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팔꽃이 새벽에 피는 까닭은
정만진 (소설가·대구시 교육위원)
서울대 대학생활문화원이
올해(2003학년도) 신입생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신입생 특성 조사 보고서'를 보면,
스스로를 '상류 및 중상류'라고 생각하는 비율은
경영대(29%), 의대(27%), 법대(26%) 순서로 높게 나왔다.
서울대 전체 평균이 21.5%인 것을 감안하면
스스로를 상류 및 중상류층 가정의 자녀로 인식하는 비율이
경영대, 의대, 법대 학생일수록 타 단과대학 학생들에 비해 높음을 보여주는 결과였다.
반면 사범대(30%), 농생대(27.5%), 공대(22%), 자연대(21%) 등 4개 단과대 신입생들은
스스로를 '중하류 및 하류'라고 생각하는 비율이 전체 20.8%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상류 및 중상류층 자녀일수록
졸업 후 높은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은
법대, 의대, 경영대로 진학하고,
하류 및 중하류층 자녀일수록
졸업 후 주어지는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낮은
사범대, 농생대 등에 입학함을 보여주는 지표이다.
몇 년 전에도 이와 유사한 조사 결과가 밝혀진 바 있다.
서울대 신입생 중 법대, 의대, 미대, 음대 학생은
가정의 보호자 중 70% 안팎이 고위 관리, 회사 간부, 변호사, 의사, 교수 등의 자녀인데 반해
사대, 농생대, 가정과, 간호과 학생은 그 비율이 30%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통계였다.
상류 및 중상류층 부모들은 그 자녀를
대학 졸업 이후 교사나 간호사가 되거나 농사를 짓게 될 것 같은
사대, 농생대, 가정과, 간호과에는 보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결과로,
당시 서울대 관계자는 부와 권력의 세습을 나타내는 징후로 여겨져 우려된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미국의 콜맨보고서도 이와 대동소이한 결론을 보여준 바 있다)
나팔꽃이 몇 시쯤 피는지 알기 위해 밤새 전기를 켜놓고 기다린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새벽까지 전기를 밝힌 그 여름밤 그는 끝내 나팔꽃이 피는 것을 보지 못했다.
왜냐하면 나팔꽃은 어둠의 시간을 겪지 않으면 꽃을 피우지 못하는 식물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일몰과 동시에 개화 작업에 들어가
새벽 4시께부터 꽃망울이 열리기 시작해 5시가 되면 만개하는 나팔꽃의 생태를 알지 못했기에
그는 그러한 헛수고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나팔꽃은 철이 가을로 바뀌어 낮 시간이 짧아지면 개화 시기도 그만큼 앞당겨
한밤중에 꽃을 피우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 경우 나팔꽃은 아침의 낭만이 아니라 심야의 낭만으로 옷을 바꿔 입게 된다.
나팔꽃 안에는 시간을 감지하는 이른바 생체시계가 입력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나팔꽃과 다르다.
나팔꽃은 어둠의 시간을 거쳐야 꽃을 피우지만
사람은 어둠의 시간을 오래 거칠수록 정신적 육체적 소모만 심해져
인생의 꽃을 피우지 못한 채 스러지게 된다.
다른 나팔꽃과 경쟁하지 않고 어둠의 시간만 참고 견디면 꽃을 피우게 되는 나팔꽃과,
남과 경쟁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아름다운 사회가 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태어난 가정의 사회적 경제적 격차가 그대로 학생의 학력 차이로 이어지는
교육불평등부터 해소되어야 한다.
- 2003.7.27. 와룡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