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 두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잃어버린 서류 한 장을 찾기 위해 퇴근 후 몇 시간 째 구석구석을 뒤지다가 벽장에서 낡아서 쓰지 않는 조그만 지갑 하나를 찾았다. 그러고 보니 이 지갑조차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으니……. '여긴 뭘 넣어 두었을까?' 지갑을 열고 속을 들여다보던 나는 "아-. 여기들 있었구나.' 하고 혼자 반가움의 소리를 냈다. 지갑 속에는 몇 시간 째 찾던 서류가 아니라 아무렇게나 넣어 둔 반지들이 있었다. 몇 년 전 집 수리를 한 후 보이지 않는다며 찾아야지, 찾아야지 하다가 내 기억 속에서 멀어진 반지들이 저 네 끼리 모여 햇빛 보기를 고대하며 나에게 수많은 불평들을 늘어놓고 있었다. 나는 반지를 좋아하는 편이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들길에 피어 있는 토끼풀을 뜯어 동그란 꽃 만 남기고 줄기를 길게 반으로 갈라서 손가락에 얹어놓고 줄기를 묶어 꽃반지를 만들며 놀기도 했고, 좀 더 자라서는 짝짝 씹던 껌을 엄지와 검지로 누르고 늘이기를 반복하면서 껌에 이상한 색깔과 기포 같은 것이 생기기를 기다려서 손가락에 감아 오묘한 문양의 반지를 감상하기도 했는데 하루 종일 모양을 바꿔가며 수많은 반지를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어른이 되면서는 길을 가다가 보석상의 진열장 옆을 지나칠 때 그냥 지나는 법이 없었다. 체면을 생각해서 남의 집 진열장을 오래 들여다 볼 수는 없고, 사지도 않으면서 들어갈 수는 더욱 없어서 진열장 옆을 지날 때 번개같이 슬쩍 훔쳐보는 버릇이 생겼다. 한 번만 보면 보석세공이 어떤 유행으로 변해 가는지 직감이 갔다. 관심이 이러하니 빠듯한 우리 집 경제에도 반지가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용한 밤에 서랍에서 굴러다니는 반지를 꺼내어 닦으면서 이야기를 주워 모으는 버릇도 생겼다.
보라색 돌에 별처럼 빛을 발산하는 콩알 크기의 반지. 결혼할 때 받은 반지다. 별처럼 빛이 직진한다고 붙여진 스타 반지. 칼 같이 뻗어 가는 빛이 신기하기도 하고 백금이 스타를 우아하게 감싸고 있는 세공이 너무 예뻐서 닳도록 들여다보았었다. 그런데 그 시절 소문나게 잘 가는 시집이면 다이아반지를 받는다는 친구의 말에 씁쓸하게 내려다 본 적도 한 두 번은 있는 철없는 내 젊은 시절을 생각나게 하는 반지다. 이제는 손마디에 걸려 들어가지도 않는 반지. 이 가문에 들어오는 단 한 장의 입장권 같은 이 반지는 그래도 옛날에는 나도 꽤 가느다란 손의 소유자였다는 증거인 것 같아 좋다. 핏빛처럼 빠알간 루비. 내가 이 가문에 들어오면서 예를 올 릴 때 누구신가 절값으로 주신 반지다. 타원형으로 생긴 이 반지는 빛이 곱기가 말 할 수 없었으나 신부 손에 맞춘 적이 없어 늘 커서 헐렁거려 외출 할 때는 껴 보지도 못한 반지다. 집에서만 쓰다가 언젠가 들여다보니 이가 빠져 있었다. 설거지통에서 사고가 났나보다. 그 후는 어른들께서 보실까 봐 집에서도 낄 수 없었던 반지. 어쩌다 이리되었을까를 되 뇌이며 아깝고 안타까운 마음에 잠을 설친 적도 많았다. 그런데 나이 들고 보석에 대한 상식이 생기면서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천연루비가 아니라 합성이라는 것이었다. 그 크기의 천연루비라면 값이 지금도 어마어마하며 이런 시골 가게에는 출현도 어렵다는 것을 늦게야 알았다. 그래도 빠알간 알속에서 빠알갛게 익어 가던 젊은 시절을 되돌려주는 반지다. 포도 알처럼 까만 자수정반지. 잘 알고 지내는 보석상에 볼일이 있어 갔더니 주인이 새로 나온 보석이라며 지성으로 권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날까? 그렇잖아도 움직이는 마음에 가격까지 잘 해 준다니 마다할 수가 없었다. 짙은 보라색의 세계는 황홀했다. 내 손으로 처음 산 것이니 자수정 반지에 대한 애착은 대단했고 한 동안 내 손에서, 목에서 자수정이 떠날 줄 몰랐다. 몇 년이 지난 후 우연히 친구들과 수다 떠는 시간에 자수정은 색이 짙어도 연해도 좋은 것이 아니며, 맑고 투명하여 가장자리와 중심의 색이 짙기가 다르게 보이는 것이 좋은 품질이며, 우리나라의 자수정 품질이 워낙 좋아서 이웃나라 일본인들이 그렇게도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와서 슬그머니 꺼내서 확인을 해 본 적이 있었다. 내 것은 그 조건을 다 갖춘 것 같았고 그렇게도 좋은 것을 일찌감치 장만하길 잘 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인터넷에서 알아낸 상식으로 내 것에 대해 의심이 갔고 까마득한 옛날 나에게 자수정을 권한 아주머니를 만난 기회에 물어보았더니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예. 그거, 러시아 산이지요. 국산이 그만하면 그 돈에 만지지도 못해요." 하기야 내가 그 때 국산을 달라고 한 적은 없으니 뭐라 할 말은 없었지만 놀라운 것은 분명 우리가 서로 오고가지 않던 시절에도 공산권국가와 교역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순진한 나는 그 시절 이 땅에서 팔면 당연히 국산품인줄 알았고 저가의 수입품이 고가의 국산품을 대체하는 일을 몰라서 참 황당해 했던 기억이 나는 반지다. 잘 난 듯이 툭 튀어 올라와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반지. 30대의 여자들이 사는 이야기를 하다보면 결혼반지이야기가 꼭 나온다. 내가 결혼 할 당시는 소문난 결혼만이 주고받는 다이아몬드반지. 당연히 소문도 없었을 테니 다이아반지도 없었다. 시이모님 되시는 분이 조카며느리의 다이아몬드반지는 당신이 맡아 하겠다고 하시고는 당일 날 펑크를 냈다는 이야기를 한 두 번 들었었다. 별로 부러워 한 적은 없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속물근성이 나와 심심할 때면 남편을 향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슬슬 긁기도 했다. "마누라 생일을 알기나 하나. 남들 다 주는 다이야 반지를 해줬나?"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 두 번이라 더니 긁는 횟수가 많아지던 어느 날, 좋다! 내 하나 해준다하며 사 준 반지다. 엎드려 받은 절이지만 그 광채도 정말 현란해서 좋았다. 그 반지를 보고 있노라면 젊었을 때 티격태격하던 모습이 생각나 피식 웃어버린다. 반지를 못해준 것이 마치 자기 의무를 못한 것처럼 묵묵히 듣기만 하던 남편도 생각나고 빚 받아내듯 당당하게 종알거리던 생각도 난다. 가난했다고 말 할 수는 없지만 빠듯한 젊은 시절의 우리 가정이 필름 돌 듯 해서 좋다. 친구들끼리 한 달에 한번 모여 점심을 먹고 남은 돈을 여러 해 동안 모아 두었다가 다같이 모여 반지를 디자인까지 해가며 단체로 맞추어 가진 18금반지도 있다. 대나무 마디를 상징하는 문양을 넣은 이 반지는 잘 떠들고 잘 돌아다니던 젊은 한 때 다짐한 우정이어서 작지만 볼 때마다 깔깔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해서 늘 웃음을 머금고 보게 된다. 이름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검정색 보석으로 가장자리를 두른 금반지도 있다. 돌아가신 아버님의 유품인데 약간의 무게가 느껴지는 이 반지는 내 집에 오는 사람 반갑게 맞이하고 한 끼라도 따뜻하게 먹여 보내라는 아버님 말씀이 들리는 반지다. 올망졸망한 아이들 돌 반지와 첫 딸 낳아줘서 고맙다고 사준 서 돈 짜리 금반지도 있다. 나라 경제가 어려워 모두들 줄을 서서 금반지를 낼 때 바쁘다고 차일피일 미루다 날을 놓친 반지들. 이 반지들은 이걸 그 때 냈어야 하는데……하는 후회가 되어 얼굴이 붉어지게 만든다. 해외를 방문하면 나는 작은 반지를 기념으로 산다. 결코 비싼 것이 아니라 십만 원 안팎의 반지들이다. 동유럽 같은 곳에서는 뛰어난 세공이어도 5만원 안팎의 반지가 많다. 이런 것들은 모처럼의 해외경험 중 잊기 쉬운 추억을 담을 수 있어 좋고, 부피가 작아 오래 간직할 수 있어 좋다. 하찮은 반지지만 조용한 오후 호박반지를 보고 있자면 모스코바의 잿빛 하늘과 드넓은 붉은 광장이 보이고 만났던 사람들의 표정, 웅장한 백화점, 질긴 빵 등이 파라노마로 지나간다. 당연히 내가 주인공이다. 베트남에서 산 보잘것없는 진주 반지를 보고 있자면 처음 들어 본 대나무로 만든 목관악기의 구슬픈 소리가 들려오고 겨울 비 속의 아름다운 하룡베이의 장관이 떠올라 참 즐거울 때가 있다. 계림의 풍광이나 상해의 웅장함도 나는 강에서 키운 팔만 원짜리 담수진주에 담아왔고 지구상의 마지막 공원이라는 뉴질랜드도 쌀알크기의 오만 원짜리 오팔에 담아왔다. 작은 돌이지만 그 속에는 깨끗한 거리, 순진한 인심, 구름같은 양떼들이 다 들어있다. 반지마다 사연이 있어 값의 고하를 막론하고 하나같이 소중하지만 여러 개의 반지 중에서 알 빠진 반지가 하나 구르고 있었다. 몇 년 전일까? 경주로 수학여행간 막내가 급하고 통통 튀는 숨 찬 소리로 전화를 했다. "엄마, 여기 경주 여관. 근데 여관 문 앞에 다이아몬드 반지를 파는데, 만 원짜린 데 오늘만 아저씨가 이천 원에 해 준다 그래. 다 팔릴까봐 얼른 샀어. 엄마 손에 맞을지 몰라."그러고는 끊었다. 시외전화니까. 물론 가짜겠지만 그래도 다이아 반지를 샀다는데 그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수학여행에서 돌아온 막내는 다짜고짜 반지를 내 손가락에 끼워주며 한 마디 했다. "엄마. 올 때는 천 원에 팔잖아." 어린 마음에 다 팔릴까 걱정해 삼천 원 가지고 간 용돈에서 이천 원을 주고 엄마 반지부터 샀으니 나는 얼마나 행복한 엄마였을까? 반지를 끼고 출근을 하는 버스 안에서 혼자 행복해하며 주머니에 손을 넣고 기특한 막내의 마음을 헤아리듯 반지를 엄지로 살살 굴려본 게 문제였다. 다이아가 빠져서 따로따로 굴러다니고 있는 것이다. 실망스러워할 딸의 마음을 생각하니 참으로 난감했다. 알 빠진 반지를 들고 가서 동료들에게 자랑을 하고는 여지껏 다른 것들과 한 곳에서 보관하고 있었다. 단 십 원의 가치도 없는 것이지만 어린 딸의 예쁜 마음과 손가락에 딱 맞아준 신통함, 한없이 흐뭇했던 내 기분이 그대로 들어있어 절대로 버릴 수 없는 반지다. 지갑을 거꾸로 해서 쏟아놓고 몇 개 되지 않는 반지를 보고 있자니 참 너무 했다는 생각이 든다. 많지도 않은 것을 왜 이렇게 뭉쳐 두고 오랫동안 찾지도 않았을까? 지닌 가치가 적어서도 아니고 유행이 지나서도 아니다. 너무도 바쁘게 살아가는 일상 때문인 듯 하다.
"서류 찾았는가?" 몇 시간째 꾸물거리는 나를 향해 거실에서 행여나 하고 서류를 기다리던 남편이 소리쳤다. "여기도 없네요." 얼굴만 돌려 대답하면서 주섬주섬 흩어진 반지를 쓸어 모아 다시 낡은 지갑에 되 넣었다. 잃어버린 서류 덕분에 모처럼 한가하게 반지와 이야기하며 시공을 넘나 들었나보다. 지갑을 구석에 밀어 넣다말고 다시 지퍼를 열었다. '오늘 기분 한 번 내 보자.' 속으로 중얼거리며 막내딸이 사다 준 알 빠진 반지를 집어 들었다. 이제 다 자란 딸이 자기 기억에도 없어진 옛 반지를 보고 뭐라고 할까?