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이 시작됐다. 이번 일주일도 모든 시간을 하느님 당신께 인도해 달라고 기도드린다. 약한 내 자신 전 존재가 하느님 아버지의 능력으로 변화되길 간절히 기도한다…. 기도를 바치니 한결 마음이 평온해진다."(알코올 중독치료센터에서. 1998년 4월14일 일기) 3학년이 된 후엔 외출이 일주일에 두번씩이나 허락됐다. 1, 2학년땐 상상도 못하던 일이었다. 신학생들이 외출하면 갈 곳이 뻔했다. 우선 극장에서 영화 한편을 감상하고 당구장에 가서 당구를 쳤다. 그 다음엔 혜화동 로터리에 있는 '복지다방'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영화구경이나 당구장도 한두번이었다.
우린 차츰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외출날이 되면 5~6명씩 짝을 지어 혜화동이나 삼선교에 있는 술집으로 갔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당시엔 신학생들만의 단골 술집이 있었다. 술값이 싸고 안주를 푸짐하게 주는 술집 정보를 공유해 다니다 보니, 그런 집에는 늘 신학생들로 붐볐다.
중간고사 시험을 마친 어느날이었다. 그날도 나와 친구 몇몇은 외출을 나가 삼선시장에서 순대국에 소주 1병씩 마셨다. 학문에서부터 신학교 이야기까지, 또 살아온 이야기도 곁들어졌다. 술 마시며 이야기를 하면 왜 그렇게도 시간이 빨리 가는지…. 어느덧 귀교 시각이 다가왔다. 귀교 시각에 늦거나 학교 규칙을 어기면 어김없는 신학교 퇴출감이었다. 우린 미련을 버리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 학교로 향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외출 마감시각 20여분 전, 우린 학교정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그때였다. 경비 아저씨가 고석준이라는 학생이 면회와서 한참 기다리다가 혜화동 로터리에 있는 한 술집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전해 주셨다. 난감했다. 오랜만에 먼길을 찾아온 친구를 그냥 돌려보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잠깐 얼굴이라도 보고 학교로 다시 돌아올 생각으로 발길을 돌려 친구가 기다리고 있다는 술집으로 향했다. 3년전에 미국으로 이민간 친구였다. 친구는 이민생활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 눈은 자꾸 시계로 향했다. 외출 마감시각 10분전이었다.
난 친구에게 "외출시간이 10분밖에 남지 않아서 이젠 들어가야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친구는 "5분이면 소주 2병씩은 더 마실 수 있다"며 주인 아주머니에게 소주 4병을 주문하는 것이 아닌가. 친구의 청을 물리칠 수 없었다. 우린 맥주잔에 소주를 부어 벌컥벌컥 들이키기 시작했다. 소주 4병이 불과 2~3분만에 동이 났다. 빈 병을 확인한 우린 연락처와 전화번호를 주고받고 헤어졌다.
학교를 향해 정신없이 달렸다. 다리가 휘청거리고 온몸에 열기가 퍼졌지만 오직 귀교시각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뿐이었다. 학교문을 통과하고, 숨을 고르며 시계를 들여다보니 외출 마감시각 2분전이었다.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제서야 머리가 핑핑돌고, 몸이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젖먹이 아기는 자신의 욕구가 발동되면 그 욕구를 억제하지 못한다. 그래서 어머니를 조르고 칭얼대는 것이다. 알코올 중독자도 이런 성향이 강하다. 조금만 욕구가 충족되지 않아도 마치 어린아이처럼 행동한다. 욕구충족에 대한 욕심이 많은 것이다. 그래서 술을 마시는 속도도 빠르다.
빨리 마시다 보니 많이 마시게 된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인내심이 약하다고도 볼 수 있다. 욕구가 있으면 즉시 만족되기를 원하고 만족되지 않으면 쉽게 화를 낸다.
단주하기 위해서는 조금씩 인내심을 키워나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영어로 환자를 'Patient'라 하는데 이 의미에는 '인내력이 강한'이라는 의미도 포함돼 있다. 알코올 중독자는 '환자'라고 수차례 말한 바 있다. 알코올 중독자는 인내심을 길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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