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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보고라고 하기보다는 산행기입니다.
지난 8월2일부터 8일까지 23명이 일본 북알프스 일대를 다녀 왔습니다.
7일 중 5일을 산행했고 하루 평균 8시간20분정도 걸었습니다.
산행기가 좀 늦었지만 올립니다.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일본 북알프스 6박7일 산행기
제1일(8월2일 토 맑음)
8월2일 12시10분 부산 김해 국제공항 출국대기실 3층 스타벅스커피점 앞에는 일본 북알프스 등산을 가는 산꾼 23명 전원이 모였다. 모두가 소풍을 가는 초등교 학생처럼 들떠 보인다.
우리 팀과 동행하는 여행사 직원은커녕 출발하는데 도와주는 직원조차 없다. 등산을 주관하는 여행사가 서울이므로 여행도우미를 부산에 있는 다른 여행사에서 구해야 하므로 번거롭다. 나가 등산하는 전 대원을 김해공항에서부터 일본 나고야 공항까지 인솔하는 책임을 맡았다. 이 팀을 나가 중심이 돼 처음부터 인원을 모으고 점검, 연락하는 등 오늘에 이르렀기에 대원 모두를 정확히 잘 알고 있다.
나는 23명을 5개 팀으로 나누고 팀장이 이끌도록 했다. 팀장은 항공화물로 붙일 배낭이나 가방을 점검한다. 대원들의 스틱을 한 곳에 모아 잘 묶어 항공화물로 붙일 준비를 끝냈다. 팀장은 팀원의 여권을 회수하고 발권 용지를 가지고 대한항공 창구에 가서 좌석 배정을 받았다. 팀장 도움아래 각자가 배낭과 가방을 항공화물로 붙였다. 일부 화물에서 가스라이터 알콜 연료 등이 나와 해당자는 불려가 이를 제거한 뒤 다시 들어왔다.
팀장은 이런 절차와 현장 경험을 통해 해외여행 수속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줄일 수 있으므로 다음 여행에 많은 도움이 된다.
고속도로 차량들이 순찰대 순찰하듯 규정 속도를 잘 지켜
23명은 검색과 검사를 끝낸 뒤 면세점이 있는 탑승대기실에 모였다. 일본 북알프스 등산에 대한 두려움은 여행이라는 즐거운 파도에 묻혀 버렸다. 미소와 즐거움이 낯설었던 23명을 한식구로 묶는다.
면세품을 찾거나 면세점을 들러보며 시간 보내기를 한다. 대원 중 한사람은 아주 두꺼운 책을 들고 와 읽고 있다. 여객기가 보이는 출국장 대합실에서 책을 읽고 있는 40대 초반의 남자 산꾼. 참 아름답다.
오후2시20분 대한항공 753편은 김해국제공항을 이륙했다. 하늘을 뚫고 바다를 건너 나고야 공항에 저녁 4시께 도착했다. 부산-나고야가 90분 거리라니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가깝다. 너무 짧은 비행시간이다.
90분의 시공 속에 한국과 일본이 판이한 역사, 판이한 영토. 판이한 국민을 가지고 역사를 만들며 살아가고 있다. 대한해협을, 동해라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두 나라는 너무 다른 어제, 오늘을 살아왔고 또 다른 내일을 살 것임에 틀림없다. 입국 수속은 예상보다 간단했다.
화물로 붙인 배낭과 가방을 찾았다. 나고야국제공항 대합실로 나가자 일본탐험의 김지열 산행대장이 우리를 맞는다. 김대장은 부산서 설명회를 했기 때문에 이미 낯익은 얼굴이다. 일본탐험 노운석사장도 다른 등산객 때문에 공항에 나와 있어 만났다.
버스를 탔다. 29인승 버스는 약간 비좁다. 45인승 버스로 서비스를 하면 더 좋은 것 같은데. 검소하다 못해 인색하기 까지 한 일본 국민의 습속이 이 버스에도 스며있는가. 아니면 우리를 주선한 일본탐험의 계산된 작은 버스 빌리기인가.
버스는 고속도로를 달린다. 집과 산과 들판이 차창에 펼쳐진다. 일본 시골도 일본의 산도 한국과 다를 게 없다. 고속도로는 한국 고속도로보다 낡았다. 자동차가 많이 다니지 않는데도 대부분의 차들이 규정된 속도로 달려 마치 고속도로 순찰대 같다. 내빼거나 질주하는 차량은 거의 없다.
우리가 묵을 하꾸바까지 4시간30분이나 가야하는데도 운전기사는 규정 속도인 90km를 흔들림 없이 지킨다. 조금 더 속도를 내면 4시간이나 3시간40분정도로 시간을 줄일 수 있을 것인데 전혀 그럴 기미가 없다.
오후6시30분 왼편 차창 너머로 3000m급의 일본 중앙알프스 연봉이 있다고 김지열대장이 설명하지만 옅은 안개와 산 그림자가 산을 삼켜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일본서 처음 먹는 식사는 뵈폐식 저녁
고속도로를 벗어나 깃발이 펄럭이는 식당에 들어가 저녁을 먹었다. 일본서 처음 먹어보는 뷔페식인데 구워 먹는 해물이 많았다. 구이 육류도 있다. 숟가락을 거의 쓰지 않고 주로 젓가락을 쓴다. 망개 잎에 싼 감자떡도 있다. . 일본 냄새와 맛이 가득한 음식을 열심히 먹었다. 먹는 데는 말이 통하지 않아도 크게 문제 될게 없다. 모두가 잘 찾아서 잘 먹는다. 나는 그동안 일본어를 등한시 한 탓에 기본적인 말도 입안에서 맴돈다. 참 외국어 공부란 무정한 것이다. 우리가 먹은 뷔폐 요금은 2만원이란다.
밤 10시20분 일본 토야마현(富山縣)에 있는 하꾸바(白馬)마을 다테야마(立山)산장에 도착했다. 이곳은 해발850m란다. 여자 방 둘, 남자 방4개를 배정받아 짐을 풀었다. 배정 받은 방은 우리가 자든 자지 않든 일본을 떠날 때 가지 우리가 쓴다. 소주판을 벌이는 일행도 있다. 일본 땅 첫날 밤. 내일 4시에 기상이라는 가이드 말이 귀에 큰 메아리를 만든다.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누우니 이미 1시다. 일본 등산 6박7일중 가슴 설레는 첫날밤은 이렇게 1시 취침, 4시 기상으로 시작과 끝이 숨 가쁘게 똘똘 뭉쳤다.
< 야리가타케-오큐호다까다케 종주 2박3일>
제2일(8월3일 일 맑음)
눈을 떠니 4시. 2박3일동안 북알프스를 등산할 짐을 챙긴다. 5시10분 아침식사를 한다. 진수성찬은 아니라 하더라도 식사 양도 적고 반찬 수도 적어 정상적인 아침식사가 아니고 간편식 같다고 했더니 그렇지 않단다. 일본인들의 아침 식사는 아주 간결하다고 한다. 도시락과 물 한 병을 준다. 도시락도 주먹밥 같은데 너무 적게 느껴진다.
이어령 박사가 쓴 ‘축소지향형의 일본인’과 이곳 소설가가 쓴 대하소설 ‘도꾸가와 이에야스’ 가 생각난다. 전쟁터에서 도꾸가와 이에야스는 주먹밥 한가지와 된장국으로 아침을 때우고 전쟁에 나서는 게 자주 나온다. 이어령박사는 작고 적게 끝없이 축소지향을 하는 게 일본 문화라고 했다. 아침 식사인들 도시락인들 별수 있겠나, 여긴 일본이다.
아침6시5분 버스를 탔다. 어제보다 더 적은 버스다. 날씨는 기막히게 좋다. 버스가 국도를 달린다. 차창 너머 눈앞에 다가서는 산은 골짜기 마다 8월인데도 눈이 그대로 있다. 급경사 기슭 곳곳에 스키장 잔디가 축구장보다 더 윤기나고 그 아래 호수에는 산 그림자와 집들이 떠있다. 녹지 않은 눈, 녹색융단을 이룬 잔디밭 스키장, 맑고 푸른 저수지, 깔끔한 농촌주택, 하늘에 용솟음치는 날카로운 봉우리. 스위스의 기슭을 달리는 착각에 빠진다. 홀연 산 옆구리에서 안개 한 덩어리가 나타나더니 연기처럼 세력을 넓혀가 산자락과 들판과 호수를 덮는다. 그러고는 더 이상 커지지 않고 정지해 있다. 참 아름답다.
버스로 2시간15분을 달려 산행 들머리 가미고지 도착
8시25분 가미고지(上高地 해발 1500m안팎) 하동교(河童橋) 주차장에 도착했다. 여기가 산행 들머리다. 해발 1500m고지라고 하지만 많은 사람과 차량, 맑은 시냇물이 갸아산 고스락 보다 높은 기분을 주지 않지만 주변 산은 험하기 이를 데 없고 깊은 골짜기는 하나같이 눈이 쌓였다.
8시30분 산행시작이다. 가이드는 출발이 다른 팀보다 약1시간30분 늦기 때문에 처음에는 빠른 속도로 걷을 테니까 이해하고 열심히 따라오라고 한다. 높이 3000m이상인 미지의 산인데다 2박3일 등산이라 대원들은 짐을 국내 등산보다 무겁게 꾸렸는데도 가이드는 초장부터 빠르게 걷는다.
냇가를 따라 가는 길은 경사도도 심하지 않고 한동안은 거의 도로다. 하지만 처음부터 몰아치듯 걷는 건 다리에 급격한 충격을 줘 근육통을 일으키기 쉽다. 09시20분 묘진이케(1550m 명신지明神池)에 있는 산장에서 잠시 쉰다. 초장부터 빨리 걸은 탓에 벌써부터 몇몇 회원은 다리 근육통을 호소하고 파스를 붙이는 등 대비를 서두른다. 시간당 4km는 걸은 것 같다. 이제부터 조금 느리게 걷겠다고 한다.
9시55분 도꾸사와롯지(1562m 덕택산장 德澤山莊). 숲에 있는 좁은 등산로가 시작된다. 여전히 내와 더불어 간다. 일본인들도 냇가에 앉아 있지만 우리처럼 냇물에 발을 담그거나 세수를 하지 않고 그냥 그늘에 앉아 냇물위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맞이를 하고 있다. 냇물이나 계곡물에 덤벙 발을 집어넣지 않고 등산화를 벗고 등산양말을 신은 채 그늘에 앉아 흘러가는 물소리에 귀 기울인 채 더위를 식히는 모습은 충이다.
물에 들어가지 않고 냇가에 앉아 바람맞이
약간 속도가 떨어졌다고 하지만 그래도 상당히 빠르다. 냇가 옆 산 아래쪽 능선과 능선 사이 계곡 곳곳에 때가 묻었지만 하얀데다 누런색을 띤 사각형, 삼각형 널빤지 같은 게 많다. 비닐하우스도 아닌 저게 무엇인지 궁금하다. 23명 대열은 선두그룹 10명, 중간그룹 8명, 후미 5명으로 3등분 한 채 산길을 오른다.
숨이 턱에 닿자 산장이 있다. 10시55분 요코산장(1620m 횡미산장 橫尾山莊)에는 산꾼이 꽤 많은데 3분의2가 한국인 같다. 이정표는 가미고지 11km 야리가다케11km다. 이 이정표가 맞다면 2시간25분 동안 11km를 걸었으니 시간당 4.9km를 걸은 셈이다. 대단히 빠른 걸음이다. 이렇게 걸을 필요는 없는데. 다시금 숲길과 냇가를 따라 이제 서서히 오름이 되는 산길을 간다.
12시5분 숨 가쁘게 언덕 같은 곳을 오르니 오른편에 산장이 있는데 야리사와롯지(1850m 창택산장 槍澤山莊)라고 써 놓았다. 산꾼들이 점심을 먹고 있는데 여기저기서 우리말이 오간다. 거의가 한국인 같다. 우리도 조별로 나눠 점심을 먹는다. 도시락은 아기 주먹만 한 주먹밥이 두 개 였다.
“오늘 여러분들이 잘 걸어줘 아침7시 출발한 팀과 함께 등산을 하게 됐습니다. 고맙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 대단히 힘든 본격적인 오름길이므로 우리가 걸어온 길과는 전혀 다릅니다. 각오를 단단히 하시기 바랍니다”고 김대장은 말한다. “아이고 죽었구나”를 합창하듯 하면서도 우리 대원들은 그렇게 싫은 표정은 아니다.
12시40분 각오를 단단히 한 채 등산에 나선다. 길은 여전히 계곡을 따라 오른다. 양쪽 산이 자꾸만 좁아지면서 가까워진다. 산기슭 계곡에 널려있는 하얀데다 누런색을 띤 널빤지 같은 것은 눈이 녹다 언 큰 얼음판이다. 어떤 것은 헬기장만하고 어떤 것은 작은 운동장만한데 두께가 1m가 넘는 것도 많고 모양은 계곡 모양에 따라 다른다. 이 얼음판이 8월의 햇볕을 받아 지금 녹고 있는 중이다.
왼편은 돌멩이 많은 개울이고 오른편은 야생화가 가득 핀 산자락인데 이를 경계로 한 길을 걷는다. 나무란 나무는 어떤 주술에 걸렸는지 바로 서서 자라지 못하고 풀줄기처럼 땅으로 기어간다. 모진 바람이나 쏟아지는 많은 눈 때문에 바로 설 수 없다. 이렇게 나무가 똑바로 자라 숲을 이루지 못해 주춤거리며 땅을 기어가는 사이에 재빠르게 각종 야생화가 빈 땅을 온통 자기들 세상으로 만들었다.
8월 한더위 속에도 얼음과 눈이 골짜기를 가득 메운 채 헬기장처럼 혹은 항공모함의 상갑판 꼴로 자리 잡아 겨울의 입김이 여름을 희롱한다. 온통 돌멩이와 바위투성이인 계곡과 개울에서 불과 대여섯 걸음도 떨어지지 않아 지천을 이룬 야생화 꽃밭. 땅에 피어난 황홀한 무지개꽃밭은 이웃의 바위와 얼음을 비웃는 극명한 대비다. 한여름의 야생화 물결과 한여름인데도 한겨울 을 연상하는 눈-얼음판이 공존함은 살아있는 자연의 신비를 그대로 보여줘 우리를 흥분하게 한다.
계곡에는 눈-얼음판, 바로 옆엔 활짝 핀 야생화 꽃밭
이 꽃밭 사이로 흘러내리는 차갑고 차가운 눈물은 우리들 산꾼에게는 더위를 날리는 청포도 맛 같은 샘물이 돼 땀에 젖은 우리에게 행복한 미소를 안겨준다. 너무 시원하다. 너무 맛있다.
시야를 가리는 나무가 없어 길 위 아래쪽은 말 할 것도 없고 우리가 올라야 할 주능선까지 보인다. 걸을수록 경사가 심해지고 거의 돌길이다. 돌밭으로 원숭이 일가가 이동을 한다. 사람을 겁내지 않는다. 오후2시20분 덴쿠바라 (천구원 天狗原)분기점(2348m)이라고 이정표가 말해준다. 덴쿠가 어떤 뜻인지 모르지만 일본에서는 이런 지명이 자주 보인다. 여기서 왼편으로 산길이 갈라지는데 이 길은 계곡에 길게 자리잡은 녹지 않고 있는 눈-얼믐판을 가로 질러 저쪽 눈 없는 능선으로 오른다. 저 쪽 산기슭에서 이 길로 내려오는 산꾼 6-8명이 보인다.
돌길이 상당히 경사가 심하다. 길은 곧 바르지 않고 갈지자로 점차 고도를 높인다. 길옆에 맑은 물이 흐른다. 너무 차가워 손을 넣기 두려울 정도다. 여기서 물을 마시고 물통에 물을 채운다. 우리가 올라가야 할 야리가다케도 야리가다케산장도 보인다. 고개를 뒤로 젖히듯 그렇게 쳐다봐야 한다. 여기가 해발 2500m다. 물이 흐르는 언덕 같은 이곳이 지리산보다 585m, 한라산보다 550m나 높다니 할 말을 잊는다. 한라산 백록담, 지리산천왕봉이 물결 같은 잔상으로 다가오면서 이곳과 높이를 비교하자 새 옷에 구정물 뒤집어 쓴 것 같이 기분이 구겨진다.
나의 경우 고소증은 해발 2000m를 넘으면서부터 조금씩 나타났다. 가끔 숨이 가쁘고 머리도 좀 아프지만 크게 지장을 주지는 않았다. 약간만 빨리 걸어도 숨이가빠 빨리 걷고 싶어도 빨리 걸을 수 없다. 길은 오를수록 크게 갈지를 그리며 능선 정수리로 다가간다. 이 길은 선두 후미를 비롯, 이 길을 가고 있는 모든 사람이 한눈에 다 보인다. 정상 아래편 오른쪽에 또다른 산장(殺生휘이테)이 있다. 야리산장을 올라가기 힘들면 이곳 산장에서 배낭을 풀어야하는 곳이다.
3060m 야리가다케 산장에 당도하자 기쁨의 눈물 흘리기도
우리팀 선두는 이제 5분정도면 야리산장에 도착 할 수 있는 지점을 오르고 후미는 저 아래편에서 3-4분 걸으면 3-4분 쉬는 게 보인다. 예상보다 고전, 거친 숨소리가 느껴지는 듯하다. 후미 5명이 다시 2명과 3명으로 나눠지고 2명이 앞장서고 3명은 자기팔 자기 흔들기를 하면서 천천히 올라온다. 길은 작은 돌멩이고 풀은 전혀 없다. 갈지(之)자를 만들며 구렁이 담 넘어 가듯 산장으로 넘어간다.
오후4시55분 나는 야리가다케산장에 도착했다. 선두보다 30분정도 뒤졌고 중간팀 10명 중 가장 늦었다. 산장 높이는 해발 3060m다. 산장을 향해 오른편에 거창한 야리카다케이 마치 창을 세워놓은 것처럼 그렇게 위험하고 거칠게 우뚝 서 있다.
나와 함께 이곳에 오른 여성회원은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난생 처음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와서 여기 지리산보다 높고 백두산 보다 높은 능선에 섰으니 어찌 감회가 새롭지 않을까. 3060m에서의 전망은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세상 그대로다. 할 말을 잊게 한다. 저 아래 우리 팀 후미가 힘들게 올라오고 있다.
산장에 들러 우리 방을 확인하고 배낭을 풀어놓고 맨몸으로 야리가다케를 오른다. 산장과는 불과 120m차이지만 봉우리 오르기가 쉽지 않다. 거의 직각의 사다리가 여러 개 있고 쇠줄도 많다. 오르기가 힘들고 어렵지만 그보다도 담력과 마음의 안정이 오름을 쉽게 한다. 장갑을 단단히 낀다.
아슬아슬한 야리가다케를 올랐다. 야리(槍)가 우리말로 바로 창이다. 높이 3180m의 높은 봉우리를 8월3일 오후 5시35분에 올랐다. 조금 전 산장 앞에서 울던 여성회원은 야리정상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특유의 미소를 머금었다.
야리가다케에는 산꾼이 30명이 넘는데 아버지를 따라 올라 온 초등학교 1학년도 한명 있다. 야리봉우리 한쪽에 사당이 있으나 오래 돼 많이 낡았다. 3180m에 작은 사당을 세워 산을 경배하는 치성을 드리는 일본인들. 어른들도 무서워 정상 오르기를 포기 하는데 꼭대기에 올라온 초등생 얼굴엔 해맑은 미소가 어렸다. 너무 귀엽다. 아이를 데리고 온 어버지가 돋뵌다. 일본 초등학생과 오래된 사당을 번갈아 보며 과거의 일본, 오늘의 일본, 미래의 일본을 상상한다.
험준한 봉우리는 오르기도 힘들지만 내려가기는 더 힘들다. 이건 숫제 서커스 보는 기분이고 가슴이 철렁하는 그런 곳도 적잖다. 오랜 된 쇠사다리를 잡고 한발 한발 오르내리고 쇠줄을 잡고 거의 매달리듯 올라간다. 내 행동이 마치 서커스를 하는 것 같아 나 스스로가 놀란다. 어떤 곳은 손과 발로 기어 오르고 바위를 싸안고 간신히 내려간다.
야리가다케 3160m의 고스락엔 오래된 작은 사당이
봄에 훌쩍 커버린 건강한 죽순처럼 뻣뻣하게 허공을 향해 치솟은 야리가다케. 오후 5시 오르기 시작, 정상에 올랐다가 산장에 들어서니 6시10분으로 1시간 10분이 걸렸다. 산장 앞에서 본 야리. 우리 앞에 3180m의 첨탑 같은 봉우리를 드러내 감탄을 뱉기 무섭게 너풀너풀 춤추는 요염한 무희 같은 구름에 몸을 섞어 온데 간데 없다. 참 신출귀몰이요 신기막측이다.
3060m숙소는 우리를 편하게 자게 두지 않았다. 여대원들 방이 화장실 앞인데다 아주 고약한 냄새가 진동을 해 남자들도 역한 기분을 감추기 어려웠다. 이방에서 여성대원 한사람이 냄새 때문에 토하고 눈물을 쏟는 바람에 비상이 걸렸다. 이 대원은 3천m능선을 올라온 것에 감동해 눈물을 흘렸는데 이번에는 냄새로 인해 역겨움의 눈물을 흘려 오늘의 눈물의 희비쌍곡선이다.
가이드가 산장 관리인에 이야기 해 다른 방으로 바꾸었는데 1,2층으로 나누어진 방이다. 2층에는 여성대원 7명밖에 잘 수 없고 아래층에 두명이 자야 하는데 하필이면 오른쪽 벽엔 일본 남성 두명, 왼편 벽에 남성 한명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우리가이드가 여성 두명이라 남성 세 사람이 함께 자고 한쪽 벽 쪽 자리를 양보해 달라고 사정사정 했건만 들어주지 않았다. 여성 두 명을 남성 가운데, 그것도 일본 남성 사이에서 자게 한다는 건 아무래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우리 팀 부부회원을 그 자리에 자게하고 여성한명을 남자 방에서 자게 해 겨우 해결했다.
자리를 비껴주지 않는 일본남성이나 일본 남성 가운데서 잠을 잘 수 없다는 한국여성의 선입견이나 이 모두가 3060m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이기적 처사인 것 같다. 그렇지만 일본 남자들의 양보심 없는 ‘곧이 곧’ 자리 지키기에 슬며시 화가 난다. “잘 자고 잘 살아라 에이 ×××놈아.”고 혼잣말을 한다. 여자대원 한명이 남자대원 속에 잠자러 왔는데도 눈 한번 떠보지 않고 약하게 코골며 자는 남자대원도 몇 있다. 난생 처음 고산준령의 숙박은 안개와 어둠이 스며들듯 잠이 향불처럼 피어오른다. 자면서 나는 코를 얼마나 골았는지 알 수 없지만.
이래서 고되고 힘든 하루를 보냈다. 아침 8시30분부터 걷기 시작해 오후4시55분에 산장에 도착했으니 8시간 15분이 걸린데다 야리가다케를 오르내리는데 1시간10분이 소요됐으니 오늘 9시간 25분 동안 산행을 했다. 10시55분 요꼬산장을 출발해 11km 거리의 야리가다케 산장에 도착한 시각이 오후4시55분이니 6시간 걸렸다. 한 시간에 겨우 1.83km를 걸어 아침 하동교에서 요꼬산장까지 한시간에 4.9km를 걷던 것과는 비교하면 극명한 대조를 보였다. 3000m산은 한국의 산과는 전혀 다르다. 2500m가 넘으면 온통 바위산이다. 오늘만 바윗길을 4시간이상 걸었다. 오늘은 날씨가 너무 좋아 등산길의 오르내림을 환하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야리가다케는 오후5시가 넘자 시시각각으로 구름과 어울려 모습을 바꾼다.
제3일(8월4일 월 비 흐림 맑음)
아침 4시30분에 일어나 창 틈새로 밖을 보니 날씨가 심상치 않다. 비는 내리지 않는데 빗물이 흥건하다. 등산하러 가는 산꾼들은 거의 비옷을 입었다. 아침식사를 한 뒤 도시락을 받아들고 방으로 돌아와 배낭을 꾸린다. 모두가 비옷을 입는다.
아침 6시55분 산장 앞마당에 모였다. 안개가 비를 뿌리는 안개비다. 우리팀 김대장은 “오늘 비가 많이 내리고 낙뢰를 동반 할 경우 산행 자체를 포기 할 수 있다”고 한다. 7시5분 산행을 시작한다. 대장이 날씨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만 여기서 오늘 우리가 갈 목적지는 어디며 중간에는 어떤 봉우리와 산장이 있으며 거리는 얼마 되는지 등에 대한 설명이 없어 아쉽다.
어제는 처음부터 빨리 걸어 대원들의 상태를 점검할 게 아니라 처음에는 시간당 3km안팎으로 걸으며 대원 개개인의 능력을 평가 한 뒤 보다 빠르게 걷든가 속도를 늦추는 게 효과적 방법이다. 처음부터 질주하듯 걸으면 다리 근육에 충격을 주기 쉬워 좋은 등산법이 아니다. 김대장은 어제 가미고지에 있는 등산 안내판 앞에서 상세하게 지도와 현지를 비교하면서 설명해야 하는데 이를 생략 한 것은 좋은 가이드로서의 자격을 스스로 잃어버린 것이다. 우리는 어디를 어떻게 가는지 알 수 없다.
비를 뿜는 안개에 비옷 입고 산행, 쇠사다리 오르고
비가 쏟아지는 게 아니고 안개가 부딪치면서 물을 뿜어낸다. 안개비다. 너무 습한 안개가 비를 뿌리는 것처럼 물투성이다. 시작부터 바윗길이고 급경사다. 비에 젖은 바위지만 한국의 바위보다 덜 미끄러운게 다행이다. 안개 속을 모두가 열심히 걷는다. 바람이 말소리를 거의 가 앞뒤 의 이야기도 거의 들리지 않는다. 걷기도 하고 기기도 하며 사다리를 오르고 쇠줄을 잡고 거의 일직선이 바위를 내려가기도 한다.
안개비는 여전하다. 손에 낀 장갑은 촉촉이 젖었지만 길은 바위 틈새로 물이 바로 빠져 질척거리지 않는다. 그렇지만 비옷은 이미 물투성이다.
내 비옷 바지가 자꾸만 내려가 등산화에 밟히곤 해서 자주 멈춰 비옷을 당겨 올린다. 한사람이 겨우 오르내리는 바윗길이라 내가 멈추면 뒷사람도 멈춰 기다리기 때문에 신경 쓰인다. 비옷 바지가 하도 내려가 아예 배낭을 벗어놓고 바지를 올려서 매무새를 단단히 한다. 이 통에 내 뒷사람은 이 행동이 끝날 때 까지 기다린다. 하지만 비옷 바지는 얼마 걷지 않아 내려간다.
안개비가 심하고 어떨 때는 앞에 가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마치 회색 세상에 내팽개친 것 같기도 하고 이러다가 이 회색의 미로에서 영원히 빠져 나가지 못할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그러다가도 순식간에 안개가 부분적으로 벗겨지면서 드러나는 산과 능선은 거의 환상적이다. 회색세상 한부분이 갑자기 무너지면서 발아래 능선이 초록파도처럼 밀려오고 눈앞에 검은 봉우리를 고개를 쳐든다. 환상처럼 신기루처럼 다가오는 실제상황 앞에 짜릿한 흥분이 이 밀려온다. 그런데 이것도 일순간 다시 온통 회색 세상으로 바뀐다.
안개 걷히자 능선과 봉우리가 신기루처럼 다가와
높이 3101m 오오바미다케(대식악 大喰岳)를 안개 속에서 지나치고 크게 경사도가 없는 능선 길을 천천히 걷는다. 3084m의 나까다케(중악 中岳)와 이를 알리는 이정표가 안개비에 흠씬 젖었다. 안개 걷히면 좌우는 깎아지른 절벽이지만 우리가 걷는 능선은 높낮이가 심하지 않아 걷기 편하다.
선두 팀이 가다 멈출 때가 많아 자연스럽게 23명 모두가 일렬이 된다. 사다리를 내려가거나 까다로운 바윗길이 잦아 지체된다. 일본은 우리나라처럼 콘크리트, 나무, 쇠로 아주 튼튼하게 만든 넓고 영구적인 계단이나 사다리가 거의 없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수 있는 좁은 쇠계단이 대부분이고 어떤 것은 낡아 위험이 느껴지기도 했다. 로프 밧줄은 하나도 없고 전부 굵은 쇠 줄(와이어)이라 잡고 오르기는 좋지만 너무 굵은데다 딱딱해 잘 쥐어지지 않아 힘이 더 들었다. 아무튼 쇠사다리나 쇠줄이 등산인의 편의를 최대한 고려해 편리하고 안전하게 만들었다기보다는 꼭 필요한 곳에 만들어 놓았으니 이용자가 알아서 조심하면서 이용하라는 것 같다.
3032.7m의 미나미타케(남악 南岳)를 지나 20여분을 내려가자 산장이다.(오전 9시25분) 일단 산장이 나타나면 안도하기 마련. 안개비가 돌연 소나기로 변해 마구 쏟아진다. 미나미다케산장은 규모가 작았고 산장 안은 다른 산꾼들이 가득하다.
가이드는 “날씨가 좋지 않아 여기서 대기하면서 날씨 추이를 살피고 여의치 않으면 하룻밤을 자고 내일 산행을 하겠다”고 한다. 우리는 속으로 안개가 심할 뿐 뇌성 번개도 치지 않아 위험하지 않으므로 그냥 갔으면 하는 마음이다. 하지만 북알프스의 악천후에 대한 상식이 거의 없어 어떤 의견을 낼 수 없다. 산장에 있던 일부 산꾼들이 나와 산행을 시작한다. 전북 익산서 왔단다. 산장으로 들어가니 산장 안은 발 디딜 틈이 없다. 다시 한 무리의 한국 팀이 채비를 하고 산행에 나선다. 비로소 산장 대기실은 숨 쉴 공간이 생긴다.
칼 등 좌우는 가슴이 쿵 내려앉는 천 길 낭떠러지
우리 가이드는 이 산장에서 숙박은 예약 팀이 있어 불가능하다며 잠시 쉰 뒤 다시 산행을 하겠다고 한다. 이제부터 북알프스에서 가장 험한 길 중 한곳을 가니 각별히 주의하라고 강조한다. 9시42분 남악산장을 나와 다시 산행을 시작한다. 안개가 심해 앞뒤 10m 안팎이 보이지 않는다. 얼마가지 않아 길은 오르내림이 심해지고 바윗길이 대단히 험하다.
앞에 간 우리 팀이 안개 속에 멈춰 서 있는데 유령 같다. 바위와 돌멩이로 이뤄진 좁은 길을 잡고 오르내리고 기어오르고 쇠사다리를 타고 쇠줄에 매달리고를 되풀이 한다.
어쩌다 좌우가 열리면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는 천 길 낭떠러지다. 우리는 이 양편의 낭떠러지가 솟아서 만나는 ‘칼날 등’을 타고 간다. 낭떠러지는 수직 벽이라 바람까지 쇠줄이 없으면 싶게 오를 수 없고 구름도 사다리를 이용하지 않으면 곤두박질 할 수밖에 없다. 여기 우리가 걷는 이 능선의 안개는 험한 바위를 잡고 오른 게 아니라 하늘에서 쏟아져 내려 온 것이리라.
이런 길을 3시간 이상 걷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안개비가 안개로 바뀌고 안개가 우리와 숨바꼭질 하듯 홀연히 자취를 감춘다. 우리가 걸어온 산, 걸어갈 산, 이를 잇는 산줄기가 함께 드러난다. 우리가 거쳐 온 봉우리가 앞으로 무너질 듯 하늘에 험상궂게 높이 솟아 정말 내가 저곳을 통과 했는가 믿기지 않았다. 우리 앞에 버틴 높고 높은 봉우리는 송곳처럼 솟았지만 너무 높아 중심이 잡히지 않아 이내 우리 쪽으로 쏟아질 것 같다. 성벽의 망루처럼 거하고 거한 바위봉에 넋을 잃는다, 그 험난함에 망연자실한다.
아무리 보아도 바위가 어깨를 타듯 바위를 타고 그 바위 위에 다시 바위가 타 높이를 더하고 바위와 바위를 합판 크기만 한 ‘바위판’이 여지 저기에 붙어 전혀 길이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이곳에 길이 있고 이 길이 위험과 흥분을 동반하고 끝내 손에 땀을 쥐게 하면서도 짜릿한 전율에 안긴다. 산 같은 산, 길 없는 길에 진짜 용기가 온 몸에 희열을 붓는다.
험하고 험한 산, 길 없는 길에 짜릿한 전율이
12시가 넘어서자 바윗길이지만 오르내림이 조금 부드러워진다. 시야를 가린 안개가 슬며시 자취를 감춘다. 북알프스에서 위험하기로 소문난 다이기레토(대절벽)인 미나미다케고야에서 기타호다까다케고야 부근까지 잇는 능선이 거의 끝났다. 길 가 바위에 주저앉아 점심을 먹는다. 오늘 주먹밥은 죽순 껍데기로 쌌다. 직사각형 주먹밥은 두부 반모 보다는 작고 4분의 1모 보다는 크다. 밥 안에다 반찬을 속으로 넣었다. 이제 날씨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오후 1시20분 비옷을 벗고 기분 좋게 출말한다.
금방 도착 할 것이라 여겼던 기타호다카다케고야(북수고악산장)를 오후1시50분에 도착했다. 이 산장은 빗물을 모으기 위해 많은 통을 늘어놓았다. 산장 바로 뒤 봉우리가 기타호다카다케(3106m 북수고악 北穗高岳)라 금방 올랐다. 봉우리에는 산꾼들이 많다. 좋아지는 날씨 따라 전망도 제 모습을 갖췄다. 산꾼들 얼굴에도 피곤함보다 즐거움이 가득하다. 오후2시3분 산행을 다시 시작한다.
기타호다카에서 가리사와다케(凅澤岳 3110m 오후4시50분 도착)를 거쳐 호다카다케산소(수고악산장 穗高岳山莊)에 이르는 바윗길은 힘들고 지겹다. 발아래에 산장의 붉은 지붕과 야영지에 쳐진 붉고 푸르고 노랑 텐트가 산꾼들의 의지와 꿈으로 피어나 아주 좋은 눈요기 거리다. 간간히 안개가 방해를 하지만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가리사와다케에서 내려다보는 것만으로 호다카다케산장은 지금껏 걸어온 피로를 그대로 날려버린다.
오후5시20분 해발 2996m인 호다카다케산장에 도착했다. 기타호다카다케에서 호다카다케산장까지 3시간17분은 걸어도 걸어도 좀처럼 줄어들지 않은 바윗길 오르내림이었다. 산장 입구에 쳐진 텐트에는 산장에서 달아준 팻말이 붙어있어 눈을 끈다.
우리팀 남녀23명을 한방에 배정했다. 일본인들이 무식한 것인지 아니면 저들은 혼숙이 생활인지 그렇잖으면 예약자가 많아 방이 없어서 그랬는지 알 수 없지만 불쾌하다. 북 알프스에 있는 산장은 산꾼 한사람이 두끼 먹고 자는데 한국돈으로 10만원 안팎이다. 이런데도 남녀를 구분하는 배려를 하지 않은 것은 아주 잘 못 된 것임에 틀림없다.
산장 앞마당서 황홀한 저녁 맞아 생맥주의 상큼한 축배
회원들은 젖은 옷과 등산화를 건조실에 가져가 말리기에 분주하다. 어떤 회원은 건조실에서 자신의 몸 전체를 건조시킨다. 호다카다케산장의 穗高岳山莊이라 새긴 오랜 된 간판은 모두에게 사진 찍기를 강조한다. 우리 팀들은 산장 앞마당에 모여 황홀한 저녁을 맞는다. 나는 실로 오랜만에 생맥주 한잔으로 소주를 든 회원들과 축배를 든다. 생맥주가 식도를 타고 내려가면서 아주 상큼한 기분을 빚는다. 터져 나오는 맥주트림은 애주가였던 내 과거를 불러온다.
산장에서의 저녁 식사는 나무랄게 없다. 우리팀에는 술고래가 많다. 어제 저녁 야리가다케산장에서는 고래들이 점잖 하더니 오늘은 고래들이 무리를 지어 괴성을 지른다. 저녁 후 한잔 7천원짜리 생맥주와 배낭에 넣어가지고 온 소주가 어우러져 해발 2996m 산장 로비에서 혹은 마당에서 고래들의 산상파티는 끝이 나지 않는다. 밤9시가 넘어 산장이 불을 끄자 마당으로 옮겼으나 산장 측으로부터 시끄럽다는 지적을 받은 뒤 방에 돌아와 아쉬움을 달래며 겨우 진정을 한다.
우리 팀 술고래들은 고래 고래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고래는 덩치도 크고 먹는 양이 대단하지만 온순한 동물이다. 술을 많이 먹는 사람을 흔히 술고래라고 하지만 고래의 이미지가 좋아선지 주객들은 그 단어를 싫어하지 않는다. 이 술고래들이 술을 많이 들이 킨 뒤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것 또한 재밌다. 술고래들은 마치 고래무리들처럼 요란한 유영이나 놀이를 즐기지만 결코 난잡하거나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는다. 고래들은 술 마실 공간이,고래 고래 소리 지를 공간이 없어 안달하다 못해 허탈한다.
여성들은 방의 2층에서 잤는데 한 회원이 한밤중에 떨어져 웃음소동을 빚었다. 다행이 다친 데는 없었다. 웃음, 코골기, 잡담에다 중도에 끝난 술 추념까지 얽혀 북알프스 산장의 밤은 유쾌한 코미디를 만들며 술독처럼 밤을 익게 한다. 오늘은 아침7시5분부터 산행을 시작, 저녁5시20분에 끝났으니 10시간 15분이 걸렸다.
제4일(8월5일 화 흐림 맑음)
산장의 새벽은 여러 가지 요인이 겹쳐 소란스럽기 마련이라 늦잠을 자려고 해도 잘 수 없다. 새벽4시에 일어나 산행 준비를 한다. 물이 귀한 곳이라 서둘러 세수를 하고 식수를 구한다. 일본 산장은 사야 할 것과 공짜를 명확히 구분해 놓았지만 공짜가 극히 적다. 식수도 공짜가 있어 이를 찾아가 수통에 물을 받는다. 산장의 아침밥은 깔끔하다. 일본 산장은 전부 개인 사업이기 때문에 산장마다 나름대로 독특한 서비스를 한다.
오늘도 안개가 짙어 5m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어제같이 안개비가 아니고 그저 안개일 뿐이다. 우리들은 비옷을 위에만 챙겨 입었다. 아침7시 안개 속으로 23명은 사라진다. 안개 속으로 들어오자마자 바로 비탈진 바위다. 곧 곧추선 사다리를 타고 또 타고 연달아 세 번을 오른다. 금방 떠난 산장은 안개에 묻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 다시 사다리와 쇠줄을 잡고 안간힘을 다해오르자 바윗길이 제법 넓어져 걷기 편하다.
아침 7시40분 일본서 세 번째 높은 3190m 봉우리에 서다
7시40분 해발 3190m의 오쿠호다카다케(奧穗高岳)에 섰다. 일본에서 세 번째 높은 봉우리로 북알프스의 맹주요 그 조망의 아름다움으로 보석처럼 이름을 날리고 있다. 이산은 북쪽에 어제 우리가 올랐던 3106m의 기타호다카다케, 서남쪽에 니시호다카다케(2908m 西穗高岳), 동남쪽은 3090.2m의 마에호다카다케가 솥발처럼 감싸고 그 가운데 자리잡았다.
일본 최고봉은 우리들이 너무나 잘 아는 후지산(3776m 富士山)이고 두 번째 봉우리가 남알프스에 있는 기타케(3193m)인데 오쿠호다카다케는 3m가 낮아서 일본서 세 번째 봉우리다.
우리가 올랐을 때 안개가 고스락을 휘감는다. 안개와 안개의 틈새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기타호다카다케 마에호다카다케 등 호위봉들을 안개가 감싸 보이지 않았다. 한자로 쓴 오수고악 3190m 팻말이 고정되지 않은 채 돌탑에 놓였고 그 뒤편에 작은 신당이 있다. 이 높은 산에다 신당을 만들어 자연을 경배하는 일본 사람들. 우리는 죄수들이 번호를 가슴에 안고 사진을 찍듯 이 나무 팻말을 가슴에 안고 사진을 찍는다.
일본은 참 재미있는 나라다. 서방 제2의 재력을 가진 강국이면서도 이런 팻말을 보다 단단한 것으로 고정하지 않고 그대로 두고 있다. 바람이 심하게 불면 날아 갈 수도 있는데도. 산에서는 모든 것을 사람 위주로 하지 않고 자연 위주로 한다. 사람 위주로 할 경우 자연 훼손이 더 심해 질 수밖에 없다.
최대한의 자연보호 최소한의 사람 챙기기
일본은 북알프스에서 최소한의 사람 보호, 최대한의 자연 배려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정표도 자주 없고 볼품도 형편없다. 계곡에선 콘크리트나 쇠로 다리를 만들지 않고 나무두개를 베어 함께 묶어서 땅바닥에 걸쳐 놓은 곳이 많다. 일본은 국민 스스로 판단해 자신이 있거든 이 높은 봉우리를 올라야지 자신 없는 사람까지 산을 오르는데 국가가 보호할 수 없음을 분명히 선언하고 있다고나 할까. 그리고 이 나라 국민 대부분은 하지 말라는 것, 법을 어기는 것을 극력 피해 우리 나라와 묘한 대조를 이룬다.
오쿠호다카다케를 내려오자 짙은 안개가 기세를 누그러뜨린다. 세상이 밝아진다. 오른편으로 뻗어 내리는 산줄기에 솟은 세봉우리 중 가장 높은 게 니시호다까다케다. 왼편으로 길게 기슭을 가로지르는 바윗길에는 산꾼들이 줄을 이은 곳도 많다. 내려가는 길이지만 쇠줄 사다리가 바위와 숨바꼭질하며 숨겨져 있다. 눈앞에 하늘을 막은 거대한 봉우리가 마에호다카다케(3090m 전수고악前穗高岳)이다.
그런데 길은 정상으로 가지 않고 이산 남쪽 능선 중허리를 오른다. 중허리 고개는 삼거리다. (09:15) 모두가 배낭을 놓아둔 채 맨몸으로 마에호다카다케 고스락으로 오른다. 이제 안개는 완전히 걷혔다. 급경사 길은 배낭을 메지 않아도 들숨날숨이다.
09시44분 마에호다카다케에 올랐다. 바위봉에는 산꾼들이 시장통처럼 붐빈다. 오르내리는 사람으로 길이 막히는데 일본인들은 언제나 용케도 멈춰 서서 상대방이 올라오기를 기다린다. 다시 삼거리에 내려오니10시13분. 여기서 건너편 능선을 타고 내려 갈 것으로 짐작했는데 고개에서 바로 앞의 짧은 지맥에 난 길로 하산한다. 급경사라 이곳 역시 사다리 쇠줄은 여전하다. 쇠줄과 쇠사다리가 없으면 이곳 산의 하산은 불가능하다.
올라가는 것도 힘들지만 자꾸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하듯 내려가듯 내려가도 끝 지점이 없는 것도 사람을 아연하게 한다. 구슬 같은 땀방울이 맺힌다. 점차 나무가 곧게 자라고 숲이 우거진다. 12시25분 마침내 계곡에 닿았다. 삼거리에서 2시간 12분 동안 오름이 거의 없이 내려만 왔다. 계곡은 물이 흐르지 않았다.
어제 주먹밥은 죽순껍질로, 오늘은 넓은 나뭇잎으로 싸
이곳 나무그늘에서 점심을 먹었다. 호다카다케산장에서 준 도시락 역시 주먹밥인데 호두나무 잎사귀 같이 생긴 넓은 잎에다 밥을 싸 놓았다. 어제는 죽순 껍데기, 오늘은 넓은 잎사귀에 싼 주먹밥이다. 주먹 밥 크기는 어제와 비슷하지만 오늘은 밥 전체에다 반찬을 섞었다. 정성을 들인 점심을 나는 아주 즐겁게 먹었다. 나무 잎사귀에 싸주는 일본 주먹밥과 버드나무 잎을 띄워서 건네는 한국의 마실 물주기 다 감칠맛이 대단하다. 밥을 먹고 난 뒤 잎사귀는 풀숲에 버리면 되고 마신 뒤 바가지는 주인에게 돌려주면 된다. 참 간편하다.
여기서 5분을 채 걷지 않아 다케사와(岳澤)산장이 있는 곳인데 이 산장은 지난 겨울 눈사태로 휩쓸려가고 지금은 빈터만 남았다. 이곳에 산장이 있어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산장이 휩쓸러 간곳이라고 짐작 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눈이 챙겨가 버렸다. 기슭 아래편인데도 눈사태로 산장이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씻은 듯 휩쓸려가다니.
숲길을 걷는다. 한국과 다를 게 없는 분위기다. 대간을 종주하면 쉽게 끝나지 않는 하산 길과 꼭 닮았다. 갑자기 공기가 서늘하다. 아주 작은 팻말에 풍혈(風穴)이라 써 놓았다. 한국 밀양시 산내면 얼음골에는 여름에도 얼음이 어는데 이곳은 바위구멍에서 찬바람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와 이 부근 일대가 전부 시원하다 못해 차가움에 닭 벼슬이 돋는다.
산길 옆으로 개울이 함께 간다. 물소리가 귓전을 즐겁게 한다. 말소리 웃음 소리가 점차 가까워진다. 도로다. 도로에 닿기 직전 개울에 가서 물을 마시고 수통에도 물을 담는다. 다리 밑으로 나온 물길은 숲과 풀밭 여기저기로, 도로에서 뻗은 좁은 길들도 물길처럼 이곳저곳으로 흩어진다. 하동교라고 한자를 쓴 팻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간다. 어떤 곳은 물길과 사람길이 만나는데 물길 바로 위에 나무로 만든 좁은 통로를 다리처럼 길게 늘어놓아 물도 보호하고 사람도 함께 간다. 출입금지 팻말이 있으나 들어가도 괜찮을 것 같은, 나무와 연못과 풀이 어우러진 멋진 곳인데도 아무도 그곳은 들어가지 않는다. 자연으로 깊숙이 들어가지 않고 한 걸음 뒤에서 찬찬히 열심히 자연을 살피는 일본인들을 보면서 우리들을 생각한다. 자연을 송두리째 흔드는 우리들의 자화상이 가슴에 멍을 만든다.
‘금지’ 팻말 하나로 들어가도 될 경치 좋은 곳을 아무도 안들어가
하동교다. 이제 냇물이 대단히 넓어졌다. 개울가와 도로에는 사람들이 시장처럼 다닌다. 다리 위쪽 아래쪽 개울에 몇 명이 물에 들어가 있다. 우리 회원 한사람이 “아 일본인들도 개울물에 들어가기는 가는구나. 우리 같으면 저 냇물에 사람이 가득할 것인데” 라며 애매모호한 미소와 함께 부러움을 달래는가, 슬픔을 달래는가.
출발할 때 사진을 찍었던 그곳에 2박3일만에 돌아왔다. 그날처럼 오늘 날씨도 무척 덥다. 그날은 오전9시가 되기 전 이곳을 지나가 사람이 많지 않았는데 오늘은 오후2시40분이라 ‘파시(波市)’다. 오후 3시 가미고지 하동교 주차장에 도착, 버스를 탄다. 7시부터 산행을 했으니 오늘은 7시40분 동안 걸었다.
오후3시에 가미고지를 출발, 하꾸바 숙소에 도착하니 오후5시20분이다. 바로 온천을 간다. 일본의 온천은 우리들 대중탕처럼 그렇게 많다. 하지만 옷장에는 문이 없고 그저 앞뒤가 뻥 뚫린 사각형 공간이다. 여기에 옷을 넣고 탕으로 간다. 우리는 그 공간에 익숙하지 않아 만원 일 때 쓰는 바구니를 찾아 옷을 놓는다. 어쨌든 3일 동안 산행한 피로를 온천욕으로 푼다.
저녁 식사 후 우리 팀 술고래들은 돼지고기를 넣은 김치찌개를 끓여 술상을 푸짐하게 가꾼 뒤 집단 유영을 하면서 희희낙락한다. 저녁 식사를 했던 곳에서 한바탕 마시고 권하고 거나해진 뒤 3층으로 올라와 다시 새롭게 자리를 만들고 밤을 밤으로 대우 않고 저녁처럼 생각하며 마지막 취기를 돋구고 이야기와 웃음꽃이 만발한다. 밤12시께 겨우 잠자리에 들은 것 같다. 그 젊음과 호기가 부럽다.
< 다테야먀 연봉-다이니찌 연봉 1박2일 종주>
제5일(8월6일 수 맑음)
오늘은 다테야마 연봉이 있는 무로도(실당 室堂 해발2450m)로 가서 산행하는 날이다. 아침 5시 기상, 5시30분 식사를 한 뒤 1박2일간의 산행준비를 끝냈다.
이미 2박3일동안 산행을 하는 동안 고소증세로 거의 식사를 못한 회원, 첫날 계속되는 오름 산행에 지쳐 뒤쳐진 회원들, 마에호다카다케 삼거리서 하산하던 중 점심 장소 가까이 와서 돌에 걸려 넘어져 다리를 다친 회원. 이중 첫날 뒤로 쳐진 회원 3명 중 두사람은 다음날부터 정상적으로 걸었지만 한 회원은 산행이 끝날 때까지 고생을 많이 했다.
넘어진 회원은 바위 끝에 있는 나무를 잡지 않았다면 낭떠러지라 대형 사고를 낼 뻔했다. 하지만 걸을 땐 고통이 심한지 미운오리 새끼보다 더 뒤뚱거리며 안간힘을 다한다. 고소증세를 보인 회원은 3000m 능선에서 하루를 잦는데도 수그러들지 않아 산행 내내 고생이 많았다.
무로도는 해발2450m나 되는 고원지대여서 일본에서 소문난 고산 휴양지다. 지금은 휴가철이라 일본에서도 시원한 이 고원지대를 많은 산꾼들이 찾아들고 고산체험을 겸한 체력훈련으로 초 중등학생들도 많이 와 거의 만원이라 한다. 무로도는 분지인데 둘러싼 봉우리를 다데야먀 연봉이라 부른다.. 대표적인 산이 죠도산(2831m 정토산 淨土山) 오야마(3003m 웅산 雄山)-오난지야마(3015m 대여산 大汝山)-후지노오리다테(2999m)-마사고다케(2861
m 진사악 眞砂岳)-벳산(2874m 별산 別山)이 남-동-북을 감싸고 있다.
일본서 소문난 고산 휴양지 무로도는 해발 2450m
다테야마 연봉 산행은 야리가다케- 오쿠호다카다케를 잇는 주능선 등산로보다 한결 수월하다고 한다. 물론 나무나 풀이 없는 바위산이지만 쇠사다리 하나 없고 길도 바위, 잔돌멩이, 마사가 많지만 흙길도 있다한다.
우리는 무로도에 가서 첫날 다데야마 연봉을 등산한 뒤 라이초오산장에서 잔 뒤 다음날 하산을 걸어서 할 계획이다. 무로도 지역 등산안내 및 산행대장이 바뀌어 일본탐험 여행사의 노운석 사장이 맡았다. 무로도에 도착하면 바로 산행을 해야 하는데 다리 다친 회원과 고소증세를 보인 회원은 아무래도 산행을 할 수 없었다. 우리가 묵을 무로도의 라이초소소(뇌조장 雷鳥莊)에 가서 쉬면 좋다. 하지만 말도 통하지 않아 산장에 가서 자신들의 입장을 설명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어제 저녁 노운석 사장과 무로도 산행 일정을 의논하면서 몸이 좋지 않은 두사람을 노사장이 맡아서 산장에 함께 가 쉬게 하고 다테야마 연봉 산행은 내가 안내를 맡기로 결정했다.
6시30분 어제처럼 작은 버스로 다테야마산장을 출발했다. 우리 팀 술고래들은 언제 술을 마셨냐고 되묻듯 건강한 산꾼으로 빈 틈 없음을 보여준다. 등산을 하지 않고 무로도로 올라가는 길은 알펜루트라는 관광 상품이 가득한 길과 버스가 다니는 도로다. 우리는 알펜루트를 이용한다.
7시10분 해발 853m의 히나타야마코우겐(일향산고원 日向山高原)의 알펜루트 매표소에 도착했다. 이곳부터 무로도까지는 이곳 전용 교통기관을 이용 한다. 트롤리버스를 타고 산을 관통하는 터널을 지나 구로베다무(흑부댐 黑部댐 해발1470m) 입구서 내렸다.
무로도로 가는 알펜루트는 그 자체가 특이한 관광지대
산과 산을 가로막아 댐을 만들었는데 제방 높이 186m로 일본 제일이다. 제방을 걸어서 건넌다. 사진촬영하기에 너무나 좋은 장소라 모두들 카메라에 얼굴을 들이미느라 정신이 없다. 댐에서 방류하는 물은 대단한 인공폭포를 만들었는데 장관이다. 호수와 양쪽의 높은 봉우리, 댐과 인공폭포 모두가 훌륭한 볼거리다. 호수에는 쾌속 유람선이 강심을 둘로 나눈다. 가을에 단풍이 들면 진짜 굉장한 아름다움 무대가 이 댐에서 펼쳐질 것이다.
제방을 걸어 지난 뒤 구로베케이블카로 해발1828m인 구로베다이라(흑부평 黑部平)로 가고 여기서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다이칸보(대관봉 大觀峰 2316
m)에 도착했다. 다이칸보에서 트로리 버스를 타고 산을 관통하는 다테야마 터널을 지나 무로도에 닿은 시각은 09시40분.
무로도는 다테야마 일대를 관광하는 시작점이요 끝내는 지점. 다데야마 연봉과 이 산들에 휩싸인 다테야마 분지를 이곳에서 대부분 바라 볼 수 있는 전망대도 겸하고 있다. 이곳에는 언제나 많은 사람이 붐빈다. 우리가 도착한 날에는 일본 초등학생들이 단체로 등산에 나서고 있었다.
노사장이 다테야먀 연봉과 그에 관련된 등산코스를 현지를 가리키며 나에게 설명을 해 준다. 우리 대원 23명 중 2명만이 노사장과 함께 산장으로 가고 21명은 나를 대장으로 해 9시47분 산행을 시작한다. 무로도에서 오야마와 죠도산을 잇는 주능선 고개에 있는 이치노코산장까지의 길은 사람들이 거의 이어지고 있다.
아라비아 숫자를 찍은 노란조끼를 입은 초등학생 몇 백 명이 각 반별로 등산에 나서고 있다. 그렇게 경사도가 심하지 않는 길이지만 아직 녹지 않은 눈길이 있는가 하면 개울을 건너기도 한다. 고개가 가까워지면서 경사도가 심해진다. 우리팀은 2박3일간 산행을 했는데도 한두 사람을 제외하면 평소처럼 잘 걷는다.
다테야마 연봉 등산길은 초등학생 등 일인들로 만원
10시35분 이치노코산장에 도착, 뒤쳐진 대원과 합류한 뒤 왼편 오야마(3003m 웅산 雄山)를 향해 오른다. 크고 작은 바위와 돌멩이 투성이 인데다 간혹 흙이 섞인 경사 심한 길을 남녀노소가 떼 지어 올라 길이 마치 시장통 처럼 복잡하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철저하게 내려오는 사람이 멈춰 서서 올라오는 사람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린다. 노란 조끼를 입고 배낭을 맨 초등학생들도 땀 흘리며 열심히 오른다. 길이 급경사이긴 하지만 쇠사다리나 쇠줄이 필요 없을 정도로 거칠지 않았다.
11시30분 오야마에 도착했다. 관광객과 등산객이 참 많다. 야리가다케-오쿠호다카다케 등산에는 일본인이 드물었는데 이곳 등산로는 일인들로 만원이라 대조가 된다. 웅산 고스락에는 규모가 큰 신사(神祠)가 있고 신사를 참배하려면 돈을 내야 한다. 해발3003m의 웅산까지 올라 온 일본인들은 젊은 남녀, 초등학생 등 남녀노소 모두가 참배하러 간다. 신사는 일본인들에게 일본인다운 정신적 강건함을 심어주는 천황중심사상이 바탕이 된 신성한 영역이다.
봉우리 바로 아래 이정표가 있고 이곳에서 왼편으로 나 있는 게 종주길이다. 종주길로 들어선다. 다테야마 연봉 중 제일 높은 산이 건너편에 버티고 있다. 여기서부터 길은 아주 조용하고 왕래하는 사람을 헤아릴 정도다. 11시50분 다테야마 연봉 중에서 제일 높은 해발 3015m의 오난지야마(대여산 大汝山)고스락을 올랐다. 일본 100대 명산이라고 안내판이 설명한다. 기념촬영을 한다. 날씨가 좋아 광대한 무로도 고원이 기막힌 녹색의 파로라마를 만든다. 무로도 산장에서 등산하지 못한 채 시간을 힘들게 보낼 회원 두 사람이 떠오른다.
3003m 봉우리에 있는 신사에 초등생도 돈내고 참배
오난지휴게소 앞쪽 언덕 같은 산을 넘어가자마자 점심을 먹었다.(식사 시간12:00-12:23) 오른편에는 작은 운동장만한 곳에 눈이 덮였다. 이곳에서 앉기도 하고 눕기도 하고 선채로 사진을 찍는다. 모델들인지 모델 흉내를 내는지 잘 판단이 되지 않는다. 오늘 점심도 주먹밥인데 한국의 삼각 김밥과 닮았다. 산행이 힘든 회원은 이곳에서 얼마가지 않아 무로도로 내려가는 길이 있으므로 중도하산해도 된다고 말했는데 아무도 중도포기는 하지 않겠다고 한다.
후지노오리다테(2999m)를 거쳐 능선을 가는데 무로도로 내려가는 길이 왼편에 있다. 흔히 한국에서 마사라고 하는 돌멩이 알갱이 길이 이어진다. 2861m의 마사고다케(眞砂岳)는 고스락을 가는 길과 그 아래 기슭을 바로 가는 지름길이 있다. 마사고다케를 지나면 한참을 내려가 고개에 이른다. 여기서 정면에 솟은 봉우리가 벳산인데 엄청 높게 솟았고 능선 길도 된비알이라 “아이고 죽었구나” 하고 혼자 말이 스스럼없이 나온다.
이 고개에서 왼편에 벳산 기슭 아래를 가로 질러 건너편 능선으로 오르는 지름길은 눈이 녹을 경우는 출입을 금한다는 안내판이 있다. 우리 팀 여성회원 둘은 거침없이 이 길을 간다. 나머지 19명은 벳산으로 오르는 급경사 능선을 오른다. 나무 하나 없는 돌산이라 햇볕이 쏟아져 내려와 온몸을 달구고 뜨거운 바람이 감싸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오늘까지 연 나흘간 산행을 한 탓인지 온몸이 무겁고 걸을 수록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옮기는 게 짜증스럽다. 푸른 산이 좋은 이유를, 나무 그늘이 얼마나 산꾼을 기분 좋게 하는가를 다시 한 번 가슴으로 느낀다.
벳산 고스락 바로 아래 햇볕이 마구 쏟아지는 길가 모래밭에 라이초(뇌조 雷鳥)한마리가 땅에다 몸을 딱 붙인채 열심히 입으로 바닥을 쫒고 있다. 사람이 가까이 가도 도망가지도 않은 채 그 모습 그대로 있다. 꼭 알이나 새끼를 품고 있는 것 같다. 벳산 정상 바로 아래 2850m는 될 것 같은 높은 곳에서 이 새는 사람이 가까이 가도 아랑곳 하지 않고 자기가 하는 행위에 몰두하는 현장은 생명의 집념, 위대함, 대단함을 그대로 증언한다. 뇌조는 높은 산에 사는 새이고 일본에서 천연기념물인데 다데야마 일대에 많이 서식해 우리가 묵을 산장이름도 라이초소(뇌조장 雷鳥莊)다.
2850m서 만난 뇌조 사람 가까이 가도 행위 계속
벳산(2874m 별산 別山) 정상에도 작은 신사가 있다.(13:40) 오른편에 더 높은 산이 있고 능선에 길이 있어 이 산이 벳산이 아닌가 하고 그 산도 가 보았다. 나중에 안내도를 확인하니 2880m의 기타미네(북봉 北峰)였다. 벳산에서 기타미네를 갔다 오는데 30분이 걸렸다.
오늘 산행 중 올라야 할 봉우리는 다 올랐다. 평평한 능선이 이어지고 앞에 낮은 봉우리를 오르자 산 기슭 지름길로 갔던 두 여성회원을 만났다. 이제 내려가는 길만 남았다. 저 아래편에 산장 지붕이 보인다. 선두는 벌써 산장 가까이 갔다.
오후2시35분 산장인 쯔루가곤젠고야(검어전소사 劍御前小舍)에 당도했다. 여기서 무로도로 가는 길은 두 곳인데 마당에서 바로 아래로 내려가 라이초사카(雷鳥坂) 능선을 거쳐 계곡을 지나 목적지로 간다. 산장에서 왼편 기슭을 가로 지르는 길은 다이니치다케 산과 이어진 능선을 가는데 계곡으로 가기보다 1km정도 둘러 간다.
전문가이드 없이 이곳까지 무사히 당도했다. 대장인 나는 앞에 보이는 쯔루가고젠(2776.6m 검어전 劍御前) 봉우리를 갔다 왼편으로 내려오면 무로도에 도착할 것이라며 더 산행을 원하는 대원은 갔다 와도 좋다고 제의했다. 대원6명이 검어전봉우리를 향해 출발을 한다. 하지만 완전한 개념도 하나 갖지 않는데다 보이는 봉우리와 지레 짐작 만으로 잘 걷기고 경험이 많은 대원들이지만 쉽게 등산을 하게 한 것은 무모한 것이다.
우리는 계곡 길을 가지 않고 기슭에 난 길을 택했다. 능선을 따라 내려오면서 확인하니 6명의 대원이 간 능선에서 왼편으로 내려 올 경우 무로도에 도착 할 수 없으며 왼편 골짜기가 너무나 험악해 길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잘 못 됐음을 알았다. 마음 속으로 6명의 대원들이 빨리 되돌아오기를 바랄뿐이다. 우리가 걷는 능선 길은 무로도 고원을 눈 아래 두고 빙 둘러갈 뿐 내려갈 생각을 않는다. 하산길도 계곡을 택해야 하는데 능선을 선택한 것은 너무 멀어 지친 대원들에게 미안했다.
전문 안내원 없이 등산 순조롭다 보니 뜻밖의 실수도
전문 안내원 없이 목적한 코스 등산을 잘 하답니 스스로 고무돼 건방이 넘쳤는가. 무로도 고원을 내려다보고 빙둘러 가던 능선이 왼편으로 크게 원을 그린다. 눈길도 나오고 습지도 있다. 길이 빨리 끝나지 않자 대원들의 얼굴은 피로와 불만이 진하게 묻었다. 산행속도가 크게 떨어진다. 쯔루가고젠으로 간 6명의 대원이 중도에서 포기하고 되돌아 와 우리들과 합류한다. 참 다행이다.
갈림길이다. 바로 가면 다이니찌다케이고 왼편 내려가는 길은 무로도 고원으로 간다. 무로도 고원 계곡 옆 야영장에는 오색 텐트가 평화롭다. 무로도 공원 가장자리의 개울을 건너 야영장에 들어섰다. 야영장 안내도에는 뇌조라는 단어가 들어간 산장이 3개나 된다. 대원들은 힘듦과 피로가 겹쳐 뇌조단어가 들어간 산장 중 가장 가까운 곳으로 간다.
나는 하지만 야영장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어 보이지도 않은 라이초소가 우리 숙소임을 믿고 혼자서 걷는다. 30분을 조금 더 걸렸을까 마침내 우리 숙소인 라이초소에 내가 제일 먼저 도착했다. 오후 4시15분이다. 9시47분에 산행을 시작했으니 6시간 28분 동안 걸었다. 먼저 와 쉬고 있던 대원 두명과 노사장이 마중을 나왔다.
버스를 타고 내려가고픈 마음 꿀떡 같지만…
이 산장에는 24시간 문을 열어놓은 온천이 있다. 온천에서 피로를 푼다. 목욕을 했지만 다리 근육이 피로로 굳어져 발걸음 떼놓기가 힘들 정도다. 엉금 엄금 걷는다. 오늘은 채 7시간을 걷지 않았는데도 몸은 천근만근이다.
저녁을 먹으며 내일 하산은 버스를 타는 것과 걸어서 가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고 했다. 버스는 한시간 정도 걸리고 차비 24,000원인데 본인부담, 걸어가는 길은 약20km거리에 8시간 이상 걸린다고 했더니 거의가 버스를 택했다. 내일 걸어서 하산하는 대원은 9명(남자7명 여자2명)이고 14명은 버스로 간다. 오늘밤은 술고래들도 조용히 보낼 것 같다.
나는 대단히 피곤해 버스를 타고 하산하고 싶지만 인솔대장이란 멍에 탓인지 누구도 함께 버스를 타고 가자고 하지 않는다. 내가 23명중 나이가 제일 많고 50대의 젊은 대원들도 버스를 타고 가는데 나에게 부여 된 실제상황이라고 생각, 마음을 다지고 다진다. 혹시나 다리 근육이 조금이라도 풀릴까 싶어 다음날 아침까지 온천을 4번이나 했다. 온천장에서 바라보는 지옥계곡의 풍광이 이채롭다. 온천 수증기가 땅에서 솟아나오고 유황이 땅을 노랗게 물들였다.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내일 일은 내일 부딪치자.
제6일(8월7일 금 맑음)
날씨가 좋다. 약간 뒤뚱거리며 배낭을 메고 산장 앞 도로에 섰다. 어제 우리가 내려온 삼거리에서 맞은편 높은 산이 이어진 능선이 하산 길. 우리 9명을 환송하기 위해 회원들이 거의 다 나왔다. 오늘은 가이드인 노사장이 우리회원 9명과 함께 산행을 한다. 아침 7시 우리는 다시 마지막 산행에 나선다. 우리를 보내는 회원들의 얼굴에는 부러움보다 걱정과 안쓰러움이 짙게 배었다.
우리를 보내는 대원들의 얼굴엔 부러움보다 안쓰러움이
야영장을 지나 개울을 건너고 어제 무로도로 내려왔던 얼음판 옆 삼거리에서 우리는 왼편 즉 어제의 반대편 능선을 간다. 길도 날씨도 좋다. 나는 온몸이 뻐근하지만 예상보다는 걸을 만하다. 오늘 산행하는 대원들은 나름대로 자신이 있어 참여했으므로 속도가 대단하다. 높고 낮은 봉우리를 여러 개 넘는다.
2000m가 넘는 산인데도 풀이 지천으로 자라고 가끔 숲이 진한 그늘도 만든다. 일본인 등산객을 많이 만났는데 거의가 60세 이상으로 여겨진다. 왼편은 우리가 하룻밤을 묵었던 무로도 고원을 손바닥 보듯 내려다보며 걸었다. 오른쪽은 북알프스에서 거친 산세로 야리가다케에 절대 뒤지지 않는 쯔루기다케(2999m 검악 劍岳)가 모습을 서서히 드러낸다. 온통 바위산이 다르긴 하지만 설악의 한 봉우리를 옮겨 놓은 것 같다. 부산에 있는 북알프스를 8번 산행한 7순의 산꾼은 꼭 쯔루기다케를 올랐다 오라고 신신 당부를 했는데 그 산 모습을 멀리서 보고 만다. 나하고 쯔루기다케와는 인연이 없는 모양이다.
이 길 바로 옆의 얼음판에서 쯔루기다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봉우리를 돌아 오르자 저쪽 건너편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 고개에 산장이 엎드린 듯 있다. 산장만 보여도 한결 몸이 부드러워 진다.
9시7분 오쿠다이니치다케(2606m 오대일악 奧大日岳)에 올랐다. 오쿠는 구석 또는 속이라는 뜻이 있으므로 우리말로는 내대일악이다. 일본인들이 8명가량 있다. 우리를 유심히 살피드니 한국 사람이냐고 물으며 인사를 한다. 일본인 특유의 친절이 물씬하다.
오쿠다이니치다케에서 나까다이니찌다케(2500m 중대일악 中大日岳)까지는 크게 한번 내려갔다가 다시 오른다. 걷기 편한 흙길도 있다. 지금까지 걸어 온 길과는 달리 급경사 내리막이 잦고 사다리와 쇠줄이 있다. 하지만 오쿠호다카다케 능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이 길은 점잖다.
산길을 보수하는 현장을 지나게 됐는데 보수하는 사람이 없고 놓여 있는 장비는 곡괭이 삽 망치뿐이다. 이런 일차원적 장비로 산길을 보수하는 서방 제2경제대국 일본을 생각한다. 자연을 우선하고 자연 중심이기 때문에 산길이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만 하는 것일까.
산길 보수 현장에는 곡괭이 삽 망치 보여
나까다이니찌다케를 오르는 길도 힘든다. 나는 9명 중 7번째 인데 다리는 말할 것도 없고 몸까지 천근이다. 급경사에다 바위 오름길이 많아 기진맥진한다. 선두와는 30분 이상 떨어진 것 같다. 쯔루기다케는 창공에 치솟아 장엄함과 사나움이 함께 빚는 절묘한 기상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무로도 고원은 이제 잘 볼 수 없고 거기서 내려온 계곡 이곳저곳에 하얀 이불을 펼치듯 눈 얼음판이 자리 잡았다.
10시30분 다이니찌고야(해발2400m추정 대일소옥 大日小屋)에 당도했다. 산장 앞에 솟은 다이니찌다케(2501m 대일산 大日山)는 등산객이 잘 오르지 않는 산이다. 산장에 들어가기 전 수통 물을 양껏 마신다. 이 산장에서 점심을 먹기로 돼 있다. 오늘 점심은 주먹밥이 아닌 2000m가 넘는 산장에서 해 주는 카레라이스다. 지금까지 산행 중에는 언제나 주먹밥이었는데 오늘 점심을 이와 달라선지 맛도 유별나고 분위기도 입맛을 돋운다.
이 산장도 물이 귀한 듯 우리가 녹차를 보온통으로 3통인가 4통을 먹은 뒤 더 달라고 했더니 끓여놓은 차가 없단다. 산장 안의 식당에서 물을 얼마든지 마실 수 있지만 수통에 물을 넣을 경우엔 돈을 내야한다. 노사장이 산장에서 30분만 내려가면 계곡물이 있으니 굳이 사지 말라고 한다.
산장에서 부터 보격적인 내리막길. 11시 하산을 시작한다. 나무와 풀이 적당히 섞였고 숲도 많아 숲 터널로 갈 때도 적지 않다. 좁은 산길인데다 습기에 젖은 돌이 많아 미끄러웠다. 길은 뚜렷하지만 군데군데 보수가 필요한 곳도 있는데 일본은 이 정도는 그냥 두는 것 같다. 나는 특히 내리막에 약하다. 내가 제일 뒤로 쳐졌다.
갈증이 심할 때 마시는 물은 물맛이 아니고 꿀맛이다. 개울물이 굉장히 차다.(11시39분) 이 물을 거침없이 4컵이나 마셨다. 점심 양이 조금 적었는데 배가 불룩 일어난다. 다시 좁은 산길을 내려가고 숲은 더욱 짙어지고 돌길은 습기가 대단해 상당히 미끄럽다. 저 아래편에 분지가 넓게 펼쳐지고 산장도 보인다.
오늘 우리는 해발 2400-2500m의 무로도 고원을 출발해 다이니찌연봉을 지난 뒤 1800m안팎의 다이니치다이라(대일평 大日平)로 내려간다. 다이라(平)는 평원이나 분지를 가리키는 말. 여기를 통과해 다시 급경사 내림길을 거쳐 해발1000m 안팎의 소묘타기(칭명룡 稱命룡)입구 도로에 도착해야 오늘 산행이 끝난다. 일본은 폭포를 룡(용룡자에 앞에 삼수변이 붙음. 우리나라는이 한자를 쓰지않음)로 많이 표기한다. 오늘 무로도 고원에서 다이니찌 다이라까지 600-700m 떨어진 뒤 다시 다이니찌다이라에서 소묘타기까지 다시 800m안팎을 내려간다.
고원 무성한 풀밭 가르는 널판자 길을 한 시간 이상 걸어
다이니치다이라로 내려오자 대일평(大日平)과 대일산(大日山)을 가리키는 한자 이정표가 있다. 대일고원은 습지를 겸한 풀밭이 아득하게 펼쳐진다. 물론 고원에는 개울물이 흐르고 습지가 많다. 전혀 경사도가 없는 풀 사이로 난 산길은 맨땅이 아니고 온통 판자로 이어졌다. 판자는 폭이 50cm 정도에 두께도 70-80cm정도로 비켜가려면 한사람이 멈춰야 할 정도다. 이 판자길은 비가 많이 오면 그대로 떠 다니거나 흘러가버리겠다.
판자 길은 긴 판자를 이은 게 아니고 작은 판자를 잇대어 붙였다. 이 위에다 한발자국 간격으로 다시 같은 크기에다 붉은 벽돌 폭의 작은 판자를 붙여 오목 볼록하게 만들어 미끄럽지 않게 해 놓았다. 이 판자 길은 습지를 보호하고 흙탕길이 아니므로 사람들도 걷기 편하다. 이 길 중간 중간에 쉴 수 있게 판자 길 옆에다 작은 방 크기의 판자로 된 터를 만들고 긴 의자도 놓아두었다. 12시15분 고원의 한 가운데 쯤에 자리한 해발 1,800m의 다이니찌다이라산소(대일평산장 大日平山莊)에 도착했다. 산장에는 주인이 없는 지 아무도 얼굴을 내밀지 않았고 지나가는 일본인 산꾼 둘과 우리들 일행 10명이 쉰다. 긴 의자도 있고 이정표도 있다. 30분정도를 쉰 뒤 다시 산행을 시작한다.
이곳이 해발 1800m라면 해발800-1000m 안팎은 내려가야 하므로 쉽지 않을 것이란 예감이 든다. 풀밭 사이 판자 길을 50분 정도 걸었을까 이 길이 끝난다. 갑자기 경사가 급한 내리막에다 돌길이다. 쇠줄이나 사다리가 다시 나타난다. 우리는 양쪽이 계곡을 이룬 능선을 간다.
코가 무릎에 닿은 정도의 거의 수직인 내리막을 걷는다. 이런 내리막이 잦다. 어디선가 폭포 소리가 들린다. 우리는 산줄기에서 벗어나 기슭을 빙 돌면서 내려가기에 편할 것 같았는데 실제는 급경사가 많아 무척이나 힘들었다. 산모롱이 고개에 닿으니 저 아래에 도로가 보이고 건너편 산이 이제 갓 풀 먹인 삼베옷같이 빳빳하게 치솟아 하늘을 가린다.
해발 2450m에서 1000m까지 내려가는 것 쉽지 않아
쉽게 내려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내려가다 오른쪽으로 꺾여 모롱이를 돈 뒤 바로 내려가고 다시 오른쪽으로 꺾기를 두어 서너 번 하면서 일부러 도로를 피하는 듯 산길은 에둘러 가면서도 좀처럼 도로로 들어가지 않는다. 진짜 오금이 저리고 발바닥이 아프고 짜증도 난다. 내려가도 내려가도 끝없는 길 같다. 그러나 끝없는 인생도 없듯이 길도 끝이 있기 마련이다. 오후 2시15분 마침내 소우모우타기 입구 도로에 도착했다. 12시47분 다이니찌다이라산장을 출발해 1시간28분만에 평평한 판자길과 지긋 지긋한 급경사 내리막을 다 내려와 도로에 섰다. 아침 7시에 출발 했으니 7시간15분간 걸었다.
짧게는 1박2일, 크게는 4박5일, 더 크게는 일본 북알스프 산행이 막을 내린다. 야라가다케-오쿠호다까다케 산줄기 타기 3일은 말할 것도 없고 다데야마 연봉 등산과 다이니찌 연봉 하산 길에서의 이틀 산행은 참 힘들었지만 결국 오늘 산행 마감지점에 도착했다.
악몽에서 깨어난 안도감과 결국 해 내고 말았다는 자신감이 함께 손끝과 발바닥에서부터 번져 올라온다. 우리 9명은 끌어안기도 하고 악수도 한다. 지긋 지긋한 등산이 끝났음을 알리듯 온 얼굴에 미소가 도배를 했다. 나는 다시 한 번 기분 좋은 허탈과 무사히 목표를 이룬 짜릿한 기쁨에 묻힌다. 하늘이, 산이 너무 아름답다.
우리가 있는 도로에서 안쪽으로 폭포가 약간 보인다. 도로는 폭포 앞에서 끝난다. 폭포를 구경한 사람들이 우리가 있는 도로로 내려온다. 이리로 오는 관광객 중에 멀리서 보아도 낯익은 일행이 있다. 우리가 함께 구입한 북알프스 등산 기념 셔츠를 입은 사람도 보인다. 우리를 보고 손을 흔든다. 버스로 하산한 우리 팀 회원들이 폭포를 보고 우연이겠지만 우리들의 하산 시간에 맞춰 내려오고 있다. 우리는 만났다. 부둥켜 앉거나 악수를 하고 웃음을 나눈다. 몇 달이나 헤어졌던 사람들처럼 그렇게. 그리고 기분 좋은 산행 끝내기를 한다.
기분 좋은 허탈과 짜릿한 삼각파도에 묻히고
폭포를 구경한 일행들이 배낭을 여기에 벗어놓고 폭포를 보고 오라고 야단이다. 폭포로 갈 때 그렇게 무겁던 다리가 크게 무겁지 않다. 일본에서 제일의 낙차를 자랑하는 350m의 소묘다키(칭명폭포)는 장관 중의 장관이다. 4단으로 이뤄진 물줄기가 땅을 흔들고 물보라를 안개처럼 뿜어 댄다. 일본 명승지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내리꽂히는 물결이 토하는 웅장한 오케스트라에서, 온 몸을 휘감는 비말(飛沫)에서 나는 비로소 내 몸이 풋풋하게 살아나고 있음을, 일본 북 알프스의 또 다른 세계를 실감한다.
땅으로 걸어 들어와 땅으로 걸어 나간 5일 동안의 산행은 상상할 수 없었던 지긋지긋하면서도 힘든, 그러면서도 찬란한 긍지를 접목한 아름다운 산 세계를 열어주었다. 처음으로 만난 일본의 산들은 우리나라 산과는 너무 다른 맛과 멋을 보여준다.
어느 나라 산이 더 좋고 더 빼어나다 식의 일상적 비교가 아닌 산이라는 생각만 해도 전에 없이 온 몸을 엄습하는 짜릿한 기학학적인 기쁨. 그 속에 녹아있는 여유와 부드러움이 나를 새삼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고 한밤중의 미로 같은 신비의 세상으로 빠져들게 한다. 산은 내 영원한 그리움으로, 즐거움으로 더 굳게 나를 감싼다.
이 글 여기저기에서도 이미 언급했지만 다시 한 번 일본 산을 정리해 본다. 일본의 산은 특히 내가 걸었던 북 알프스 산은 우선 거하고 대단히 높다. 우리가 하룻밤을 묵은 해발 2450m의 무로도에서는 2000m아래 산은 명함조차 내밀지 못한다. 한국 같으며 높이로는 지리산도, 한라산도 여기에 낄 수 없다. 야리가다케와 마에호다카다케를 잇는 이름 있는 붕우리는 전부 3000
m가 넘었고 다데야마 연봉도 2800m 이상이었다.
둘째로는 거대한 돌산과 돌 능선이 몇 시간 씩 이어진다. 산줄기 좌우가 가슴 철렁한 천 길 낭떠러지도 많았다. 높은 봉우리도 마치 빳빳하게 서 있는 것 같아 사다리나 쇠줄을 잡고 올라도 고개를 밑으로도 위로도 할 수 없어 덜컥 겁이 나는 곳이 적잖았다. 특히 야리가다케-오쿠호다카다케-마에호다카다케-다케사와를 잇는 능선은 무척이나 거친 바위 투성이 이다.
태초 이래 지금까지 대륙에서 불어 내려온 바람이 현해탄과 동해를 건너와 기세 좋게 일본 북알프스로 달려오고 대평양을 휩쓸며 기세를 올린 바람은 일본 열도에 상륙해 대륙으로 가려고 북알프스를 향해 치닫는다. 이 두 바람이 북알프스 능선에서 어마어마하게 부딪쳐 산을 깎아 내리고 바위를 부숴낸다. 이런 자연의 통폐합과 회오리가 일본 북알프스에서 날마다 계속돼 시퍼런 칼날 능선과 창 끝 보다 예리한 봉우리의 험한 세상을 창조했다.
칼날 같은 능선 창 끝 같은 봉우리 닮은 일본인 성격
어마어마한 산세는 두려움 그 자체라 우러러 보지 않을 수 없다. 높은 산에다 작은 산신각을 만들어 놓고 산을 경배 하지 않을 수 없지 않았을까. 한국의 산은 대부분이 반달을 엎어 놓은 것처럼 유순해 위압이나 험난함 보다는 친구 같은, 놀이터 같은 친근감과 화목이 물씬하다. 일본 주택의 지붕이 곧추세운 삼각형처럼 경사도가 심하고 한국의 지붕은 부드러운 반원 모양임도 산의 영향이 아니겠는가. 일본인들은 같을 획 빼내 사정없이 휘두르고 할복도 서슴지 않는 불같은 성품도 이런 산을 닮은 탓은 아닌가.
우리가 걸었던 등산길은 안내판이나 이정표가 많지 않았고 그것도 너무나 간단했다. 이 이유를 가이드에게 물었더니 일본인들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자신이 지고 또 자신 없는 등산을 절대 하지 않는다. 특히 위험한 코스에 대한 판단도 자신이 해야 한다. 특히 법을 지키는 데 언제나 앞장서고 또 준법이 몸에 뱄기 때문에 ‘금지’라는 단어 하나에도 이를 절대적으로 지킨다. 우리가 보기엔 이정표가 빈약해 보이지만 일본인들은 이것조차 아주 고맙게 여긴다고 한다. 또 바윗길이 헷갈리는 곳은 하얀 페인트로 길은 동그라미표, 길 아닌 곳은 가위표를 해놓았는데 눈이 와서 덮이면 어떻게 할까.
자연 보호는 폭넓고 철저하게, 사람 보호는 최소한만
쇠사다리는 폭이 좁고 또 마치 바위에 기대놓은 것 같았고 쇠줄도 투박하게 이를데 없다. 개울이 그리 넓지 않으면 밑 둥을 자른 나무 두어개를 묶어 걸쳐 놓았고 작은 개울에도 나무판자나 자른 나무를 묶어서 걸쳤다. 이런 시설물은 눈사태나 홍수, 태풍이 들이닥칠 경우 자연스레 휩쓸려가게 해 놓은 것 같다. 눈사태 등으로 반쯤 부서진 채 남아있는 꼴불견 흔적조차 아예 없애기 위한 조치인가. 자연 보호는 철저하면서도 폭넓게 하고 사람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꼭 필요한 배려만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은 자신이 져야한다는 원칙 위에서 모든 게 이뤄지고 있었다.
일본인들은 등산을 할 경우 대부분 내려오는 사람이 멈춰 서서 올라오는 사람이 지나갈 때 갈 때 기다리고 있었고 먼저 본 사람이 상대방이 지날 때까지 기다리기도 했다. 산길은 사람의 흔적이 전혀 없을 정도로 깨끗했다. 산에서 만난 원숭이나 뇌조는 사람이 가까이 가도 크게 두려워하지 않았다. 사람이 동물을 보호하고 있음을 동물들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었다. 무로도 라이초산장 복도에는 단체로 산행 온 학생들이 가지고 온 갖가지 색깔의 수통이 판위에 가득하다. 위 판위의 수통이 줄을 세우지 않아도 참 잘 어울린다. 갖가지 모습의 사람들이 갖가지 색깔을 가지고 자연스럽게 어울리면서 열심히 살아 가는 게 민주사회가 아닐까. 야리가타케 고스락에서 본 초등학생과 여기 2450m 고지대를 단체로 산행 온 학생들을 통해 건강한 일본의 미래를 본다.
소메이다리라(소우묘우다키)터미널에서 버스를 탔다. 모두가 자긍심 한마당이다. 오늘 저녁은 일본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아무래도 오늘 저녁은 북알프스 산행에 대한 축배를 들어야겠다고 말했더니 우리 팀 고래들이 갑자기 움직임이 빨라진다. 다테야마산장에서 저녁을 먹은 뒤 가진 자축연에서 우리는 술잔을 높이 들어 ‘우리들의 만남 영원하리’ ‘우리들의 사랑 영원하리’ ‘우리들의 등산 영원하리’를 함께 다짐한다. 참 멋진 일본 북알프스 6박7일 등산 마지막 밤이다.
우리 팀 고래들은 밤10시가 넘어서도 크게 떠들다 집에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쫓겨났다. 이들은 불 꺼진 하꾸바마을을 돌아다니다 역시 불 꺼진 역광장에서 새벽4시30분까지 등산 기쁨을 나눴다. 이들 목소리가 제법 컸던지 우리가 묵는 다테야마 산장에서 근무하는 일본 여직원은 한국 사람은 그렇게 등산을 하고도 무슨 힘이 있어 새벽까지 자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느냐고 노사장에게 묻더란다. 외국에선 한 밤에 노래하거나 심하게 떠들면 신고를 하는데 여기는 시골인데다 일본이든 한국이든 시골 사람은 인심이 좋은 것임에 틀림없다.
우리 술고래들은 불 꺼진 하꾸바 역 광장서 새벽 맞아
우리는 8월3일(일요일)은 가미고지터미널에서 야리가다케를 오른 후 야리가다케산장까지 9시간25분, 4일 야리가다케산장에서 호다카다케산장까지 10시간15분, 5일 호다카다테산장에서 가미고지터미널까지 7시간40분, 6일 무로도터미널에서 다테야마연봉을 거쳐 라이초산장까지 6시간28분, 7일 라이쵸산장에서 다이니치연봉-다이이치다이라-소우묘우타키까지 7시간15분이 걸렸다. 우리는 5일동안 41시간3분동안 산행을 했고 하루에 평균 8시간12분을 걸은 셈이다. 무로도에서 왕복 7시간 거리에 있는 쯔루기다케(검악 劍岳)를 오르지 못한 게 밥 잘 먹고 물을 마시지 못해 상큼하지 않는 뒷맛 같은 여운을 만든다.
일본은 한국과는 다르게 사고가 났을 경우 119를 통해 헬기를 띠우면 우리돈으로 1천만원 정도 부담을 해야 한다. 개인이 판단 잘 못해 일어나는 사고에 정부가 책임을 질 수 없다는 원칙이 약간 얄밉고 한편 이것을 잘 지키는 국민은 더욱 돋뵌다. 그래 자기 행위는 언제나 자기책임이다.
북알프스 등 일본국립공원은 눈이 많이 오는 겨울에도 출입이 가능하다. 단지 그 출입 후 생기는 생명의 위험까지도 본인이 책임져야 한단다. 규제가 없고 언제나 개방돼 있지만 사실상 규제는 이곳을 출입하는 사람이 스스로 해야 한다니 참 의미심장하다. 하기야 계곡의 그 맑고 시원한 물 옆에 앉아 신을 벗고 있으면서도 발을 담그지 않은 채 망중한의 즐거움에 빠진 일본인들을 바라보며 다시 한 번 의미심장함에 가슴이 부르르 떨린다. 우리 회원 중 누군가 말했지만 정말 이러다가 우리는 절대 일본을 이길 수 없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생긴다.
제7일(8월8일 금 맑음)
8일 아침 나고야로 떠나는 버스 속에서 우리들 자랑스런 고래들은 그래도 무슨 힘이 남아 있는지 여전히 즐거운 표정이다. 하꾸바와 다테야마 산장이 멀어지듯이 일본 북알프스 등산도 시간의 강물을 따라 점차 멀어져 갈 것이다. 그러나 이 뿌듯한 현재를 우리는 영원히 망각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23명의 만남, 우정, 등산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있을 것이다.
하꾸바에서 버슬를 타고 나고야로 나와 잠시 등산장비점에 들렀다. 나고야 국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부산으로 향했다. 비행기 이륙시간은 오후5시.
우리는 하늘 길을 따라 바다를 건너 부산에 왔다. 부산 날씨는 무척이나 좋았다. 우리는 짧은 만남, 긴 이별을 하면서도 이별은 만남을 위해 있는 것이라고 굳게 굳게 다짐한다.
<등산 사진을 첨부합니다. 사진 많이 서툴고 빈곤합니다.>
첫댓글 정말 대단하십니다..자랑스럽기도 하고 또한 부럽습니다.글 속에서 혼자 헤메고 다니고 있습니다...다시금 이곳에 와 머물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