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천노씨 족보 서문
가정 병신년 봄에 후손 진은 삼가 쓰다
노씨의 선계는 황해도의 서하에서 나와 우리 시조 국자진사 휘 유가 도적을 피하여 창원의 동촌에 집을 짓고 살게 되었다.
18세를 지나서 나의 증조 참판공께서 함양에 집을 얻어 임시 살게 되니 함양에 노씨가 있게 된 것이 이로부터 비롯되었다.
그후 창원과 함양이 백리 길이나 되어 서로 멀기 때문에 왕래가 없어 누가 한사람의 몸에서 나온 형제간인지도 모르고 또한 계보도 상계할 수 없으므로 노씨의 성이 있는지, 몇 대를 지났는지도 몰랐었다. 내가 백세 후에 났으니 선조의 얼굴을 뵙지 못하였고(못하고 능히) 그 세계를 (친히) 물어보지 못하였으며 일찍이 스스로 탄식하기를 중국 사람들은 비록 장사꾼이나 천민이라도 계보가 있어 그 후손으로 하여금 고증할 수 있게 하는데 하물며 사대부의 후손으로서 그 소자출을 자세히 알지 못해서 되겠는가?
때때로 눈물을 씻고 홀로 개탄하였는데 어느날 종부 참봉공의 집에 가서 소장한 서적을 열람할 것을 청하여 우연히 한 질을 찾았으니 이것이 노씨의 계보로써 참봉공이 살아계실 때 손수 써 놓은 것이다.
그 기록이 비록 그 세계의 역대 수에는 미흡하나 여러 종족의 분파된 것과 종지의 줄거리는 기록한 것이 자못 자상하여 후일 어느 친족이 어느 친족을 백리의 밖에서 만나더라도 그 처음에는 한 분의 몸에서 분파되어 마침내는 이와같이 되었다는 것을 알 것이니 필연적으로 서로 친하고 사랑함이 돈독해지고 효도로 감동하는 마음이 족히 길게 될 것이다.
이에 남의 손을 빌려서 모든 형제에게 두루 보이고 위와 같이 등록하며 또 이어서 김씨와 성씨의 계보로써 후생(후손)에게 보여주어 나와 같이(나처럼) 오늘날 한탄하는 일이 없게 함이로다. 아울러 나와 같은 형제가 되는 이나 나의 자손이 되는 자가 이로 인하여 상고하며 어디에 속하는 친족이며 어느 종파의 후손이라고 말할 수 있으면 반드시 서로 돈독하게 사랑하고 혹 소원해지고(멀어지거나) 잊지 말지어다.
가정 병신년 봄에 후손 진은 삼가 쓰다.
첫댓글 가정 병신년 은 서기 몇년일까요??
2016년 병신년 , 1956년 .... 1536년 병신년
옥계할아버지 1518년 출생이니 18세에 쓰신 글입니다.
1537년 생원시 합격하여 성균관에서 수학 하셨습니다
1546년 증광 을과에 합격하여 관직에 나가셨습니다.
증광 을과는 명종1년에 실시한 것으로 추정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