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엘 엔데(Michael Ende) 1929년 독일에서 태어났으며, 초현실주의 화가였던 아버지로부터 풍요로운 예술적 영향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그는 영혼이 피폐하고 세상이 어렵던 시절에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이미 사라졌던 환상과 꿈의 세계를 되찾아준 작가입니다. 동화 외에도 아름다운 그림책과 어른을 위한 판타지 소설, 희곡, 시 등 매우 다양한 작품을 썼고, 그 가운데 여러 편이 영화와 방송극으로도 만들어졌으며, 독일 청소년문학상, 유럽 아동문학상, 안데르센 문학상 명예상 등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문학상을 여러 차례 받았습니다. 그의 작품은 4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전 세계적으로 2천만 부 이상 판매되었습니다. 1995년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세계의 언론들은 그를 단지 작가로서가 아니라 ‘동화라는 수단을 통해 기술과 돈과 시간의 노예가 된 현대인을 고발한 철학가’로 재평가하며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습니다. :::
『렝켄의 비밀』과 『마법의 수프』의 작가 미하엘 엔데 인터뷰 판타지 소설 『모모』와 『끝없는 이야기』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미하엘 엔데의 단편동화와 우화들을 한꺼번에 모은 <미하엘 엔데 동화전집>(제1권 『렝켄의 비밀』, 제2권 『마법의 수프』)이 최근 국내에서 출간되었습니다. ‘동화전집’ 출간을 계기로 그의 작품 세계에 좀더 깊은 관심을 가지는 독자들을 위하여, 그가 생전에 남긴 인터뷰 기사를 소개합니다. 위르겐 크레처가 질문한 이 인터뷰는 미하엘 엔데의 첫 작품부터 마지막 작품까지 지속적으로 출간해 온 독일 티네만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은 것입니다.
>> 당신의 일대기는 비교적 덜 알려져 있고, 다른 작가들에 비해 작품 속에도 당신의 과거가 거의 드러나지 않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작가나 예술가는 작품 뒤에 자신의 모습을 철저히 감추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 예술가가 결코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토크쇼나 또 다른 자리에서 인터뷰를 하면서, 모든 것을 낱낱이 밝힐 필요도 없다고 봅니다. 나는 예술가들은 장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무엇을 했는가, 어떤 작품을 내놓았는가에 따라 자신의 명성을 떨칠 수 있으니까요. 작품 뒤의 사람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 당신의 작품이 늘 시공간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까닭은 무엇인지요? 우리가 제대로 묘사할 수 있는 문학적 진실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우리 스스로 창조해 낸 진실이겠지요. 문학에서 흔히 쓰이는 ‘사실주의’라는 용어는 큰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사실성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거나 바보라고 생각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묘사한다는 것은 마치 일대일 면적의 지도를 그리는 것과 같거든요. 하지만 사실과 동떨어진다는 것도 거의 불가능한 일이므로, 그러면 ‘사실성에 대한 응답은 무엇이지?’ 라는 의문을 또 품게 되지요. 우리가 단지 사회적인 문제와 같은 사실성의 한 측면만을 취한다면, 우리는 허구의 세계로 후퇴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있어 사실성이란 그 어떤 것이 되어 본 척하는 게 아니라 언어로 창조해 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솔직히 털어 놓자면, 그 어떤 방법으로도 내가 잘 아는 누군가를 묘사할 길이 없습니다. 세세한 묘사를 하는 데 몰입하다 보면, 나는 어디서 멈춰야 할지 모를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나는 스스로 창조한 캐릭터를 잘 그려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판타지를 쓰는 이유입니다.
>> 얼마나 오랫동안 작품을 써 왔나요? 1943년에 시작했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요? 네, 맞습니다. 그 때 나는 열세 살이었는데, 제2차 세계대전 중이어서 도시로부터 피난하여 아이들을 위한 캠프에 머물고 있었지요. 여러 아이들과 한 방을 쓰면서 나는 유명한 문학작품과 시를 읽으며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바로 그 때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들과 처음 만났지요. 또, 지금까지 내 인생에 있어 별과 같은 안내자가 되어 준 아주 인상 깊은 작가 노발리스※를 알게 되었습니다.
>> 그 때에는 어떤 작품을 썼나요? 물론 시를 썼지요! 당신이 열세 살이었다면 시 말고 무엇을 썼겠습니까?
>> 첫 발표작인 『짐 크노프와 기관사 루카스』※ 이전에 또 어떤 작품을 출간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는지요? 난 『짐 크노프와 기관사 루카스』가 출간되기 이전에 이미 꽤 많은 작품들을 썼습니다. 실제 상연을 위해 쓴 희곡도 있었지요. 희곡 때문에 처음으로 연극배우가 되었고, 살던 곳도 떠났지요. 그 길만이 희곡 쓰는 법을 배울 수 있는 방법이었으니까요. 또한 그 당시엔 대학 진학을 위한 돈도 없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극단과의 계약이 무산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코미디를 썼기 때문입니다. 나는 분명 대작이라고 확신했었는데 말이지요. 그 후, 나는 뮌헨에 있는 아버지의 스튜디오※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뮌헨에 있는 모든 극작가들을 초청해 내가 쓴 희곡을 읽어 주었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들은 아무런 평가도 내려 주지 않았고, 그저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더군요. 결국 나는 아무런 계약도 성사시키지 못해 돈을 벌 수 없었지요. 그 후 나는 뮌헨에서 카바레 공연을 위한 극본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카바레의 전성기를 맞았으며, 다섯 편의 문학적이면서도 정치성을 띤 작품을 쓰기도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바이에른 라디오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차차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생계를 꾸릴 수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 바로 『짐 크노프와 기관사 루카스』를 썼지요. 나는 열두 곳 이상의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느라 2년이란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이미 많이 알려진 바대로 그 원고는 모두 거절당하다가, 티네만 출판사에 의해 비로소 받아들여져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그 후로 줄곧 그들과 함께 일해 왔지요.
>> 출판사들이 당신의 원고를 거절한 이유를 알려 주던가요? 그 당시 『짐 크노프와 기관사 루카스』는 전혀 새로운 형식을 띤 작품이었습니다. 동화, 모험담, 공상과학소설 등의 요소를 세심하게 혼합한 작품이었으니까요. 물론 신나고 재미있는 것을 원하는 아이들의 욕구를 만족시켜 줄 만한 새로운 작품이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편집자들은 내 작품의 숨은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나 봅니다. 늘 도착하는 편지엔 이렇게 적혀 있었지요. “아주 훌륭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우리 출판사가 추구하는 다른 작품들과는 어울리지 않는군요.”
>> 어떻게 작품을 쓰나요? 중요한 주제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나요? 아마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요. 아무런 계획 없이 『짐 크노프와 기관사 루카스』의 첫 문장을 썼는데, 두 번째 문장도 그렇게 쓰여졌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끝까지 쓰게 된 것이지요. 나중에 이 일화는 정말로 책에 실린 바 있는데,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어 나갈지 나 스스로도 궁금했다.” 라고 솔직히 적었습니다. 다른 작품 중 『모모』를 예로 들자면, 작품을 처음 쓸 당시 마음 속엔 대략적인 개념만 서 있었지요. 하지만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아주 극적으로 변화했습니다. 그에 비해 『끝없는 이야기』는 전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펼쳐 나갔는데, 중반부에서부터 쓰기 시작한 셈이지요. 그 때 쓴 첫 문장이 지금의 12장에 해당하거든요.
>> 원고의 출간은 주로 어떻게 결정하나요? 젊었을 때 나는 아내와 상의하지 않고는 한 문장의 작품도 출간하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탁월한 언어감각을 지닌 여배우였지요. 내 작품 중 어떤 작품이 좋은지 아닌지 평가 받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기 때문에 항상 그녀로 하여금 나의 모든 작품을 읽게 했습니다. 첫 번째 아내※가 죽은 후 스스로 다짐했습니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나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한다고요. 지금껏 그걸 터득하지 못했다면, 난 아무것도 이루어 내지 못했겠지요.
>> 당신이 직접 편집한 작품선집(프랑크푸르트 a.M. 1983)은 우리가 어떤 것을 읽어야 할지를 일깨워 줍니다. 머리말 대신 독자들에게 ‘45가지 질문’을 던졌는데, 전 이런 질문들이 무척 마음에 듭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드는 질문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아름다움을 위한 욕망, 이것은 추한 것을 그럴 듯하게 덮어 버리려는 ‘미화’를 뜻하는가?” 이것은 아주 결정적인 질문입니다. 현대 문화 산업에서 아름다움에 대한 질문은 더 이상 논의되지 않지요. 아무도 예술작품이 아름다운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난 개인적으로 묻고 싶습니다. 어떤 시대이든지 간에 새로운 진실이 창조됨에 있어, 아름다움이 ‘미화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최종적인 결론을 내린다면, 우리는 눈에 거슬리는 모든 것을 은폐하려 들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이젠하임 제단화’※의 가치를 믿습니다. 꾸며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여전히 그것은 아름답거든요. 고야※의 그림 <반역자들의 처형>은 비록 끔찍하지만 아름답습니다. 또한 셰익스피어의 소설 『맥베스』가 공포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아름답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진실과 공포가 그 자체에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면 굳이 감출 필요가 없겠지요. 어떤 것을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시키는 것이 예술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러분이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서는 항상 커다란 물음표를 남겨 두고 싶습니다. 예술은 변형의 과정이자 전이의 과정입니다. 그리고 이 전이의 과정은 언제나 아름다움을 목표로 할 때 성공을 거둡니다. 하지만 이는 명백히 어떤 면을 은폐하려는 의미가 아닙니다.
>> 당신의 대표작인 『끝없는 이야기』는 『모모』와 대비되는 방식으로 여전히 비평의 도마에 오르곤 합니다.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나 ‘페터 헤르틀링’과 같은 동료 작가들은 아주 호된 비평을 하고 있는데요. 예전에도 그래 왔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모모주의자’들과 ‘바스티안주의자’※들이 존재합니다. 어떤 사람들이 『끝없는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또 다른 사람들은 『모모』를 더 좋아하지요. 두 가지 책이 서로 많이 다르기 때문에 나는 이런 현상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나는 평생 같은 종류의 책을 두 번 쓰지 않는다는 한 가지 원칙만을 고수해 왔습니다. 많은 작가들이 한번 낭만적인 세계를 발견하고 나면 더 이상 자신의 작품 세계를 확장하려 하지 않고, 삶의 안락과 작업의 안일을 위해 오직 그 세계에만 안주하려 들지요. 하지만 나는 언제나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고 합니다. 내가 한 작품으로 세상에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을 때에도, 내 마음은 항상 열려 있었고, 또 다른 무언가를 새로이 발견하려는 충동에 사로잡히곤 했습니다. (번역-<동화읽는가족> 편집팀 정주연)
국내 출간 <미하엘 엔데> 작품 목록 <장편 판타지 소설> ①모모(비룡소) ②끝없는 이야기(비룡소) ③기관차 대여행(길벗어린이) ④마법의 술(비룡소)
<동화> ①마법의 설탕 두 조각(소년한길) ②냄비와 국자 전쟁(소년한길) ③헤르만의 비밀 여행(소년한길) ④미하엘 엔데의 마법 학교(푸른숲)
<그림책> ①꿈을 먹는 요정(시공주니어) ②내 곰인형이 되어 줄래?(베틀북) ③오필리아의 그림자 극장(베틀북) ④벌거벗은 코뿔소(문학과지성사) ⑤조그만 광대 인형(시공주니어)
<동화전집> ①렝켄의 비밀(보물창고) ②마법의 수프(보물창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