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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요양원에 맡기고 통곡하는 사위
글쓴이/수락산 (tnfkrtks****)
출처/아고라-이야기에서 2014.01.15
큰딸 내외는 울산 삽니다. 부부가 모 중공업에서 용접사로 일합니다.
여자(딸)가 용접사라해서 거칠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평범한 주부들과 똑같습니다.
한글자 다르지만, 용접공과 용접사는 모든 것에 차이가 엄청나더군요.둘의 수입이 많습니다.
딸은 내가 20살에 낳아서 새나이로 46살이고 사위는 새나이로 50입니다.
25년전에 둘이 조선소의 용접 훈련생으로 만나 고향이 호남이라는 이유로 가깝게되더니 연애끝에 결혼 했습니다.
사위는 2남1녀인 형제중 차남이며 막내입니다.
그동안은 사위의 형님이 고향 목포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
습니다. 6-7년전 두분이 똑같이 치매가와서
사위의 형님부부는 아무 것도 못하고 두분에게 매달렸습니다.
그러다 1년전 설을 지내고 며칠후 사위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위의 아버지가 자기 아내의 임종을 보며 꺼이꺼이 울더랍니다.
아무리 치매에 걸렸어도 부부간 생사를 가르는 이별의 순간만은 인식한 것이겠지요.
사위의 형님은 부모님 때문에 경제 활동을 전혀 할 수 없어서,
그동안 사위가 부모님을 모시는 그분들의 생활비를
전적으로 책임졌습니다. 딸도 그것을 기꺼이 찬성했고....
사위의 아버지가 아내를 잃은후로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어
자리보존 할 상태가 되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형수님께서는
신장이 악화되어 매주 한번씩 투석을 받을 정도가 되어 형수님도 아예 자리깔고 누웠답니다.
사위가 보기에 형님이 그동안 고생하셨는데,
이젠 도저히 버티지 못 할 것 같아 사위와 딸은 고심끝에 형님께
양해를 얻어 82세되신 아버지를 요양원에 입원 시켰습니다.
사위는 지들이 돌볼 수 있는 울산 근처로 입원시키려 했으나,
형님이 도저히 그것만은 안되겠다며 목포근처에
입원시켰습니다.
지난주 아버지를 요양원에 입원시키고 온 날 사위가 밥을 먹다말고 대성통곡을 하더랍니다.
올 때도 눈물을 질금 거리더니...포근한 집에서 밥을 먹다보니 설음이 터진 것이겠지요
딸의 말이 "요양원이 시설도 괜찮고 음식도 깔끔하고
직원들도 친절해서 모든게 좋지만 요양원을 덮은 그 쓸쓸함이 너무 사무치더라"며
딸도 한숨이더군요.심한 표현으로 괴기스럽더랍니다.
운전하며 같이 갔던 지난해말 제대한 손자도 그곳은 전혀 새로운 세상이더라며,
깨달은게 너무 많았다고 합니다.
사실 말이야 바른말로 그곳을 요양원이라 이름은 하지만
세상을 다 산 사람들이 죽을 날만 기다리는 현대판 고려장이고待亡所일 뿐이지요.
'희망'이란 단어가 아예 없는 그런 곳에 부모를 맡기고 오는 자식의 심정이 오죽하겠습니까?
나는 하루에 한번씩 네명의 딸과 통화 합니다.
미국에 사는 막내 딸과도 매일 통화 합니다.
모든 전화가 인터넷전화라서 통화료가 없습니다.
자연히 내가 공유기가 되어 딸 들 각자의 소식이 공유되어 전달되지요.
요즘은 큰딸의 시아버지가 요양원에 들어간 것이 딸래미들 대화의 주제였습니다.
내가 그 일에 바짝 관심두자. 딸들은 모두
"아부지는 그곳에 가지 마세요.너무 쓸쓸해요"합창을 합니다.
속으로 그곳에 가는 늙은이들이 가고싶어가겠냐? 할수없이 가는 것이지 생각합니다.
31년전 아내가 가슴으로 낳은 새나이로 34살의 막내 딸은
"아빠 힘떨어지면 미국 와서 나랑 살면 되 걱정하지마"
하는데...나에게 힘되라고 하는 말이겠지만... 막내사위는 미국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