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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두 나비 화산은 중국에 있는 모든 시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산들 중에서도 으뜸 가는 산이었다. 하지만 강한 생물이 아니면 그 어떤 것도 살아갈 수 없는 산이었다. 강한 바람에 시달린 소나무들은 마구 비틀어져 혹이 붙은 모양 이었다. 세차게 휘몰아치는 바람은 잔가지를 부러뜨렸고 솔잎을 쳐냈다. 그나마 남아있는 가지들은 약해진 바람을 맞으며 파도처럼 넘실거리고 있 었다. 비는 예리한 날을 세우고 화강암을 쪼아 점점 더 깊게 홈을 파나갔 다. 마침내 바위는 닳고 닳아 흰색이 되었고 돌의 결이 햇빛에 환히 드러 났다. 화창한 날이면 햇빛은 뜨겁게 작렬하였다. 어떤 생물들은 이 빛을 자양 분으로 잘 자라나기도 했지만, 강한 빛에 무자비하게 화상을 입는 약한 것들도 있었다. 그러나 거친 풍토 때문에 산은 청결하고 완벽하리 만치 준엄하였다. 그래서 산의 갈라진 틈새에서 겨우겨우 연명하며 비참하게 살아가는 수도자들에겐 안성맞춤인 장소였다. 산세가 험하고 척박하여 고생밖에 할 것이 없는 화산에서 도교의 금욕 주의는 싹텄다. 불모 속에서도 도교는 무성하게 뻗어 나갔다. 역설적인 현상이었다. 아무리 훌륭한 인간의 업적이라도, 아무리 보편적인 지혜일 지라도 이런 악조건 속에서라면 지탱할 수 없으며 위대해질 수도 없을 것 이다. 그럼에도 도교는 이런 환경 속에서 거침없이 자랐다. 화산, 이 장엄한 산은 중국의 5대 성산의 서쪽 봉우리였다. 중국 고대 의 두 도시, 뤄양()과 시안()을 잇는 높다란 산맥의 한 부분에 속했다, 다섯 개의 큰 화강암 봉우리가 원형을 이루고 있어서 단 하나 밖 에 없는 험난한 오솔길로만 다닐 수 있었다. 강, 폭포수, 삼림, 동굴 그 리고 특히 눈에 두드러지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들, 이것들은 화산을 이 세상이 아닌 별천지로 만들어 놓았다. 도인들은 각 봉우리마다 학당, 수도원과 제사를 올리는 신당을 세웠다. 건물들은 모두 산에서 구할 수 있는 나무, 돌, 진흙이나 7천 자에 달하는 산비탈 위로 사람이 힘들여 운반한 재료들을 써서 손으로 직접 만들었다. 삼청전 같은 몇몇 건물을 빼고 대부분의 건물은 멀리서 보면 흙 빛깔과 분간할 수 없게 위장 되어 있고, 작은 언덕들과 소나무들 뒤에 숨어 초라 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실내는 덕지덕지 낡은 바닥과 엷게 회반죽이 칠해진 벽, 비바람과 뜨거 운 열기에 의해 파손된 나무창틀로 꾸며져 있었고, 가구는 보통 커다란 나무 하나뿐이었다. 석탄 난로와 조그만 난로가 내장되어 난방이 되는 딱 딱한 벽돌 침상이 고작이었다. 도인들은 온실과 손바닥만한 밭뙈기를 일구어 자신들이 먹을 채소들을 직접 재배하였지만 나머지는 이웃 사람들에게서 샀다. 하지만 5백 명이 사는 화산 공동체의 전 식구를 먹여 살리는 일은 항상 큰 문젯거리였다. 대부분의 도사들은 불쌍할 정도로 말라 있었다. 이따금씩 신자들이 내는 기부금과 도사들이 서예가, 강사, 점성가, 화가나 본초 학자로서 벌어들 이는 약간의 돈이 수입의 전부였다. 도관은 원로 도사들과 수도원장들의 감독 아래 조직되어 있었다. 그리 고 도관들은 모두 대사부가 의장으로 있는 원로회의 관할 하에 모여 있었 다. 도관의 일상 생활은 죽비 소리와 낭랑하게 울려 퍼지는 동종()소 리에 의해 일사불란하게 통제되었다. 상승음을 타는 5박자의 음조 -세 번 은 느리게, 두 번은 빠르게 - 는 매일 아침 5시 30분에 수련생들을 깨웠 다. 젊은 도사들은 각자 맡은 임무를 수행했다. 장작과 물을 가져오거나 삼청전을 청소하거나 아침 식사 준비를 하거나 사부들의 시중을 드는 것 이었다. 그 사이에 더 높은 도사들은 목욕을 하고 그날 하루를 준비하기 위해 몸치장을 했다. 6시 30분 이전에 도사들은 대부분 아침 참배를 위해 신당으로 발길을 옮겼다. 거기서 동종과 목어()소리에 맞춰 고음의 단조로 경전을 노 래했다. 도관의 규칙적인 생활로 돌아온 사이훙은 여전히 아침 참배가 지 루했다. 사부께서 말씀을 하실 때면 무척 흥미로왔다. 사부님의 말씀에는 생동 감이 넘치고 내용의 연관성이 적절했다. 그와 반대로 경전을 중얼거리는 소리는 아주 끔찍할 정도로 싫었다. 경전에 쓰인 말들은 도사들을 도교의 신의 경지까지 이끌어 주기 위해 복잡한 형식을 다서 성인들이 만들어 놓 은 수백 년이나 된 것들이었다. 그러나 사이훙에게는 그저 아침 식사에 방해가 되는 웅얼거림일 뿐이었다. 종소리를 들으며 식당에 들어가서는 사이훙에게는 경건한 마음이 거의 들지 않았다. 침묵은 절대적 불문율이었다. 말이 금지되어 있을 뿐 아니 라, 서로 눈을 마주치는 행위도 지팡이로 세게 맞는 벌을 불렀다. 그와 동료 수도자들이 기도하며 서 있는 동안 도관의 부원장이 사발에 음식을 담았다. 그리고 그것을 성인의 신단에 바쳤다. 신단의 양쪽에는 무거운 목재로 만들어진 두 개의 긴 식탁이 놓여 있었다. 사이훙은 큰 나무통에서 죽을 한 사발 퍼내서는 자리에 앉았다. 절인 양배추 한 접시, 순무와 오이 몇 개가 두 명의 도사에게 나눠졌다. 그는 정확히 식사의 반을 먹었다. 한 사람에게 허용된 최대의 양인 죽 두 그릇 을 먹고는 그릇을 끓는 물로 씻었다. [오늘이 축제일이었으면.......] 사이훙은 혼자 말로 한탄했다. 만일 축제라면 기름에 튀긴 빵 한 조각 은 얻어 먹을 수 있었다. 아침 식사 후, 사이훙은 목욕을 하러 갔다. 옥외에는 밑바닥에 물이 빠 질 수 있게 구멍이 있는 엄청나게 커다란 항아리가 줄지어 서 있었다. 이 것들은 욕조로 이용되었다. 동관과 나란히 연결된 두 개의 긴 대나무가 항아리 위에 고정되어 있었다. 오른쪽은 따뜻한 물이 나오는 관이고, 왼 쪽은 우물물이 직접 나오는 관이었다. 두 명의 어린 수행자가 불을 지펴 서 물을 끓인 후 그 물을 파이프로 돌렸다. 사이훙은 옷을 벗고 항아리 속으로 들어갔다. 바닥은 차갑고 공기는 이 가 딱딱 부딪칠 정도였다. 그는 물을 몸에 끼얹고 백단향 비누를 칠했다. 근육이 아직 단단한 것을 기분 좋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 가지 정의를 내렸다. 철학은 고상하다. 그러나 육체의 건강은 손으로 만질 수 있을 만 큼 구체적이다. 더운 물은 너무 뜨거웠다. 사이훙은 어느 쪽이 더 나쁜지 판단할 수 없 었다. 덜덜 떨리도록 추운 아침에 하는 냉수욕? 아니면 뜨거운 물로 정반 대의 고통을 당하는 것은 또 어떨까? 사이훙은 항아리 밖으로 나와서 몸 을 말리고 옷을 입은 후 두 소년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오늘 아침 그는 강의를 들을 계획은 없으나, 두루미 신선에게서 봉과 검을 쓰는 법 을 배울 예정이었다. 수업에 대한 기대뿐 아니라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 는 기대감이 그를 학당으로 이끌었다. 대사부에게는 13명의 제자가 있었다. 그 중에서 사이훙이 가장 어렸으 며 그 다음이 후디에()이었다. 그는 20대 후반이었다. 그 밖에 다른 제자들은 사이훙보다 훨씬 나이가 많았다. 그들은 모두 성직자가 되기로 예정되어 있었고 학생으로 들어오기 전부터 성직의 여러 소양 교육을 끝 마친 상태였다. 학생들은 사이훙이 나이가 어리다고 특별히 관심을 두지 는 않았지만, 대사부의 핵심 그룹에 끼였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받아들였 다. 그와 나이 차가 일곱 살 미만인 학생은 오직 후디에 뿐이었다. 그런 이유로 두 사람이 몇 년간 함께 지내면서 우정을 키워 왔다. 사이훙에게 대사부가 아버지 같은 존재라면 후디에는 형과 같은 존재였다. 후디에는 사이훙이 속세의 집에서는 결코 가질 수 없었던 형제였다. 후 디에는 따뜻하고, 베풀 줄 알고, 염려해 주는 형이었다. 사이훙의 친형들 은 모두 철두철미하게 경쟁적이었다. 부모님의 기대가 커서 형제들에게 많은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형제들은 서로 떨어져 최고의 출세길로 줄달음치기 위해 다른 스승들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애시당초 그는 형제 애 따위를 기대할 수 없었다. 가족들 사이에는 질시와 무지막지한 경쟁만 이 존재했다. 사이훙은 집에 있을 때 항상 자신을 작고 못생기고 어리석 다고 생각하였다. 형들은 위대한 학자이며 탁월한 군인, 아니면 부유한 상인이었기 때문이다. 사이훙만이 도사였다. 그래서 그만이 부모님과 그 의 가문에 위신과 명예를 선사할 수 없었다. 사이훙은 이제야 마침내 그 를 하나의 개체로 인정해 주는 대사부와 대사부의 13제자를 찾을 수 있었 다. 후디에야말로 그가 믿고 따를 수 있는 사형이었다. 우연의 일치로 보일지 모르지만, 사이훙의 법명 또한 후디에()였 다. 사부는 세 가지 이유 때문에 그 법명을 붙여 주었다. 첫째, 사이훙이 미()에 흠뻑 빠져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사이훙의 가정 환경 때문이기 도 했다. 그는 집에 있을 때부터 미술품, 자연의 경관, 이국풍의 꽃들에 매혹 당해 있었다. 둘째, 그는 쉽게 싫증을 내었다. 이 주제에서 다른 주 제로, 또 여기에 마음을 주었다가 저기에 홀딱 빠지는가 하면 분위기에 약했다. 마지막으로는, 나비들이 그를 아주 좋아하는 듯이 보였다. 나비 들은 그의 주변을 맴돌다가 몸 위에 내려앉곤 했다. 대충 이런 연유로 해 서 그의 법명은 <호접 도인>이었다. 꽃가루를 옮기며 이 꽃 저 꽃으로 날 아다니는 나비처럼 사이훙은 아름다움에 이끌려 다녔다. 하지만 그는 결 코 인생의 한 단면에 오래 머무르는 일은 없었다. 따라서 화산에는 두 마 리의 나비가 있었다. 사이훙은 아름다움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고 사형 후디에는 그 자신이 아름답기 때문이었다. 후디에는 동생이 성취하고자 열망하는 것을 이미 전부 구현한 듯하였 다. 총명하고, 재치 있고, 발음이 또렷또렷한 그는 학식이 최고 경지에 오른 학자에서 세속의 대신에 이르기까지 누구와도 토론을 벌일 수 있을 정도로 박식했다. 그는 자유시 경연 대회에 참가할 정도로 문장력도 좋았 다. 문학, 역사, 철학에 능통하다는 암시였다. 음악가로서의 기예 또한 소문이 자자했다. 세속적 자극물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노도사들초 자 후디에가 피리 연주를 할 때는 미소를 지었다. 후디에는 수년 동안의 무사 생활로 완벽한 육체를 다져 놓은 미남자였 다. 매끄러운 얼굴은 신체 단련을 한 결과 발갛게 상기된 빛을 띠었다. 두 눈은 항상 방심을 허락치 않을 만큼 날카로왔다. 그는 보통 만나는 사 람 모두에게 매력적인 미소를 보냈다. 사람들은 길을 걷다가도 그에게 경 탄의 눈길을 보내며 돌아봤고 어른들은 그가 성격이 좋고, 언제든지 건전 한 충고를 받아들일 각오가 돼 있는 젊은이로 생각했다. 화산의 젊은 수 행자들은 후디에가 수행자가 아니라는 이유 때문에 더욱 더 그를 숭배하 였다. 그는 대사부가 양자로 삼은 고아였다. 그는 도관과 세속적 삶에서 얻을 수 있는 최선의 것들을 지니고 있었다. 사이훙이 작은 잔디밭에 도착했을 때, 후디에는 벌써 와서 일곱 명의 다른 학생들 속에 끼여 있었다. 그는 손에 봉을 들고 동급생들을 가르치 고 있었다. 그는 배우는 속도가 매우 빨랐다. 따라서 친구들을 돕는 일에 도 인색하지 않았다. [나는 이 봉술을 이해 못 하겠어.] 산시성()출신의 날씬한 젊은 학생이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마찬가지야.] 산둥()지방의 강한 악센트를 가진 다른 학생이 이렇게 불평을 했 다. [나도 이 봉술을 이미 배웠거든. 그런데 대사부께서 동작들 중 일부를 바꿔 버렸어. 두루미 신선은 아마 그 일을 잊어버렸겠지.] [그래 맞았어. 두루미 신선은 노쇠했어. 망령이 들었을지도 모르지.] 산시성 출신이 맞장구를 쳤다. [두루미 신선은 한창 젊은 우리들보다도 활력이 넘치시는 분이지. 사부 는 시작 대회에서 당선한 적도 있고 과거 시험에도 급제하셨어.] 후디에가 웃으며 말했다. [그건 우리도 다 아는 사실이잖아.] 산시성 출신 학생이 불만스러운 듯이 말을 받았다. [하지만 그가 끼여들지 않았다면, 이 봉술은 진작 끝났을거야.] [끝났을 거라고? 자네들은 고전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군.] 후디에가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고전? 이 시대에? 그리고 이 나라에?] 산둥에서 온 친구가 비꼬는 투로 말했다. [잠에서 깨어나라구, 사형. 지금은 1941년이야!] [옛날 속담도 몰라?] 후디에가 참을성 있게 말했다. [<지식의 바다 한가운데에 배를 띄우면 육지에 닿을 수 없다.>라는 속 담이 있지. 사부님께서는 여러 가지 다른 변형을 다 기억하고 계셔. 그런 데 지금은 너희들에게 여러 발전 단계를 다 거쳐가도록 지도하고 계시지. 한 가지 기술을 섭렵하고 나면, 그때는 그것을 더 세련되게 다듬고 그 다 음에는 더욱더 갈고 닦는 것이야. 이어지는 과정은 똑같지만, 그 동작들 은 깊이가 더해지면서 더욱 정교해지지. 이런 식으로 하여 동작이 새로워 지니 너희가 흥미를 잃지 않게 될 것이고, 다음에 어떤 동작이 올지 정확 히 모르니까 호기심이 동하게 될 터이니 너희는 지루하지 않게 배울 수 있거든. 무릇 모든 인간의 활동은 다양성을 지니고 있지. 무용, 음악, 회화, 물 론 운동도 포함해서 말이야. 대주제를 고수하면서도 개인의 특성과 순간 적인 생각까지 표현해야만 하는 것이지. 사부님은 너희의 이해 정도에 맞 추어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봐야겠지. 너희가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리신단다. 그리고 그 동작이 진부해 지는 때를 알 아차리고 앞으로 전진하도록 새로운 작은 회전 동작을 가르칠 태세를 갖 추는 거야.] [쉿!] 다른 학생이 후디에의 말을 끊었다. [사부가 오신다!] 학생들은 급히 줄을 맞춰 섰다. 서둘러 줄을 서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사이훙은 두 명의 어린 학생들을 눈 여겨 보았다. 후디에의 말에 그들이 감명을 받았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고개를 돌려 사부를 본 순간 사이 훙의 심장은 쿵하고 내려 앉아 버렸다. 사부는 신경질적인 표정이었다. 60초반의 두루미 신선은 몇 가닥 안되는 뻣뻣한 머리카락을 줄로 엮어 서 상투를 틀고 있었다. 구릿빛 피부는 회색 수염과 대조를 이루었다. 작 은 입술 사이로 깨진 이빨이 드러났다. 두께가 얇은 매부리코는 붓으로 획을 그은 것 같은 두 눈을 갈라 놓았 다. 곁눈질을 할 때는 예리하게 시선을 밑으로 떨어뜨렸다. 눈밑살이 처 지지는 않았지만, 낮에는 햇빛을 받고 밤에는 등잔 아래서 몇 시간씩 독 서를 하느라 주름살이 잡혀 있었다. 사부의 법명은 그의 외모를 그대로 표현한 것이었다. 몸은 너무 말라 막대기 같았으며, 등은 살짝 굽은데다 움푹 팬 동굴 같았다. 목은 보통 사람보다 길어서 눈에 금방 띄었다. 사실, 그의 외양은 허수아비 같았다. 하지만 사이훙은 근육의 움직임을 느껴 보기 위해 사부의 몸을 만져 본 적이 있었다. 살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단단했다. 아무리 손에 힘을 주어 도 뼈를 만질 수 없었다. 두루미 신선은 습관적으로 뒷짐을 지고 다녔다. 도복의 긴 소매가 양손 을 덮으면 팔이 없는 모습이 되어 흡사 조용히 서 있는 두루미 같았다. 머리와 몸뚱이를 가늘고 긴 다리 위에 얹고 서 있는 그런 형상이었다. 사 부는 수업에 들어가지 전, 앞에서 학생들을 하나하나 주시하면서 왔다갔 다 했다. [안녕하십니까? 사부님.] 학생들이 일제히 인사를 했다. [흥! 나를 사부라고 부르지도 말아라! 그렇게 잡담이나 하고 떠들다니 도대체 규율이 서지를 않았어! 산길을 올라오면서 너희가 떠드는 소리를 다 들었다.] 학생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말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사부님, 모두 저의 잘못입니다.] 후디에가 이렇게 말을 하고 나섰다. 그 순간 붓으로 그린 것 같은 두 눈에 불이 붙었다. 손이 가볍게 밑으 로 내려섰다. 후디에는 아주 인내심이 강했지만 얼굴이 벌겋게 상기 되었 다. [감히 네놈이 말을 하다니!] 두루미 신선이 강한 어조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사부님.] 후디에가 절을 하며 말했다. [이 일은 전적으로 이 못난 놈의 죄입니다.] [네놈이 제일 연장자이니 네 책임이니라.] [그렇습니다. 제가 그들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비난을 받아야 할 사 람은 바로 접니다. 저에게 벌을 내려 주십시오.] 사부는 마음이 누그러졌다. 사이훙은 감탄하여 사부를 쳐다보았다.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저 놈은 이 늙은이가 자기를 너무 좋아해서 벌을 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는 거다. 교활한 놈! 좋다. 준비, 시작!] 사부가 명령했다. 학생들은 우르르 몰려나가 일제히 봉을 휘둘렀다. 봉의 동작을 모두 끝냈을 때 두루미 신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부는 칭찬도 꾸지람도 하지 않았다. 학생들이 성취한 정도를 본 후 그 수준에 서 교수를 시작할 것이다. [이렇게 해야 이 기술을 제대로 활용하는 것이니라.] 사부는 봉을 들어올리면서 말했다. [봉을 손으로 꽉 쥐면 안된다. 손바닥과 손가락을 이용해 조정해야 한 다. 봉을 아래로 내려칠 때는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고 그 동작에 힘을 집 중시켜야 한다.] 사부는 사이훙을 바라보았다. [사이훙, 이리 나오너라. 이 부분을 시범 보여라.] 사이훙은 있는 힘과 기량을 다하여 동작을 연기했다. 그는 자신이 있었 다. 도시에 있을 때 무술 경기에 나가 우승을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일련의 동작 자체는 번개 같이 빠른 속도로 발을 움직여 공세를 취하 는 것으로 사이훙에게는 진부한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 하나의 동작은 변 형 동작의 최고 수준으로 인정된 기술들을 한데 모은 것으로 아주 탁월했 다. 사이훙은 자랑스럽게 봉술 동작을 끝냈다. [겨우 봐줄 만하군. 그 정도 밖에 안 되냐?] 사부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두루미 신선은 잔디밭 가운데로 힘차게 뛰어올랐다. 기괴한 자세, 익살 스러운 걸음걸이, 애처로울 정도로 야위었다는 인상을 온데 간데 없이 사 라져 버렸다. 모든 근육들은 날쌔게 움직였다. 팔다리의 근육이 생동감 있게 꿈틀꿈틀 움직이는 게 손에 잡힐 듯이 확실하게 보였다. 봉은 성난 휘파람 소리를 내며 창공을 갈랐다. 봉의 끝이 휘휘 돌아가며 그 추진력 으로 자유자재로 휘었다. 사부는 신기에 가까운 동작을 보이고서도 숨을 헐떡거리는 기색 조차 보이지 않았다. 두루미 신선은 신사가 방금 우산을 빙글빙글 돌리는 일을 끝낸 것처럼 아주 자연스런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분기탱천하던 그 무 서운 괴력은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동작 준비!] 사부가 사이훙에게 말했다. 사이훙은 자세를 낮추었다. 사부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섬뜩했다. 사이훙은 몸의 자세를 이리저리 바꾸 며 동작을 취했다. 두루미 신선이 사이훙의 몸을 스치면서 팔꿈치로 찌르기도 하고 밀기도 하면서 사이훙의 팔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사이훙은 자신의 의지대로 움 직여지지 않는 것을 느꼈다. 대신, 사부의 살아서 꿈틀대는 힘이 사이훙 의 몸 속으로 들어왔다. [그것 봐라. 더 좋아지지 않았냐?] 사부가 이렇게 물었다. 섬세한 움직임을 따라가면서 몸 안으로 뭔가가 밀려드는 느낌이 일었다. 사이훙은 무술 동작이 발전하고 깨달음이 새로 워졌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사이훙은 봉을 향한 자신의 자세가 새로워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손바닥과 손가락으로 봉을 쥐면서 봉의 부드러운 표면을 느꼈다. 여러 방 향으로 봉을 돌리면서 보이 압력을 받아 회전하고 변화하는 것을 알았다. 그의 손아귀에 들어온 봉은 딱딱하고 굽힐 줄 모르는 저항력이 있었지만, 그 길이대로 자유롭게 구부러졌다. 사이훙이 봉에 힘을 쓰면 거의 감지할 수 없는 정도로 봉이 떨리면서 그의 힘에 대한 반응을 보였다. 나무 작대 기와의 대화 - 한편으로는 그의 명령에 복종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의 무게에 저항하면서 이루어진 - 는 사이훙에게 자신의 신체에 대해 더 많 이 깨닫게 해 주었다. 몸 밖에 있는 무거운 봉을 돌리면서도 몸 안으로 관심을 기울이게 하는 것 같았다. 사이훙은 팔과 어깨 근육의 수축과 이완 그리고 가슴의 힘이 어떤 역할 을 하는지를 깨달았다. 폐에는 풀무가 움직이는 것 같은 리듬이 있으며 일련의 봉술 동작의 요구에 부응하여 가속도가 붙는다는 사실을 배웠다. 어쨌든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전에 알고 있던 지식에 다시 변화가 일어 난 것이다. 사이훙은 두루미 신선과 과연 접촉이 있었는지도 의아스러웠다. 지식이 직접 전달될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지금 바로 그런 현상 이 일어난 것이 아닐까. 그러나 사이훙은 잠깐 그런 생각을 했을 뿐이었 다. 그의 관심은 오직 오늘 배운 봉술을 완성하고 새로 터득한 깨달음에 몰입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한 시간 동안 연무를 계속했다. 재검토하고 완벽하게 다듬고, 동작들을 하나하나 섭렵해 나갔다. 두루미 신선은 그들을 유심히 지켜보 면서 교정을 해주고 학생 개개인에게 지시를 내렸다. 마침내 그들이 피곤 해 하는 것을 보고 유쾌한 듯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내가 너희에게 철학을 얘기해야 겠구나. 재미있지? 성직자 지 망생에게도 철학이 더 필요하다니 말이다.] 농담이었다. 그러나 수업 중 웃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으므로 대담한 학 생 몇몇 만이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봉과 검에 대해 더 자세히 말해 주마.] 사부의 설명이 시작되었다. [봉의 핵심적 본질을 이해시키기 위하여 한 가지 이미지를 만들어 주겠 다. 봉은 우산에 비유될 수 있다. 사이훙은 당황했다. 봉이 어떻게 우산과 같을 수 있을까? [상상력을 좀 발휘해 봐라.] 사부가 재촉했다.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그는 즐거워했다. 다른 학생들 보다 경험이 풍부한 후디에조차 일찍이 그런 비교를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두루미 신선은 그 비밀을 털어놓았다. [봉을 적절히 활용하려면 봉을 몸에서 여러 각도로 변경시켜야 한다. 수련자를 중심으로 펼치는 것이다. 봉이 미치는 범위가 있다. 신체는 우 산 자루와도 같으며 봉 자체는 움직이고 펴지는 우산의 살에 비유할 수 있단다. 우산은 펴지기도 하고, 닫히기도 한다. 봉은 몸 가까이 있기도 하고 밖으로 밀려나기도 한다. 그러나 우산과 똑같이 손의 지레 작용에 의해 나오는 움직임이니라. 우산 자루와 살은 명백히 서로 분리되어 있 다. 그것들은 서로 반대되는 각도에서 작용을 한다. 이것이야말로 봉의 원리인 것이다. 이제 검()의 철학으로 이야기의 방향을 돌려 보자. 역시 거기에도 적 절하게 부합되는 이미지가 있다. 검은 용에 비유하는 것이 가장 적당하 다. 검의 특징은 봉과는 정반대이다. 봉은 늘 별도의 도구에 불과하지만, 검은 검사와 혼연일체가 되어야 한다. 인간과 무기 사이에 차이점이란 있 을 수 없는 것이다. 둘은 한 몸이니까 말이다. 구름 속에서 하늘로 올라 가는 용처럼 몸을 뒤틀고, 방향을 틀고 비비꼬고, 껑충 뛰어 오르거나 비 상한다. 자, 이제 너희의 칼을 잡아서 들어라. 다루는 법은 봉과는 다르다. 너 희와 칼은 한 몸이다. 따라서 수족은 그 단위의 일부인 것이니라. 모든 집중력을 환히 밝혀서 칼날 끝에 모아라. 칼날이 번쩍번쩍 빛을 발하게 하여라! 여기 길을 찾고 있는 용이 있다! 시작!] 사부가 강조했던 대로 검은 사방으로 뻗어 나가지 못했다. 칼이 닿는 범위는 확실히 봉이 미치는 범위와는 비교할 바가 못 되었다. 검을 쓸 때 는 칼날을 몸에 붙여 세우고 빠르게 선회시킨다. 전투에 임해서는 짧은 거리에서 살짝살짝 피해 가면서 몸과 다리를 휘휘 돌리고 칼날로 비스듬 히 얇게 저미는 것이 검법이다. 칼이 바깥쪽으로 밀릴 때는 뒤로 빼내기 만 할 것이 아니라, 각도를 다르게 잡아 크게 베면서 제자리를 다시 찾아 준다. 그 일련의 동작은 뱀이 꼬불꼬불 움직인다는 생각이 들게 할 만큼 생동감이 넘쳐 흘렀다. 이 특별한 검법은 양손을 다 쓰는 동작이 거의 없다. 비워 둔 한 손은 결코 휘두르고만 있어서는 안 되게 되어 있다. 그 손 역시 취해야 할 정 교한 동작들이 있다. 검지와 중지는 쫙 펴고 약지와 새끼손가락은 둥글게 구부려 엄지 손가락 밑에 대고 있어야 한다. 이 손 모양은 단순히 좌우 균형을 취하려고 검을 모방하는 동작이 아니다. 이 동작을 마력적인 수호 신으로 믿고 있기 때문이다. 옛날의 검객들은 칼날이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날 때마다 검의 신비한 힘이 영혼을 상하게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 고 손 동작을 하면 검법을 쓰는 사람은 해를 입지 않는다고 믿었다. 검은 인생의 총체적인 한 단면이었다. 황제와 관리는 항상 보석이 박힌 상감 세공의 아름다운 칼을 지니고 있었다. 귀족들은 철퇴나 도끼 같은 거친 무기보다 검을 가지고 싸움을 벌였다. 고대의 유명한 시인 중에 검 의 전문가가 많았다. 검에는 개인의 성품과 초 자연적인 힘, 그 소유자의 운명까지 담겨 있다고 믿어졌다. 배나무로 만든 칼은 신비한 마력이 있다 고 믿어졌기 때문에 도인들이 굿을 할 때 사용하였다. 사이훙은 칼을 잡는 것이 다른 물건을 잡는 것과는 다르게 느꼈다. 검 은 수련용 도구 그 이상이었다. 그는 칼에 얽힌 수많은 전설을 익히 알고 있었다. 또한 그에게 진짜 살인용 칼은 없었으므로 그것은 단순한 무기라 고 할 수 없었다. 보검()은 정말 생명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칼을 잡아보면 즉시 느낄 수 있었다. 보검이 사용해 달라고 간청하는 것 같았다. 검객들의 표현대로 <살기>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가 쥐고 있 는 칼은 의식, 전장, 충성, 마법, 그리고 종교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사 이훙은 검도와 인생의 진수를 칼을 만지며 느낄 수 있었다. 그는 훌쩍 뛰어 올라 칼 쓰는 동작을 해보았다. 느낌이 아주 좋았다. 단지 칼을 세게 내리치기만 하지는 않았다. 검의 본성은 섬세하기 때문에 우아함과 특별한 감각을 요구하였다. 칼의 성질로 보아 여러 가지 다른 근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봉을 쓸 때처럼 길이가 긴 근육이나 덩치가 큰 근육이 아니었다. 칼은 팔과 몸 속에 깊이 들어 있는 수십 개의 작은 근육을 필요로 한다. 힘의 정교한 조정이 있어야 했다. 봉술은 벽에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았다. 그러나 검술은 교묘하고 우아한 달필로 수필을 쓰는 것과 같았다. 사이훙은 검의 뿌리가 자기 몸속에 내려 있다고 느꼈다. 그가 한 번 숨 쉴 때마다 칼끝 뾰족한 곳까지 그의 숨결이 전달되는 듯했다. 사이훙은 전속력으로 칼을 휘두르며 온 힘을 다 바쳤다. 두 발이 자유자재로 움직 였다. 전에 어떤 기예를 펼치거나 운동을 해봤어도 이런 희귀한 순간을 맛볼 수는 없었다. 힘을 쓰지 않는데도 저절로 몸의 동작이 흘러나왔다. 두루미 신선은 사이훙의 검술을 주목했다. 그러나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칭찬은 자만심을 키워 준다. 그래서 단지 이렇게 말했다. [나쁘 지는 않군.] 그리고 학생들에게 여러 번 반복하여 재 복습하라고 지시했 다. 봉과 칼을 써서 수련하는 이 일련의 특수 동작들은 싸움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신체 단련에 그 목적이 있었다. 사실 중국은 오락용 스포츠가 거 의 전무한 중세 상회였다. 황소 없이 쟁기를 끄는 농부나 일대 일로 시합 을 하고 싸움을 벌이는 무사가 있었다. 이들은 축구 같은 스포츠를 하려 는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운동은 중국인의 일상 생활에서 저절로 우러나 는 행위였다. 별도의 인간 활동으로 생각되는 일은 없었다. 정작 젊은이 들에게 체육 교육을 시켜야 할 필요가 생겼을 때, 중국인들은 생활 속에 서 친숙했던 두 가지 무술을 골라 건강 증진에 이용했을 뿐이다. 봉술은 검술과는 달랐다. 봉은 수련자에게 신체의 양면을 구사할 수 있 는 법을 가르쳐 준다. 봉은 움직여 뻗치는 길이에 따라 각도를 맞추어야 한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번갈아 돌리면서 뻗치는 길이에 따라 봉을 찌 른다. 보통 15분간 지속력으로 전속력을 내서 봉을 휘두르면 세찬 저항력 이 일어나 근육이 단단해지면서 조각처럼 다듬어진다. 검은 우아한 몸가짐, 마음가짐, 그리고 태도를 가르쳐 준다. 검술은 봉 만큼 육체적으로 강한 힘을 낼 수는 없다. 그 대신 칼끝에 집중력을 모아 정교하게 베고 피하는 도형에 역점을 둔다. 보검은 무기를 차단하기 위해 쓸 수는 없다. 그것은 쉽게 부러지기 때문이다. 이런 몇 가지 칼의 특징 은 여러 가지 검법에 영향을 미쳤다. 무릇 검술가는 몸을 비틀고, 회전하 고, 차고 오르며, 몸을 낮게 웅크리는데 이는 가장 작은 틈새를 노리는 날쌘 검객을 모방한 것이다. 교육에 쓰이는 이들 무기의 무게는 다양했다. 처음에 배울 때는 가벼운 나무로 만든 무기를 쓴다. 수련생의 실력이 늘면 무기의 무게 적응훈련제 에 따라 더 무거운 무기를 제공받았다. 가장 무거운 것은 그 무게가 11킬 로 이상 나갔다. 최고의 무게까지 다 통과한 학생은 2킬로 정도의 가벼운 무기를 받았다. 그 다음에는 극적 효과와 표현을 섞어서 아주 힘있게 그 리고 눈이 핑핑 돌 정도로 빨리 그 일련의 동작들을 펼쳐 보일 수가 있게 된다. 두 시간이 지난 후 두루미 신선은 수업을 마치고 학생들에게 휴식을 허 락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 산으로 산보 를 나갔다. 도인들은 활동을 할 때마다 철저하게 이론적 근거를 생각했다. 산행도 예외는 아니었다. 산보는 힘과 질병에 대한 저항력을 길러 주므로 몸에 좋았다. 다리의 힘을 키울 뿐 아니라 순환계와 호흡계의 작용을 자극한다 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물론 산보에는 종교적 의미도 함축되어 있었다. 빠른 걸음으로 걸을 때라도 식물이나 곤충을 밟아서는 안 되었다. 완벽한 침묵을 지키고 걸으면서 그들이 지나치는 자연의 미와 담겨진 뜻을 성찰하도록 하였다. 자연과 도()는 완전한 동일체는 아니 었다. 그러나 자연은 도의 좋은 본보기였다. 따라서 예리한 인식력으로 자연의 미묘한 내적 현상을 이해할 수 있는 학생이라면 자연을 보고 도에 대한 깨달음을 고양시킬 수도 있으리라. 산보를 시작하면서 사이훙은 가슴 뭉클한 감동을 받았다. 그가 걸음을 내디딜 때 짚신은 흙먼지를 풀풀 날리며 자갈길 위에서 저벅저벅 소리를 냈다. 다리의 근육이 굽혀졌다 펴졌다 하는 느낌이 왔다. 허벅지에 찬 긴 각반이 줄었다 늘었다 하고 그가 한 발짝 두 발짝 내딛으면 오금이 움직 거렸다. 마침 언덕받이로 통하는 길이 시작되었다. 대퇴부의 사두고근까 지 합쳐져 모든 근육들은 상호작용을 하며 서로서로 변화에 상응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이훙은 산을 구경하고픈 열망 때문에 발걸음을 재촉했 다. 길 옆에는 잡초들이 무성하게 우거져 있었다. 풀, 덩굴의 파릇파릇한 새싹들이 서로 내기라도 하듯 땅 위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조그만 붉 은 파리들과 햇빛을 받아 얼룩덜룩 눈이 부신 반점 모양의 각다귀들이 빙 빙 나선형을 그리면서 윙윙거렸다. 그는 가슴 가득히 숨을 들이마셨다. 화산은 특히 봄날씨가 따갑지만, 오늘은 부드러운 산들바람이 불어와 따 스한 느낌을 주었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게 되어 기뻤다. 벌판에서 풍기 는 풀내음이 향긋했다. 풀과 잡초, 지천으로 깔린 초목들, 작은 청록색 이파리들과 그 속의 자줏빛 꽃잎들, 짧은 줄기 위에서 물결치는 수많은 노란 꽃잎들, 이 모든 것이 한데 모이니 나무, 산, 시냇물만큼이나 장엄 한 한 폭의 풍경화가 되었다. 누구든 감사의 마음을 품지 않을 수 없었 다. 산마루를 향해 올라가노라니 시야를 가로지르는 그림자가 떨어지기 시 작했다. 나무들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사이훙은 가문비나무, 전나 무, 소나무 그리고 그 일대에 우거져 있는 활엽수에서 새싹이 돋는 것을 보려고 고개를 쳐들었다. 곧게 뻗은 장미가 당당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 다. 더러는 가지가 부러져 있고, 폭풍우에 쓰러져 넘어진 가지, 모양 없 이 베어진 가지도 있었다. 그러나 자연 그대로이기에 더더욱 아름다운 풍 경이었다. 꼬불꼬불한 산길을 아치처럼 뒤덮은 나무들, 그러나 햇빛을 받 아 희게 드러난 나뭇가지들은 하늘을 덮는 숲과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둘 레가 너무 커서 팔로 안을 수 없는 아름드리 나무들, 땅에서 솟아 나온 나무의 근육인 양 툭툭 불거져 나온 몸통 큰 나무들은 수세기가 넘는 나 무들이었다. 사이훙은 물소리를 들었다. 산길 옆, 바위 너머에 세차게 흐르는 시냇 물이 있었다. 시냇물 소리에는 무언가 특이한 게 있었다. 시냇물 소리를 하나하나 구별할 수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소리들은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시냇물이 바위 위로 떨어질 때마다 쏴 하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마치 악단의 대 연주 같았다. 새들이 하늘에서 큰소리로 노래했다. 새들의 합창 소리는 좔좔 흐르는 물소리보다 크게 들렸다. 바람에 휘날리는 나뭇가지들은 탁탁 부딪치는 타악기였다. 수천의 나뭇잎들이 일제히 소리내어 박자를 맞추었다. 합창 이 뒤에서 받치는 가운데 이따금씩 독주도 있었다. 애처롭게 울어대는 곤 충과 윙윙 거리는 벌들. 사이훙은 시냇물이 흐르다 끊어진 곳에서 축축이 젖은 땅덩어리가 뿜어 내는 흙 냄새를 맡았다. 공기는 나무 밑이 더 차거웠다. 소나무, 가문비 나무와 삼나무 냄새가 흙과 바위 냄새와 뒤범벅되었다. 냄새는 그의 본능 을 자극하였다. 그 냄새들은 원시적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인간이 정교하 게 가꾸고 생활의 수단으로 만든 감각 중에서 또는 인간이 질식시켜 버린 감각 중에서 후각이야말로 가장 단련이 덜된 마지막 감각이다. 시각은 회화, 예술, 미를 숭배함으로써 채워진다. 청각은 음악을 듣고 즐거워한다. 미각은 음식을 대하면 굽실대며 아첨한다. 사람들은 촉각으 로 수천 가지 관능의 희열을 맛본다. 또한 모든 감각은 금욕적이고 점잖 은 체하는 사람들의 요구에 따라 그만큼 작아졌다. 시각은 회색 담장 때 문에 무디어질 때로 무디어졌다. 청각은 침묵으로 인해 쇠퇴하였다. 촉각은 두꺼운 옷에 덮여 죽어갔다. 미각은 간단한 음식에 맛들이는 곤욕을 치렀다. 오로지 후각만이 억압받지 않고 자유를 누렸다. 일찍이 코를 틀 어 막은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다. 그렇게 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 에 다름 아니었을 테니 코는 자유로워야 했다. 그렇게 해서 후각은 마음 대로 감각을 발휘했다. 코가 더러운 악취를 탐지하면, 온 몸은 경련을 일 으킬 수도 있다. 또 우리 몸이 사향과 향료를 감지하여 쾌락을 추구할 수 있게도 한다. 심지어 성인들도 극기를 추구하기 위해 후각을 승화 시킬 수 없었다. 도저히 냄새를 맡지 않고 피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맑은 산 공기와 코끝은 자극하는 향내음을 맡으며 후각을 달랬다. 후각은 혼자서 쾌락을 맛보고 기억의 목록을 만드는 강한 감각이다. 젖은 땅 냄새가 송진 냄새와 함께 코를 찌르자 퍼뜩 지나온 과거가 생 각났다. 사이훙은 다양한 식물들, 곤충들의 기괴한 짓들, 폭풍이 남기고 간 잔해들을 새로이 발견하고 나서 세속을 파헤치며 느끼던 흥분을 되살 렸다. 사이훙은 숲속을 거닐면서 조금도 피곤하지 않았다. 평생 한 번도 숲이 달라진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무한한 변화가 일어났지만 숲은 항상 계절의 순환에 순종했다. 자연에서 그 점이 기이한 현상이었다. 만물은 자연의 질서에 엄격히 복종했다. 그러면서도 만물은 하나 하나가 다 달랐 다. 그는 햇빛을 받으며 우아하게 활처럼 굽어 있는 가느다란 가지들을 보았다. 나뭇잎들은 서로 달랐지만 다 같은 녹색이었다. 그러나 가지의 뒤틀림, 엽맥들의 모양, 또는 잎의 톱날처럼 뾰족뾰족한 면들은 다 제각 각 이었다. 자연은 규칙적인 동시에 천태만상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더 높이 올라갔다. 거대한 옥석들, 그 밑바닥에 끼여 있는 이끼 류, 알알이 몸을 드러내어 깨끗해진 돌들이 땅을 덮고 있었다. 키 작은 잡목은 말라 죽기 직전이었다. 바위와 메마른 땅 사이에 비옥한 토양이란 없었다. 그래서 키 큰 나무와 식물만이 바위 틈새를 비집고 땅속 깊이 뿌 리를 내릴 수 있을 뿐이었다. 그것들은 쑥쑥 자라났다. 더 불리한 환경이 더라도 충분히 살아 남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몇몇 다른 식물들에겐 이점도 있었다.다른 물체에 붙어 사는 담쟁이 덩 굴이 그랬다. 하지만 대부분 잘 자라고 있는 식물은 키 큰 나무였다. 나 무들은 탑보다 키가 더 컸다. 가지들은 힘차게 뻗어 나갔다. 그러나 낮은 계곡에서처럼 하늘을 뒤덮지는 않았다. 하늘은 크게 조각난 추상의 아름 다움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하늘의 짙푸른 청색은 색조가 너무 선명해서 나무의 전경이 아닌 하늘의 전경을 보는 것 같았다. 그들은 곧장 가서 산마루가 나오는 길목에 이르렀다. 산을 따라 올라가 면 지구의 끝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 도인들의 믿음이었다. 침술가들이 혈도를 연결해 정문()의 과학을 수립한 것과 같이 도인들도 땅속에 숨어 있는 지맥들의 학문적 체계를 완성했다. 이런 종류의 길을 <용의 정 문>이라고 불렀다. 옆모습이 몸을 뚤뚤 만 용을 닮은 산등성이에 그 정문 이 있었다. 주요 맥은 당연히 용의 등을 타고 위로 올라갔다. 엇갈려 올 라가는 산길은 산의 이런 흐름을 침범할 수 있었다. 따라서 기()의 자 연스런 흐름을 따라가면 조화를 깨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그것은 매우 어려운 산행이었다. 어려운 산행이지만 걸음을 재촉해서 올라가니 비길 데 없이 웅장한 먼 산의 풍경을 볼 수 있었다. 민둥 바위산 위로 더 높이 올라갈수록 오면서 볼 수 없었던 지평선이 시야 가득히 장엄하게 뻗어 있었다. 발밑에 깔린 구름은 짐승의 무리처럼 떼를 지어 몰려가고 있었다. 왼편에서는 산맥이 줄지어 달리다 마침내 안개 낀 푸른 하늘 속으로 숨어 버렸다. 사이훙은 아래 쪽에 폭포의 흰 물줄기가 끊어지는 곳마다 울창한 숲이 우거진 작은 언덕이 있는 것을 보았다. 오른편에는 인간의 흔적을 말해 주는 여러 잡 동사니들과 들판이 있었고, 수십 킬로쯤 되는 곳에 몇 개의 마을이 보였 다. 정상을 향해 올라가노라니 사이훙의 모습은 우스울 정도로 왜소했다. 산의 위용은 아래에 있는 문명 세계를 아주 하찮게 만들었다. 끝까지 올 라가 정상에 서 있으면 무언가 그가 천국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것 이 있었다. 사회와 철저히 단절되어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정상에 서는 사회의 자취를 내려다 볼 수 있었다. 중국 본토를 뱀같이 휘어 횡단하는 갈색의 황하조차 작게 보였다. 그리 고 속세는 그 힘찬 강물에 비하면 훨씬 더 미약하였다. 바위산에 올라 먼 곳에 있는 속세를 내려다보노라니 사이훙은 마음이 툭 트여 거리낄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들은 수련 장소로 다시 내려올 때까지 1.5킬로 정도 더 걸었다. 정오 가 다 된 시간이었다. 사이훙은 덥고 갈증이 났다. 먼 길을 걷느라 피곤 해진 허리와 다리가 쑤셔왔다. 늙은 소나무 밑으로 다가갔다. 나무껍질과 솔방울이 있는 부드러운 풀밭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두루미 신선이 말을 시작했다. 산행 이후 입 밖으로 낸 첫마디였다. 그러나 별 관심이 없던 사이훙은 때마침 바짓가랑이 위로 기어오르는 무당 벌레를 관찰하고 있었 다. [특별한 식물을 발견한 사람 있느냐?] 사부가 물었다. [접니다, 사부님.] 산시에서 온 젊은이가 말했다. 사이훙은 혼자 생각했다. <좋아, 당신들은 강의나 다시 시작해라. 나는 좀 쉬어야겠으니까.> 사이훙은 따뜻한 햇볕을 쬐려고 다시 앉았다. 산행 끝에는 항상 토론이 열린다. 두루미 신선은 질문을 던지거나 학생들의 관찰 결과를 듣고 싶어 했다. 그는 학생들이 예리한 관찰을 했다는 확인을 원했다. 산시 출신의 수련생은 몸은 허약했지만 열변가였다. 제자들은 그가 사부의 마음을 기 쁘게 하기를 바랐다. [사이훙!] 사부가 갑자기 부르는 바람에 깜짝 놀란 사이훙은 자기가 얼마나 깊이 생각에 빠져 있었는지를 곧 알아차렸다. [네, 사부님.] 그는 재빨리 대답했다. [노란 귤잎 하나가 우리가 지나다니는 길에 떨어졌다. 그것을 말해보아 라.] 떨어지는 잎이라고? 봄에? 사이훙은 필사적으로 생각을 더듬어 봤다. 하지만 어떤 잎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것을 못 봤단 말이냐?] 두루미 신선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물었다. [투사가 되는 것을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던 네게 만일 화살이라도 날아 왔더라면 어쩔 뻔 했느냐?] 사부는 사이훙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도록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당장 떠오르는 것은 자신이 이처럼 바보 같은 꼴이 된 게 너무 싫다는 생각뿐 이었다. 하지만 사이훙은 겸양과 깨달음을 얻기 위해 산에 갔다는 사실을 다시 상기했다. 그는 자존심을 누르고 사부를 올려다 보았다. 그러자 사 부는 부드럽고 친절하게 말을 이었다. [이런 것들은 눈으로 봤어야지. 사물을 보면 왜라는 질문을 꼭 해야 한 다. 그것은 겨울을 살아 넘긴 것일까? 나무는 병이 들었을가? 물이 부족 했을까? 무엇 때문에 쓰러졌을까? 나뭇잎이 떨어졌을 때 그 절묘한 색을 관찰하려고 노력이라도 했다면 녹색과 갈색의 무리를 배경으로 귤잎과 황 금빛이 나풀거린 것을 놓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을 보지 못한 것은 감 각이 둔한 것이다. 우리는 자연 속에 있기 위하여 이 산 위에서 살고 있다. 인간의 부정한 행동, 불쌍한 행동, 잘난 체하며 문명이라고들 하는 정신적 오염을 피하 는 것이다.우리는 시끄러운 소음, 인간의 악취, 음탕한 웃음과 자기 연민 속의 한탄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우리를 순화하고 성스러운 삶을 영위하 기 위해, 자연으로 물러나 있는 것이다. 자연과 동물들은 순진 무구하다. 우리는 사슴의 시체를 발견하거나 뇌우에 찢겨진 나무를 보면 자연을 잔 인하고 무자비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자연의 길이요 자연의 논리이다. 자연에는 인간이 갖는 희망적 관측과 어리석은 감상 따 위는 없다. 이 순수함과 천진함은 신과 신성과 도가 완벽한 조화를 이룬 결과이다. 만약 우리가 도와 조화를 이루고 싶다면, 본질적으로 도와 일 치하는 곳에 자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자연의 선물을 알아채지 못한다면, 자연 속에 산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우리가 종종 놓치고 못 본다해도 자연은 말씀으로 가득 차 있 다. 그리고 우리가 보고도 이해할 수 없다 한들 눈이 닿는 곳마다 너희를 위한 수만 개의 성스러운 말씀이 들어있다. 단지 너희들이 볼 수 있는 눈 을 갖지 못했을 뿐이다. 그 나뭇잎은 신이 주신 말씀의 암시일 수도 있 다. 그러나 너희가 그만 놓치고 말았구나.] 수업이 끝나고 사이훙은 정오의 기도와 점심 식사를 위해 산 중턱을 오 르기 시작했다. 그는 후디에와 동행하는 것이 기뻤다. [얘야, 나는 며칠 후에 또 하산할 거란다.] [그렇게 빨리, 형? 여기 온 지 한 달밖에 안 됐잖아.] 사이훙은 불안감을 느끼며 말했다. [그래. 하지만 마음이 점점 좌불안석이야. 게다가 베이징에 가서 신경 써야 할 일도 있고.] [물론 형의 여자 친구겠지.] [그래 여럿이 있지만 그녀가 제일 특별한 존재거든.] 후디에가 미소를 지었다. [형이 부러워. 형은 모험을 찾아서 온 중국을 떠돌아 다니는군. 부자도 미인도 만나면서 말이야. 사람들은 형을 찬미하고 존경해 형의 인생은 너 무나 충만해 있어.] [그런 생활은 너에겐 안 맞어. 너의 운명은 수도자가 되는 것이란다. 그 때문에 의미도 잇는 것이고. 너는 타고난 수도자라고 모두들 말하고 있단다.] [그러나 이건 인생이 아니야. 나는 춥고 배가 고파. 하루 하루가 철저 히 규제되어 있어. 경전 암송과 명상은 지겨워. 신체 단련은 단조롭고 고 될 뿐이야. 게다가 내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항상 반대에 부닥치고 말아. 어느 것 하나 선생님들을 만족시킨 게 없어. 그들은 칭찬할 줄을 몰라.] [너에게 이 생활을 강요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 말은 맞아. 나는 16살 때 도인으로 예정되었어. 내가 한 선택이지 만 아직도 속세의 생활이 생각나. 내가 올바른 일을 하고 있는지도 궁금 해. 형도 혹시 의심해 본 적 있어?] [그렇단다. 물론 있고 말고. 모든 사람은 회의를 품는단다. 내가 의미 를 찾아서 이처럼 혹독하게 여행을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란다. 나는 현명한 도인들에게 배울 수 있을 만큼 많이 배우고 있지. 그리고 바깥 세 상에서도 가능한 한 충실히 산단다.] [형은 행운아군. 양쪽 세계에서 가장 좋은 것을 취하고 있으니. 형이 쉬고 싶거나 자신을 찾고 싶거나 상처를 치유 받고 싶으면, 언제든지 이 곳으로 돌아오고. 그러다 다시 비단옷을 입고 값비싼 보석을 차고 값 나 가는 말을 타고 흥청망청한 연회에도 가고 밤새도록 도박도 하고 여인들 의 사랑도 체험하는군.] [아, 너를 홍작약루()같은 곳에 데려가 쾌락을 알게 하질 말걸 그랬다. 사부가 아신다면 우리 둘 모두를 벌하실 거야.] 후디에가 웃으며 말했다. [데려가 달라고 청한 쪽은 나였는데 뭐.] [내가 동의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사이훙은 몇 번이나 후디에와 함께 여행을 했던 때를 회상했다. 사이훙은 금을 입힌 조각물, 밝은 등롱, 물이 첨벙이는 분수대, 향긋한 녹나무와 백단으로 된 병풍이 있는 번쩍거리는 넓은 홀을 떠올렸다. 관능 적인 여자들이 염색된 값비싼 비단옷을 입고 있었다. 꿈결 같은 악기 선 율 또한 그의 영혼을 흔들었다. 향긋한 음식 냄새, 사향 향기, 꽃이 핀 난초, 아름다운 양귀비꽃의 혼을 빼놓는 듯한 선정적 향기가 다시금 그를 충동질 했다. 손끝에 닿던 마작의 느낌이 다시 살아났다. 촉각으로 느낄 수 있는 아프리카 흑단과 버마산 자단의 냉랭하고 둥근 조각품들의 느낌 이 다시 돋았다. 순결의 맹세가 떠오르면 오로지 안간힘을 쓸 수밖에 없던 때였다. [그런 장소를 구경한 것이 기뻤어. 형이 말하는 온갖 신나는 일들을 들 었어도 직접 경험해 보지 않았더라면 충분치 못했을 거야. 하지만 그런 세상은 나에겐 맞지 않았어. 나는 술 마시는 걸 싫어해. 아편도 싫어. 독 신의 약속을 깨뜨릴 필요성을 느끼지 않아. 그러면서도 여전히 자제와 극 기의 엄격한 생활이 최선인지가 궁금해.] [나는 네가 세속에 흥미가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어. 그러나 너는 그 세계가 너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생각을 해야 해. 일본인은 이 나라의 엄청난 땅을 차지했어. 장 제스()와 국민당은 충칭( )의 정부를 다스리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일본과 싸우면서 동 시에 공산당의 등뒤에다 칼을 꽂고 있단다. 아시아 너머의 독일은 폴란드 를 침공했고, 전세계는 전쟁 속으로 빠져 들고 있어. 사람들은 셀 수 없 을 만큼 많은 사람들을 서로 죽이고 있어.] [나는 2년 전 중일 전쟁에 참전했었어. 끔찍한 일을 경험했지. 내 나라 를 위해 싸웠어.] [그 잔학 행위는 지금도 끝나지 않았단다.] [형은 내가 어떻게 하길 바라지? 옌안()의 마오 쩌둥()에게 가담할까? 형처럼 군벌들과 손을 잡을까? 나는 출가인이야. 그리고 정치 는 영원하지 않아.] [네가 살아오면서 중국에서 하루라도 전쟁이 없는 날이 있었니? 그걸 부정할 수 있어? 이젠 중국만이 아니라 온 세계가 불안하게 흔들리는 판 이라고. 유럽 전체가 전쟁에 휘말려 들고 있어. 급기야 이 싸움은 미국, 심지어 남미까지 파급될지도 몰라. 전 세계가 파괴되어 있는데 너는 앉아 서 명상만 하고 있다니.......] [도교는 가슴의 철학이야.] 사이훙이 변함없는 태도로 말했다. [도교를 근절시킬 수는 없지. 도는 영속적인 것이야. 이 지구가 멸망한 다 해도 도에 영향을 미칠 수는 없어. 나에겐 보고 배울 사람들이 있어. 사부님과 사형들이 그래. 그들이 이룩한 수준을 알게 되니 그 수준에 도 달할 수 있는 힘이 한결 더 솟아나고 있어. 물론 나는 그들이 성취한 것 들이 전쟁이나 기타 역경에 영향을 받을 수 없다는 것 알고 있어. 왜냐하 면 그것들은 내적인 승리이니까. 나는 혼자서 의혹을 품고 있을지도 몰 라. 그러나 정치로 씻어 낼 수는 없는 거야.] [네 신념은 확고부동하니?] [그래, 확고해.] [세상은 최후의 계시로 다가갈지도 모르는데 네 생각은 변함이 없구 나.] [검소하고 소박한 생활을 통해 나는 좋은 효과를 보고 있다고 생각해. 보통 사람들처럼 되고 싶지는 않아. 더 크고 더 위대한 인물이 되고 싶 어. 사람들은 숙명의 장난에 희롱 당하는 불쌍한 인생을 영위하고 있어. 나의 인생은 그렇게는 안 돼. 나는 내 스스로 완성에 이르고 싶어.] [나도 역시 그래.] [알아. 형은 완벽 주의자잖아. 우리 둘은 통찰력과 능력을 얻기 위해 희생하지 않으면 안 돼. 단지 목표가 다를 뿐이야. 나는 사부님과 도인의 길을 굳게 믿고 있어. 그런데 형은 어떤지 모르겠어.] [나 역시 완전함과 고행을 신봉한단다. 그렇지 않고는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거야. 내 인생의 바깥에 보이는 장식품을 보고 판단하지는 말거 라. 여자와 도박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니까. 너도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렇게 침착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위인들은 이 혼탁한 지구 상 곳곳에다 질서를 심을 거야. 나는 그 위인들 중 한 사람이 되고 싶단 다. 그러려면 고행과 용기, 지성, 완벽을 향한 매진 그리고 어느 정도의 정화가 수도 생활에 필요한 만큼이나 많이 요구될 것이다.] [형은 우리가 똑같다고 말하는 거야?] 사이훙이 물었다. 그는 둘을 같게 비교하는 것이 흡족했다. [용기를 내어 열심히 정진하도록 해라. 수도 생활과 세속 생활은 칼날 의 양면인 것이다. 결코 분리될 수 없다. 한 면이 없으면 다른 면도 존재 할 수 없는 것이지. 어느 면이 더 낫다고도 못 한단다. 하지만 우리의 운 명을 이해하는 것은 각자의 의무란다. 마음속으로 좋아하는 길을 따라가 는 것만이 성공의 길이란다. 너는 계속 수도 생활에 정진하거라. 육체적, 사회적 욕구가 가차없이 부정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너의 영혼 은 만족을 찾을 수 있을 거야. 너는 좌절감에 빠져 주춤거려서는 안 된 다.] [형, 형의 말은 너무 감동적이야. 형은 왜 수도자로 입문하지 않는 거 지?] 사이훙은 깊이 감동되어 이렇게 물었다. [아마 나도 그럴 거야. 내가 세속적인 방랑을 끝낼 때쯤이면 말야. 내 경험을 완수하기 위해 여행을 해야 되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란다. 사부님 들은 말씀하시지. <출가하지 전에 세상을 맛보아라.> 세속 생활을 실컷 경험하고 나면, 다시 돌아와 이곳에서 영원히 머무를 거란다.] [그러면 그때는 우리 둘이 함께 살 수 있겠네, 항상.] [그렇단다, 언제든지.] 도관의 동종 소리가 힘차게 산 중턱으로 울려 퍼졌다. 기도할 시간이었 다. 그들은 작별 인사를 나눴다. 사이훙은 오래된 청동 향로 옆에 서서 형이 뜰을 나가는 모습을 지켜 보았다. 사이훙은 후디에가 과연 세속을 떠날 수 있을 것인지 궁금했다. 후디에 는 세상에서 오래 살면서 추문도 많이 뿌리고 다녔다. 비밀 단체의 회원 과 군벌의 경호원 그리고 마약 밀수 조직에서 호위대의 일원으로 활동하 기도 했다. 그러나 대사부는 잠자코 있었다. 사이훙은 이 점에 몹시 당황 했다. 사이훙 자신은 농담과 못된 장난을 하고 게으름을 피운 것 때문에 수 차례나 벌을 받았던 반면에, 후디에가 벌 받는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 었다. 대사부는 후디에의 사생활에는 반대했지만, 그것은 그들 두 사람의 사적인 관계에 철저히 가려져 있었다. 두 사람 간에는 그것이 토론이든 질책이든 무슨 일이 있어도 항상 공개되지 않았다. 대사부와 다른 도사들 은 그를 계속해서 아들처럼 사랑했다. 후디에가 그들을 대하는 태도도 한 결같았다. 후디에는 화산에 돌아오면 그를 양자로 맞은 가족들의 흔들림 없는 성원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훌륭한 성취 결과를 가정 교육 때문으 로 생각하고, 화산에 정기적으로 성금을 납부했다. 그러나 그 지역 원로 들은 여러 번 화산에 올라와 그의 비행을 고발하고 그를 체포하라고 주장 했다. 사이훙은 후디에의 기부금 납부가 비행에 대한 보상이 될 수 있는 지 정말 의아스러웠다. 사이훙은 연달아 서 있는 문을 지나서 풍옥천()이 있는 남봉 사 원으로 갔다. 그는 들어가서 청색 도복을 입은 도사들 사이에 끼여 기도 를 올렸다. 맨 앞줄에는 수놓은 비단옷을 입고 기도를 주관하는 도사들이 큰 소리로 경전을 낭송하고 있었다. 연주자들이 찬가를 반주하였다. 정교하게 꾸민 신단 저쪽에 그들이 모시는 신이 보였다. 평생 동안 자 기 수련을 통해 불사신이 되신 과거 화산에 살던 선각자들의 모습이었다. 멀리서 봐도 그 성상에는 먼지가 덮여 있었다. 하지만 찬가와 경전 낭송 이 열을 더해가자 사이훙은 신이 그 소리를 들었을 것이라고 상상했다. 신의 두 눈이 크게 열려 응답을 주는 것처럼 보였다. 절절한 진심이 그의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왔다. 이 금욕주의자가 수련을 통해 구원에 도달했듯 이 그렇게 그와 후디에가 함께 운명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기를, 사형 후디에가 새 사람이 되기를 사이훙은 기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