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분옥 할머니
올해 71세의 할머니는 내가 사는 집에서 200미터정도 떨어진 집에서 혼자 살고 있다.
어려서 이 마을로 시집와서 술 좋아하는 남편 시중을 들면서 밭일을 하고 소를 키우고 두 아들과 세 명의 딸을 낳아 길렀다.
남편은 댓병 소주를 매일 마셨고 술주정도 심했다. 마을이 시끄러운 날은 어김없이 술에 취한 남편이 마당에 나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세상에 대한 불만과 이웃에 대한 불만이 가슴 속에 응어리져 있다가 술기운에 폭발하곤 했다. 이 때마다 할머니는 억장이 무너졌다. 말려서도 달래서도 안 되는 남편의 주벽은 그녀를 산으로 가도록 했다. 집 뒤로 오르는 산은 언제나 포근하게 감싸 안았고 할머니는 마음이 편했다. 산나물이나 송이버섯을 채취해서 생활을 하는 것은 덤이었다.
비탈길을 단숨에 오르고 내리고 이리저리 다니다보면 어느새 하루해가 가고...
이럴 때마다 남편은 할머니를 찾아 여기저기 헤매기도 했고 구박도 했다. 이렇듯 남편이 속을 썩여 힘들어도 자식들 때문에 숙명으로 살았다.
술을 마시지 않았을 때 남편은 말이 없었고 자상했다. 간혹 나를 만나면 집에서 수확한 채소들을 듬뿍 담아주는 인정도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많이 받았던 남편은 지난해 여름 어느 날 많이 마신 술과 피운 담배로 인한 폐암으로 할머니 곁에서 멀리 떠났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할머니는 살아있을 때 고생시킨 일을 원망하기보다는 “돌아가시기 전 며칠동안 밥을 전혀 드시지 못했던 것이 내내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이제 할머니는 남편이 없는 집에 혼자서 살고 있다. 농사를 짓고 닭과 소를 키우면서 바쁘게 일하고 있다.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면 왜 빨리 안 오느냐?” “어디 갔더냐?” 며 성화를 내던 남편이 없으니 마음대로 다닐 수 있어서 좋다고 하시면서도 간혹 남편이 그리운 모습을 보이곤 한다.
자식들은 공부를 많이 시키지는 못했어도 모두 결혼하여 제 갈 길을 가고 있으며 어머니의 힘들었던 지난날을 잘 이해하고 생각하는 마음이 깊어 보기에도 좋다.
살아온 날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남편 때문에 너무 힘들었기에 남편이 없으니 속이 시원하다는 표현을 할만도 한데 그런 내색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리워하기만 하는 할머니, 아들딸에게 요구를 하기보다는 자식들에게 언제나 짐이 되어 미안하다고 되풀이하는 말을 자주하는 것을 보고 아내는 할머니가 존경스럽다고 했다.
그런데 할머니는 배우지 못했으니 글을 모른다, 옆에서 보기에 안타까우니 아내가 글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할머니 이름부터 시작한 글공부는 남편이름 딸 아들의 이름에서 채소나 동물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제 얼마 안 있어 아들과 딸에게 편지를 쓰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있으니 둘을 배우고 하나를 까먹는 처지지만 앞으로 나아갈 것은 틀림없다.
오지중의 오지마을 시골 할머니의 가난한 삶이, 배우지 못한 무지한 삶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내가보기에는 국가대표선수다. 한국이 이렇게 묵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로 하여 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사실은 틀림없다.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추위는 할머니 집으로 들어가는 물을 얼게 했다. 부엌에서 물을 쓰지 못하니 불편하기 이를 데 없지만 불평하기 보다는 뒷마당에서 솟아나는 샘물을 끌어들여 쓰는 지혜도 발휘하고 있으니 다행이다.
며칠 전에는 할머니 집의 연탄보일러가 작동되지 않아 추위에 떨고서 애를 태우고 있기에 자세히 보니 더운 물을 방으로 순환시키는 모터와 연결된 온도 감지기가 불량이었다. 나는 한 시간이나 걸리는 부품상회에 가서 온도감지기를 구입해서 교체해 드렸다. 작은 도움이지만 할머니는 감격했고 아들과 딸들에게까지 미담(?)을 전달해서 고맙다는 전화를 하게하는 정성도 가졌다.
어제는 진눈깨비가 오더니 비가 뿌렸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밤사이 기온이 떨어진 까닭에 우리 집으로 오르는 비탈길은 미끄러운 빙판으로 변했다. 미끄러운 길이 되어있으리라는 짐작을 미리하신 할머니가 전화를 걸어왔다.
“어제 내린 비로 오늘 바닥이 미끄러우니 함부로 길을 나서지 말라.”는 경고였다.
비록 학교에서의 배움은 없었지만 살아온 경험은 지혜로, 정성으로 이어지고 더 나아가서는 안전까지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현명함도 가졌으니 나는 할머니가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2010 년 2월 1일(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