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13일 은자가 아들을 장가 보낸다. 경동시장 옆 이라는것 만 알고는 병국이와 함께 기차를 탔다.
늘 기차를 탈때면 여행이라는걸 생각한다 삼십년전이나 이십년전이나 이런 감성은 늘 그대로인것 같다.
창문밖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들은 예전과는 사뭇 다르지만,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초등 동창 아들의 결혼식을 가는 길이라, 풍경들조차도 오랜 기억들과 교차한다.
참 오랜시간이 흘렀다.
광덕리에서 코흘리개가 학교라는걸 처음 입학하기위해, 이제 막 눈이 녹은 쌀쌀한 운동장에, 혜진양말과 까만 고무신, 하얀 긴팔 런닝, 가슴에 단 코수건 하나가 전부인, 참 간소하기 이를데 없는 복장들의 어린 녀석들의 모습이, 어렴풋 하게 뇌리를 스치는게 이제는 가물가물해지는 때이다.
기억은 나이와 비례하는가 보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많은 기억들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그 기억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는 몸부림은, 잠시의 여행에서조차 복기를 하게된다.
까만고무신의 추억을 떠올리다가 이제는 아이들을 출가시키는 나이가 된 나와 친구들을 떠올리며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한다.
은자도 기온이도 아마 그럴것이라는 생각이다.
나이는 이마에 주름을 늘려주기는 하지만 기억을 더욱 새롭게 하고, 그 기억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만드는 재주를 가졌다.
모두가 어렵다 말하는 70년대, 어려운 집안살림에 일찍 사회라는곳에 발을 내밀었던 우리들이기에, 예전에 가질수 없던 수많은 것을 가진 지금의 우리는 아이의 자라는 모습속에서 그 아이의 출가라는걸 맞이하면서 어쩌면 시리도록 아플수있는 과거의 기억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만들어간다.
그런 추억을 만들기 위해 기차를 타고 그런 추억에 함께 하기 위해 지하철과 자가용으로 우리는 한자리에 모인다.

참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정은자 장남 한동민의 결혼식...
그 코흘리개가 이제는 시어머니가 되는거다.
그어렵던 시기를 지나왔고 그 어려운 시간들을 잘 살아왔기에 얻어지는 영광이기도 하겠다.
은자의 마음은 어떨까? 내가 곳 가야 할 길이기에 그 마음이 더욱 궁금하다.

일찍 도착하여 결혼식장안을 살짝 들여다 보았다.
이곳이 은자 아들이 결혼을 하는곳이란다..

하루를 지나 기온이 아들도 결혼을 한다. 여의도 국민일보 본사 12층에 있는 이름도 어려온 루나미엘레 웨딩홀..
기온이를 생각하면 참 짠한 생각이든다. 다들 기억 하겠지만 그 어린나이 나이 차이가 많은 규대를 이겨보겠다고 당시엔 덩치가 컷던 기온이와 뭉쳐서 지냈는데 기온이는 5학년 2학기가 되어 전학을 갔다..
기온이가 전학 가던 날 많은 아이들이 울었던 기억이 어렴풋 하다.
기온이 아들은 프로축구 전남드래곤즈의 선수이다.
이제는 아이들을 거의 다 성장시킨 우리들이기에 기온이의 고통이 얼마나 컷을지 짐작이간다.
아이를 운동시키느라 무던히도 고생을 했을게다.
그 시간을 견디어준 기온이와 부인에게는 오늘이 정말 남다른 감회로 다가올것이다. 그 친구의 마음을 알기에 이곳에 모이는 우리들의 마음이 따듯한 것일테고..

대한항공 승무원이라는 기온이의 며느리모습도 보이고 ..
축가가 이어지는걸 보면 결혼식은 꽤 진행중이 모양이다. 아직은 낫선 이런 결혼 문화에 적응하지 못 할 듯한 친구들도 친구의 아들 결혼식 이라는 중요성을 의식한듯 잘 참아주고 있다.

결혼식이 끝나고 참 오랜만에 친구들이 모였다.
10여명의 친구들은 세달에 한번씩 모임을 가지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함께 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너무 많다.
오늘은 한동안 보지 못하던 복순이,상숙이도 왔고 정말 오랜만에 충렬이도 왔다. 기온이 처럼 아버지가 군인이셨던 동지도 오고...

이건 동준이 아내가 찍은건데, 사진이 살짝 흔들렸다.
죄측부터 양동지,기충렬,이광재,뒷줄에 이재문,박병국(병국이는 이창률로 이름이 바뀌었다)이영재,이상숙,박복순,신광철,김명선,나 ,그 뒤로 안동준,김주돈,최명춘,이찬우,어제 은자 아들 결혼식에는 김연옥,박미선이 다녀갔는데, 오늘은 오지 못하였다. 강모현은 연락만 전했다.

헤어짐은 늘 그렇듯 쉽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 발길을 차마 옮기지 못하는 마음들이 잠깐의 시간이라도 더 하기위해 호프집 한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지나온 이야기.....
그래야 전부가 어릴적 이야기다. 이제는 사십년전의 이야기가 된....
처음 학교라는걸 들어간 날이 1967년 3월6일이었을게다...
벌써 47년전의 이야기를 우리는 어제일인양 기억속에서 꺼내고 있다.
상숙이가 학교앞 집 에서 개구멍으로 학교를 가던이야기, 광철이가 경희를 좋아하던 이야기......
그렇게 술잔이 기울어갈무렵 정순화와 복순이가 통화를 하고 이제는 고인이된 명원이와 영호이야기, 영팔이 근호, 큰박복순,조규대,이광재, 강순덕,김순실,이제는 소식조차 알길없는 유문덕, 함명옥, 황금옥 ......
친구들이 안주가 되고 우리는 세월을 거꾸로 살아가는 신선이된다.
이렇게 우리의 시간은 문득 떠오르는 반가운 이름들로 술잔을 기울이는 시간보다 추억에 잠기는 시간이 길어간다.
시간이 아직은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지 못하는가보다. 반백년의 시간들조차 지금은 무의미 하니까...
언제가 되면 우리가 한자리에 할 수 있을까?
한동안은 아내와 남편을 만나고 가정이란걸 꾸려가느라 다른 생각의 겨를이 없었고, 아이들 자라는 모습 지켜보는데 머리가 하애지고 주름이 늘었지만, 지금의 우리는 이제 반 백년전의 기억을 더듬어 다시 돌려놓을만한 그런 시간안에 들어와 있다.
올해가 가기전에는 어려울지 모르지만 내년이 되면 우리는 또 다시 사십년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게다.
그 순간에 함께 하지못할 친구들은 이제는 고인이된 이영호,유명원,최화순, 정신을 잃었다는 오영호,도무지 소식을 알길없는 유문덕,조규대.재작년인가 머리를 심하게 다친 이광수(지금은 김광수이다) 광수의 아내인 오화자, 인천에 있다는 소식은 들리지만 연락이 안되는 문종길, 최창수, 이수경, 이 친구들 과 더 많은 친구들이, 함께 과거로 돌아갈수있지 않을까?
불러보고 싶은 이름들, 보고 싶은 이름들이 참 많다.
최근호,이영팔,황금옥,이경희,최영순,정순화,이정수,윤기현,김혜숙,김연옥,고원기,이연향,이연심,김순실,강순덕,조명숙,성향숙,정향문(분교)한송학(분교)이명순(분교)윤명수(분교)그외에도 이름이 기억 나지않는 친구들이 몆명 더 있는것 같다.
이 친구들과 어제와 오늘 함께한 양동지,기충렬,이광재,이재문,박병국(병국이는 이창률로 이름이 바뀌었다)이영재,이상숙,박복순,신광철,김명선,오동철, 안동준.김주돈,최명춘,이찬우,김연옥,박미선,강모현,김기온,정은자,.......우리 내년에는 다 함께 모여 과거를 현재로 만들어보자꾸나.....
아들을 출가시키는 은자와 기온이를 축하하고 1월에 딸을 출가시키는 충렬이에게도 축하를 하고싶다.
친구들아! 잘 지내고 내년에는 꼭 한번 과거로 돌아가보자...
덧붙이는 글 : 광덕 14회는 분교까지 총 59명이 졸업한걸로 기억한다. 기온이와 충렬이,강모현이가 가 졸업을 하지못하고 전학을 갔지만 늘 함께 하고 있으니 62명은 되어야 전원이 모인것이라는 말이된다.
내가 적은 52명과 여기에 적지못한 10여명의 이름을 누군가 찾는대로 답글로 적어주었으면 고맙겠다.
첫댓글 글 고맙게 잘 보았고, 충열이 나는 졸업은 함께했고, 다만 2학년 가을즈음에 전학을 사창초에서 광덕초로 하였고 지금도 창피했던 기억이 가을운동회때 사창초교의 운동복을 입고....운동복이라고해야 상의 힌메리야스에 검정색인가 청색인가 기억이 확실치 안으나 팬츠 앞뒤색이다른 머리띠....하여튼 난 14회졸업.......
너무 어릴때 전학온건 기억이 안나고 네가 졸업했다는것과 아버님이 방아간 엔지니어 셨다는건 기억해..ㅎㅎ
동철이는 참대단한것같다 어찌 그많은걸 기억하는지.....까마득한 기억을 되살려줘 고맙다 ~친구들은 보고나면 왠지모를 아련함이 몰려온다 고맙다 친구야~친구들 모두건강하고 또만나자...
나이를 먹을수록 기억은 선명해진다더라. 지난 여름 예전에 사라진 사찰지를 찾다가 마을의 92세된 어르신을 만나서 물어보니 80년전 기억을 생생하게 이야기 하더라.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기억만 자꾸 꺼내는가 보다..자주 기억을 되새기는 영향도 있을거고. 얼굴들 보니까 반가웠다. 무엇보다 건강한 모습들이 감사하고.. 지금처럼 건강하게 지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