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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고 합격수기
이영훈
나는 중학교 1학년 때 친구에게 우연히 들은 이야기를 계기로 한일고등학교에 지원하게 되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지원하게 된 계기 중, 우선 첫째, 한일고는 사교육 무풍지대로 사교육의 도움 없이 우수한 친구들과 함께 자기 주도적으로 학습해 나가는 것이 인상적이었고 둘째, 전원 기숙사 생활학교로 내가 바라던 이상향 학교이기도 했다. 또 셋째, 자기주도 학습만으로도 입시결과가 전국 최상위권인 것과 지식 못지않게 인성을 중요시하여 전인교육을 실시한다는 것 이 마음에 들었다. 마지막으로 ‘홀로서기’라는 한일고 교육과정을 통하여 부모님의 보살핌 없이 혼자서 모든 것을 헤쳐 나가고 싶은 욕구가 있어서이기도 했다.
이렇게 한일고를 가야겠다고 결심은 했지만 앞으로 해야 할 것도 너무 많았고 그에 비하여 부족한 것도 너무 많았다. 그래서 나는 이를 극복하기위해서 공부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교 1등만 하던 아이들만 모이고 그래서 내신만 챙기다가 잘못해서 딱 한번전교 10등권 밖으로 밀려난 선배도 불합격하는 한일고에 이미 내신이 썩 좋지 않았던 나로서는 내신으로는 가망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다른 특기를 부각시키기 위해서 수학공부에 매진하기 시작했고 그 노력의 대가로 각종 전국수학경시대회에서 금상 2회를 비롯하여 여러 상을 탈 수 있었고 또, 수학이 뒷받침이 되었기 때문에 내신도 잘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3학년 여름방학에는 독서를 많이 하면서 여러 방면으로 사고해보는 연습을 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가고 제 1차 면접이 9월에 치러지게 되었다. 주제 내용은 그 당시 사회적 이슈로 독서량과 시사상식이 풍부하고 평소 진지하게 고민해야 대답할 수 있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고 따라서 내가 여름 방학 때 책을 많이 읽어둔 것이 도움이 많이 되었다. 그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2차 캠프 면접 대상자 320명이 발표되었고 10월에 공주의 유스 호스텔에서 1박 2일 캠프가 시작되었다. 첫날은 4대강 개발에 대한 토론으로 8명끼리 조를 이루어서 4명씩 찬반으로 나뉘어 토론하는 식이었고 이 토론 과정을 2명의 입학사정관이 평가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둘째 날에는 인터넷 실명제, 타미플루의 제한적 사용과 자율적사용, 배아복제 등…. 8개의 이슈를 놓고 하나를 무작위로 골라 3분 동안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었다. 내용적으로는 한 방에서 같이 자고 또 4대강 토론도 함께했던 8명 중 4명은 붙고 4명은 떨어져야 되는 확률이었지만 살벌한 분위기와는 달리 나중에는 서로 장난도 치고 친해져서 둘째 날 시험도 서로 도와주고 헤어질 때 번호도 교환하는 등 서로 한마음이 된 것이 인상적 깊었다. 그리고 그 후 2차 최종합격자가 발표되고 마지막 논술 후 오랜 시간 끝에 나는 한일고 교정에 당당히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한일고의 생활은 거의 대부분이 수업과 자율학습(자습)으로 이루어진다. 그 속에서 잠깐씩 학생들의 스트레스를 풀기위한 동아리활동(밴드부, 가창부, 사물놀이부….) 과 운동을 하고 명사특강이 한 달에 한 번 정도 진행 된다. 그리고 한일고는 전원 기숙사학교이기 때문에 같은 침대를 쓴 침대선배가 존재하게 된다. 침대선배는 한일고 생활에서 거의 친형이나 다름없는 존재로 자신의 침대후배는 정말 잘 챙겨주게 된다.(그렇다고 다른 후배는 신경 안 쓰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힘들게 들어온 학교이지만 마냥 좋을 수만은 없었다. 일단 좁을 호실 안에서 8명이 생활한다는 것이 초반에는 캠프에 놀러온 것 같이 재미있을지 몰라도 혼자 방에서 편하게 지내며 생활하던 것에 비하면 결코 쉽지 않았다. 청소할 때도 서로의 구역을 다투고 먹을 것도 네 것, 내 것 하면서 다투고 화해했지만 시간이 흐르니 그런 것도 없어지고 성격도 모두 원만해졌다. 생활에 불편함만큼 내 인생에서 무엇인가를 얻어가는 느낌이었다. 또 성적으로 받는 열등감이나 스트레스 또한 대단했다. 나보다 대단한 친구들이 너무 즐비했고 이 속에서 경쟁을 하며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이 큰 짐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이윽고 내 등수 말고 목표 점수만을 생각하라는 선배의 조언이 큰 힘이 되어서 이를 극복하게 되었다.
한일고의 생활은 기상 후 아침점호, 아침, 수업, 점심, 수업, 저녁, 자습, 취침으로 정말 공부와 먹고 자기만으로 이루어져있는 단순한 생활이다. 이러한 단순한 생활 속 열등감에 빠져 우울해지는 친구 역시 분명히 존재하고 ‘노이로제’같은 증상을 보이는 친구도 존재한다. 하지만 부모님도 없고 의지할 데는 친구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 서로 감싸 안고 치유하면서 우정은 더욱 깊어져만 갔다.
이렇게 한일고는 분명 사람을 귀찮고 짜증나고 불안하게 만드는 환경이지만 그만큼 자신을 성숙하게 하고 그게 바로 인생의 ‘홀로서기’라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한일고에 온 것이 내 최고의 선택이라는 생각은 변함없다.
합격수기
강성식
의 꿈은 장차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7살 때 남북정상회담을 보고 대통령이 되겠다고 결심한 뒤 한 번도 바꿔 본 적이 없는 꿈이며, 꿈을 이루겠다는 의지 하나로 지금까지 쉬지 않고 달려왔기 때문에 나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목표이다. 유난히 무덥던 중3 여름방학, 나는 꿈을 향한 대장정에서 첫 번째 갈림길을 맞이하게 되었고 나의 선택은 한일고등학교였다.
처음 한일고를 알게 된 것은 부모님께서 건네주신 신문 기사에서였다. 부모님께서는 전교생이 사교육을 받지 않는다는 학교라는 점에서 평소에 영어를 제외하고는 학원에 다니지 않고 스스로 공부해 온 나에게 꼭 맞을 것이라고 설명회에 가 볼 것을 권유하셨다
설명회 참석을 위해 찾아간 학교는 나를 매료시켰다.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와 활기차고 웃음이 끊이지 않던 선배들의 모습, 서로 도와 공부하며 화랑바라기 교육을 통해 인성교육과 자립심을 길러주는 이 학교에서라면 하고 싶은 공부도 실컷 하고 내 꿈을 이룰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명회에서 돌아온 다음날, 나는 부모님의 동의하에 한일고로 나의 목표가 정해졌다. 결정이 늦었기에 입학 전형을 준비하는 동안은 1분이 아쉬울 정도였다. 밤마다 온 가족이 모여 자기소개서를 쓰고, 추천서를 받으러 이리저리 뛰어다는 끝에 마감 기한을 보름 남기고 필요한 모든 서류를 한일고로 보낼 수 있었다. 며칠 후 면접 일정을 통보받았다.
드디어 고대하던 면접날, 입학상담실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가자 최용희 선생님께서 반갑게 맞아주셨다. 자기소개서의 내용과 시사 상식을 바탕으로 한 질문들이 나왔는데 긴장한 탓에 어떻게 대답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행스럽게도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대답하는 모습을 귀엽게 보아 주셨는지 1단계 전형은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2단계 전형은 영재캠프였다. 8명의 토론 과정을 1박 2일 동안 평가하는 것이었는데 주제는 4대 강 사업이었다. 신문과 인터넷을 통해 필요한 자료들을 찾은 뒤 거울을 보며 매일 큰 소리로 연습하였다.
같은 조가 된 친구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토론장에 들어갔는데, 방금 전까지만 해도 웃던 모습들은 어디 갔는지, 정연한 논리로 긴장한 기색 없이 말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속으로 깜짝 놀랐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 친구들과 함께 공부한다면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일고를 바라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졌다.
그리고 합격소식은 지난 2개월 간 모든 열정을 쏟아 부었기에 더욱 더 값진 기쁨이었다. 이로써 나는 4개월간의 짧고도 길었던 입학 전형을 통과하여 한일고등학교에서 누구보다도 즐거운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있다. 기숙사 호실 친구들끼리 한 팀이 되어 축구를 하기도 하고, CA 시간에는 흥겨운 춤사위로 스트레스를 모두 날려버리는 등 한일인으로서의 하루하루는 매일이 새롭고 내일을 더욱 기대하게 한다. 특히 한일고의 자랑인 선후배 사이의 끈끈한 정은 무엇보다도 큰 힘이 된다. 같이 회식도 같이 하고 선생님께도 말 못하는 고민을 진지하게 들어주시는 선배님들은 정말 부모님, 친형과 같은 존재이다. 또한 처음에는 서먹서먹하던 친구들도 어려운 과목은 서로 토론하며 서로의 실력을 향상시키고, 서로의 생일까지 남몰래 챙겨주는 끈끈한 사이가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한일고에는 수많은 동아리가 있기 때문에 자신의 다양한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나의 경우 'YUPAD‘라는 정치외교 동아리에 속해 있는데, 매주 정치나 외교에 관한 토론, 강의, 독서, NIE를 통해 급변하는 국제 정세를 알게 되고 나아가 세계 속에서 한국의 역할을 생각하게 된다. 친구들의 경우에도 경제, 생물, 인권, 법, 화학 등과 같은 다양한 동아리에서 활동함으로써 자신의 관심 분야에 대한 지식을 쌓고 앞으로의 진로를 탐색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제 얼마 후면 이곳에서 백일을 맞게 된다. 아기가 태어나서 백일이 지나야 진정한 한 사람으로 인정받듯이 한일고에서는 백일이 되면 진짜 한일인이 되었음을 축하하기 위해 큰 잔치를 연다. 백일잔치 날을 기다리며 생각해 본다. 내가 여기서 얼마나 달라졌는지.
부모님께 투정 부리던 어리광쟁이가 아침마다 부모님 안부를 걱정하게 되었고 이불 하나 스스로 못 개던 철부지가 빨래도 스스로 정리하게 되었다. 또한 나만 옳다고 생각하던 독불장군이 전국에서 모인 다양한 생각들을 접하며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배려하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3개월 전까지만 하더라도 꿈도 꿀 수 없었던 엄청난 변화이다. 한일인은 아침저녁으로 “우린 큰 그릇이다!”하고 크게 외친다. 아침마다 “그래 나는 이 나라의 큰 그릇이 될거야”하며 나에게 응원하며 하루의 계획을 시작한다. 한일고는 내 꿈을 이룰 수 있게 나를 새롭게 변화시켜 주는 나의 영원한 보금자리이다.
합격수기
이인환
나는 아직도 내가 한일고등학교를 다니며 생활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아마 한일고등학교를 오고 싶어 했던 나의 포부가 매우 컸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입학 전 고입 준비시절부터 전형과정, 그리고 입학 후 지금까지 일들은 하나같이 나에겐 기적 같은 일이다.
고입 준비시절, 나는 들어가고자 하는 고등학교를 선택하는데 큰 갈등을 겪었다. 하지만 이 문제는 단 한방에 해결되었다. 나는 공주에 있는 한일고등학교가 입학전형에 고등학교 중 최초로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평소 입학사정관제를 눈여겨보며 준비했던 나로써 좋은 기회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후 나는 바로 한일고등학교 입학 설명회를 참석했다. 그리고 설명회를 통해 한일고등학교가 사교육은 배제하고 공교육만을 채택하며 자기주도형 학습을 통해서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전교생이 두메산 골짜기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여 유대감이 두터울 뿐만 아니라 학습 환경도 학생들에게 최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이 점들은 내가 중학교 시절부터 항상 추구해오던 교육 이였고 그로인해 나는 서슴없이 한일고등학교를 지원하게 되었다.
한일고등학교의 입학전형은 우선 서류평가, 학생과 학부모의 면담, 영재캠프, 논술 평가 순으로 이루어졌다. 나는 캐나다에서 살다 와서 한국에서의 내신이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해야겠다고 굳게 마음을 먹고 내신 올리기에 집중하였다. 왜냐하면 입학사정관제는 결과보다는 과정, 실력보다는 잠재력을 중요시 여기는데, 나는 나의 성적이 점차적으로 향상되는 것이 과정과 잠재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뿐만이 아니라, 내신도 중요하지만 입학사정관제의 특성상 나의 재능을 다방면에서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국.영.수 경시대회, 인증시험만이 아니라 예·체능과 같은 비교과 과목도 준비했다. 예로 들면 토론대회, 육상대회, 회화대회, 오케스트라 활동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창의적 재량활동, 동아리 활동 등을 기록하여 입시전형에 소중한 자료로 활용했다. 이 모든 것들은 서류평가 요소들에 해당하였다. 하지만 서류평가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소개서라고 생각했다. 자기소개서는 위 항목들은 모두 포함할뿐더러 입학사정관들에게 자신의 재능을 직접 알리는 유일한 수단이다. 나는 자기소개서를 하루 만에 다 쓰기 보다는 3~4일정도의 시간을 가지고 차근차근 정성껏 썼다. 이때 항목별로 나누고 중요한 항목은 형광펜을 사용하는 등 최대한 입학사정관들이 읽는데 도움이 되도록 효율성을 높였다.
학생과 학부모 면담에서는 입학사정관들이 질문을 하는데, 준비를 하기보다는 오히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긴장을 푸는 등 컨디션 조절을 중점적으로 하였다. 면담에서 한일고에 대한 생각, 지원동기, 입학 후 생활 방향, 그리고 하나의 논쟁을 주었다. 이때 나의 주제는 “현대사회에 다수결 원칙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 방안인가?”였다. 나는 솔직히, 그리고 논리적으로 답변을 하려고 노력했다. 또한 교과서적인 답변은 되도록 회피하였다.
입학 전형 중 핵심은 단연 영재캠프이다. 영재캠프는 크게 토론, 영재 판별 검사로 나뉜다. 하지만 꼭 입학 테스트라고 하기 보다는 레크리에이션, 명사특강 등 전국에서 모인 영재 지원자들에게 좋은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토론준비를 크게 15가지 정도의 사회이슈를 선정하고 각 주제별 크게 5가지정도의 찬/반 논거를 제시해 분석하였다. 그 후 친구들 선생님 혹은 거울속의 나와 토론 실전 연습을 했다. 토론은 4대강 사업에 대해 다루었는데 다행히도 연습했던 주제였기에 어려움 없이 마쳤다. 영재 판별 검사는 말 그대로 한 주제에 대해 학생에게 제시문을 주고 제시문의 정보를 짧은 시간에 활용하여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었다. 영재성을 판별하는 내용이었기에 별다른 준비는 하지 않았고 주로 책을 읽으며 준비를 하였다.
논술평가의 주제는 의외로 허탈하였다. 논제가 한일고의 창학정신인 ‘사인여천’의 덕목을 쓰고 현대사회의 특징을 구분한 다음 사인여천의 덕목이 왜 현대사회에서 더 중요한가를 논하는 주제였다. 내가 준비해오던 주제는 사회이슈 또는 보편화된 논제들과는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논술평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내가 얻은 것은 무궁무진하다. 책을 평소보다 두배로 읽게 되었고, 시사문제를 좀 더 깊이 있게 다루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작문능력이 크게 향상되었다.
이 네 가지 전형을 모두 마친 후 마침내 나는 한일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입학 후, 한일인의 생활 중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내가 서서히 ‘된 사람’이 되어 간다는 것이다. 선생님, 선배들과 두터운 관계로 그 분들을 진정으로 존경하게 되고 160명이 함께 생활하는 기숙사에서 일어나는 사사건건의 일들은 우리에게 삶을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게 해준다. 그리고 인사문화가 발달하여 상대방에 대한 기본이 된 생활을 한다. 이뿐만이 아니라 방과 후 자율학습을 통해서 자신만의 공부법을 알게 되고, 모르는 문제는 친구들과 토의를 하거나 질문을 하여 확실히 알 수 있다. 서로서로 가 우리의 선생님이 되는 셈이다. 또한, 한일고에서만 존재하는 특유의 호실문화는 선·후배 사이의 유대관계를 가지게 하고 학습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교육 체제에서는, 수준별 토론 학습, 창의적 활동 등을 수업에 반영하여 학생들에게 최상의 수업을 제공한다. 배산임수(背山臨水) 지형에 위치해 최적의 공부 환경을 제공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나의 학교생활은 생활은 대 만족이다. 친구들과 선의의 경쟁을 하며 치열하게 싸우는 공부전쟁, 한일고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공부의 참맛을 느끼고 있다. 나는 한일고에서의 생활이 내 목표를 향해 가는 길에 큰 발자취를 남길 것 이라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