Lee

            Prof. Dr. E.Steneroth (Sweden)

            Manager: Mr. Fauerskov,  Mr.Hur (QC), Mr.Sung (Production)

            Mr. Kang (PM) Mr.Lee (hull Design)

            문제가 있다는 것은 인정하나 클로즈 업해서 찍은 사진은 현상(現狀)을 너무 과장하고 있다. 적절한 수준의 수정안 필요함.

요컨데, 조선소와 선주/선급 연합군이 벼랑 끝에서 대결하는 양상. 선주를 등에 업은 거제지역 Principle surveyor Mr. Mansika와 수세에 몰린 조선소를 대표해서 DNV 측 주장이 불합리하고 가혹함을 역설하는 Ex.Man. Dir. M. Lee 간의 격렬한 설전(舌戰)과 수차례 회의를 통한 밀고 당기기 끝에 다음과 같은 합의에 이른다.

  즉, 횡격벽 (Trans Bulkhead)의 해체요구를 철회(撤回)하는 대신 주요 필렛트 용접부를 전부 파내고 재용접 한다. 나머지 덜 중요한 부분도 일정 부분 가우징 한 후 그 결과에 따라 확대여부를 결정한다.

  본건 해결을 위한 Task Force Team이 즉각 구성되었다. 본선 갑판에 콘테이너 사무실이 올라가고, 24시간 가동체계에 들어갔다. K.S Kim, C.G Bae가 기존 조직에서 떠나  필자를 보좌하게 되었고 이어 S.S Kim 등 정예 직반장 4명이  50명의 용접사를,  협력업체로부터 가우징 공 20명, 그라인더 공 60명을 배속(配屬) 받아 주말도 없는 2교대 공사에 들어갔다.

절구공이 갈아서 바늘 만드는 수정 작업

모든 용접은 DNV Surveyor의 감독과 지시에 따라 하게 되어 있었다. 필렛트 용접의 한 쪽(개선부의 반대쪽)을 3분의 2 깊이까지 파내고 그라인드 후 용접을 한다. 반대편을 다시 가우징, 그라인드 한 후 DNV의 검사(MT)를 받는다. 합격된 부분에 한해서 본 용접을 하게 되는데 만일 내부에 결함이 발견되면 또 다시 가우징, 그라인드 후 검사를 받게 된다.

휴대용 용접봉 건조기를 개인별로 소지해야 되고 고장력 용접봉을 써야한다. 용접 착수 전 예열(豫熱)을 해야 하며 초층 비드는 3파이 용접봉을 써야한다. 용접이 끝나면 비파괴검사 (UT)를 실시한다. Offshore 수준의 용접방법과 최고 수준의 검사방법을 요구해 놓고 한 치라도 어긋나면 오슬로 본부에 보고하겠다고 나오는 통에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아침 작업 투입 전에 작업자 전원을 갑판에 모아놓고 교육을 실시한다. 안전의 중요성과 작업의 중요성, 작업방법의 설명에 이어 이번이 마지막 기회이며 만일 이번에도 잘못되면 여러분이 앉아있는 이 배는 고철 통에 들어간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인원파악을 하고 점심 때 올라오는 인원과 대비(對比)를 한다. 작업장이 어둡고 위험하고 넓어서 어떤 불상사가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임시로 보충해온 작업자들이 많아 처음에는 무척 긴장하였지만 다행히 큰 불상사는 없었고, 특기할 안전사고가 없었다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가끔씩 용접결함을 따라 파 들어 가다가 구조물이 훼손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 때는 현장에 상주(常駐)하는 DNV Surveyor와 바로 대면(對面)하여 지체 없이 수정 방법을 정해 나갔다.

절구공이를 갈아서 바늘 만드는 작업이 기약 없이 진행되었다. 방진마스크를 끼지만 코밑은 항상 연탄장수 같았고 눈은 자주 충혈이 되었다.

연일 계속되는 강행군에 지치던 어느 날 가진 회식 자리에서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고달픈 이 나그네 길 비바람이 분~다 눈 보라 친~다” 어쩌구 하면서 합창(合唱)해 부르던 그 시절 노래가 생각난다.

수정 용접장이 16킬로미터라는 중간집계를 보고, 참으로 여러 사람의 힘이란 정말 엄청나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 한바탕의 소동

연일 계속되는 가우징 그라인드 작업으로 카고 호울드의 안팎이 온통 탄광처럼 변해 가던 7월 어느 날 그 지긋지긋한 홀드 내 작업이 끝났고 외판(外板)의 용접부의 수정을 위하여 도킹을 하게 된다.

2도크, 지난 해 10월 진수하여 9개월 만에 다시 들어간 것이다. 불과 2박 3일 짧은 일정으로 들어갔는데 때마침 장마철이라 바람을 동반한 빗줄기가 만만찮았다. 대형 천막을 들이대어 보다가  여의치 않자 이동식 지붕을 LLC가 번쩍 들고 서 있도록 했다. 말썽 많은 호선이라 애로사항이 있을 때는 항상 우선권이 주어졌다. 

외판작업이 그러구러 좀 되는가 한숨을 돌리려는데 도크 바닥 쪽에서 아우성이 났다. 배 밑바닥이 찌그러진다고 해서 뛰어 내려가 봤는데, 이미 기관실 하부 반목 부분이 최대 7 센치 정도 광범위하게 내려앉고 있었다. 배가 이렇게 쉽게 망가질 수가 있겠는가, 난생 처음 당하는 광경에 기가 차고, 금방이라도 깔려 죽을 것 같은 무서움이 들어 오래 지체(遲滯)할 수가 없었다.

선체하중에 비해 반목이 부실하다는 계산이 나왔고 즉각적인 반목 보완이 이루어졌다. 일부 심한 부분의 내부재는 잘라서 교환하고 불로 굽고 지지고 새로 칠하고 온풍기를 온통 동원하여 말리는 등 한 차례 난리를 치른 후  본선은 안벽으로 빠져 나갔고 이어 다음 공정인 특수도장(特殊塗裝)으로  바톤이 넘어간다.

그러나 인도(引導)는 요원했다.

이 배는 화학제품 운반선이다. 내부재를 가급적 홀드 밖으로 배치하고 Corrugate를 많이 썼다. 그래서 크랙이 그렇게 많이 났던가.. 사실 1034호선은 상당히 신경을 써서 용접을 했는데도 1033호선과 비슷한 수정 과정을 거쳤다. 물론 수정 량의 차이는 있었지만... 아무튼 본선은 그 때부터 화물창 특도 공정으로 넘어가게 되는데 이게 또 만만치 않아 별의 별 희한한 곡절을 겪느라고  한 해를 또 넘겨 이듬해 봄에 인도를 하게 되는데 그 중간에 용접에 관련해서 일어난 또 한 번의 푸닥거리를 빼 놓을 수가 없다.

85년도 저물어 가던 어느 날, 아마도 크리스마스이브 날이었다고 생각된다. 퇴근할 무렵, 이미 각자의 마음의 한 자락은 집에 가 있는데 느닷없이 Dir. Noh 로부터 연락이 왔다. 카고 홀드에 크랙이 있으니 확인하고 저녁에 회의를 하자고 한다. 처음에 열 몇 개 있다는 보고가 있더니만 나중에 50개가 넘는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홀드 안을 들여다보니 군데군데 녹물이 흘러내려 분통(粉桶)같은 화물창을 붉게 물들여 놓고 있었다. 혹은 높고 낮은 곳에, 길게 또는 짧게, 녹물은 여기 저기 혓바닥을 내 밀고 있었다.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은 정신이 아득아득 했다.  아, 저 크랙.  저것들 잡겠다고 그 동안 고생한 나날들이 부질없다. 이게 무슨 경우람.

회의에 가서도 화도 나고 기가 막혀서 숨을 몰아쉬고 있는데 Dir. Noh가 일갈한다. “경수야! 니 오늘 저녁에 저거 다 칠해뿌라”

아니 저 높은 곳에 있는 것을... 한 두 개도 아니고, 한 두 홀드도 아니고... 저게 무슨 소린가하고 있는데 말 들은 쪽에서 대답이 불쑥 나온다 “알았심더”

회의는 간단히 끝났다.

즉각 행동으로 옮겨졌다. 십 오륙 미터가 넘는 알미늄 제 사다리가 여러 개 준비되고, 홀드 바닥 전체를 덮을 것 같은 천막이 깔리면서 그 동안 잊을만하던 가우징이 또 시작된다. 그 큰 화물창에 정적이 깨어지고 섬광(閃光)이 비산(飛散)한다. 가우징의 굉음이 사방에 부딪치며 메아리진다. 별똥별처럼 쏟아지는 저 불덩어리 아이구 저 도장, 저거 어떻게 칠한 것인데... 석면포를 단단히 대고, 데미지를 최소화해야 한다. 높은 데는 사다리 두 개를 묶어 연결하고 양쪽에 두 사람씩 서서 받쳐라.  안전이 최우선이다, 떨어지면 죽는다 하면서 작업은 진행되어 갔다. 그리고 용접, 그라인드, 스프레이, 다음크랙으로 이동, 다 됐으면 다음 홀드, 솨솨솨 쉬쉬쉬쉬 작업은 진행되어 갔다. 세상 어디에 그런 스릴과 서스펜스가 있었을꼬. 

크리스마스 좋아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피식 웃음이 지나갔다. 용접은 지들이 지은 죄가 있어 어쩔 수 없지만 도장은 또 저게 뭐람? 그래도 군소리 안 하고 따라와 주는 게 여간 고맙지 않다. 이튿날은 마침 크리스마스 휴일이라 다행이었다. 그러나 안심이 안 되어 정문(正門)에출입자 통제를 부탁해 놓고 대충 대충 단단히 해서 일단 눈에 보이는 결함은 모두 제거를 했다.

가기는 간다마는..

1986년 3월 12일.  본선이 인도 되었다. 계약 날짜 보다 무려 1년이 늦었다.

부우웅 기적을 울리며 본선이 떠날 때 2안벽에 전송 나온 사람들, 떠나는 선원들, 각자  처한 입장에 따라 그 심정은 달랐겠지만  거의 폐선 직전에 까지 몰려가며 천신만고 여기까지 온 사람의 감회는 유별났다.

가기는 간다마는 행여 쫓겨 오지는 않을까. 못미더운 딸 시집보내는 부모의 마음이 그랬을까?

그 후 시집살이 잘 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리더니만 어느 해는 시집이 폭삭 망했다는 소식도 들렸다. 아무렇거나 본선에 별탈이 없어 만 번 다행이고 가문에 더 큰 누를 끼치지 않아 영광(?)이지만 그 때, 크리스마스이브 날의 푸닥거리는 두고두고 궁금증을 남긴다.   대규모 용접수정으로 인한 잔류응력이 시운전 과정에서 표출(表出)된 것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어쩌면  한갓 일장춘몽(一場春夢), 아니면 우리가 아직 기술적으로 취약할 때 겪은 홍진(紅疹)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배는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