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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문학사랑 글짱들 원문보기 글쓴이: 디디울나루
용서---이주영(지구촌고등학교 3학년)
학교 앞에 나무는 따스한 햇살의 간지러움에 가지를 살랑이고, 조금씩 가을바람도 선선해지는 것을 보니 곧 겨울이 오려나 보다. 어떻게 하면 엄마 몰래 게임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어떻게 하면 부모님 관심을 듬뿍 받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학생도 있다. 이런 사람들을 우리는 흔쾌히 초딩이라고 부른다. 굳이 뇌를 소유하지 않아도 잘 살아 갈 수 있어 세상 부러울 게 없는 녀석들이다. 나는 그런 내 친구들이 부럽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내가 그저 평범하고 착한 아이로 보이겠지만, 내 눈에는 그저 애정결핍에 걸린 병신이었다.
“한별아, 축구하러 가자!”
“어 예찬아, 축구? 나 못 할 것 같은데”
“야 오늘 서초등학교랑 붙기로 한 날이잖아. 니가 없으면 안 되는데?”
“미안, 알잖아 우리 엄마 아픈 거. 나 일찍 가 봐야해.”
정말 나는 축구 하고 싶은 맘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늦게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나를 찾아 나설 아빠를 친구들에게 보이기 창피해서 그럴 수 없었다. 상상하는 것조차 끔찍했다.
나는 일찍 집에 도착하기 싫어 일부로 멀리 돌아서 갔다. 아이들로 가득 찬 분식집, 문방구 그리고 오락실 등 평범한 일상들은 내겐 아직 신에게서 허락되지 않은 천국이었다. 그렇게 환상으로 맛본 천국 속을 지나 어느새 집 앞에 왔다. 요즘 따라 왜 이렇게 시간은 빨리 흘러가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영원히, 아니면 잠시뿐이라도 시간이 멈췄으면 하는 소원을 빌어보지만, 차라리 칼로 물을 베는 게 더 빠를 것이다.
나는 문을 열기 전, 숨 한번 크게 내쉬고선 문을 열었다.
“다녀왔습니다.”
문을 열자마자 쾌쾌한 곰팡이 냄새가 풍겨왔다. 이게 집인지 창곤지 구분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집안은 어지럽혀져 있었다. 나는 그런 우리 집을 보며, 화가 차올라 다시 가방을 들고 밖에 나가려 운동화를 신었다.
“아들 왔냐? 왔으면 온 거지 또 어딜 나가려고?”
“알거 없잖아요.”
엄마 입에서 술 냄새가 풍겼다. 이번엔 도대체 얼마나 퍼 마신건지 알 수 없었다.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진했고, 머리는 뒤엉켜 있는 엄마의 모습에 화가 나 말대꾸를 했다.
“뭐? 그런데 얘는 누굴 닮아서 이렇게 싸가지가 없는 거야? 아무튼 됐고, 나가는 김에 술 좀 사와라.”
엄마의 말에 화가 치어 올라 심장은 빠르게 뛰고 손끝이 떨려왔다.
“뭘 그리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어? 빨리 갔다 와! 근데 얘는 도대체 어떻게 되먹은 게 저렇게 싸가지가 없어?”
이러면 안 되는데 마치 영화 속 헐크처럼 심장이 빠르게 뛰어 폭발할 것 같았다.
“맨날 술, 술, 술! 찢어지게 가난한 거 모자라 집에는 술주정뱅이들밖에 없고, 도대체 언제쯤 정신 차리실 거예요!”
그리고 난 폭발하였다. 그때, 아빠가 방에서 나오셨다.
“뭐가 어쩌고 어째?”
아빠의 반쯤 잠긴 눈은 마치 ‘안 그래도 짜증나는데, 마침 화풀이 대상이 나타났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 새끼가 먹여주고 키워 줬구먼, 할 줄 아는 소리가 그것밖에 없냐? 어디 한 번 더 지껄여봐!”
아빠가 화내는 소리가 익숙하면서도 무서웠지만, 이번만큼은 지고 싶지 않았다.
“저도 이제 6학년이에요! 몇 달 후면 중학교도 들어간다고요! 그런데 이게 뭐에요? 학비는커녕 교복 살 돈 조차 없고, 친구들과 수학여행도 가고, 오락실도 가고, 떡볶이도 먹고 싶고, 여자 친구도 사귀고 싶은데 다른 사람들한테 보이기 창피해서 잘 어울려 다니지도 못해요!”
그때 아빠 얼굴은 마치 열 받은 것처럼 빨개지고, 손은 부들부들 떨어 마치 한 대 칠 기세였다.
“창피해? 하, 그렇게 네 아빠가 창피하면 당장 이 집에서 꺼져!”
아빠는 꺼지라는 소리와 함께 손에 쥐고 있던 술병을 바닥에 내리쳤다. 와자창! 술병이 깨지는 소리에 나는 그 순간이 주변 이웃들에게 너무 창피해 가방을 들고 집을 나가버렸다. 가지 말라고 날 붙잡았으면 좋겠다. 날 찾으러 나와 줬으면 좋겠다고 마음으로 애원해보지만 엄마 아빠의 술주정 소리만 더 커졌다. 초등학생의 입에서 나오긴 초라하고 철없어 보이겠지만 나는 오늘 가출을 했다. 딱히 갈 곳이 없었다. 예찬이네 집에 가면, 그동안 내가 숨긴 모든 비밀이 다 들통 날 것 같아 갈 수 없었다. 만약 부모님 얘기가 소문으로 퍼진다면 차마 얼굴을 들고 다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생각만 해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동안 그렇게나 꿈꿔왔던 순간인데 막상 집을 나오니 갈 곳이 없었다. 배는 고프고, 밖은 밤이라 그런지 쌀쌀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갈까 하는 작은 흔들림이 날 유혹했지만, 집에 가도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자존심이 날 붙잡았다. 결국 나는 또 다시 전봇대뿐인 길을 터덜터덜 걸어갔다. 아무도 없는 밤길을 방황하다 결국 나는 문 앞에서 멈춰 섰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여긴 쫌 아닌 것 같다.”
담임 선생님인 윤이나 선생님 집이었다. 나는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하고 창피해서 맨 정신으로 문을 두드릴 수 없었다. 하지만 여기 말고는 갈 곳이 없었다. 결국 나는 문턱에 앉아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하, 진짜 눈물 나게 예쁘네.”
어디서부터 내 인생은 틀어진 걸까? 멀쩡했던 가정, 웃음 가득했던 추억들은 언제부터 틀어지기 시작한 걸까? 사업은 망하고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빠는 하루하루 술로 때우셨다. 그 모습을 지켜보시던 엄마도 점점 망가져만 갔다. 집에는 매일 아저씨들이 들이닥쳐 모든 것을 어지럽혀 놓고 빨리 돈 갚으라며 소리를 질러댔다. 아빠 얼굴에서 웃음이란 점점 더 사라져 가고 나를 돌아봐 주는 시간도 점점 더 좁혀져만 갔다. 뭐가 문제인지 아직도 이해가 가질 않는다. 이럴 때일수록 더 노력해야한다고 이제까지 말해왔으면서 자신이 거짓말쟁이임을 아빠는 스스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쉬운 게 아닐 수도 있다.
하루 안에 많은 일이 일어난 것 같았다. 별 상관은 없었다. 화가 난 나머지 눈물샘이 터져 미친 듯이 울었다거나, 미친 듯이 욕을 했다거나,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거나, 그런 일은 없었다. 그 대신 미친 듯이 졸려와 눈이 감기기 시작했다.
슬슬 해가 나오기 시작하더니 어느덧 새벽 6시 50분이 되었다. 누군가가 문을 열었다. 덩치가 쫌 있고 키가 큰 걸 봐선 아마 선생님 남편 분이었던 것 같다. 출근하시려고 일찍 나오신 것을 보니, 누가 선생님 남편 아니랄까봐 아저씨도 선생님만큼 부지런하셨다. 그러고 보니 남편이 의사라고 자랑하시던 말이 생각났다. 기분 좋은 출근길을 막으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추위에 밤을 설친 바람에 몸이 말을 들지 않았다.
“어, 저기 학생?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감기 걸릴 텐데. 학생?”
아저씨가 날 깨우기 위해 내 몸을 살살 흔들었다. 그리고선 할 수 없다는 듯 표정을 짓고 날 일으켜 세웠다.
“무슨 사정이 있는 진 모르겠지만, 일단 우리 집에서 몸 좀 녹이는 게 좋을 듯하구나.”
그는 날 자신의 집, 즉 윤이나 선생님 집으로 데려가 거실에 있는 소파에 눕혔다. 뭔가 집에 온 느낌이랄까, 포근하고 따뜻했다. 나는 선생님한테 설명드릴 몇 분을 못 참고, 그세 빠른 속도로 잠에 빠졌다.
“으……”
눈을 떠보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무언가 묵직한 게 느껴지기에 눈 밑까지 내려온 것을 치워보니 수건이었다. 분명 어제 선생님 집 앞에서 졸다가 아저씨가 날 어디론가 끌고 가는 것까진 기억이 난다. 그런데 여긴 어디일까? 나는 띵한 머리를 문지르며 주위를 둘러봤다. 책들이 많고 아기자기한 물건들을 봐 여기는 아마 윤이나 선생님 집인 것 같다. 도대체 나는 무슨 생각인건지, 내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조용히 몸을 일으키자 소파에서 작게 삐걱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집이 너무 조용한 나머지 그 작은 소리마저 크게 들려와 다시 소파에 앉았다. 나는 가방을 챙겨 선생님 집을 나갈 생각이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책임감이 없어 보여 이불을 개고, 그 옆에 쭈그려 앉는 사이 선생님이 방에서 나오셨다.
“일찍 일어났네? 잘 잤어?”
나는 말없이 바닥만 뚫어져라 봤다.
“선생님한테 뭐 할 말 없니?
나는 아무런 변명거리를 찾지 못해 또다시 침묵으로 대답했다.
“괜찮아. 그런 건 천천히 얘기하고, 우린 일단 아침부터 만들어 먹을까?”
“좋은 아침!”
“아 소개가 늦었지? 여긴 내 남편.”
“안녕하세요……”
나는 기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단순히 어색해서가 아니라, 어제 민폐 끼친 일 때문에 창피해서이다. 그렇지만 선생님도 아저씨도 내게 화를 내지도 무슨 일 있었는지 물어보지도 않으셨다. 그저 말없이 웃으면서 마치 약속하고 놀러온 친구처럼 대해주셨다.
“미안, 선생님이 요리를 진짜 못해서. 맛이 없지?
“아니요. 맛있어요……”
선생님이 팬케이크를 해주셨다. 거짓이 아닌 진심으로 맛있었다. 학교급식 빼고 재대로 먹어본 것은 없지만 선생님이 만들어준 팬케이크는 정말 맛있었다. 그렇게 맛있게 먹고 있는 사이 선생님이 날 불렀다.
“한별아.”
“……”
“한별아.”
“네?”
“한별아.”
선생님이 계속 내 이름을 부르셨다. 아마 내가 직접 스스로 털어 놓기를 바라시는 것 같았다. 마치 엄마처럼 다정하게 내 이름을 불러주셨다. 내가 머릿속으로 모든 상황과 모든 일들을 정리하고 있을 때 선생님은 또 한 번 내 이름을 불러주셨다.
“한별아.”
“네.”
“무슨 일 있는지 말해줄 수 있니?”
그때 볼 사이로 차가운 액체가 느껴졌다. 참고만 있던 눈물이 드디어 터진 것 같다. 남자로써의 자존심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괜찮아 한별아……”
어쩌면 선생님은 내 안에서 숨겨진 나의 진짜 모습을 들춰내고 싶으셨던 거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선생님은 마치 엄마처럼 따스하게 날 안아주셨다. 이상하게도 점점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네가 원하면 부모님께 데려다 줄 수 있어. 그렇지만 가기 싫으면 여기 있어도 돼.”
“저 여기에 남으면 안 될까요? 말도 잘 듣고, 공부도 열심히 할게요. 제발 여기 있게 해주세요!”
돌아갈 순 없었다. 그 근처조차 갈 순 없었다. 또 빈 술병을 들고 어디선가 막 뛰어올 것만 같은 오싹함이 느껴졌다. 선생님은 창백해진 내 얼굴을 보시더니 또 한 번 날 안아주셨다.
“여기 있어도 괜찮아. 여기서 우리와 함께 살자. 같이 가족처럼 여행도 가고, 맛있는 것도 먹고. 네가 원하면 그래도 돼.”
나는 뭐라고 어떻게 대답해야 할 지 놀랐다. 그저 말없이 고개만 끄덕끄덕 거렸다. 그러자 선생님도 밝게 웃어주셨다. 아침을 마저 다 먹은 후 선생님이 날 어떤 방으로 안내했다.
“사실 여긴 손님방인데 오늘부터는 네 방이야. 가서 한번 둘러봐.”
한 번도 내 방을 가져보지 못한 내게 방이 생겼다. 그 방에는 침대도, 책상도, 옷장도 있었다. 나는 너무 신난 나머지 말을 잃었다. 아마 행복이란 게 정말로 존재한다면 바로 오늘 같은 날일 것이다.
“대충 둘러봤으면 우리 이제 나갈까? 살 것도 많을 것 같은데 모처럼 쉬는 날에 가야지.”
아저씨가 심심하셨는지 나가자고 권했다. 시내로 나와 아저씨는 옷과 신발, 그리고 새 책가방을 우리 식구가 된 기념선물이라며 사주셨다. 그렇게 하루는 행복하게 흘러갔다. 너무 행복한 나머지 혹시 꿈은 아닐까 볼을 꼬집어 봤지만 꿈이 아니었다. 혹시라도 이게 만약 꿈이라면 절대 깨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내 방을 정리하고, 씻고, 침대에 얼른 누워봤다. 그렇지만 매번 바닥에서 자다 침대에 누우니 불편했다. 침대가 적응 될 때 까지는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자야할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이불 위에 벌러덩 누웠다.
쾅쾅쾅! 문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장 문 안 열어? 나 지금 화났다! 경찰 부르기 전에 당장 내 아들새끼 내놔!”
아빠였다. 아마 화가 나서 쫓아온 것 같다. 나는 또 아빠한테 맞을까봐 무서웠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 이미 아빠는 내 앞에 있었다. 빈 술병을 들고서 마치 미친 황소처럼 씩씩 거렸다. 그리고는 손에 쥔 술병을 들어 나한테 후려쳤다. 그때 잠에서 깨어났다. 온 몸이 식은땀으로 젖어있었다. 나는 흥분한 내 자신을 진정시키며 시계를 봤다. 아직 5시 40분이였다. 나는 조용히 방을 나와 창문으로 문 앞쪽을 바라봤다. 다행히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샤워실로가 땀을 식혔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한별아, 일찍 일어났네? 역시 모범생이야. 나와 아침 먹자.”
샤워를 마치고 나오다 선생님과 마주쳤다. 나는 얼른 옷을 갈아입고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마침 아저씨가 일하는 병원이 학교를 가로질러 간다며 선생님과 나를 학교까지 태워다 주셨다. 덕분에 편하게 학교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잘 다녀오겠습니다.”
“어, 그래. 좋은 하루 보내렴.”
차에서 내리기 전에 나는 인사를 드렸다. 이전에 부모님께 하고 싶었던 것들을 선생님과 아저씨게 다 하는 것 같아 기분이 묘하면서도 기뻤다.
“어, 한별아!”
차에서 내리자 누군가가 날 불렀다. 다름 아닌 예찬이었다.
“안녕 예찬아.”
“어, 쌤 안녕하세요. 그런데 왜 둘이 같은 차에서 내린 걸까요?”
이럴 때 만큼은 예찬이가 싫었다. 꿈이 탐험가인 예찬이는 뭐든지 물어 보는 걸 좋아했다.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든 걸 다 알고 싶어 했다.
“그러게? 왜일까? 내가 내 아들과 같이 학교에 오는 게 그렇게 이상한 건가?”
“네? 아들이요?”
“응. 그러니깐 비밀 지켜 줄 수 있지? 그럼 부탁할게. 그럼 선생님은 먼저 들어간다. 이따 보자.”
선생님이 그렇게 말하고선 흐뭇 웃으며 학교로 먼저 들어 가셨다. 그러자 예찬이가 날 빤히 쳐다보았다. 사실 나도 조금 당황하긴 했다. 나야 고맙긴 하지만, 선생님이 날 그렇게까지 생각해 주실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분이 한결 가뿐해진 것 같았다. 물론 예찬이가 부담스럽게 바라보는 것 빼면 말이다.
“뭐 이짜씩아? 엄마랑 아들 처음 보냐?”
나는 그런 예찬이 머리를 치우고 학교로 걸어 들어갔다. 예찬이는 곧바로 쪼르르 따라와 계속해서 질문을 했지만, 나는 귀찮다는 듯 연기를 했다.
“역시!”
“뭐가?”
“역시 니 머리는 괜히 똑똑한 게 아니었어! 그런데 이상하단 말이지.”
“또 뭐가?”
“쌤이랑 너랑 전혀 닮지 않았어.”
“그러면 어디서 주서 왔기야 했겠어?”
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애써 태연하게 연기하려 애를 썼다.
“그러니깐 내 말이! 아무튼 그건 그렇다고 쳐. 그런데 너 어떻게 나한테 니 쌤 아들인거 말 안 할 수 있냐?”
“니가 내 엄마냐?”
“그래도 내가 니 친군데? 말해주면 니 똥꼬에 뿔나겠네?”
“응.”
우리가 그렇게 낄낄대던 사이 어느새 수업을 알리는 종이 쳤다.
시간은 점점 지나고 그렇게 나의 진짜 엄마 아빠는 내 기억 속에서 잊혀 갔다. 그리고 아빠에 대한 공포심이 있던 자리도 서서히 햇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소원대로 친구들과 오락실이라는 천국도 가보고, 떡볶이도 먹고, 축구도 했다. 노느라 어느덧 전교 6등으로 떨어지긴 했지만, 다시 마음먹고 연필을 잡은 후에야 다시 내 자리로 되돌릴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서서히 평범하지 않으면서도 평범한 학생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나는 길고 길었던 초등학교를 벗어나 중학생이 되고, 중학교를 졸업해 고등학생이 되고, 그리고 고등학교, 그 다음엔 대학교 비즈니스학부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그 후 비즈니스를 시작한 나는 몇 년이 지난 지금에야 성공으로 이끌 수 있었다. 행복이라는 것은 노력한 만큼 내게 다가와 줬다. 어려서부터 꿈꿔왔던 모든 것들이 지금 내 곁에 있다. 직업, 집, 가족, 아내, 그리고 사랑하는 딸까지, 더는 부족한 게 없었다.
“아빠!”
“어, 하은아. 왜?”
오랜만에 휴가를 내고, 딸과 산책을 나왔다. 아직 7살이라 온통 유치함으로 가득찬 하은이를 보며 혼자 실실 웃고 있는 동안, 하은이가 내게 달려왔다.
“아빠, 저기 불쌍한 사람 있는데, 우리가 가서 도와주면 안 돼요?”
하은이는 내손을 잡아 어디론가 끌고 갔다. 나는 그런 마음이 여려 착해빠진 하은이를 말없이 냉큼 따라갔다. 한 노숙자 앞에 선 하은이는 내게 빨리 오라는 손짓을 하고선 초롱초롱한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나는 알겠다며 지갑에서 2천원을 꺼내 하은이에게 건네줬다.
“아저씨 이걸로 맛있는 거 사드세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하은이가 상자에 2천원을 조심히 내려놓자 노숙자는 천천히 우리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선 하은이는 배꼽 인사를 하고 다시 내게로 달려왔다.
“아빠 나 쉬 마려워.”
하은이는 화장실 마렵다며 나를 재촉해 집으로 달려왔다.
“여보, 나 왔어.”
“어 자기야, 왜 이렇게 조금 놀다 왔어? 모처럼 하은이랑 시간 보내고 싶다며 휴가 냈으면서.”
“하은이가 갑자기 화장실 마렵다고 해서. 그런데 이 동네에 노숙자가 있었어?”
“아니. 처음 듣는데. 왜?”
“아니야 아무것도.”
나는 아내가 이것저것 걱정할까봐 이쯤에서 이야기를 접고, 거실로 나와 다 텔레비전을 봤다.
띵동!
“오늘 누구 오기로 했어?”
“그냥 택배 온 것 같은데? 내가 가볼게.”
아내는 손에 든 과자봉지를 내려놓고 현관으로 가봤다.
“누구세요?”
“……”
“누구세요?”
“……”
“이상하네?
아내는 아무 대답 없는 문을 열었다.
“누구야?”
나는 아내 따라 현관으로 나와 보았다. 문 밖에는 아까 전 공원에서 봤던 아저씨와 그 옆에는 또 다른 노숙자가 서있었다. 아저씨의 아내인 것 같았다. 나는 왜 공원에 누워있던 아저씨가 아내까지 대리고 우리 집을 찾아왔는지 이해가 가질 않아 멀뚱멀뚱 서있었다. 아저씨는 그런 내 모습을 보더니 먼저 말을 꺼냈다. 아마 아까 전에 고마웠다는 말을 전해주러 오신 듯 했다.
“정말 많이 컸구나, 아들아. 우리 몰라보겠니? 엄마랑 아빠야!”
나는 도저히 아저씨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잠시 후 풍겨온 익숙한 향기가 모든 기억들을 다시 떠오르게 했다. 호흡이 빨라지고 머릿속은 어느 때보다 복잡했다. 어째서 이었을까? 나는 뭘 믿고 안심했던 거였을까? 서서히 잊었던 분노와 원망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느껴져 왔다. 어떻게 저렇게 뻔뻔할 수 있을까? 이제 와서 자신들을 아빠와 엄마라 부르는 그들을 용서할 수 없었다.
“아빠 누구야? 어? 아까 그 아저씨다! 안녕하세요.”
내가 현관에 계속 말없이 서있는 게 신경 쓰였는지 하은이가 내게 달려왔다.
“이름이 하은이구나? 어쩜 누굴 닮아서 이렇게 예쁠꼬?”
“하은아, 잠시만 방에 들어가 있을래?”
아줌마가 하은이에게 접근을 하자 나는 하은이를 잡아 내 뒤로 내빼 방으로 보냈다.
“한별아.”
“무슨 착오가 있던 것 같은데, 잘못 찾아오신 것 같네요.”
“내 말 좀 들어줘봐! 1분, 아니 30초라도. 제발 부탁할게.”
“죄송한데 그만 나가주셨으면 해요.”
“한별……”
나는 아저씨가 또다시 내 이름을 부르기 전에 문을 닫아버렸다. 오히려 미안해해야 할 사람은 그들인데, 왠지 모르게 내 마음이 괴로웠다. 좀 전보다 심장은 더 빨리 뛰고 아무것도 들려오지 않았다.
“가셨어?”
“모르겠어.”
밖이 조용해지자 방에서 나온 아내는 나 대신해 조심스레 현관문을 열어봤다. 아무도 없는 걸 보니 다 가신듯 하다고 아내는 날 진정시켰다. 하지만 아직 안심되지는 않았다. 언젠간 또 올 것만 같기 때문이다. 아내는 그런 내 모습을 보더니 내 옆에 조용히 앉았다.
“누구야, 아까 그 사람들?”
조심스레 물어보는 아내에게 더 이상은 숨기기 늦은 것 같아, 지금까지의 일을 다 털어놨다. 내 말을 들은 아내는 화내기보다는 오히려 마치 나를 대신해 우는 것처럼 서글프게 흐느꼈다. 그리고는 그동안 얼 만아 힘들었냐며 마치 아주 오래전에 선생님이 나를 안아주셨듯이 아내는 날 꽉 안았다.
“이젠 어떻게 할 건데?”
“나도 모르겠어. 지금 내가 왜 화가 나는 건지,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아무것도 모르겠어.”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무엇 때문에 화가 나는 건지, 무엇을 두려워 도망 온 건지, 왜 계속 마음이 무거운 건지 정말 하나도 모르겠다.
“자기야.”
“어……”
“이제 그만 그들을 용서해 주면 안 될까? 시간이 많이 지났잖아. 그들도 많이 변했을 수도 있잖아.”
“만약에 아니면? 또 술 마시고 이젠 심지어 너까지 때리면? 그럼 우리 하은이는? 사람이라는 건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아.”
“아무리 그런다 해도 난 당신을 원망하지 않을 거야. 내가 당신과 결혼하고도 왜 한 번도 널 원망하지 않은 줄 알아?”
“사랑하니까.”
“맞아, 사랑하니깐. 지금 당신이 왜 그들에게 화가 나는 건 줄 알아? 사랑하니깐. 사랑하는 것도 미워하는 것도 그들에 대한 아무 감정이 없으면 할 수 없는 거잖아.”
아내는 내 손을 꼭 잡고서 말을 이었다.
“옛날에 아빠가 나한테 이런 말 하신 적 있어. 미워는 하되, 내 자신에게 미안할 만큼 미워하지 마라. 그러니깐 나중에 가서 후회하지 말고 지금이 기회다 생각하고 그들을 용서해줘.”
아내가 한 말은 틀린 말이 없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내가 어떻게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 가면 뭐라 말해야 할까? 머리가 이것저것으로 뒤섞여 있을 때 아내는 내 귀에 대고 방법을 속삭이듯이 알려줬다.
“가서 아무 말 하지 말고 꼭 안아드려. 어서 가 봐!”
나는 아내를 쳐다봤다. 아내는 어느 때 보다 더욱 밝고 환하게 웃어줬다. 그리고는 어서 가보라는 손짓을 보였다.
“어서!”
나는 잠바도 걸치지 않은 채, 밖으로 뛰어갔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간절함으로 이리저리 돌아보지만 그들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나는 아침에 가본 공원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곳에 그들이 있었다. 마치 집 잃은 까마귀 한 쌍처럼 축 쳐진 모습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