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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3월 26일 사순절 다섯째 주일 낮 예배 설교 +
+ 제 목 : “십자가에 죽기까지 섬기러 오신 예수님!”
+ 본 문 : 마태복음 20장 25절 - 28절 (신약성경 33쪽)
25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아멘!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선포하겠습니다.
나는 복의 근원으로 살리라. 그러므로 나는 축복의 통로로 살리라.
나는 나눔의 통로로 살리라. 나는 섬김의 통로로 살리라. 아멘! 아멘!
“인사만 잘 해도 먹고 산다.”
- 반미고잘 / “반갑습니다.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잘 했습니다.”
오늘은 사순절 네 번째 주일입니다. 그래서 지난 주일부터 우리 예수님이 왜 오셨는가를,
나누어서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이 땅에 왜 오셨나요?
우리 예수님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친히 오셨습니다. / 우리를 섬기러 오셨습니다.
우리 죄 값을 대신하는 대속물로 자신을 주려고 오셨습니다. / 우리를 풍성케 하려고 오셨습니다.
지난 주일에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 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십자가에 죽기까지 섬기러 오신 예수님!”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나누겠습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20장 28절 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아멘!
우리 예수님은 섬기되,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들 – 저와 여러분의 대속물로 주기 위해서,
죽기까지 섬기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누구를 섬기러 오셨나요? 어느 날 한 율법사가,
예수님에게 나아와 이렇게 물었습니다.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이 물음에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2장 37절 – 40절 말씀, 함께 봉독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아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십계명이 있고, 그 십계명을 보조하는 계명이 있는데,
모두 613가지였습니다. “하라.” 는 계명이 248가지요. “하지 말라.” 는 계명이 365가지였습니다.
공교롭게도 율법을 모두 쓰면 60만 히브리어 문자가 사용되어 지는데, 이스라엘 백성들 중,
계수 된 장정이 60만 명이었을 때, 시내산에서 주어진 율법이었습니다. 그리고 1년은 365일이고,
아담부터 모세까지가 248세대였습니다. 그래서 모든 역사를 초월하는 율법을 하나님이 주셨다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든 율법 중에서 가장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
무엇이냐고 묻는 율법사들에게 예수님이 주신 말씀은 간결하였습니다. 단 두 가지였습니다.
“너의 전부로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가 네 자신을 사랑하듯이 이웃도 그렇게 사랑하라.” 아멘!
이 말씀은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고, 자기를 섬기는 것이 바른 사랑이라는 말씀입니다.
첫째로, 우리가 섬기되 예수님처럼 우리의 전부로 온전히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우리가 섬기는 참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가장 큰 섬김은, 하나님 섬김입니다.
위로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는 사람이 누구를 섬길 수 있겠습니까? 나름대로 섬긴다고 해도,
그 섬김이 제대로 섬기는 섬김이겠습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생활을 하면, 가정도, 교회도,
사람도, 제대로, 바르게 섬기는 삶과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섬김이 가장 우선입니다.
성경에서 보면,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을 보게 되면, 정말로 큰 감동을 받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 제일주의요. 하나님 중심입니다. 감람나무 열매를 추수하는 모습을 보십시오.
감람나무위로 올라가서 가장 위에 부분 중에 잘 익은 열매를 땁니다. 그리고 틀에 넣습니다.
그리고 시계를 보면서 5분 정도 흐르는 기름만, 하나님께 드립니다. 하나님 제일주의입니다.
유대인들은 머리에 모자를 씁니다. 히브리어로 야르물키라 하고, 영어로는 키퍼라고 합니다.
머리위에 모자를 쓰는 이유는 “내 위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라는 하나님 제일주의 신앙고백입니다.
이처럼 유대인들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엄청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그토록 하나님을 제일주의로 사랑하는 유대인들에게, 구원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물론 예수님을 안 믿기에 구원이 없다고 말하면 편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단순하게 말하기에는,
정말로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데는 최고입니다. 나는 그들에게,
구원이 있다 없다에 대하여 말한다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그래서 함부로 말하기가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모범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을 최고로 잘 섬긴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죽기까지 하나님께 복종하며 섬기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하나님을 얼마나 잘 섬겼는지를 우리에게 자세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2장 5절부터 11절 말씀입니다. 좀 길기는 합니다만 함께 끝까지 봉독하겠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함께 봉독한 6절 말씀에 보면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여기서 “취한다.” 는 헬라어 “하르파조” 는 “강탈한다.” “움켜 잡는다.” “놓치지 않으려고,
꽉 붙잡는다.” 는 뜻입니다. 자기 이익을 고집하는 단어요. 내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집단 이기주의가 만연하고, 자기 권리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며, 자기 생각만을, 자기 고집만을,
끝까지 주장하고, 끼리끼리 편 가르고, 싸우고, 매장하고, 죽이는 무서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마음은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지 아니하시고,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내 이익을 포기하는 마음, 양보하는 마음, 나와 달라도 배려하는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나의 원대로 하는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는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아브라함의 종들과 롯의 목자들이 광야에서 물과 풀을 가지고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그 때 아브라함이 롯에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 그래서 롯이 먼저 좋은 땅 - 소돔과 고모라를 차지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자기 이익을 포기하고 나쁜 땅 소알 땅으로 가자, 하나님이 바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13장 14절 - 17절 말씀입니다.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아브람이 자기의 원대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 원대로 하였더니, 오히려 더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원대로 “오히려 자기를 비어...”
자존심도 비우고, 생명까지도 비우고, 물과 피 한 방울까지도 다 비우고, 죽기까지 복종하였습니다.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 우리 예수님은 이렇게 죽기까지 하나님의 원대로 섬기러 오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되 예수님처럼 우리의 전부로 온전히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가 섬기되 예수님처럼 우리의 이웃을 내 자신을 섬기듯 섬겨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을 섬기러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사람들도 섬기러 오셨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섬기는 본은, 제자들의 발을 닦아주는 사랑에서 보여주셨습니다.
다른 사람의 발을 닦아 주는 섬김은, 다른 사람의 가장 더러운 곳을 섬긴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몸에서 가장 더러운 곳은 발입니다. 더구나 흙먼지 투성이인 이스라엘은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집집마다 문 앞에 항아리가 놓여 있습니다. 발을 닦고 집안으로 들어오라는 의미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닦아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안 좋은 곳도 섬기라는 의미입니다.
일본에 유명한 정치가 가다이카라는 분이, 정치범으로 감옥에 들어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가장 더러운 화장실 청소가 맡겨졌습니다. 그는 화가 나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수많은 죄수 중에 왜 하필 나에게 화장실 청소를 시키나요?” - 그러던 어느 날 요한복음,
13장을 읽다가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렇다. 하나님의 아들 우리 예수님도 이 땅에 오셔서,
제자들의 발을 친히 닦아 주셨는데, 나 같은 죄인이 화장실 청소를 못 할 것이 무엇이겠느냐?
화장실 청소는 물론, 죄수들 발을 모두 닦아 주자.” - 이렇게 결심한 그는 세수 대야에 물을,
담아 가지고 다니면서 감옥에서 만나는 죄수마다 발을 닦아 주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감옥에서 가장 밑바닥 일을 자원하여 했습니다. 그는 모범수로 그는 형기를 마치고 나와서,
일본 국회위원에 출마하여 당선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일본 국회 12대 국회의장이 되었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출소한 이후부터 국회의원, 국회의장이 된 다음에도 출석하는 고오치 교회에서,
아침 일찍 교회에 나가서 교회로 들어오는, 교인들의 신발을 받아 신장에 넣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예배를 마치고 갈 때면 제일 먼저 신장 앞으로 가서 신발을 꺼내주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런 섬김의 모습에 온 교우들이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온 성도들도 섬김에 나섰습니다.
한 사람의 사람 섬김이, 온 교회 성도님들이 사람 섬김이가 되게 하는 모델이 되게 하였습니다.
누군가의 발을 닦아 주는 섬김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기쁨으로 섬기는 섬김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닦아 주셨던 섬김은, 바로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섬기는 섬김이었습니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발을 닦아드리는 일은 쉽습니다. 제자가 스승의 발을 닦는 일은 쉽습니다.
신하가 왕의 발을 닦아 드리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스승이 제자 발을 닦아 주기는 어렵습니다. 왕이 신하 발을 닦아 주기는 힘듭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는 것을 섬김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아랫사람이 위에 사람을 섬기는 것은 충성이고,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섬기는 것은 겸손입니다.
예수님처럼 발을 닦아는 주는 섬김은 발의 주인을 보지 않고 섬기는, 진짜 섬김입니다.
얼굴은 닦아주고 나면 표시가 납니다. 그러나 발을 닦아주고 나면 표시가 하나도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러운 발을 닦아주고도 드러나지 않는 섬김이기에, 진정한 섬김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섬김이 참 섬김입니다. 그래서 브라운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은 둘을 주고 하나라도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아홉을 주고도 더 주지 못해서 안타까워,
하는 것이 참 사랑이요. 참 섬김입니다.” - 예수님은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러 오신 분입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예수님처럼 우리의 전부로 온전히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섬기되 예수님처럼 우리의 이웃을 내 자신을 섬기듯이 사랑으로 섬겨야 합니다.
셋째로, 우리가 섬기되 나를 섬겨야 합니다.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아멘!
하나님도 사랑하며 섬겨야 하고, 이웃도 사랑하며 섬겨야 하지만 그 근본은 자기 사랑,
곧 자기 섬김의 바탕위에 있습니다. 자기를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도 사랑할 줄 모릅니다.
자기를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이웃도 사랑하지 않습니다. 수신제가치국 평천하(修身齊家治國 平天下)
모든 것이 나 자신 - 자기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면 자기가 자기를 섬긴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자기의 건강은 자기가 관리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자기의 인격도 자기가 가꾼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에게도 인정받게 행동해야 하며, 하나님께도 사랑받을 행동을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자기가 자기를 사랑하고, 자신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남도 잘 섬깁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고, 자기 자신을 섬기면 세 가지 은혜가 주어집니다.
첫째는, 표시가 납니다. 아무리 은밀하게 섬겨도, 섬김은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은밀하게 섬기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은밀하게 몸으로 섬기는 분들이 있습니다.
은밀하게 물질로 섬기는 분들이 있습니다. 은밀하게 축복의 통로로 사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은밀하게 나눔의 통로로 사는 분들이 있습니다. 은밀하게 섬김의 통로로 사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장자요. 하나님의 상속자요. 하나님의 자녀요. 복의 근원들입니다. 이런 분들을 하나님이 아십니다. 하나님이 받으십니다. 하나님이 세우십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십니다.
지내놓고 보면 사람들도 다 알고 인정합니다. 그래서 그 곁에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고, 자기 자신을 섬기면 꼭 필요한 존재가 됩니다.
섬기는 자는 그 모임에서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됩니다. 섬기던 그 분이 없어지면 표가 납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고, 자기 자신을 섬기면 섬김을 받게 됩니다.
이건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20장 26절, 27절 말씀입니다. 다함께 봉독하겠습니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아멘! 아멘입니까?
인생은 부메랑입니다. 사랑하면 사랑 받습니다. 섬기면 섬김 받습니다. 대접하면 대접 받습니다.
그러나 미워하면 미움 받습니다. 섬김만 받으면 작은 자가 되고, 대접만 받으면 종이 됩니다.
한국의 슈바이쳐로 알려진 장기려 박사님은 장로님이시고, 성도다운 성도님이십니다.
병원에 입원한 환자가 고침을 받고 나서 돈이 없으면 밤에 몰래 도망가라고 하였던 분입니다.
그의 집에 가훈은 이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어리석은 자가 되고, 주님 안에서 손해 보며 살아라.”
하나님은 너무나 약삭빠른 사람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주안에서 손해 보려는 사람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똑똑한 사람을 사용하지 않으시고, 덕이 있는 사람 – 베푸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장기려장로님은 말했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80년 평생을 살아오면서 기뻤던 적이 있었습니다.
결혼 후 첫 아들을 낳았을 때, 하나님이 주신 생명 때문에 너무 기뻤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죄 사함을 받았다는 확신이 있었을 때, 정말로 기뻤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영접한,
기쁨은 아들 낳은 기쁨보다 컸습니다. 그래서 나는 오직 예수로 남을 섬기며 살기를 원합니다.“
장기려장로님은 섬기는 기쁨을 가장 큰 기쁨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처럼 받는 기쁨보다,
주는 기쁨을 더 크게 보셨습니다. 예수님처럼 소유보다 나눔을 더 보람으로 알고 사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러 오신 분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습니다.
그래서 인자 – 곧 예수님 자신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섬기기 위해서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원대로 하나님을 섬기셨고, 이웃도 사랑하며 섬기셨으며, 자기 자신도 섬기셨습니다.
섬기되 자기 목숨을 – 하나님의 원대로 십자가에 내어놓으셨고, 죽기까지 우리를 섬기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십자가의 큰 사랑과 은혜를 묵상하는 사순절기를 보내면서,
우리도 하나님을 섬김으로 사랑하시고, 우리의 이웃을 나 자신과 같이 섬김으로 사랑하시고,
그것이 곧 나를 진정 사랑하는 나를 섬김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