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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쟁이 고개 <박관수>
진례는 쌀농사가 중심인 전형적인 한국의 농촌이다.
언제 이 진례가 시작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학자들이 연구를 하고 있지만 아직은 종가의 어른들의 이야기를 비교 없이 말하고 있는 수준이어서 어느 설이 맞다고 말하기는 이르다.
담양을 시작으로 나주를 거쳐 흘러 내려오는 영산강은 진례를 휘돌아 목포로 흐른다.
목포에서 올라오는 배가 영산포까지 다녔다.
고막강은 고막원에서 강진을 지나 화지를 돌아서 청림 앞 들판을 지나 송도리에서 영산강의 본류와 합해졌다. 합해지는 곳은 이별바위라는 곳이 있고 지금은 황포돛대 배가 진수되고 있다.
거기에는 영산강 3경이라는 곳이고 작은 정자가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진례의 들은 비가 올 때 모든 비가 모여 영산강으로 흘러 들어가게 하는 조그만 내가 많았는데 이 내에는 보가 있어서 내려가는 물을 가두어 두어 농수로 쓰기도 하고 영산강에서 올라오는 간기 있는 물을 막기도 하였다. 그런 냇가에는 갈대가 자라고 있었는데 갈대가 자라고 있는 내는 갯벌로 이루어져 물가 생물이 많았다.
메기와 장어도 많이 잡을 수 있고 특히 민물과 바닷물을 오가는 참게가 많아 게잡이가 유명하였다.
캄캄한 들판에 게를 잡기 위해 횟불을 들고 가는데 그 불빛이 멀리서 보면 깜박깜박 아름다워 진례11경의 한가지이니 이를 모르면 예부터 살아오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다.
게잡는 불빛이 가을 강위에
만점의 별같이 떨어져 오더라.
물가에 바람이 스스로 움직이니
뙤기뙤기 어지러이 나는 반딧불 같더라.
진례11경중 영산강의 게잡는 불빛
진례 사람들은 새벽부터 일터로 찾아 나가기 때문에 노는 사람이라고는 없다.
보리가 자라서 보리타작할 시기가 되면 보리타작과 밀타작으로 바쁘고 모내기가 시작된다.
온 논이 파랗게 갈아입으면 김매기가 시작되고 우리는 논에서 피를 뽑으면서 팔과 얼굴에 벼잎파리의 가장자리에 스쳐 상처들이 생기곤 하였다.
어른들은 힘줄이 굵게 솟아오른 팔에 이리저리 볏잎에 긁혀있어 훨씬 씩씩해 보였다.
벼를 모두 거두어 들인 뒤에는 밤에 깃불을 만들어 게를 잡으러 간다.
가을에 통통한 게들이 벼를 꺾어다가 게굴에 감추어 놓는다.
우리는 이삭을 주어오라면 게굴을 더듬어 다른 사람보다도 훨씬 많은 이삭을 주어가지고 오곤 하였다.
하나의 게굴을 만나면 거의 한 됫박이 되는 이삭을 쉽게 얻을 수 있고 게도 잡아서 일거양득이 되었다.
밤에 들판 속에 있는 냇가에는 갈대가 많이 자라고 있었고 게들이 갈대를 오르내리는 “샤르륵 샤르륵‘ 소리가 밤길을 가는 사람들을 무섭게 만들었다.
게를 잡다가 잘못하여 미끄러지게 되면 개울물로 들어가게 되는데 뻘이 깊어 혼자서 나오기가 매우 힘들었다. 게를 잡으러 갈 때면 위험하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같이 가게 된다.
광주댁은 그날도 일찍 저녁밥을 지어먹고 낮에 만들어 놓은 깃불을 들고 게잡이를 나간다.
깃불은 대나무를 쪼개어 산에서 줏어다 놓은 감솔을 끼워 만든다. 때론 작은 병에 석유를 넣고 입구를 솜으로 막아 만들어 횟불을 만들기도 한다.
게를 잡는 일을 직접하지는 못해도 야무지게 치장하고 큰동서를 따라 나섰다. 양철로 만든 양동이를 들고 동서의 뒤에 서서 조심스러이 갔다.
게를 잡는 법에 익숙치 못하기 때문에 직접 게는 잡지 않았다.
참게가 가진 두개의 하얀 집게발이 무서웠고 갯벌 속에 들어간다는 것도 어려웠다.
큰 게에게 물리면 손가락이 짤린다는 속설이 있기도 하기 때문에 잡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긴장한 마음이지만 소풍가는 마음으로 가볍게 따라 나섰다.
자기보다 3년 먼저 결혼한 동서는 이미 시골 생활에 길들어 있어 모든 것을 잘하였다.
기어가는 게도 손으로 누른 다음 엄지를 게의 배에 대고 검지를 등에 대어 집게 형태로 잡는데 게의 쭉발이 손에 닿지 않아 물리지 않고 잘 잡았다.
도시에서 시집을 왔다는 자부심이 대단한 광주댁은 그 아버지가 한의사였다는 것 때문에 콧대가 높았다.
게를 잡는 것은 이런 시골 사람이나 잡는 것이지 자기는 그런걸 배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형님이 되는 동서도 작은 동서가 잘 하지 못함을 알고 있었고 잘못하다가 손이라도 물린다든지 아니면 개펄에 빠지게 되면 게 잡는 일보다도 사람을 구하는 일을 할 판이라 양동이만 들고 따라 다니라고 말하였다.
여기저기 깃불이 장관이었다.
마치 밤하늘의 별들이 들판으로 내려온듯 하였다.
모두 소리를 죽이고 기어가는 게를 노려 잡는다.
사람이 다가가면 ‘솨아’ 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이는 게들이 갈대에 올라와 있다가 아래로 내려가는 소리이다. 게들이 연출하는 자연의 교향곡이다.
가능하면 조용히 걸어야 게를 잡을 수 있어 사람의 발자국 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또 서로 이야기도 하지 않은 채 다가가야 해서 서로의 소통도 할 수가 없었다.
같이 간 사람은 서로가 자기네들의 사인을 만들어 깃불로 알리는 방법 외에는 없었다.
사람이 숙이게 되면 깃불이 보이지 않고 사람이 허리를 펴면 깃불이 보였다.
같이 간 사람이 누구인지 잘 알 수가 없었다.
광주댁도 열심히 동서의 깃불을 쫓아 다녔다.
동서가 가지고 있는 작은 양동이에 게가 몇 마리 잡히면 작은 동서 광주댁을 불러 양동이에 게를 건네주고 다시 갯가로 내려가 갈대밭을 헤치면서 게를 잡았다.
보통 한 10분쯤마다 동서가 자기를 부르고 자기가 찾아가고, 또 부르면 찾아가고 하여 시간이 가는줄 몰랐다. 그렇게 많던 깃불이 하나 둘씩 없어 지더니 들판에는 가끔 들리는 하늘의 새 소리만 들릴 뿐 주위가 적적하였다. 그렇게 많던 깃불도 별로 보이지 않고 찬바람이 불어오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양동이에서는 그동안 잡은 게가 제법 무게를 주었고 자꾸 빠져 나오려고 양동이를 타고 오르다가 떨어지곤 하는 소리만이 귀를 때렸다.
뒤를 돌아보니 원석정 마을의 불빛이 어두운 산그림자 밑에 옹기종기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 아름다웠다.
멀리 속금산의 모양이 마치 자기가 이 진례라는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이라는듯 목을 세우고 양팔을 벌여 끌어 안고 있는 위용을 보이고 있었고 그 산 아래의 속금산 마을의 불빛은 너무 멀어서 가물가물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정겨운 이야기들이 따사로운 이불 아래 행복할 것이라고 느낄 수 있었다.
앞쪽을 바라보니 영산강 건너 금을 캐는 금광 지역에는 엄청나게 밝은 불빛이 나고 있었다.
그러나 너무 멀어 광주댁의 갈 길을 밝혀주는데는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 쪽은 나주에 소속되는 동네이고 전기가 들어오는 곳이다.
저녁에 조용해지면 밤늦도록 일을 하는지 기계음 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건너편 청림 마을도 조용히 잠들어 있는 듯 괴괴하여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광주댁은 아름답고 고즈넉한 시골의 밤 풍경에 취해있다가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큰동서를 찾았다.
형님! 형님! 주변에 있어야할 깃불이 보이지 않았다.
앞을 바라보니 저만치 하류에 깃불이 몇 개 보였다.
울퉁불퉁한 길을 빠른 걸음으로 찾아가 보았다.
거기에도 동서는 없었다.
여기가 어디쯤일까? 급해지니까 방향감각이 없어졌다.
“아니 금새 저기까지 갔나?”
서른 마리정도가 들어있는 양동이를 들고 동서를 부르며 하류로 갔다.
거기에는 보가 있어 내의 건너로 옮겨갈 수가 있었다.
다른 깃불은 보이지 않고 동서 것으로 보이는 깃불 하나가 그 보를 건너가고 있었다.
“형님! 형님!”
급하게 부르면서 깃불을 향해 쫓아갔다.
그 깃불은 이상하리 만큼 빠른 속도로 움직여 갔다.
형님이라는 소리를 들었으면 멈출 수도 있으련만 자꾸만 멀어져 가는 깃불에 당황하였다.
그 길은 마을에서 멀어지는 느낌이 들었고 익숙한 길이 아니었다.
순간 등어리에서 식은 땀이 몸 전체로 흘러갔다. 갑자기 깃불이 사라졌다.
두리번거리면서 보니까 왼쪽 앞쪽엔 커다란 산이 어둠 속에서 까만 모습으로 위협하고 있었고 앞쪽에도 고개 하나와 산이 큰 그림자로 다가서고 있었다.
무서웠다. 여기가 도대체 어디란 말인가?
귀신에게 홀리고 있는갑다라고 생각하니 더 정신이 없었다.
찬찬히 정신을 차리려고 애쓰는 중에 불빛 하나가 보였다.
무조건 불빛을 향해 뛰었다. 그리고 문을 두드렸다.
“여보시오. 여보시오. 사람 좀 살려주소.”
시골집의 창호지로 붙여 만든 문이 열리며서
“누구신디 이 밤중에 여기를 와서 사람을 살리라고 하요?”
“석정리에 사는 지꿀떡네 둘째 며느린디라우. 게잡으러 왔다가 길을 잃었어라우.”
“아니 석정리 사람이 왜 여기까지 오셨어라우?”
주인이 퍼주는 사발로 물을 한잔 마신 광주댁은 옷이 흐트러진지도 발이 상해서 아픈줄도 모르고 겁을 잔뜩 먹은 표정으로 물었다.
“그나저나 여기가 어디라우?”
“여기는 성문쟁이 고개여라우. 우리는 그 고개에 사는 젓장사고라우.”
“아, 그러요. 워메 우리집하고는 너무 멀어져 부렀네. 우리 형님은 여기 오시지 안으셨지라우?”
“형님이 누군디라우?”
“지꿀떡네 큰 며느리라우.”
“지금 혼자서 오지 않았어라우? 또 누가 있단 말이어라우?”
“예, 우리 형님이랑 마을 사람들이랑 송도리로 게잡으러 왔다가 깃불이 하나 이쪽으로 오길레 형님 깃불인줄 알고 따라왔는디 깃불도 없어지고 나만 여기에 혼자서 있게 되었어라우.”
내외간에 서로 처다보며 의아한 눈으로 밖으로 나와 여러 군데를 살피더니
“아무도 없는데 왜 그랬을까? 그나저나 들어오쇼. 무엇인가 이상한 일이 생긴 것 같소.”
걸래로 발을 닦고 방으로 들어와 깔려 있는 이불 속에 발을 넣고 비로소 자기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머리는 풀어 헤쳐지고 옷은 땀인지 풀에 젖은 밤이슬인지 잔뜩 젖어서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감사허요. 무엇에 씌었는가 보지랄. 아따 나는 살았는디 형님은 어딜갔을 거라우?”
“송도리 쪽에는 아직도 깃불이 있는디.”
“어쭈구 갈까? 무서와서.”
“그래도 가봐야지라우. 갈라요.”
“무서워서 가다가 죽겄는디. 우리가 좀 데려다 줄 꺼라우? 아니면 여그서 자고 내일 가든지.”
“안되라우. 아무리 죽어도 오늘 가야되라우. 나 갈라요.”
광주댁은 분연히 일어섰다.
형님이 자기를 애타게 찾을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만약 자고 오면, 아우가 없다고 여자가 혼자서 다른 곳에서 자고 다닌다고 시아주버지가 의심을 할 것 같아서였다. 광주댁의 남편은 군인이었다.
군대에 있는 남편을 기다리면서 큰 집과 가까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시아주버지의 눈길을 느끼면서 살고 있었고 형님과는 서로의 애환을 달래며 벗처럼 살고 있었다.
시아버지는 동네 훈장으로 술을 말로 드시고 시 한수 읊으시면서 동네 어귀에서 작은 며느리를 소리 높혀 불러서 거의 엎히다시피 부축을 받으며 집으로 가곤하였다.
언젠가는 그런 시아버지가 미워서 도랑을 건널 때 시아버지를 도랑에 빠뜨리기도 했다고 웃으면서 말하기고 하였다.
그건 시아버지가 자기를 대단히 귀여워한다고 나름 자랑하는 소리였다.
석정리의 처자들은 이 도시에서 온 깜찍한 새댁을 매우 좋아했다.
이야기도 새롭지만 시집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고 천방지축으로 흉을 보고 있는 이야기가 통쾌하기도 하였고, 그렇게 흉을 봐도 되는 건지 불안하고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기도 하였다.
남녀 칠세 부동석인데 온 동네 총각들이 모두 시동생이었다.
시골에는 말도 빨리 퍼졌다.
지꿀떡네 새로 시집온 둘째 며누리가 명물이 들어왔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남자들하고 같이 어울려 놀기도 하고 술도 먹을 줄 알며 시집 욕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천방지축 며느리라고 하였다.
성문쟁이 고개에 사는 젓팔러 다니는 내외도 알고 있었다.
그런 여자가 갑자기 한 밤중에 자기 집에 나타나서 살려달라니 해괴하기만 한 일이었다.
그 사람들도 그 명물인 새댁을 처음으로 보게 된 것이다.
동글동글 예쁘고 귀염성이 있는 얼굴이었다.
눈이 말똥말똥하니 영리해 보이고 야무지게 다문 입술이 똑똑해 보였다.
“우리가 저만큼 데려다 줄게. 어휴 그 먼 길을 언제 걸어갈까나 잉?”
그 마음씨 좋은 젓갈 파는 부부가 따라 나섰다.
사각등을 들고였다. 구름 속에 갇혔던 달이 조금 얼굴을 내밀자 주변이 보였다.
속금산 앞길을 지나 석정리로 들어가는 삼거리에 이르렀다.
“인자 갈 수 있어라우. 어여 들어가쇼. 아이고 고마웠어라우.”
“조금만 더 갈라요. 우리는 둘이니께 안무섭구만이라우.”
반송쟁이 앞까지 왔다.
이제 건지매로 가려면 지로질을 거너야 한다.
지로질은 반송이라는 동네와 건지매라는 동네와의 사이에 있는 들판인데 건지매 산모퉁이를 돌아야 건지매나 석정리 마을이 보인다.
반송을 떠나 걸어가다 보면 산모퉁이를 돌아서면서 바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은 부분이 생기게 되어 진례 사람들은 모두 무서워하는 곳이다.
또 이상한 사연들이 있는 사람들이 묻혀있는 무덤들이 그곳에 있어 더욱 사람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곤 하였다. 젓갈 파는 부부도 지로질은 무서워 하였다.
그들은 반송까지 와서
“우리는 여기까지만 갈라우. 인제 광주댁 혼자서 가쇼. 그나저나 어떻게 지로질을 넘어갈까 잉.”
이석민씨는 두 사람의 손을 잡고 오늘의 은혜를 잊지 않겠다고 여러 번 감사를 하면서 지로질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 고마운 부부는 걱정을 하며 마을 어귀에서 등불을 들고 멀어져 가는 광주댁의 뒷모습을 보면서 한참이나 서있었다.
“광주댁, 잘 가쇼. 잉”
“예, 고마워라우. 어서 가쇼.”
한참을 걸어가다 뒤돌아 보았다. 아직도 두 부부는 거기에 서서 지로질 가운데로 작아지고 있는 광주댁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그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어서 가쇼. 참 고마워라우.”
더 큰 소리로 용기를 주었다.
“염려말고 잘 가쇼. 우리가 여기서 보고 있응께.”
하늘에서 또 심술을 부리는지 구름 속으로 달이 들어가고 주변이 깜깜해졌다.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는 소리만 희미하게 들렸다.
“고마워라우. 고마워라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