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 박씨(務安 朴氏)의 시조인 박진승(朴進昇, 완산박씨8세 중 5자 銀堅의 아들)은 신라 제54대 경명왕(신라박씨 29세)의 여섯째 아들인 완산대군(完山大君) 박언화(朴彦華)의 8대손이다. 박진승(朴進昇)은 국자좨주(國子祭酒)를 지냈으며 국속을 기자8조로 교화한 공(功)을 세워 무안(務安)을 식읍(食邑)으로 하사(下賜)받았다.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고 무안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무안(務安)은 전남 서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본래 백제의 물아혜군(勿阿兮郡)인데, 신라 경덕왕이 무안군(務安郡)으로 개칭하였고, 고려 때 물량군(勿良郡)으로 고쳤으며 고려 성종 때 다시 무안으로 고쳤다. 1413년(조선 태종 13)에 무안현으로 개편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면천(綿川)·면성(綿城) 등의 별호가 있었다. 1895년(조선 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군이 되었으며 1897년 무안부(務安府)로 승격되었고, 1914년 군면 폐합으로 목포부(木浦府)를 독립시키고 나머지 지방은 무안군이 되었다.
영주 입향조는 박선장(朴善長)1555년(명종10)~1616년(광해8)자는 여인(汝仁),호는 수서(水西)이며 정랑 박전(朴全)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신안주씨로 사직(司直)행(幸)의 딸이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영해(寧海)에서 골내(化川)에 옮겨와 삼송 남몽오에게 글을 배웠는데 그의 제주를 기특하게 여긴 남몽오가 사위를 삼았다.벼슬에 뜻이 없었으나 아들 한이 급제하자 홀로 계신 모친을 위하여 1605년(선조 38)문과에 급제하고 곧 성균 전적에 제수 되었다.1608년 예안(禮安)현감을 거쳐1614년(광해군6)경상(慶尙)도사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