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배낭여행자들의 천국'으로 태국을 꼽습니다. 방콕, 치앙마이 등이 유명한데, 물가 싸고, 잠자리, 먹을 것, 볼 것 등 여행자들을 위한 편의시설과 즐길거리가 풍부해서 그런가 여깁니다. 저는 방콕에만 며칠 있었지만, 일단 너무 더웠고, 길거리 음식이 위생면에서나 맛에서나 그닥 끌리지 않아서 매력을 느끼긴 어려웠지요. 다만, 한국 떠나 처음 발 닿은 곳이었기에, '여행' 자체에 적응하는 곳으로 삼았던 것 같습니다. 몇 달 지나고 보니, 장기여행에 필요한 여러가지 소소한 일상들, 예컨대 환전, 짐부치기, 길찾기, 장소 이동 등의 측면에서 방콕이 꽤 편리했음을 뒤늦게 알겠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여전히 '태국'을 '가볼 만한 곳'이라 꼽기 어려운 것은 다른 이유 때문입니다.
최근 들어 아동인신매매나 장기밀매가 특히 태국 치앙마이 지역을 거점으로 성행한다는 다큐멘터리를 잠깐 보고는 더욱, '우리는 배낭 여행이 해당국가의 민주화에 기여한다고 믿는다'는 론리플래닛의 신념을 떠올리며 그 많은 여행자들이 태국을 대상으로 뭔가 운동이라도 벌여야 하는 것 아닌가 여기기도 했고요.
누군가, 당신에게 최고의 여행지는 어디였냐고 묻는다면, 주저없이 '터키'를 꼽겠습니다. 터키는 말그대로 관광대국입니다. 요즘 한국에서도 터키관련 여행상품이나 여행기, 가이드북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요. 한국의 GNP에 따라 조금씩 확장되고 변하던 배낭여행지의 유행을 보면, 이제 터키와 중남미가 가장 '핫'한 장소가 아닐까 합니다. 터키에서 약 두 달을 지냈던 제 일상을 소개하면서 게으른 여행자의 생존보고를 대신합니다. ^^
이즈닉 호수에서
이스탄불에 도착해서 '어디에서 장기체류를 할까' 수소문하다 발견한 곳이 '이즈닉'입니다. 하루면 시내 한 바퀴를 돌 수 있는 매우 작은 마을인데, 이스탄불에서 배로 1시간 반 정도면 갈 수 있어 가까운데다 무엇보다 조용하고, 한때는 터키채색타일의 명소로 유명했지만, 지금은 여행자들이 잘 찾지 않는 곳이기도 하지요. 둘레가 130 Km에 이른다는 이즈닉 호수는, 도착한 첫 날 부터 눈길을 사로잡아, 짬짬이 동료와 산책을 가거나 호숫가에서 낭독을 하기도 했습니다. 풍경과 관광에 여전히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제게 터키가 유난한 까닭은 분명 사람들 때문입니다.
호텔 '카이나자르'는, 이즈닉의 명물입니다. 아니, 호텔 주인 '알리 불무슈(사진 왼쪽 남자)'가 명물이라 해야겠지요. 약 20여개 언어로 이즈닉 안내문을 장만해 놓고 있는 알리는, 독학한 유창한 영어(?-문법 무시, 의사소통 100%! ^^)로 유쾌하고 성실하게 우리를 맞아 주었습니다. 가업을 이어 호텔일을 하는데 젊어서는 퍽 방탕한 생활을 하여 부인인 파트마 아줌마(-제가 늘 쓰고 있는 파란 스카프를 선물해준 분입니다)의 속을 꽤 썩였다지만, 쉰이 넘은 지금은 독실한 무슬림으로 생활하고 있다지요. 아무튼 터키에서는, 한 잔에 우리돈 500원~1000원 정도 하는 '차이'를 손님에게 접대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유목민의 문화와 무슬림 문화가 섞여 외부인을 환대하는 관습이 있다지만, 그 친절과 댓가없는 대접에 마음이 열리지 않을 수 없었지요. 물론 이스탄불 같은 대도시에서는 아무래도 그 정서를 느끼기 어렵지만, 이즈닉에서는 거의 날마다 모종의 감동적인 이벤트가 있었습니다.
자주 삐끗한다는 파트마 아줌마의 발목에 침뜸치료를 몇 번 해 주었을 뿐인데, 스커트, 며느리가 수놓은 스카프 선물, 혼인식 초대(-외부인을 환대한다지만 가족행사에 참석하는 것은 매우 귀한 일이라지요), 체리농장 방문, 횟수를 다 기억할 수 없는 식사 초대.....떠나는 날까지 잊지 못할 인사까지...감당할 수 없는 친절이었습니다. 알리네 가족이야 어찌보면 비즈니스 차원이라 할 수 도 있겠지만, 영어 한 마디 통하지 않는 터키 시골에서, 저를 환대하고 배려해주던 많은 사람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잠깐 마늘을 만졌다고 제 손에 레몬수를 뿌려주던(-일상에서 늘 사용하는 물품중의 하나라지요) 수퍼마켓 총각, 터키 손뜨개를 배우고 싶어하는 제게 손짓 발짓 해 가며 가르쳐 주던 여성들...이 아저씨 한 번 보시지요.
이즈닉 호수의 낚시꾼
'이렇게 여행해도 될까, 도대체 여행의 매력이 뭘까....' 마음 한켠 물음을 안고서도 정말 게으르게 보냈던 이즈닉의 일정이 휙 지나고, 어느새 이스탄불로 돌아갈 날이 내일 모레로 다가 왔을 때였습니다. 약 45일간의 '카이나자르'생활 동안, 저는 파트마 아줌마의 침뜸치료사이자, 알리의 늦둥이 '누르칸'의 영어숙제 도우미, 호텔을 방문하는 다른 여행객들을 접대(!)하고 안내하며 지냈지요. 40일이 넘어가니까 좀 지겹긴 하더군요. '이제 호숫가 산책도 마지막이구나'여기며 호수 안까지 나있는 선착장(?)길을 따라 걸었던 그 날. 낚시를 하는 한 무리의 남자들을 만났습니다. '붕어'로 추정되는 물고기들이 어찌나 잘 낚이던지(낚던지?), 인간에게 마지막 남은 수렵이 '낚시'라던 누군가의 얘기가 새삼 실감나던 구경거리였어요.
몇 달 동안 해물 맛을 보지 못했던 탓도 있지만, 그 퍼덕이는 생선을 보니 갑자기 참을 수 없는 식욕이 돋아서 '이거 한 마리 살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은근히 그냥 얻길 기대하면서요. 아니나 다를까, 아저씨는, 원래 파는 것이 아니고 자기 식구들끼리 먹을 거라며 가장 실한 놈 한 마리를 골라 선물이라며 주십니다. 어찌나 감사하던지요. 차마 제 손으로 죽일 수는 없어 비닐 봉지에 든 생선을 들고 '자연사(!)'하길 기다리며 동네 한바퀴를 돌았습니다. 퍼덕이는 생선에게 잠깐 애도의 념을 표하고 정성을 다해 요리를 했지요. 미얀마에서도 해물요리를 접하기가 어려웠고, 터키는 바다며 호수가 가까이 있는데도 의외로 해물요리를 일상적으로 먹지는 않는다고 해서(-이스탄불에서는 항구변에서 고등어 샌드위치를 팔긴 합니다. 정말 딱, 고등어구이를 바게트에 끼워먹는 맛이었어요) 한국식 생선조림맛이 머리 속에 어찌나 선명하게 떠오르던지요.
카이나자르 호텔의 주방에서 요리 삼매경
모닝글로리 가위로 지느러미를 다듬고, 아가미를 떼어내고 비늘을 친 다음, 마침 간장을 지니고 다니는 일본인 부부에게 간장 동냥을 하고, 터키 고추가루랑 섞어 터키 호박을 깔고 생선을 잘 담았더니 딱! 이런 모습이 되었어요.
생선만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제게도 엄청난 도전이었지요. 동료와 더불어 게눈 감추듯 뚝딱 해치우고, 주방에 비린내를 남길까봐 뒷정리에 탈취제까지 뿌리느라 부산을 떨었지만, 저 한 그릇의 요리가 가능하기 위해 존재했던 여러 사람의 호의를 생각하며 정말로 감사하게 먹었던, 잊을 수 없는 한 끼 식사였습니다.
워낙에 개인적인 경험을 일반화하기 쉬운 것이 여행지에 대한 인상이지만, 이런 저런 소소한 우여곡절들을 모두 밀쳐버릴 만큼 감동적인 사건이 이즈닉을 떠나는 날, 또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즈닉 타일가게에서 보낸 주말파티
아시는 분은 아시겠습니다만, 저는 춤을 무척 좋아합니다. 그렇지만 아무데서나 춤출 만큼 넉살이 좋은 편은 아닌지라 딱 제가 배운 춤사위 안에서, 그러니까 제한된 장소와 복장, 파트너가 있어야만 비로소 흥을 내는 소심한 아마추어 댄서입니다. 어느 주말, 숙소에서 들리는 음악소리를 듣더니 동료가 부리나케 뛰쳐나갔습니다. 일상에서 술을 마시는 일이 없는 터키 무슬림들은, 작은 가게에서도 저렇게 악사(-악기 들고 있는 할아버지는 전문악사입니다)를 초청해서 작은 댄스파티를 열곤 하였습니다. 곁에서 한참을 구경하며 음악을 듣다가 주변의 부추김을 끝까지 마다할 수 없어 저도 잠깐 흉내를 내어 보았습니다. 나중에 감사하다고, 즐거웠다고 터키식 아이스크림(잘라먹는, 약간 찰기가 있는 터키식 아이스크림입니다. 사실 제가 맛보고 싶었던거지요)을 사서 함께 나눠먹었지요.
이즈닉을 떠나던 날, 선착장까지 가는 작은 미니버스(-'돌무쉬'라고 합니다)에 동료와 나란히 앉아 출발을 기다리던 때였습니다. 저쪽에서 두 여자가가 자전거를 타고 빠르게 정류장으로 오는 것을 무심히 보았는데, 함께 춤을 추었던 타일 가게의 아주머니 두 분이었습니다. '이거 가져가라, 몸 조심하고, 신이 지켜줄거다' 대충 눈치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 같았는데 뭔가를 불쑥 내밉니다. 가게에서 판매용으로 전시하던 거울 두 개를, 저와 동료의 손에 꼭 쥐어 주시는 게 아닙니까. 세상에 이런 사람들이 있을까....어찌나 감사하던지요. 흔히 저런 정리나 호의는 자본주의가 심화되지 않은 오지에나 가야 느껴볼 수 있다고, 관광이 아닌 여행을 즐기는 이들은 자꾸만 사람이 몰리지 않은 곳을 찾아 나섭니다.
그런데 터키는 EU가입을 하니 마니 하고 있고, 경제규모도 결코 작지 않습니다. 유럽인의 외양에 아시아의 정서를 가진 터키인들을 만나면,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점점 마음을 열고 그들의 문화와 정서에 놀라고 감동합니다. 이란을 다녀온 여행자 왈, "여기도 정말 놀라운데, 이란은 딱 세 배 더 하다고 보시면 되요. 안 간 곳이 없는 선배랑 이란을 같이 다녔는데, 그 선배도 나도 계속 놀라며 다녔어요. 가기가 어렵지만, 꼭 한 번 가보세요"
그 한 마디에 꽂혀 이스탄불로 돌아오자마자 이란행을 준비했었습니다. 영사관에 가서 비자문제도 알아보고, 항공권도 알아보았지만, 몇 가지 문제(-특히 제 신용카드사용이 안되는)에 봉착하는 바람에 결국 이란행을 접고 호주로 바로 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타자에게 어디까지 친절할 수 있을까요, 얼마만큼 친절해야 할까요. 제 여행은, 여행자에게 관대하고, 그들을 환대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가능합니다. 갚을 수 없는 호의에 대해, 저는 어떻게 응하는 것이 좋은가, 제 윤리의 기준선이 터키여행을 계기로 다시 흔들리고 있습니다. 또 뵙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