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이트
1980년대 영국·미국 을 필두로 일어난 신자유주의 혹은 신보수주의 운동을 흔히 뉴라이트(New Right) 운동이라고 칭한다.
신자유주의는 영국의 대처,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의 정책을 일컫는다. 사회민주주의와 케인스주의의 복지국가로 인해 사회활력은 저하되고, 복지병의 만연으로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이를 극복하고자 감세, 작은 정부, 공기업 민영화, 사회복지 축소, 시장기능 강화 등의 개혁을 한 것이다. 이와 같은 개혁조처는 사회민주주의의 요람이라고 할 수 있는 스웨덴마저 수용해 가고 있는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노암 촘스키 등의 좌파 학자들은 이를 다국적기업의 압력에 의한 것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대한민국의 뉴라이트는 '새로운 우파'를 표방하는 대한민국의 정치 단체이며 기존의 우파가 아닌 운동권 출신들이 시작했다.
대한민국의 뉴라이트는 서구와 미국의 신우파 운동과 다른 출발점에 서 있다. 미국과 서구가 복지국가가 누적시킨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면 한국의 뉴라이트는 구보수와 구진보의 낡은 이념과 극단적 대립을 주요한 극복대상으로 삼아 시대로 나아가고자 한다고 주장한다.
대한민국의 뉴라이트는 서구나 북미의 뉴라이트에 영향받은 것이 아니라, 북미와 서유럽에서 시작된 제3의 길에 고무된 운동이다. 자유주의연대는 홈페이지에서 동아일보에서 처음 자신들을 '뉴라이트'라고 부른것이지 자신들이 이렇게 이름을 붙인게 아니라고 분명히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뉴라이트전국연합은 적극적으로 '뉴라이트'란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기존 한나라당 등 보수주의 정당과 보수단체들이 자신들의 이념적 색채를 전면적으로 부각시키지 않은 데 비해, 뉴라이트운동은 이념성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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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뉴라이트 운동의 시작
대한민국에서는 1990년대 말부터 일부 좌파 중 전향자들에 의해 뉴라이트 운동이 시작되었으며 2004년 자유주의연대를 출범으로 뉴라이트 운동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자유주의연대는 2007년 현재 신지호 대표와 홍진표 사무총장, 최홍재 전 자유주의연대 조직위원장 등이 이끌어 가고 있다. 또한, 김진홍 대표가 이끄는 뉴라이트전국연합이 창설되어 보수와 진보의 틀을 넘어서는 중도적인 보수운동을 표방했다.
정치 활동
이명박 한나라당의 대통령 후보는 자유주의연대, 뉴라이트전국연합의 모임에 나가 이들을 격려하고 지지한다고 말했으며, 심지어 자유주의연대는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자, 즉각적으로 지지선언을 발표했으며, 자칭 선진화정부라고 칭찬하기까지 했다. 이명박 후보는 대통령 당선 후 회견이나 인터뷰에서도 진보와 보수를 넘어서는 실용으로 간다고 분명히 말했다.
이들은 보수와 진보를 넘어서는 실용적 중도를 주장하며 일부는 사실상 미국의 신보수주의과 비견될만한 극단적 보수주의사상을 표방하기도 한다. 이들은 구 보수주의의 반공주의나 권위주의를 비판함과 동시에 구 진보주의의 시대착오적 좌파정책을 넘어서고자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이 내세우는 뉴라이트 교과서 포럼에 대하여, 역사왜곡을 시도한다는 비판이 존재한다.[1]
뉴라이트 계열 인사들 중 2008년 4월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계진출을 시도하였으며 자유주의연대 대표 신지호, 뉴라이트경기안보연합 대표 김성회, 인천 남동을의 자유주의교육운동연합 대표 조전혁 등은 정계진출에 성공했다.[2]
한편, 한나라당의 일부 인사들은 뉴라이트 운동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 박근혜는 뉴라이트 계열의 교과서포럼이 만든 대한민국 근현대사 교과서에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3][4] 한편 2008년 7월 29일 민주당은 뉴라이트 계열의 단체 중 전국연합을 비판했다가 사과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5]
평가와 비판
남북문제와 통일문제
이들은 한국의 통일에 부정적이며, 남북교류는 중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또 북조선의 체제 붕괴 후, 북조선을 한·미·일 공동 관리 체제하에 두는 방안도 제창하고 있다.[출처 필요]
일제 강점기 시대
일제 시대의 긍정적인 면을 부각하려는데에 대한 비판이 있다. 안병직은 1992년 월간 사회평론에서 "종군위안부와 근로정신대를 구별해야"라는 제목의 글에서 "종군위안부와 근로정신대는 서로 다른 제도로 정신대에 징발되어 노동력만을 제공한 사람들이 오해를 받을 수 있고 이로 인해 정신적 피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 둘을 구분해야한다"고 주장하였다.[6]
대안교과서
뉴라이트 계열의 교과서포럼에서는 민주화 이후의 대한민국 국사 교과서에 좌경화 경향이 두드러진다 주장하며, 2005년 이후부터 꾸준히 한국 근현대사를 고쳐 쓴 "대안 교과서"를 제안하는 심포지엄을 열었다. 박근혜도 이 교과서를 지지하였다. 이 때 4·19 혁명을 학생운동으로 표현한 것과 관련하여 4·19 관련단체들이 난입하여 심포지엄이 중단되었다.[7]
한편, 편집진 중 한국사 전공자가 없다는 것과, 대안 교과서가 친일적인 성향이 강하다는 비판이 있다.[8] 교과서 편찬에 참여한 단체도 뉴라이트 중 불참한 단체가 있는 등, 뉴라이트 계열 단체들의 입장도 일치되지 않고 있다.[9]
뉴레프트
신좌파 혹은 뉴레프트(New Left)는 마르크스주의에 근거한 사회개혁을 주장하는 좌파 이념을 말한다. 시민들의 의식성장을 통한 사회개혁을 주장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으며, 하버마스, 에리히 프롬등의 프랑크푸르트 학파측 학자들이 신좌파의 대표적인 학파이다. 1960년대 유럽 68혁명, 일본 전국 학생 공동 투쟁 회의(전공투), 적군파 등은 신좌파의 영향을 받았다.
1956년 헝가리 봉기에 대한 미국 공산당과 영국 공산당의 애매한 태도는 당원들의 당에 대한 불신감을 낳았다. 독립적인 마르크스주의 지식인들은 좌파적 이념에 대한 보다 독자적인 접근을 시작했고, 좌파 정당들의 관료적인 조직행태에 대해 비판을 가했다. 서유럽에서 이들 운동은 사민당과 공산당의 내외에서 일어나며 유럽공산주의로 발전했다. 미국의 신좌파는 주로 대학가에서 발생한 학생 운동이었고, 영국의 경우에는 학생 단체와 당에 반대하는 공산주의 지식인들 사이의 매개로 작용했다.
영국의 신좌파
흐루쇼프가 스탈린을 비판한 비밀 연설과 1956년 소련의 헝가리 침공의 결과로, 많은 이들이 영국 공산당을 떠나 트로츠키주의 단체나 영국 노동당으로 옮기면서 발생했다. 대체로 핵무장 해제 운동과 세계 정의 운동에 중심을 두었다.
미국의 신좌파
미국의 신좌파는 60년대에 대학생들 사이의 정치 운동으로서 나타났다. 신좌파(New Left)라는 표현은 사회학자 라이트 밀즈(C. Wright Mills)가 쓴 '신좌파에게 보내는 편지'(Letter to the New Left)라는 글에서 처음으로 나타난다. 여기에서 밀즈는 노동 운동에 집중하는 구좌파에서 벗어나, 사회적 소외, 무질서, 권위주의 등의 보다 개인화된 현대 사회의 문제점에 중심을 두는 새로운 좌파 이념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미국의 신좌파는 그들이 "체제"라 부르는 사회의 권위적 구조에 반대하고, 자신들을 "반체제"라 지칭했다. 그들은 베트남 전쟁과 중국의 문화 혁명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또한 영국의 동지들과 마찬가지로 흐루쇼프의 비밀 연설이 지적한 소련의 문제들을 인지했으나, 그들과는 달리 트로츠키주의나 사회민주주의에 투신하지는 않았다. 미국의 신좌파에 속하는 이들은 소련은 더이상 세계적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중심이 아니라고 보았으며, 마오쩌둥, 호치민, 피델 카스트로 등을 새로운 사상의 지도자로 인식했다.
대한민국의 신좌파(신진보)
대한민국(이하 한국)에서 새로운 보수라는 이름하에 뉴라이트운동이 전개되자, 진보진영에서 이에 대항하기 위해서 등장한 것이 뉴레프트 운동이다. 뉴라이트 운동과 마찬가지로, 뉴레프트 운동도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들이 있다.
한국의 뉴레프트운동은 뉴라이트운동에 대항하기 위해 진보진영에서 자발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뉴라이트운동이 기존의 보수와 진보를 넘어서는 개혁적인 보수를 주장하며, 보수로 기운 새로운 보수운동을 위한 것이라면, 뉴레프트운동은 그 반대개념이다. 보수와 진보를 넘어서는 새로운 진보 즉, 보수와 진보의 틀을 넘어서지만 진보로 기운 새로운 진보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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